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글 트렌드를 분석해 트럼프 당선을 예측한 것으로 유명해진 세븐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가 출간되었다. 나는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 책의 저자가 빅 데이터 해석 결과 경제학 서적을 끝까지 읽는 독자가 아주 드물다는 이유로 말미를 (비교적) 흐지부지 끝내버린 부분까지, 모두 읽었다는 말이다. 혹자들이 말하듯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는 창발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고 나에게도 자극을 주었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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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락.)

 

이 책의 저자는 구글의 검색 결과를 통계를 내어 그래프로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를 위시한 빅 데이터들을 분석해 경제학은 물론 각종 사회과학 분야에 접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내가 관심있게 생각하는 장르소설, 특히나 웹소설에서 이런 도구를 사용해 분석 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SF? SF는 안된다. 한국에선 검색량이 너무 적다). 웹소설에서 이런 도구의 유용성은 특히나 중요할 수 있는데, 독자수가 많아 검색 수가 의미 있는만큼 존재하고 독자의 취향이 검색을 통해서 선명하게 드러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웹소설의 여러 장르 중 독자에게 인기 있는 세부 장르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다음과 같이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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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 퓨전 판타지, 현대 판타지, 게임 판타지로 검색. 위 스크린샷은 6월 24일 기준.)

 

설명을 덧붙이자면 어휘에서 '-소설'이나 어휘 안에 띄어쓰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웹소설 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장르 구분이기에 '-소설'을 붙이면 오히려 검색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검색자들이 퓨전 판타지 소설 보다는 그냥 퓨전 판타지로 검색을 더 많이 한다는 말이다). 띄어쓰기의 경우 그렇게 유의미할 정도로 검색량 차이가 나지 않았다. 본래 2어절인 단어들의 경우 각 장르를 비교한다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각 장르의 준말(로판, 퓨판, 현판 등) 또한 검색량은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프를 읽자면 이렇다.

 

로맨스 판타지는 꾸준히 수요를 보여주고 있는 장르다. 제대로 보이진 않겠지만 로판의 상승률은 최근 들어 장르 진입자들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퓨전 판타지라는 어휘는 당연히 감소하고 있었다. 이 장르명은 대여점들이 무너진 이후 잊혀지는 말이었고, 종이책 표지에서도 빠지고 있었다. 내 생각에 이 장르는 '현대 판타지'로 취합하고 있었다. 사실 시대적 특성을 제외한다면 퓨전 판타지와 현대 판타지가 정확히 얼마나 다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반대 급부로 상승해야할 '현대 판타지'가 퓨전 판타지와 함께 하락세라는 것은 언듯 이해하기 어렵다. 내 가설은 이렇다. 현대 판타지를 읽는 독자들의 경우, 이미 문피아나 카카오 페이지 같은 플랫폼 안에서 해당 소설들을 읽는다. 이런 장르는 이미 플랫폼 내에서 수요와 공급이 갖춰진 상태이기 때문에 구글 검색을 통해 그것을 찾아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장르는 웹소설이 시작된 이후 플랫폼에서 해당 독자층을 빠르게 흡수했고 신규 독자들 또한 남기지 않고 빨아들이는 중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가설의 근거는 웹소설 플랫폼에서의 현대 판타지 흥행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역시나, 게임 판타지 장르에 대한 독자의 수요는 아주 컸다. 과거에 비해선 완만한 하락세가 있는 것 같지만 의미있다고 느껴지는 하락세는 아니다. 조금은 거품이 끼어 있기도 한데, 이 검색어에는 단지 웹소설 뿐만이 아니라 일본 라이트노벨과 그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하는 애니메이션(검색어: 노 게임 노 라이프 1화), 그리고 '판타지 게임'을 잘못 검색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검색어: 파이널 판타지 14)까지 순수한 웹소설 장르를 포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게임 판타지가 웹소설의 주류 장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관련 검색어는 모두 하위권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게임 판타지를 검색한 이들이 함께 가장 많이 검색한 것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이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왜냐하면 내가 예상했던 그래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상보다는 검색량이 낮거나 높은 부분이 있었지만 납득할만한 가설과 근거가 있었다. 실제론 이 구글 트렌드 데이터가 대단할 건 없는 것이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읽은 것과 같이 직관과 데이터가 보여주는 사실은 그냥 같을 때도 많은 것이다. 게다가 이런 데이터가 웹소설 쓰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지표라고도 볼 수는 없었다. 어차피 구글 트렌드는 'A가 B보다 검색이 더 많다'는 상대적 지표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게임 판타지 소설에 대한 유입이 더 많다고해서, 내가 생각조차 해본적 없을 여러가지 난수를 깡그리 무시하고 '정답은 게임 판타지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때 나는 네 칸을 채워넣어 트렌드를 확인한 상태였고, 남은 한 칸을 별다른 기대 없이 노려보았다.

 

남은 칸에 '로맨스 소설'을 넣었지만 역시 생각했던대로 로맨스 검색 숫자는 아주 높게 나왔고, 나머지 지표는 바닥에 깔려서 의미있는 그래프 모양을 보여주지 못했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다른 매체를 배제하기 위해 '-소설'까지 넣으며 어휘의 범위를 축소했는데도 그랬다. 사실 로맨스 소설이라는 범주는 마치 '판타지 소설'처럼 넓은 범주의 큰 장르이므로 당연했다(판타지 소설과 로맨스 소설이 대결한다면? 판타지 소설이 더 높다). 참고로 '직업물'과 '전문가물'은 검색량이 너무 적어 그래프에 표시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은 '현대 판타지' 장르가 플랫폼 내부에서만 수요 공급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때 생각난 것이 '무협'이었다. 나는 무협을 채워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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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 퓨전 판타지, 현대 판타지, 게임 판타지 그리고 무협. 몬가… 몬가 일어나고 있었다.)

 

판타지라는 단어처럼 무협 또한 특정한 장르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내공이라는 비과학적인 개념이 존재하고 인물들끼리 검술을 겨루기도 하고 은거기인이 주인공을 돕거나… 하는 이미지로 우리는 무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색량이 너무 많았다.

 

나는 뒤늦게 실수를 깨달았다. 무협 '영화'와 '드라마' 또는 '만화'가 함께 검색되서 아닐까?

 

하지만 관련 검색어 중 1위는 '소설'이었으며 2위는 '무협 소설', 3위는 '무협 토렌트'였다. 이하 순서대로 무협 txt, 무협 텍본, 텍본, 소설 txt, 무협 소설 txt였고, 아홉 번째가 '무협 영화'였다. 지표는 무협 소설이 95고 무협 영화는 26이었다. 무협이라고 검색한 사람 대부분이 영화가 아닌 소설을 검색한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직관과 다른 결론이었다.

 

웹소설 중 무협 소설은 그렇게 많지 않다. 6월 24일 시점 문피아 유료 웹소설 투데이 베스트 10위 안에는 무협과 '관련'된 작품이 단 한 작품 밖에 없다. 무료 웹소설 투데이 10위권 안에는 두 작품 뿐이다. 이 세 작품 모두 주인공이 무공을 주요한 능력으로 사용할 뿐 장르 자체는 현대 판타지다. 무협이 아닌 것이다. 카카오페이지 랭킹에선 관련된 작품도 없다. 내 생각에 현재 웹소설 플랫폼 중 무협이 살아있다고 할만한 곳은 네이버 웹소설 정도였다. 그나마도 오늘의 웹소설에 속하는 무협은 열 한 작품 밖에 안된다. 판타지 여덟 작품 보단 많지만 로맨스 마흔 다섯 작품, 로판 열 여덟 작품보다는 적다. 완결난 작품은 어떨까? 무협 작품은 스물 다섯 작품이 완결 났지만 판타지는 서른 일곱 작품이 완결 났다(네이버 웹소설은 판타지 작품 숫자를 줄이고 있다). 참고로 로맨스는 일백일흔다섯 작품이 완결났다.

 

뭔가 잘못되었다. 나는 검색어를 제한해보기로 했다. 중국 문화 컨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자연스럽게 무협에 대한 관심도 커졌을지 모른다. 그 관심 대상이 꼭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중국을 무대로 하는 작품을 왜 무협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한 사람들도 있을지 몰랐다. 구태여 '소설'을 붙여 검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만 확인은 해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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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 퓨전 판타지, 현대 판타지, 게임 판타지, 무협 소설.)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많다. 특히나 게임 판타지라는 검색어가 조금이지만 허풍이 껴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 그랬다. 나는 내 직관에 최대한 맞춰보기 위해(나도 알지만 이건 잘못된 태도다. 연출을 위해 쓰인 문장이란 말이다) 궁리를 이어나갔다.

 

그랬다. 또 실수가 있었다. 큰 실수였다.

 

다른 소설 장르는 2어절이다. 또는 합성어다. 반면에 무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어다. 아까 서로 2어절 단어 끼리는 유사하다며 넘어갔지만 무협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띄어쓰기와 준말을 포함시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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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소설 vs. 게임 판타지와 그 친구들. '-소설'이라는 제약 덕분인지 게임 판타지가 무협 소설을 이겼다.)

 

많은 사람들은 '게임 판타지'와 '게임판타지'를 비슷한 정도로 검색한다. 다만 검색자들은 이 둘을 다른 의도로 검색했다. '게임 판타지'의 관련 검색어 순위는 순서대로 판타지 소설, 게임 판타지 소설, 게임 소설이다. 반면 '게임판타지'의 관련 검색어 순위는 순서대로 게임, 판타지 게임, 판타지다. 고작 띄어쓰기 하나로 사람들의 의도가 갈리는 것이다. 내가 구글 트렌드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무협 소설이라고 검색하지 않고 단지 소설을 보는 이들도 '무협'이라고 검색할 것을 감안하면 이 둘의 격차가 결코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든 '게임 소설'이 있으니 게임 판타지 검색량이 더 많다고 볼 수는 있지만, 납득은 되지 않았다.

 

나는 무협은 그 어떤 세부 장르와 비교해도 적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웹소설에선 완전히 쇠퇴하는 장르고, 작가들도 많이 쓰지 않고 독자들도 많이 읽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무협 소설을 검색하는 독자의 수는 충분히 많은 것처럼 보인다.

 

이 결과로부터 나는 세 가지 정도의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1) 과거 대본소 시절부터 무협을 읽어온 독자라면, 당연히 나이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검색 엔진으로 구글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런 검색 트렌드의 결과는 단지 사용자들의 검색 엔진 편향 때문이다.

 

1)의 반론: 그런 건 없다. 구글이 아닌 네이버 트렌드에서도 무협 소설은 여전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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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트렌드. 로맨스 판타지, 퓨전 판타지, 게임 판타지, 현대 판타지, 그리고 무협.)

 

 

2) 무협 소설 독자층은 대본소, 대여점 이후 현행 웹소설 플랫폼에 녹아들지 못했다. 때문에 플랫폼 외부에서 불법 다운로드를 의도하고 검색하는 것 아닐까?

 

2)의 반론: 헛소리다. 무협이라고해서 다른 장르 검색어 보다 불법다운로드를 암시하는 관련 검색어가 의미 있을 정도로 더 많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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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와 무협의 인기 관련 검색어들.)

 

 

3) 그렇다면 '정말로' 많은 무협 소설 검색자들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무협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인가? 웹소설 작가들은 그걸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고?

 

3)의 반론: 그건 아닐 것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현행 웹소설 작가들은 검색 숫자만큼의 무협 소설이나 무협과 관계 된 소설 쓰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서나 작동한다. 수요가 있는데 왜 공급이 없겠나? 단지 우리가 모르는 변수가 존재할뿐.

 

3)의 반론의 반론: 그렇지 않다!

 

무협 소설은 판타지에 비해 좀더 세밀한 장르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쓰기 버겁다. 뿐만 아니라 웹소설이 전면에 등장한 이후, 일일연재가 대표적인 집필 방법으로 대두되며 한자어를 병기하거나 무공이나 문파와 관련된 여러 설정들을 짜는 것은 힘들어졌다. 이야기의 호흡은 권단위에서 편단위로 훨씬 더 가빠졌다. '무공을 사용하는 주인공'의 방편 이상으로 웹소설에서 무협을 쓰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웹소설 작가들은 이런 플랫폼 외부의 수요 보다 각 플랫폼 내부의 수요에 집중했다. 문피아라면 현대 판타지, 카카오페이지라면 게임 판타지, 네이버 웹소설이라면 로맨스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것이 결론이다.

 

무협 독자들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단지 더 빨라지는 웹소설 연재 환경에서 무협은 작가들에게 외면받았다. 대여점 시절 작가층이 웹소설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타의 이유로 무협 소설은 플랫폼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무협 독자들은 플랫폼에서 작품을 많이 제공하지도 않고 쉽게 찾을 수 없는만큼, 더 많은 검색을 해야 했을 것이다. 

 

저 검색량은 무협 독자들이 무협 소설을 찾고 읽으며 더 좋은 소설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증거로 보인다. 무협 독자는 여전히 있다는 말이다. 아마 이것을 가장 잘 감지하고 있는 것은 무협 장르를 제공하는 네이버로 보인다. 아마 구글 트렌드보다 네이버 트렌드에서 무협 소설에 대한 검색량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은, 네이버 웹소설에서 무협 소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그냥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구글 트렌드, 네이버 트렌드라는 도구를 처음 사용했고, 내가 빠트린 변수가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경우의 수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 도구가 그렇게 엄밀하지 않다는 사실도 마음에 켕긴다. 덧붙여 동료 웹소설 작가들에게 '답은 무협이다'라고 할 생각도 없다. 트렌드가 알려주는 것는 무협 소설 독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장르독자 숫자만큼 있다는 사실 뿐이다. 5년전 웹소설이 시장에 나타나기 전부터 있어왔던 독자층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협을 쓰고 있는 작가가 있을테고, 요즘엔 왜 이렇게 읽을 무협이 없느냐고 한숨짓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무협 독자들이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믿은 사람들 말이다. 이 글이 그런 사람들에게 생각하지 못했던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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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소설 vs. 판타지 소설 vs. 로맨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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