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의 매력

손진원 텍스트릿·고려대학교

‘로맨스 속 남자 주인공’하면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무래도 로맨스 장르

의 남자 주인공이니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갖추었겠죠. 좀더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 봅시다. 준수한 외모와 큰 키, 꽤나 운동을 했을 것 같은 탄탄한 몸. 왠지 외모뿐만 아니라 스펙도 완벽할 것 같지요. 집안과 학벌도 좋고, 본인의 실력도 뛰어나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능력자. 얼마나 능력자인가 하면 여자 주인공이 겪는 모든 갈등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해 주기도 합니다. 여자 주인공은 손도 대지 않고 시원하게 코를 푸는 격이지요.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가 유행했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로맨스 장르 속 남자

주인공의 성격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맨스는 ‘신데렐라 스토리’라고들 말을 하지요. 여러모로 내세울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이 잘난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의 갈등을 간접적으로 해소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로맨스를 읽는 독자들에게 허황된 믿음을 심어 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모든 소설이 현실을 리얼하게 담아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때로는 독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과정 역시 필요합니다. 어쩌면 외모와 스펙을 한 몸에 똘똘 뭉쳐 놓은 인물이 앞뒤 재지 않고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는 장면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으로 인해, 되려 로맨스라는 장르가 지금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전형적인 로맨스 속 남자 주인공과는 조금 다른 매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연하남인데요. 어리지만 멋진 남자 주인공이나 남자 연예인을 일컫는 요즈음의 유행어 ‘영 앤 리치, 톨 앤 핸섬’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래에 소개할 작품 속 연하남은 영 앤 리치, 톨 앤 핸섬과는 미묘하게 다른 지점이 있습니다. 이전의 남자 주인공들처럼 키도 크고 잘생긴 건 맞는데, 무언가 여자 주인공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제적 위치, 사회적 위치도 불안정합니다. 이들이 로맨스를 이끄는 남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덜트 베이비』 달케이크 지음, 로담, 2016

주인공인 지영은 30세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직장인입니다. 지영은 학교 선배

이자 첫사랑인 승규가 안타깝게 사고로 죽자, 그의 나이 어린 동생 완규를 거두어

키우게 됩니다.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완규는 성인이 됩니다. 어느 순간 완규는 지영을 여자로 보게 되었고 그건 지영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편, 같은 직장의 수찬은 지영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영의 사랑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어덜트 베이비』는 복잡한 완규와 지영의 관계를 잔잔하고 세심하게 풀어 나갑니

다. 첫사랑 승규와의 슬픈 이별이나 오랫동안 돌보아 온 친동생 같은 완규에게 이성

적인 감정을 느끼는 혼란스러움 등, 상상하기 쉽지 않은 두 남녀의 상황을 설득력 있

게 이야기합니다.

지영의 곁을 맴도는 수찬이라는 인물 역시 흥미롭습니다. 수찬은 외모로 보나 스

펙으로 보나 전형적인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에 가깝다고 할 만한 인물입니다. 나이

도 지영보다 한두 살 많아 든든하고 외모도 준수하며 작지만 탄탄한 기업가의 아들

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영에게는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지영의 시선은 자꾸만 완규에게 기웁니다.

완규는 지영을 신데렐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지영의 신분을 상승시켜 주지

도, 돈다발을 안겨 주지도 못하죠. 그럼에도 독자들은 완규에 열광합니다. 죽은 승

규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완벽하게 지영을 이해하고 맞추는 완규

의 특별함. 30대 여성과 20대 남성이라는 격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사랑을 외치는 완고함. 이런 것들이 완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부분입니다. 이제 신데렐라 스토리, 즉 결혼이나 연애를 통해서 사회적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로맨스 장르를 읽는 독자들의 욕망 중 유일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로맨스 독자들 사이에 존재하게 된 것 아닐까요.

『11336』 우지혜 지음, 신영미디어, 2017

백구는 건설 용역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17살에 하나뿐인 아버지를 잃고

고등학교도 그만둔 채 산동네의 좁은 방 한 칸에서 혼자 살아 온 그는 어느 날 불

청객을 맞이합니다. 10년 넘게 텅 비어 있었던 옆집에 묘령의 여자가 몰래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을 백사라 소개한 이 여자는 조금 수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얼굴과 온몸이 흉터와 상처투성이고 어디서 도망이라도 쳤는지 제대로 가지고 있는

물건이 없습니다. 대신 돈다발 가득한 가방을 가지고 있지요. 백사의 원래 이름은 백사희. 능력 있는 의사였지만 이중적인 모습의 남편과 잘못된 결혼을 한 이후 자신의 커리어도 잃고, 남편의 폭력을 피해서 어릴 때 살았던 산동네로 숨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외로이 도망 생활을 하게 된 그녀는 고향 동네에서 다시 만난 백구에게 심리적으로 많은 의지를 하게 됩니다. 어릴 때 ‘옆집 누나’라며 어린 백구를 챙겨 줬던 기억이 생생한데,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백구에게 점점 마음이 향합니다.

백구 역시 전형적인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이라 말하기는 힘듭니다. 결정적으로 백

사의 문제를 백구가 도와주지도 못하는 구조입니다. 오히려 둘 사이의 갈등을 해결

하는 것은 백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멋지게 등장해 모든 것을 해

결하던 로맨스 장르의 문법을 살짝 비튼 것인데요. 그런데도 충분히 백구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백사와는 다르게 겉으로는 거칠어 보여도 착하고 순박한 백구의 매력이 백사에게도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통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의 제목처럼 (백구와 백사를 각각 숫자로 곱한 것이 제목이지요. 109x104=11336) 백구와 백사의 ‘케미’를 한번 느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여름이 끝나면 불청객은 떠난다』 도개비 지음, 봄출판사, 2018

여자 주인공 수연은 외지고 낯선 마을 ‘나양’으로 내려갑니다. 도슨트가 직업인 수

연은 이 마을에 위치한 작은 미술관에서 일을 하게 되죠. 하필이면 마을에 도착한

날 난데없는 폭우가 쏟아지는데 이를 피해 들어간 여관에서 수연은 종하와 만나게

됩니다. 여관집 아들 종하는 마을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는,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꽤 건실하고 싹싹한 청년이지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오릅니다. 권태로움에 빠져 있는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물러나 한적한 마을에서 잠시 지내게 됩

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마을의 아름답고도 묘한 풍경 속에서 삶의 무상함과

지난날의 아픔을 그려 간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비슷한 면이 있지요. 평소라면 호기

심을 가지지도 않았을 이성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는 부분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두 작품의 결말은 확연하게 다르지만요.

수연은 오랫동안 품고 지냈던 아픔과 권태로움을 딛고 이겨냅니다. 종하와의 감정

이 더욱 깊어진 결과지요. 꿈을 포기했던 종하는 수연을 만남으로써 과거를 딛고 한

층 성장하게 됩니다. 두 인물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선의 소소한 변화, 사랑을 계기로 성장하는 두 사람의 나날이 감성적으로 잘 표현된 작품입니다.

『여름 같은 겨울』 이윤정 지음, 다향, 2019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인 세경은 영상 제작 프로덕션에 소속된 작가

입니다.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 영진은 두 달 만난 여자와 결혼한 뒤에 세 달 만에 이혼을 했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세경의 곁에 머물기를 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연애의 잔상에 시달리던 세경은 동료를 대신해 들어온 신입 피디 주원을 만나게 됩니다. 네 살이나 어린, 지상파 방송국의 정식 피디 자리를 노리는 ‘취준생’에 불과한 주원이지만 사랑과 삶의 의미를 잃어가던 세경의 마음을 계속해서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여름 같은 겨울』은 모든 세대가 경험하고 있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세경은

보다 사실적으로 자신의 나이와 위치를 주원과 견주어 보며 고민하지요. 그런데 사

실은 세경과 주원뿐만 아니라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사랑 역시 마

냥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사실 어떤 조건이나 상황을 따지기보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여름 같은 겨울』은

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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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491호에 연재된 큐레이션입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hhan21&logNo=221578349096&parentCategoryNo=&categoryNo=44&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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