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림책은 어른의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

-『니노의 강아지』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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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낭만적으로 미화된 유년 시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삶의 진지하고, 어렵고, 위협적인 단면들도 들추어내어 보여줘야 한다. 또 어린이의 모순적인 감정 세계 속으로 들어가 긍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들이 동화를 읽다가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감상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옌스 틸레, 『그림책의 새로운 서사 형식』, 마루벌, 2010, 8~9쪽

 

유년 시절의 기억이 오로지 행복으로만 가득한 사람이 있을까?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늘 행복하기를 바랄지 모르지만, 어린이들에게도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그림책을 고르면서 자주 잊는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즐거움이나 기쁨의 감정을 더 많이 느끼기를 바라지만, 정작 무엇이 그 자신을 슬프게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처럼) 세계를 다르게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세계를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은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이다(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강요하는)세계의 결핍을 극복하고자 상상력을 동원해 행복을 추구한다. 어른들은 그러한 ‘놀이’를 용인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그 ‘잘못’을 교정하고 상상의 세계를 부수려 한다. 결핍을 단순히 ‘내 세계 속에 없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실재하지 않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른의 개입은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결핍을 고착화하고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침범을 당했을 때 어린이의 반응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니노의 강아지』에서 니노는 결핍된 상황이 채워졌다고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상상 속 강아지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동물 친구들을 불러와 어른들의 강요로 생겨난 결핍을 메워나간다.

 

 

2 그림책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서 벗어났다

『아기 돼지 세 마리』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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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서술 방식은 더 이상 그림과 텍스트의 연대기적이거나 비연대기적인 진행 방식에만 국한될 수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림책 작가들은 현대적인 서술의 유희 형태를 고안해서 발전시켜 왔는데, 그림책 분석은 그에 대해서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옌스 틸레, 『그림책의 새로운 서사 형식』, 마루벌, 2010, 13쪽

 

어린이들은 늘 이야기를 새롭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읽히지 않은 이야기들과 이야기의 패턴은 갈수록 줄어들고, 자신이 접한 이야기들을 고착화하며 어른이 된다. 그리고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도 점점 퇴화한다. 그러나 『아기 돼지 세 마리』에서 데이비드 위즈너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야기를 어떻게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가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그 이야기의 독자였고, 이제 어른이 되면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화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익숙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림책 작가가 ‘어른’스럽게, ‘원래’의 이야기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이야기라는 허구를 허구적으로 다시 쓰는 역전이 일어났을 때, 어른과 아이 모두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맛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캐릭터는 이야기의 틈새에 있던 ‘아주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오고, 자유롭게 다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의 배경으로 들어가면 그 이야기의 틀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고, 한번 틀 밖으로 나오는 경험을 한 캐릭터들은 다시 안으로 들어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게 돼지와 용과 고양이는 자신이 속한 이야기 속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그들의 행복을 짓는다. 주어진 이야기 속의 주어진 결말에서 교훈을 찾는 고정된 이야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집’을 구축하고 자신의 친구들을 모은다. 그리고 “그 뒤로 모두들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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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책은 글에 그림을 얹어서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난다

-『여우와 별』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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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의 대부분은 윌리엄 블레이크에게 영감을 받았어요. 그는 글 쓰는 일부터 디자인, 그림, 인쇄까지 전부 직접 작업했어요. 그가 갔던 길을 따라가고 싶은 열망이 있었어요. 저는 어린이 책의 삽화 스타일을 따르면서도 작업물이 순전히 아이들만 보는 그림 책이 되지 않도록 주의했어요. 그리고 심미적이고 더 복잡한 단어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보편적이면서 다양한 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창조하려고 애썼어요.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여우와 별』 출간 인터뷰 중에서

 

그림책의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따로 있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글 작가가 쓴 글을 그려줄 ‘삽화가’를 고용해 ‘동화책’을 만들던 그때, 그림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글을 읽어주면서 아이들이 예쁜 그림을 보며 집중력을 유지시켜주는 게 ‘그림’책의 목표였다. 아이들이 던지고 물고 빨아도 안심할 수 있게 KC 인증을 받고, 튼튼한 양장과 ‘쨍’한 색감을 표현해줄 종이를 고르다 보면 엇비슷한 사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가끔 원작자가 제작 사양을 까다롭게 요구할 때도 있지만, 제작 여건과 종이 수급의 문제로 원서의 느낌을 100퍼센트 재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유아/어린이책 작가 중에 유명한 이름을 떠올려보면 ‘동화 작가’보다는 ‘그림책 작가’, 그림 작가를 떠올리는 게 더 자연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그림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 상을 받은 국내 작가들의 수는 외국 유명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수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 제작과 유통에 관련한 어려움은 여전하다. 조금씩 과감한 시도를 하는 그림책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외국에서 상을 받은 작가를 제외하고는 15,000원을 넘는 가격의 그림책을 선보이기란 쉽지 않다. 제작과 관련해서 경험을 충분히 쌓은 작가들도 많지 않을뿐더러 제작처와 협의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의 『여우와 별』은 부러운 ‘작품’이다. 펭귄 클로스바운드 클래식 시리즈의 디자이너였던 그는 과감하게 백박 포클로스 양장에 별색 4도와 검정 1도를 활용했고, 한국어판을 낸 사계절 출판사에서는 최대한 원작의 사양을 그대로 재현해내면서 이 22,000원짜리(팝업북 외에는 이 정도 가격의 그림책이 드물다) 그림책이 번역 출간됐다. 표지 인쇄는 무려 6개월 동안 시험 인쇄를 거쳐야 했고, 띠지 종이조차 표지에도 잘 쓰지 않는 고급 종이를 쓴 데다 시적인 원작의 맛을 살릴 방안으로 소설가에게 번역을 맡기기도 했다. 그림의 세밀함이나 화려함에만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인쇄/제본이라는 물성을 충분히 고려해 최적의 결과물로 대량생산-대량판매할 수 있는 예술을 창작하려는 데서, 그러한 시도를 지속할 수 있다는 데서, 이 모든 노력을 존중하고 가능한 한 재현하려는 출판사들이 있다는 데서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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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림책은 소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에서 늘 소외당하므로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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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무엇인지 알면 사람들은 그것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을 게다.”

미하엘 엔데, 『모모』 중에서

 

최초의 근대적 소설을 『돈키호테』라고 한다면, 소설은 태생부터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던 사람들, 소외되기에 십상인 사람들에게 시선을 맞춰왔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온다. 이는 근대 이후의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도 마찬가지인데, 근본적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은 (어른의 세계에서 소외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당연할 테다. 『모모』의 작가로 알려진 미하엘 엔데는 여러 작품에서 (‘사회’의 눈으로 볼 때) 소외된 대상,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대상이 홀로 오롯이 살아가는 풍경을 묘사하며 오히려 사회 속에서 안락하게 스스로 소외되는 인물들의 상황을 드러내곤 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에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림자(사회 부적응자, 사회에서 꺼리는 자)들과 함께 즐거운 ‘놀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서 돈을 벌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보인다. 이는 집필 당시 환갑을 앞두었던 작가 자신에 대한 묘사라고도 볼 수 있다.

 

 

 

※ 2017년 4월 29일, 독서모임 ‘다독다독‘에서 그림책을 주제로 쓴 발제문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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