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읽기 좋은 날-③

영원히 반복되는 일주일, 『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송병선 옮김, 『모렐의 발명』, 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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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에서 타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Social Network Services)를 하며 타인의 사진을 본다. 사진을 보면 그가 어디를 여행했는지, 누굴 만나고 무엇을 먹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 이미지는 진짜 현실이라기보다는, 즐겁게 연출된 순간에 포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진을 보며 그가 행복하고 즐겁겠다고 생각하며 평범한 자신의 일상과 비교한다. 그리고 그를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하며 급기야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SNS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연출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을 사는 사람의 상태까지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은 옛날 사람들이 듣기에는 터무니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명확한 사실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오늘날의 현상을 예견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이번에 소개할 아르헨티나 작가인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Adolfo Bioy Casares)가 발표한 『모렐의 발명 La invencion de Morel』(1940)이다.

 

 

 

- 분명히 무인도라고 들었는데, 나 말고 누군가 있다. 그것도 한 무리씩이나!

 

 여기에 도망자가 있다. 그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경찰에게 잡히면 오직 사형뿐이기에, 그는 전염병의 근거지라 아무도 가지 않은 '빌링스'라는 무인도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목숨을 건 항해를 나선다. 섬에 도착했을 때 추적자의 감시에서 벗어나 앞으로 남은 생을 평온하게 살 줄 알았건만, 그를 반기는 광경은 황폐한 땅과 끔찍한 늪지, 무시무시한 파도 뿐이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비극이었는데 세상은 그를 더더욱 위기상황으로 내몬다. 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이 자신을 잡으러 온 경찰이 아닌지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그는 그 와중에도 매일같이 똑같은 바위에 앉아 석양을 감상하는 여인 포스틴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녀의 관심을 끌어보려 노력하지만 그녀는 주인공을 쉽게 무시해버린다. 게다가 이미 그녀의 곁에는 연인처럼 보이는 남자도 있다. 그래도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 섬은 너무도 이상하다.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은 폭우 속에서도 춤을 추고, 낚시를 하고, 식사를 하며 섬을 돌아다니며,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도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심지어는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거나, 일주일간의 대화와 행동을 똑같이 되풀이하기도 한다.

 

 섬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진실은 놀라웠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고 그저 모렐이라는 과학자가 만든 기계에 녹화되어 일주일 주기로 반복 상영되고 있을 뿐인 영상이었다.

 

 

 

- 모렐의 발명품

 모렐의 발명품은 피사체의 시각적 형상 뿐 아니라 촉각, 청각, 미각, 후각까지 녹화하여 상영할 수 있는 기계로, '영상'을 보는 사람에게 피사체가 살아있는 걸 실감하게 해준다. 직품 속에서 영상이라고 언급은 되지만 오감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SF소설에서 묘사하는 가상현실과 조금 더 유사하다.

 

 모렐은 '모든 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면 영혼이 태어난다'1)고 말하며, '기계들이 만들어 낸 사람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할 그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다'2)고 주장한다.

 

 포스틴을 사랑한 모렐은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섬을 구입하고, 친구들과 그녀를 이곳으로 불러 몰래 영상을 찍는다. 모렐의 기계가 고장나거나 동력원이 되는 밀물과 썰물이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가 만든 세계는 영원히 구현된다.

 

 

 

- 누군가의 시선을 받기 위해 되풀이되는 세계

 그러나 모렐의 발명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기계에 찍힌 사물은 현실에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렐의 기계에 녹화된 사람들은 주인공이 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기계를 만든 모렐과 그가 사랑한 여인 포스틴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두가 죽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

 

 모렐은 포스틴과 사랑을 나누길 바랐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결정은 그가 사랑한 포스틴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그도 그 결정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자신과 그녀가 찍힌 영상을 누군가가 보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는 장면을 봐주기를, 그래서 누군가가 영상을 보고 부러운 감정을 느끼기를 원했다. 영상을 찍으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를 말하자면, 두말할 것도 없이 '시선'이다. 빌링스라는 섬은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 섬일 뿐이다. 모렐은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의 헛된 사랑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 듯하다. 주인공은 모렐의 계획에 맞게 행동한 모범적인 관객이다. 그는 섬에서 모렐과 포스틴을 보았을 때, 질투심을 느끼고 모렐을 연적으로 생각한다.

 

 

- 그녀의 시선 끌어오기

 

 섬의 진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포스틴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오기 위해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그는 그녀를 향한 짝사랑을 쌍방의 사랑으로 이루기 위해 자신을 촬영하기에 이른다.

 

 그는 그녀가 반복하는 대사와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마치 그녀가 자신을 보고 행동하는 것처럼 말과 행동을 촬영한다. 하지만 그것은 타이밍에 맞게 교묘하게 연출된 것일 뿐, 그는 영원히 그녀와 말 한마디조차 나눌 수 없다.

 

 주인공의 결정 이후에 대한 내용은 작품에서 나와 있지 않지만, 빌링스에 새로운 방문객이 도착하여 그가 만들어낸 영상을 본다면 마치 그와 그녀가 각별한 관계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죽었지만 영상은 반복하여 재생될 것이다. 그 또한 모렐처럼 타인의 눈으로 자신이 인식되어 그녀와 각별한 사이임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 사진과 영상, 미디어가 발전하는 시대에서

 

 『모렐의 발명』은 포스틴을 사랑한 모렐과 화자인 나, 즉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의 이야기다. 그들 모두 그녀에게 빠지지만 정작 그들은 그녀의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이 작품에서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모렐의 기계처럼 한 번 찍힌 피사체가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타인이 부러워할만한 이미지를 연출하여 촬영하고,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며 게시한다. 자신이 연출한 의도대로 사람들이 봐주길 원하는 것이다.

 

 『모렐의 발명』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지만 특히 이러한 현재의 문화 현상이 1940년대의 소설 속에서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부러운 시선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매체가 발전하며서 타인의 시선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은 더욱 더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지금은 어떤 때보다 사진과 영상 기술의 접근성이 쉬운 시대이다. 누구든지 촬영을 할 수 있고, 조금만 배우면 컴퓨터로 편집이나 연출을 통하여 이미지 조작이 가능하며, SNS에 개인 계정이 있다면 게시를 하는 것도 쉬워졌다

 자신을 표출하는 수단이 더욱 더 늘어나고, 이미지의 편집과 연출이 점점 더 간편해지는 이 시기에 『모렐의 발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있다.

 

 

+

 

텍스트릿 필진 박해울의 글입니다.

 

 

※ 각주

 

1)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송병선 옮김, 『모렐의 발명』, 민음사, 2008, p.115.
2)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같은 책,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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