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그림책 작가 5명

유로스 2019.03.18 10:47 조회 수 : 322

SF 그림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일반적으로 그림책의 1차 독자는 문서해독력이 떨어지는 7세 이하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SF 그림책의 1차 독자는 성인 대상의 SF 소설에 나오는 첨단 과학이나 고도의 외삽, 비유 같은 복잡한 장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SF 그림책에서 SF는 성인 대상의 소설에서 다루는 SF와 차이가 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SF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진입 장벽 없이 쉽게 다가갈 수도 있다. 물론 당신이 SF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림책을 보면서도 SF 특유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SF 그림책 추천작들은 영유아 그림책 시장이 본격적으로 번역, 소개되고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직접 SF 그림책의 그림과 글을 함께 담당하기 시작한 이후에 등장한 작품들이다. 또한 최소 1권 이상 번역된 작가들을 꼽았고, 서점에 없다면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 데이비드 위스너

데이비드 위스너David Wiesner는 1988년 『자유낙하』로 데뷔한 이래 꾸준히 SF/판타지 그림책을 그려왔다. 평생 한 번 받기도 힘든 칼데콧상을 3회, 칼데콧 아너상을 2회 수상할 정도로 평론계의 인정을 받았고, 우리나라에도 그가 그린 8권의 그림책이 모두 번역 출간될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제1회 CJ그림책축제에서 그의 그림책 전권의 원화 전시회를 열었고, 2012년에는 서울 아시데티 축제에서 한국/일본/네팔/필리핀/스리랑카의 어린이들이 그의 대표작인 『시간 상자』를 공연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위스너의 특징으로는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상황을 잘 표현하는 그림, 창조적인 컷 구성, 글 없이 그림만으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독특한 전개 방식. 과장이나 왜곡 없이 세밀하고 깔끔하게 대상을 묘사하는 그림 솜씨와 안정적인 채색은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모사 훈련 덕분이라고 한다. 탄탄한 실력에 더해진 상상력은 마그리트, 에셔, 달리 등 초현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영향력이 짙게 드러난다. SF 그림책 『1999년 6월 29일』은 그의 네 번째 창작 그림책이다. 여기서 위스너는 초현실적인 상황에 대해 이전의 환상 그림책과는 다른 접근법을 보인다. 커다란 음식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는 설정은 쥬디 바레트의 그림책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의 영향을 느끼게 하지만, 그림은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를 떠올리게 하며, 여기에 SF 설정으로 이중의 내러티브와 반전을 더한 것이다. 커다란 채소가 하늘에 떠 있는 이채로운 광경을 마그리트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다가도, 마지막에는 SF에 나오는 전형적인 외계인의 과장된 모습을 그리는 반전이 이채롭다. 과학적인 경이감을 줄 만한 사건을 제시하고, 다시 반전으로 한 번 더 비틀어서 표현하는 위스너의 방법론은 세기말에 대한 풍자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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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단순한 ‘실수’와 ‘과학적인 예측’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진실은 일반적인 SF와 다른 궤도를 그린다. 대학교에서 직접 단편 영화를 찍기도 했던 위스너는 컷의 연결에서 시간과 공간의 연계성을 상상하며 작업하는 듯하다.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의도적으로 가장 최선의 앵글을 잡는다는 느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 콘티를 보는 듯한 컷의 흐름과 구성은 컷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그림책의 컷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은 『아기 돼지 세 마리』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그림책의 전통적인 컷 구성과 분할법에서 탈피한 캐릭터들을 그려내며 옛이야기의 내러티브를 재구축한다. 컷과 컷 사이의 시간과 공간에 주목하며 ‘빈틈’의 내러티브를 써낸 이 작품은 그에게 두 번째 칼데콧상을 안겨줬다. 단순히 이야기/말하기의 측면에서 ‘동화 다시쓰기’에 접근하지 않고 표현법, 그림책의 구성 자체를 새로운 방법으로 펼쳐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의 그림책 작가였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별개로 존재하고, ‘원작’인 글을 그림으로 옮기는 방식을 따랐던 종전의 그림책 작업 방식과 달리, 일러스트레이터가 전면에 등장하고 그림 작가, 즉 일러스트레이터가 직접 글(내러티브)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림책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 형태도 움직임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상태의 ‘글’을 그림이라는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옮겨내야 했던 이전의 그림 작가들과 달리, 처음부터 그림으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방법을 치밀하게 구성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회화에서 쓰이는 다양한 내러티브 전달 방식들이 그림책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그림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며 엄청난 질적 도약을 이루어냈다. 이제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그림책은 단순히 의뢰받은 일거리가 아니라 창조적인 창작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글에 종속된 그림이 그 자체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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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위스너의 창작 방식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가 만화와 무성영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글 없는 그림책’이 그림책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전까지는 글자를 직접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른이 ‘읽어주기’ 위한 도구로써 기능해왔던 그림‘책’이, 이제는 어른의 해석이 없어도 스스로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바뀐 것이다. 글의 보조적인 수단이자 정보 전달과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쓰였던 그림책의 그림이 이제는 글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실질적인 주인의 자리를 탈환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데이비드 위스너는 글 없이 그림만으로, 독자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스너의 작업 방향에서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글과 말(풍선) 없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무성영화와 만화의 방식이었다.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그림을 보면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간다.”

- 데이비드 위스너 인터뷰 중에서

 

이전까지 그림책의 ‘글’에 들어 있던 계몽 요소나 반계몽(낭만적) 요소들은 그림에게 자리를 내주고,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영상 문화의 발전과 함께 그림책 분야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나갔다. 위스너는 무성영화의 내러티브 전달 방식을 참고하고 회화와 만화를 결합하며 어른과 아이를 동시에 매료시켰다. 사실적인 그림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구성은 어른들에게도 매력적이었고, 초현실적인 광경을 실제 상황처럼 꾸며내는 솜씨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구름 공항』에서 위스너는 환상적인 내용을 만화적인 사실성으로 묘사하고, 『시간 상자』에서는 글 없이 그림만으로 중첩적인 내러티브를 선보이며 작품세계의 폭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다. 그리고 최근작인 『아트 맥스』에서는 그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자로 하여금 그림(그리기)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2. 데이비드 맥컬레이

데이비드 맥컬레이David Macaulay의 작품은 1980년대에 처음 번역 소개된 적이 있었지만,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03년 한길사에서 7권의 건축 시리즈를 번역 출간하면서부터다. 맥컬레이는 설계도면 같은 정확한 필치와 치밀한 구성력에 역사적 통찰력까지 아우르며 대성당, 성, 도시, 피라미드, 땅속 세상, 큰 건축물, 이슬람 사원 등의 대규모 건축물을 주제로 삼아 그림책을 만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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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건축물을 주제로 논픽션 그림책을 그리는 데 주력했던 1970년대의 발표 작품 목록 가운데 특이한 작품이 하나 있다. 19세기 고고학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살아있는 SF 그림책, 『미스터리 모텔』이다.

1973년에 발표한 데뷔작이자 칼데콧상 수상작인 『대성당』에서 맥컬레이는 프랑스 쉬트로 성당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실제 건축물처럼 그려내면서 일종의 ‘대체역사’적인 분위기를 보여준 전력이 있다. 그리고 1979년에 발표한 『미스터리 모텔』에서 맥컬레이는 아예 처음부터 “1985년, 유례없는 엄청난 대격변이 한꺼번에 일어나 북아메리카에 살던 모든 생명체가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스터리 모텔』에서 맥컬레이는 역사를 ‘만들어내는’ 현대인의 시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준다. 책의 주인공인 하워드 카슨은 모텔을 무덤으로 착각하고 발굴해나가며 온갖 억측과 착각으로 20세기 ‘고대인’의 매장 풍습을 복원해가는 40세기 아마추어 고고학자다. TV와 리모컨을 ‘무비A, B’ 신과 소통하기 위한 제단과 통신기로, 좌변기 시트와 칫솔을 목걸이와 귀고리로 유추하며, 프랜차이즈 로고와 브랜드의 동물 심볼을 ‘장례 풍습의 동물 숭배’로 해석한다. 특히 ‘유사’(Usa) 지역 ‘양크학’ 학자와 박물관 큐레이터의 모습은 마치 투탕카멘의 저주와 이집트 피라미드를 둘러싼 여러 해석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우리는 고대인의 실제 모습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인의 모습은 그들의 실체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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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를 보는 40세기 고고학자의 시선은 이집트나 인도의 고대 유물을 보는 20세기 고고학자의 시선과 겹친다. 현대인이 과거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듯이, 『미스터리 모텔』에 등장하는 40세기의 고고학자도 똑같은 편견으로 현대인의 유물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리 모텔』의 풍자는 우리가 유추하는 과거의 역사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대문명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대 문명이 만든 생활공간은 SF의 거시적 시선으로 관찰했을 때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좁은 모텔 방은 마치 무덤 같고, 부장품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생활용품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가전제품뿐이다. 좁은 사무실에 앉아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서 TV를 보는 게 삶의 전부인 현대인에게, 『미스터리 모텔』이 ‘낯설게 하기’로 보여주는 해석은 웃음과 함께 기이함으로 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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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크리스 반 알스버그

1979년에 발표한 첫 번째 그림책 『압둘 가사지의 정원』으로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한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1981년 발표한 두 번째 그림책 『주만지』를 통해 칼데콧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2년, 알스버그는 『주만지』의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며 속편 『자수라』를 출간했다.

알스버그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필만으로도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첫 번째 그림책인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서부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환상적 해석과 현실적 해석의 양가적 독해가 가능한 텍스트를 보여준 알스버그는, 『주만지』에서도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이분법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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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지』와 『자수라』는 주인공들이 게임에 참여하면서 환상이 책 속의 현실로 침투할 권한을 얻는다. 이 게임은 도중에 멈출 수 없고 시작과 끝이 명확하다. 게임은 환상이 현실로 넘어오는 계기이면서 동시에 환상이 현실로 넘어오지 않게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게임이 끝나면 현실과 환상이 다시 분리되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일어난 일들은 상상이었을까, 진짜 현실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진 것일까.

게임 속 시간이 흐르며 현실은 점점 환상이 점령한다. 하지만 현실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환상은 게임이라는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나타난다. 다시 말해, 마술은 마술사의 정원 안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그리고 마술사의 정원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술 같은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공간이다. 독자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다시 현실로 넘어가는 이야기 구조에서 주인공의 일상적 공간을 낯선 것들이 점유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품 속에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게임’의 메커니즘 자체는 논리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자수라』가 전편인 『주만지』와 달리 판타지가 아닌 SF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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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가 근대적인 세계의 이해 방식 ‘너머’에 있는 요소들을 이야기로 만드는 장르라고 한다면, SF는 과학의 메커니즘을 세계의 이해 방식으로 삼아 이야기를 만드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판타지가 근대의 ‘저편’에 있다면, SF는 근대가 ‘닿지 않은 연장선’에 있다. 의식적으로 근대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을 다루는 판타지에 비해, SF는 근대적 (논리성의) 세계를 토대로 새로운 근대를 낯설게 보여준다. 근대적 세계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 판타지와 SF는 동일하게 ‘낯선’ 것이지만, SF는 정신적인 영역(꿈)보다 물질적인 영역에 더 가까운 세계다. 따라서 똑같이 다른 세계를 다룬다 해도 나니아는 판타지가 되고 멋진 신세계는 SF가 된다. 『자수라』에서 게임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비일상적이지만 논리적이면서도 과학적으로 기능한다. 집이 파괴되고 외계인이 등장하며 블랙홀에 빨려들지만, 이는 모두 게임에서 ‘예언’하고 있는 상황들이며 SF에서 클리셰로 등장하는 상황들이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인물이 과거의 어떤 지점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시간여행 SF의 구조다. 이처럼 알스버그는 그림책에서 구닥다리 SF의 클리셰들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SF를 떠올리게 하고, 한편으로는 형제가 있다면 누구나 ‘나도 저랬지’라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형-동생 관계를 그려내며 어린이책의 전형성을 흥미로운 내러티브로 보여준다. 

 

“진정한 마술의 힘은 어린이의 영리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 크리스 반 알스버그

 

『자수라』는 회고와 공감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SF 특유의 낯선 시공간을 신기하게 풀어낸다. 그림책의 ‘볼거리’와 함께 어른과 아이 모두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SF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는 특별하다. 알스버그의 그림책은 어린이의 영리한 게임이며, 또한 어린이였던 어른들의 게임이기도 하다.

 

 

4. 디디에 레비/마티유 루셀 

 

마티유 루셀Matthieu Roussel은 아르 데코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고 포토샵과 시네마4D 등의 그래픽 툴로 3D 모델링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에 네버랜드 픽처북 뮤지엄(현 네버랜드 어린이책 뮤지엄)에서 개최한 프랑스 그림책 원화전에서 『엔젤맨』의 원화를 전시하기도 했다. 그의 그림책은 광고업계에서 작업해온 3D 작업을 그림책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동안 포토샵과 3D 효과를 그림책에 부분적으로 활용한 예는 있었지만, 마티유 루셀처럼 모든 그림이 3D로 모델링한 일러스트레이션인 그림책을 출간한 예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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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의 그림책이 다루는 내용이 SF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들이라는 사실도 특이하다. 『엔젤맨』에서 슈퍼히어로의 후일담을 다루었다면, 『안녕? 미스터 지구인』에서는 외계 이주민의 이질감과 소외감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서 다루기에는 무거운 주제들을, 금속 질감의 매끄러운 3D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SF’라는 이야기 장르와 ‘3D’라는 그림 장르가 결합되면서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안녕? 미스터 지구인』에서 지구인인 주인공에게 낯선 행성과 지구의 모습을 SF의 디스토피아적인 비전으로 그려낸다면, 『엔젤맨』에서는 슈퍼히어로의 그늘을 3D 사진첩으로 그려내는 식이다. 특히 『엔젤맨』에서 3D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 같은 사진들을 배치하며 ‘과거의 영광’과 함께 슈퍼히어로였던 그가 세상에서 잊히는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마치 픽사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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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엔젤맨이 남긴 로봇을 돌봐줄 수 있는 아이를 찾을 때까지 자신의 꿈을 유예했다는 점도 이 그림책의 또 다른 주제다. ‘잊힐 수 있는 존재’인 장난감을 잊지 않고 함께 해줄 친구를 구해 물려준다는 점에서, 엔젤맨은 자신이 만든 로봇이 자신처럼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기를 바라며 로봇의 미래를 세심하게 고민한 것이다. 새롭고 더 강하고 더 젊은 히어로에 밀려난 슈퍼히어로의 모습은 마치 새로운 장난감에 밀려 주인의 관심을 잃은 오래된 장난감을 떠올리게 한다. 로봇의 등장은 주제의식을 한층 강화하고 아이들이 엔젤맨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로봇(장난감)에 대한 ‘비유와 상징’ 덕분에, 『엔젤맨』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아이들에게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비유와 상징은 『안녕? 미스터 지구인』에서 더욱 고차원적으로 표현된다. 배나무 씨를 외계 행성에서 키우며 열매를 맺고 외계인과 나눠먹는 장면을 통해, 따돌림을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에 뿌리를 내리는 이주민의 모습을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디디에 레비와 마티유 루셀은 이질적인 표현방식과 소외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연계시켜 그려내고 있다.

 

 

5. 던컨 웰러

 

앞에서 소개한 4명의 그림책 작가들은 2권 이상 번역 출간됐지만, 지금 소개할 던컨 웰러Duncan Weller는 2004년에 발표한 데뷔작 『우주 뱀의 습격』 딱 한 권만 번역 출간된 상태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웰러의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다, 마티유 루셀처럼 SF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외와 소통의 문제를 SF의 대중적인 서브장르 가운데 하나인 ‘괴수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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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컨 웰러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거대 괴수를 그림책의 주제로 삼는 것은 그가 영국계 캐나다 이민자로 살아온 삶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인터넷이 보급된 뒤로 소통의 의지를 잃은 채 자신의 세계(『우주 뱀의 습격』에서는 ‘소행성’)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외부 세계에 관심을 끊는 세태를 풍자한다. 던컨 웰러의 작품 속 사람들은 괴물이 나타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자신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기를 바란다. 괴물의 정체가 밝혀질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 어떤 사람이 인터펫(인터넷)을 하지 않고 ‘바깥’을 보았기 때문이며, 괴물의 진실을 ‘인터펫’으로 알렸기 때문이다. 던컨 웰러는 이 그림책을 통해 인터넷의 폐해를 풍자하면서도 한편으로 인터넷이 진실을 알리는 소통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던컨 웰러의 또 다른 괴수물인 『The Ugg and the Drip』 http://www.duncanweller.com/Flipbook%20TU 에서는 모든 사람이 Yes 박사가 발명한 귀마개를 끼고 있다가 Ugg라는 거대 괴수가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소통의 단절 때문에 현대인들은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Yes 박사와 Ugg는 그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대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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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Electric Cat』 http://www.duncanweller.com/Flipbook%20BEC 에서도 던컨 웰러는 캐나다의 거대한 전자 테마파크에서 탈출한 전자고양이를 등장시키고, 전자고양이가 낯선 땅 멕시코에서 태풍과 맞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SF답게도)전자고양이가 태풍과 싸우는 방식에서 등장하는 ‘과학’이다. 『Big Electric Cat』의 전자고양이는 거대 괴수의 힘으로 대적자들을 제압하는 전통적인 괴수물의 방법을 보여주지 않고, 과학의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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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뱀의 습격』에서도 과학적 설정이 등장한다. 던컨 웰러는 “멀고 먼 우주, 어느 외딴 곳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났어.”라고 첫 문장을 썼지만, 이어지는 두 번째 문장에서 “괴물은 뱃속에 든 핵에너지로 움직이고,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로켓을 지니고 있었어.”라고 과학적인 설정을 덧붙인다. 두 번째 문장을 읽은 독자들은 괴수를 미지의 ‘생명체’가 아니라 미지의 ‘기계’로 인식하고, 기계를 만든 게 누구인지 궁금해 하게 된다.

『우주 뱀의 습격』, 『The Ugg and the Drip』, 『Big Electric Cat』 세 작품 모두 거대 괴수가 등장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세계가 큰 변화를 겪으며, 거대 괴수는 억압적이고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결국 자신에게 걸맞는 친구를 찾는다. 세 작품에서 독자들은 현대사회의 소통 문제, 이주자의 소외 문제, 새로운 세계를 찾는 모험, 진정한 친구에 대한 고민 등을 만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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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2년 8월 28일에 장르비평모임에서 발제문으로 작성하였고, 《미래경》 4호(도서출판42, 2016)에 실렸습니다.

2012년의 발제문과 2016년 잡지 수록본은 내용상 차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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