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들, 스마트폰을 마주하다

서원득 텍스트릿·연세대학교

 

스마트폰 화면을 지면으로 삼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매체의 변화는 문화 예술의 수많은 부분을 뒤바꾸어 놓습니다. 일단 스마트폰은 가벼운데다 한 손에 들어오는지라, 출퇴근 시간 등 이동하는 시간에 보기 썩 편합니다. 하지만 역시 전자 화면은 눈을 피로하게 하고, 글을 대충 훑어 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죠. 게다가 스마트폰은 좌우로 화면이 좁은지라, 길고 복잡한 문장이 눈에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회당 결제 방식을 취했습니다. 15만 자짜리 1권 대신 5500자의 1회가 하나의 단위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보다 간결하고 빠른 전개로 독자를 만족시켜야만 했죠. 그 결과, 남성향 웹소설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글을 선보이지 않아도 되는 이전 세대에 비해 문장이 간단해졌고, 전개도 빨라졌습니다. 유장한 문장에 느린 전개를 사랑한 문학과 달리, 무협은 비교적 문장도 짤막하고 전개도 빠른 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무협은 어렵지 않게 웹소설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었죠. 하지만 그 말이 모든 세대의 무협이 동등하게 스마트폰 속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협소설 작가 금강이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한국 창작무협은 크게 세 부분으로 세대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야설록이나 서효원 등 소위 한국 구무협이라고 불리는 1세대가 대본소를 기반으로 무협을 써 내려 갔습니다. 1990년대에는 용대운, 좌백 등의 2세대 작가들이 한국 신무협을 탄생시켰죠. 2000년대에는 대여점을 중심으로 한 3세대 무협 작가들이 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4세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본래 이 다양한 세대의 무협 텍스트들은 불법적으로 다운로드 받지 않는 이상에는 한꺼번에 보기 어려웠습니다. 어지간한 대여점의 책장에는 최신 무협이 주로 꼽혔고,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1세대 무협은커녕 2세대 무협도 구경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졌습니다. 헌데 이 모든 텍스트들이 웹소설 파일이 되어 스마트폰 지면에 한꺼번에 풀렸습니다. 게다가 웹소설 시장이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게 되자 많은 무협 작가들이 세대를 불문하고 진입해 왔죠.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스마트폰에 무협의 모든 유산이 통째로 ‘귀환’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네요.

 

헌데 이 과정에서 이전 세대에게 범작이라 평해졌던 어떤 작품들은 흥행하고, 또 어떤 작품들은 과거에 명작이라 널리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얼기설기하게나마 세워져 있던 한국무협의 전통적인 정전(canon) 체계가 도전을 받기 시작하죠. 스마트폰 화면이 지면이 되어 버린 4세대에서, 과거 세대 무협들의 ‘귀환’ 과정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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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용대운 지음, 카카오페이지, 재연재 중, 2013∼, 불규칙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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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전 23권)

용대운 지음, 대명종, 2001∼2012, 절판

(『 군림천하』(35권 발간)

용대운 지음, 파피루스, 2012∼)

 

1980년대 말, 대본소 무협의 인기가 부쩍 저물었습니다. 저질 무협의 범람에 독자들이 지쳐 나간 것일 수도, 당시 부흥하던 만화에 무협이 밀려 나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1세대의 한국 구무협이 쇠락해 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습니다. 헌데 이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가 폭발적으로 팔리던 때이자, 1980년대의 구무협 명작이 재간되어 나름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한 시기입니다. 이에 1990년대 초 몇몇 작가들은 무협의 질을 높여 서점시장 진출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무협의 여러 부분이 뒤바뀌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나온 무협을 1980년대의 1세대 무협과 구분 지어 ‘신무협’이라고 호칭합니다.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명작들도 주로 이때 등장했습니다.

 

용대운은 신무협의 첫 기수입니다. 1993년에 『태극문』으로 신무협의 문을 열었고, 많은 신진 작가들을 독려하여 작품을 내도록 했죠. 그런 그가 1990년대 후반 신문 연재를 거쳐 야심차게 내놓은 무협소설이 바로 『군림천하』입니다. 무공이 유실되어 구파일방 밖으로 밀려난 종남파에서, 주인공 진산월은 죽은 사부의 장례 후 새로운 장문인을 맡게 됩니다. 모든 게 막막한 상황에서 그는 냉혹한 강호에 의해 굴욕을 당하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장문인으로서 다시금 문파를 일으켜 나가죠. 그리고는 스승의 유명을 따라 종남파가 천하에 우뚝 서는, ‘군림천하君臨天下’의 꿈을 향해 갑니다.

 

이전의 「군림천하」는 두말할 것 없이 대중적이면서도 탁월함을 갖춘 명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웹소설 시대에 들어서는 「군림천하」를 버거워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편입니다. 대하소설을 닮아 유장한 문장은 한때 이 소설 최대의 매력 중 하나였습니다만, 좁은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다소 번잡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옛 무협 독자들은 관중의 종남파가 어디의 무슨 문파인지, 탈성퇴는 어떤 무공인지 대강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독자들은 무협의 여러 특수 용어들을 부담스러워하곤 합니다.

 

무엇보다 「군림천하」는 1권씩 빌려 읽는 시스템에 맞춰 나온, 느긋한 전개가 이루어지는 글입니다. 특히 작품의 초반부는 주인공이 힘이 없다는 이유로 괄시를 받는 ‘고구마’ 부분이죠. 이는 몇 권이 지나서야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대반전과 함께 ‘사이다’로 변화합니다. 하지만 회당 연재를 통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사이다 전개에 익숙한 웹소설 독자들에게 초반의 고구마 전개 부분은 너무 느릿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듯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내용의 1권을 25화로 나누어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앞으로 읽을 것인지 몇 번이고 물어본다면, 답답한 고구마 전개 부분이 더더욱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다만 「군림천하」는 스마트폰 앞에서 흔들리면서도, 독자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받지는 않습니다. 이미 「군림천하」에 깊이 맛을 들인 올드 팬들이 굳건한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작품 자체가 중반부터 오랫동안 참아 온 사이다를 터트리며 독자를 몰입시키는 글입니다. 게다가 초반의 느릿한 전개도 디테일이 어우러진 문장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죠. 그 점에서 결국에는 이 노쇠한 명작을 다시금 추천할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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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

우각 지음, 카카오페이지, 완결, 2016∼2018

 

1990년대 후반 IMF사태가 터지면서 전국에 대여점이 우후죽순 생겨납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서점에서 무협을 사서 보기보다는 대여점에서 빌려 보고자 하였죠. 그런 상황에서 새로 무협 작가가 된 2000년대의 3세대는 대여점을 기준으로 신무협을 쓰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3세대의 많은 작가들이 2세대보다는 조금 더 가벼우면서도 대리만족을 주는 데 충실한 작품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웹소설 시장을 선점한 과거의 무협 작가 중 절대 다수가 명작을 만들었다는 2세대보다는 가볍다고 이야기된 3세대라는 점입니다. 「화산권마」와 「무인이곽」으로 카카오페이지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우각 작가 또한 3세대 작가군 출신입니다. 특히 2000년대 후반에 나온 『십전제』(로크미디어)를 비롯한 ‘십지신마록’ 시리즈가 인기 있었는데, 여기에서 다수의 적을 통쾌하게 죽인다고 하여 ‘몰살의 우각’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작가가 웹소설 시장으로 진출하며 선보인 「화산권마」 또한 그의 이전 작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주인공 담호는 화산파의 일대 제자임에도 절름발이라는 태생적인 이유로 괄시를 받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무공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아낌없이 자신을 지원해 주는 스승과 함께 조금씩 상황을 개선해 나갑니다. 허나 어느 순간 주인공은 지나친 시련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마魔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무림에 혼란을 일으키는 어느 숨겨진 적에게 다가가죠.

 

「화산권마」는 ‘몰살’이라는 작가의 별명이 암시하듯 통쾌하게 적을 부수는 ‘사이다’ 전개에 충실합니다. 전개 속도 또한 비교적 빠르고, 문장도 짤막짤막하여 읽기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특히 초반은 주인공이 불우한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기연을 통해 상황을 개선시키며 나름의 사이다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화산권마」는 사이다 전개를 원하는 웹소설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좋은 글이라는 점에서 3세대가 웹소설 시장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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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일도행」

견마지로 지음, 카카오페이지, 완결, 2017

2010년대는 무협의 쇠락기입니다. 남성향 웹소설을 지망하는 신진 작가들은 대부분 판타지로 몰렸고, 그렇기에 4세대에 새로이 등장한 무협 작가는 그 수 자체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무협이 각종 무공, 중원의 지리 등을 포함한 복잡한 장르 규칙을 숙달해야만 쓸 수 있는 글이다 보니, 무협을 덜 읽는 시대에 급격히 사그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런 상황이라 4세대에게 딱히 통일된 특성을 구하기조차 힘듭니다만, 그래도 빛을 발하는 신인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무중일도행」 또한 그중 하나죠. 더운 산마을의 여름, 약초를 짓는 주인공의 허름한 초옥으로 한 묘족 사람이 찾아와 제자의 부고를 전합니다. 겨우 3개월을 머물다 갑자기 사라진 제자였으나, 주인공은 그의 유해라도 거두고자 멀리 떨어진 묘족의 마을로 찾아갑니다. 헌데 그 마을은 석탄을 노린 이방인들에게 장악당해 있었고, 주인공은 그곳에서 억압받는 묘족을 위해 항거하다 억울하게 살해된 제자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마을을 장악한 악당들을 상대로 버거워 보이는 싸움을 시작하죠.

 

쉬운 글은 아닙니다. 장사와 귀주는 어디이고, 묘족은 무엇이며, 신사와 생원이란 건 어떤 신분인지, 소설은 단 한 줄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설의 초반 전개는 잔잔하면서 느릿하기에 빠르게 사이다를 추구하는 요즘 글과는 거리가 동떨어져 있기까지 합니다. 허나 소설의 세심한 묘사는 운남의 산하에서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을 주고, 중반의 폭발적인 전개는 순식간에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면서 침착한 어조로 억압받는 자들과 정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지요. 과거라면 수익성을 이유로 대여점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를만한 글입니다만, 텍스트를 출판하는 비용이 줄어든 요즘 시대에는 마이너한 글에도 어느 정도의 자리가 주어진 듯합니다.


서원득 님의 '이 주의 큐레이션' 연재가 수록된 <기획회의> 496호는 9월 20일(금) 발행되었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hhan21&logNo=221653835248&parentCategoryNo=&categoryNo=44&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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