웹소설 속 뉴트로들

이융희 텍스트릿 팀장

대중문화 공부를 하다 보면 선생님들이 농담처럼 <선데이 서울> 얘기를 꺼내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잡지가 이만큼이나 가치가 있고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줄 알았더라면 모아 뒀어야 했는데’라는 푸념입니다. 실제로 과거의 대중문화를 연구하다 보면 사료의 소실과 쉽게 맞닥뜨리게 됩니다. 결국은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구술 채록으로나마 문화 파악을 겨우겨우 해내지요. 이렇게 연구가 어려운 까닭은 대부분의 문화잡지가 저품질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편견하에 하급의 종이를 사용해 대충 찍어 만든 저품질의 잡지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양의 펄프 픽션들과 비슷하게 ‘빠르게 보고 버릴 수 있는’ 잡지가 이상향이 되었죠. 어떤 연구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던 ‘폐지 수거 사업’이 모든 자료를 삼켜 버렸다고 푸념하기도 합니다. 저도 생각이 나네요. 초등학교 때 의무적으로 집의 신문이나 안 보는 잡지 등을 가져가서 우유나 어린이 신문으로 바꿔 받았던 기억이요.

석사 논문을 쓰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당시의 저는 1990년대 전후의 판타지 소설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쏘다녔는데요. 저널에서 다뤄지는 판타지의 이미지는 그저 대상화된, 내부의 팬덤이 아닌 사회가 바라는 프레임으로 덕지덕지 기워진 기록들이었습니다. 대중 스스로가 증언했던 기록은 사라지고, 대중 바깥의 사람들이 억눌러 온 기록만 남아 있으니 가슴이 답답했지요. 이것은 비단 연구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아쉬움은 아닐 겁니다. 실물 없이 가상의 기억으로만 재현된 과거는 완전할 수 없기에 낭만화되고 강화됩니다.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노스텔지어를 느끼는 까닭이지요.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게임, 소설이 좋았다고 안타까워하며 그 시대를 그리워한 적 있는 모든 사람이 비슷한 향수감을 공유할 겁니다. 그렇다고 정작 그때의 기억을 노골적으로 마주하게 되면 “뭐야, 내가 좋아하던 게 고작 이런 거였던가?” 하면서 낯선 실체에 실망하고 말겠지만요.

이러한 향수와 실체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모방체가 문학이겠지요. 과거 그 시절의 낭만과 향수를 웹소설로 재현해 내는 소설들이 있습니다. 최근 웹소설의 주제가 ‘회귀’인 만큼,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추억을, 문화와 사람들을 기록하는 것이 무척이나 쉬워지지요. 『마법천자문』 시리즈(아울북)의 성공이 보여주었듯이, 스토리텔링과 결합한 지식은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웹소설과 결합한 그때의 추억들은 시대를 기록하는 강력한 기록이자,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매개체가 됩니다.

이것이 단순히 웹소설만의 일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2019년 주목할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뉴트로New-tro’입니다. 단순히 레트로, 복고를 가져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재해석된 복고를 소비하는 것이지요. 뉴트로에 성공한 웹소설을 주목한다면, 새로운 아이템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급작가, 회귀로 일본을 지배하다」 커피는카누 지음, 문피아, 연재 중, 불규칙 연재, 2018∼

커피는카누 작가의 「특급작가, 회귀로 일본을 지배하다」는 독특한 서브컬처의 지형도를 보여줍니다. 삼류 라이트노벨 작가 이서준이 ‘제1회 전격문고 대상’이 진행되던 때로 회귀해서 게임소설, 그리고 라이트노벨이라고 불리는 장르를 직접 만들어 가는 소설이니까요. ‘fate’ 시리즈로 유명한 타입문을 키워 내고, 동방시리즈를 필두로 동인 게임 시장을 먹고, <유희왕>을 뛰어넘는 카드게임을 만들어 냅니다. 츤데레, 로리 같은 서브컬처 동인의 여성 캐릭터 공식을 최초로 만들어 내고, 아키하바라에 전용 샵을 개설해서 일본 서브컬처 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황당무계한 상상력이지만 그 안에는 작가가 보여주는 서브컬처의 애정과 기억들이 남아 있습니다.

왜 일본 서브컬처 시장과 라이트노벨 산업은 예전만큼 큰 위세를 갖지 못할까? 그런 의문에서 시작해 서브컬처 시장의 병폐와 라이트노벨 시장의 이야기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2000년대의 라이트노벨과 애니메이션 추억들이 잔뜩 펼쳐집니다

「게임마켓 1983」 손인성 지음, 문피아, 완결, 2016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일본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많은 서브컬처들이 일본시장을 통해서 국내에 수입되었고, 그때의 향수를 가진 분들이 현대 한국의 대중문화를 가꿔 왔기 때문입니다. 손인성 작가 역시 꾸준히 1980년대의 문화, ‘레트로’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입니다. 「게임마켓 1983」은 일본에서 레트로 게임 제작자로 활약하는 강준혁을 다루면서 지금의 모바일 게임 시장과는 다른 콘솔 게임 시장의 향수를 재현합니다. 손인성 작가는 비슷한 설정이 이어지는 「토이마켓 1985」라는 후속작을 통해 장난감이라는 분야의 향수 역시도 재현합니다. 캐러멜에 들어가는 장난감에서부터 그 시절의 조립 장난감 향수까지요.

최근 유튜브에서는 미니카를 조립하거나 로봇을 조립하는 등 레트로 놀이 문화들을 다시 소환해 만들고 만져 보는 채널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들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웹소설은 독서의 재미와 놀이의 재미 두 가지를 한 번에 잡을 수 있겠지요.

「1983 전생 만화왕」 장성필 지음, 문피아, 연재 중, 불규칙 연재, 2019∼

장성필 작가의 「1983 전생 만화왕」 이야기는 1980년대로 회귀한 주인공이 자기 여동생의 천재적인 그림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 만화산업에 진출해 만화 작가로 성공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얼핏 보면 재미있는 소설의 내용이지만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1980년대 초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군부 독재 시절의 테러나 지진 사건, 앞으로 도래할 일본의 대지진이나 원자력 발전소에 관한 이야기까지.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갔다는 책임감으로, 만화를 통해 미래의 일본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에겐 교과서 같은 책이 될 수 있겠네요. 대본소 산업의 시스템과 당시의 공장 시스템, 그리고 만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학부모 단체에서 매년 만화책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태우는 장면도 나오면서, 당시 우리 시대의 만화가 걸어 온 길들을 웹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마이, 마이 라이프!」 파셔 지음, 문피아, 완결, 2017∼2018

파셔 작가의 「마이, 마이 라이프!」는 70대 노인이 50년 전으로 회귀하여, 1960년대의 한국에서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소설입니다. 문화보다는 근현대 격동의 시기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 소설이라 할 수 있지요. 할리우드 영화의 붐과 브로드웨이 열풍, 흑인들의 가발 구매 열풍과 미국의 중국 무역 제재, 그리고 그로 인해 특수를 누렸던 한국 가발산업까지. 그 시절의 경제 흐름과 문화를 기록한 소설의 내용은 근현대 시대의 복잡하고 치열했던 삶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속에는 판타지도 녹아 있지요. 품질이 불량했던, 그리고 그 시대의 어머니들을 착취하기만 했던 여러 공장을 조금 더 대우하고 바르게 움직였더라면 우리의 노동산업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이러한 의문을 토대로 현대를 점검해 보는 것이 ‘대체 역사’ ‘현대판타지’라고 불리는 장르들의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khhan21/221700758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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