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위 로맨스와 포르노그래피

정다연 2019.01.18 17:56 조회 수 : 1354

고수위 로맨스와 포르노그래피

19금 로맨스 소설에 대한 리뷰들을 보다보면 남자가 쓴 것 같다라는 비판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가 표현하는 정사 장면에는 근본적인 차이라도 있는 것일까. 실제로 남성 작가가 쓴 야한 소설과 여성 작가가 쓴 19금 로맨스 소설, 혹은 야한 소설은 차이가 있다는 연구들도 있다. 확실히 둘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꽤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남자가 쓴 것 같다는 평가는 단순히 해당하는 작품이 객관적으로 남성 작가들이 사용하는 표현과 관습을 따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여성 독자인 자신이 이로부터 거부감을 느꼈을 때의 반응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봤을 때 신체적인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남성들에게는 성적 흥분을 안겨 주는 이 장르를 우리는 포르노그래피라고 불러왔다. “남자가 쓴 것 같은고수위 로맨스 소설이라는 평가는 포르노 같다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점은 남자가 쓴 것 같은” 19금 로맨스 소설이 불티나게 팔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독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로맨스 장르에서 일부 여성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한 소설이 다른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누군가의 포르노가 또 다른 누군가의 로맨스일 수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누군가에게는 역겨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흥분되는 것일 수 있다는 포르노 시장의 법칙을 보여주는 것일까.

 

 

19금 로맨스와 여성의 욕망

두 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고 에로틱한 분위기 속에서 침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마 이것이 소설보다는 드라마나 순정만화를 통해 로맨스를 접한 이들의 장르 내 섹스 장면에 대한 인상일 것이다. 최근의 전체 연령가 로맨스 소설에서도 이보다는 더 확실하게 두 주인공의 육체적 접촉을 묘사하는 경우들이 늘었다. 삽입의 장면까지 묘사하는 경우는 없지만 그 이전의 전희까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찾아볼 수 있다. 19금을 확실하게 표기하고 있는 로맨스 소설들은 행위를 이들보다는 훨씬 명확하게 묘사한다. 비유적인 표현들을 이용하든 해부학적인 용어들 사용하든 분명한 신체 부위를 나타내며 그것에 가해지는 자극과 반응을 보여준다. 이 소설들은 에로틱한 분위기뿐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교류의 모습을 시각적이고 생생하게 전하고자 한다. 물론 로맨스 장르 내에서 이러한 섹스 장면의 자세한 묘사는 보통 두 주인공의 육체적인 교류와 함께 심리적인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로맨스 장르가 애초에 성애를 다루고 있는 이상 정신적인 사랑 이외에 육체적인 에로스를 여성들이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경우 19금 로맨스 소설에서 섹스는 아직 남자 주인공이 깨닫지 못한 여자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나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둘 사이의 사랑의 증거로써 위치한다. 간혹 육체적인 교류를 계기로 남자 주인공의 여자 주인공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그 반대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로맨스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의 폭력이나 집착이 허용되는 한계는 결국 그가 여자 주인공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정도에 비례한다. 이는 감정 없는섹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 이전의 모든 성관계는 이후의 진정한 사랑의 고백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일부 소설들은 두 주인공의 사랑의 증거로서의 섹스 장면을 넘어 다양한 상황들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의 육체적인 관계와 욕망들의 양상을 그려내는데 더 집중한다. 이 중에는 강압적이거나 어쩔 수 없는상황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이 변태적이라고 규정하는 관계들이 묘사되기도 한다.

 

로맨스가 여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장르라면, 여성들이 이러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를 원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이미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로맨스에 등장하는 강간 모티프를 보며 여성들이 사실 강제적인 관계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로맨스가 직관적으로 이해가능한 대중 서사라고 하더라도 모든 상황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로맨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현실의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강압적인 관계 또한 현실 사회의 범죄인 강간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들의 욕망이 사회라는 필터를 거쳐 나온 가공물로 읽어야 한다. 로맨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여성들이 현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행복해지거나 성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조건들의 종합선물 패키지에 가깝고, 강압적인 상황의 설정은 여전히 성관계를 아무런 계산과 고민 없이 쉽게 맺을 수 없는 여성의 현실을 반영한다. 아직까지도 여성은 성적 문제에 있어 사회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임신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 픽션의 세계에서조차 여성들이 다양한 성적인 관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적, 심적 부담으로부터 한발자국 벗어날 수 있는 쿠션이 필요하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증거라는 알리바이일수도, 강압적 관계였다는 사전 조치일수도 있다. 혹은 어쩔 수 없는상황 설정 자체가 쿠션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성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생명이 위협을 받는다거나 세계가 멸망한다는 판타지적 설정은 사회적인 비난을 피하면서 감정에 선행하지 않는 성관계를 정당화한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 설정 자체라기보다는 여성이 그를 통해서 시작되는 관계에서 무엇을 상상하며 무엇을 탐색하는가의 문제다. 여성들이 욕망하는 것은 오히려 그 이후에 오는 복잡한 욕망의 역학관계와 육체적인 관계의 양상이다. 로맨스 장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여성 작가와 독자들은 자신의 성적 욕망의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과정 중에 있다.

 

 

로맨스 vs. 포르노그래피?

보통 여성들은 성적인 관계를 묘사하는 자기만의 언어를 갖지 못했다. 과거 포르노 소설들은 자주 여성들의 목소리를 빌렸지만 그것이 여성들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 적합한 언어였다고 할 수는 없다. 보통 이 소설들의 저자는 남성이었고 남성 독자를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 언어가 절대로 여성들의 욕망을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쓰였는가의 문제에 있어 포르노는 여성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장르가 아니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고수위 로맨스를 쓰는 데에 있어 여성 작가들은 레퍼런스를 끌어올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선택지는 새로운 언어와 관습을 창조해내거나 남성들의 언어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전용하는 것이다. 전자는 너무나도 어려운 길이다. 보통은 후자를 선책하게 된다. 겉보기에 고수위 로맨스 소설들이 본의 아니게 남성들을 위한 포르노에 근접하게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남자가 쓴 것 같은로맨스 소설들은 반()페미니즘적인 것은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된다.

 

로맨스는 오랫동안 여성들의 장르로 인식되어 왔다. 이와 완벽한 극단에 있다고 생각되어 온 장르는 포르노였다. 두 장르는 성애와 성관계를 상상하는 두 가지 방식, 여성적인방식과 남성적인방식으로 대표되었다. 이 설명에 따르면 로맨스가 성애를 두 주인공 사이의 감정적인 교류를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포르노는 성애를 한명의 개인적인 욕망을 표현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포르노는 남성의 유아적 욕망 충족을 위해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A Billion Wicked Thoughts낭만전사: 여자는 왜 포르노보다 로맨스 소설에 끌리는가? Warrior Lovers: erotic fiction, evolution and female sexuality와 같은 진화 심리학적인 논의에서 잘 나타난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를 내리면 두 장르는 결코 섞일 수 없는 운명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르는 이처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다. 오히려 장르는 언제나 섞인다. 클리셰로 굳어져 버린 장르는 독자에게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린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장르는 언제나 변화 중에 있다. 그 중의 한 방법이 다른 장르의 관습과 섞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장르는 기존의 구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장르(genre)와 젠더(gender)는 어원을 같이 한다. ‘종류를 뜻하는 두 단어는 구별 짓기와 분류하기의 과정을 거친 인위적인 생산물이다. , 장르와 젠더의 구분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성차를 중심으로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하게 된 로맨스와 포르노라는 두 장르의 구분 또한 인위적이고 담론적인 것이다. 두 장르의 대결 양상은 근대 이후 남녀의 이데올로기적인 이분법으로부터 나온다. 성교에 대한 근대의 담론은 여성에게는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남성에게는 상업적이고 성적 향락주의를 분배하여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배타적인 연인 관계의 낭만적 사랑을 보여주는 여성적로맨스와 남녀의 육체적인 접촉을 나열하는 남성적포르노의 구분은 사실 근대적 성 담론의 부산물이다.

 

현재 생산되는 고수위 로맨스 소설들은 로맨스와 포르노의 이분법적 구분에 도전한다. 이 하위 장르에서 포르노의 관습은 남성 중심적인 욕망의 장르라는 정의에서 벗어나 여성들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한편으로 고수위 로맨스는 포르노적 관습들이 언제나 남성 중심적인 욕망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욕망이 언제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영상 매체의 형태로 발전한 포르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성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포르노와 관련된 농담 중에 모든 것에 대한 포르노는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다면 곧 만들어질 것이고 당신이 무엇을 보든 간에 그보다 더 빻은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19금 로맨스 소설은 현존하는 포르노의 종류보다는 훨씬 적으며 다종다양한 성관계의 묘사에 있어서도 한계를 지닌다.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 로맨스 독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의 역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한계가 언제나 지켜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골수 로맨스 독자들은 이미 우리가 장르 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했던 관계를 뛰어넘는 고수위 소설들이 어딘가에 있으며 언젠가는 쓰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포르노만큼은 아니겠지만.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는 다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로맨스는 여성들의 포르노라는 말이 있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말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다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말은 로맨스의 독자가 아닌 사람들이 장르를 비하하기 위해서 쓰는 표현이다. 포르노같이 로맨스는 틀에 박힌 서사 구조에, 유사한 성적 묘사를 나열하며 여성의 욕망을 피상적으로 충족시키는 데에 급급하다는 비아냥거림이다. 이 말은 고수위 로맨스 소설들이 포르노의 관습을 이용한다든지 포르노처럼 보인다는 말과는 맥락이 다르다. 이는 성적인 묘사가 있든 없든 로맨스 장르 전체를 현존하는 포르노와 등치 관계에 두는 말이다. 로맨스는 여성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비현실적인 장르라는 비난이다.

 

로맨스는 여성이 겪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환상적인 해소를 꿈꾸는 장르로 보인다. 로맨스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사랑이라는 극적인 계기를 통하여 오해와 시련을 극복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로맨스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 비해 사회적 권력이나 성적 권력이 강하다. 앞서 한번 언급했듯이 남자 주인공은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남자라기보다는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욕망하는 성공과 행복의 조건들의 패키지다. 이 조건들은 그 자체로 남자 주인공의 권력이 된다. 남자라는 성차로 표시되는 집단에 부여된 이러한 조건들은 로맨스에서 여자 주인공을 위한 약속이다. 이러한 남자 주인공들이 여성적가치인 사랑에 못 이기고 결국 굴복하여 제 감정을 고백할 때, 권력의 구도는 동등해지거나 역전된다. , 로맨스 장르가 약속하는 것은 현존하는 성별에 따른 권력의 불균등한 분배를 사랑이라는 가치를 통해 재분배하는 것이다. 로맨스는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꿈꿀지 모르지만, 그 문제의식 자체는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다.

 

모든 로맨스 소설이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로맨스 소설은 포르노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들은 아무리 우리가 아는 포르노와 유사하더라도 그와는 다르다. 고수위 로맨스 소설이 포르노와 유사한 부분은 다른 부분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육체를 성기로 환원시켜 그것의 결합으로 성관계를 상상하는 방식에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문제에 있어 고수위 로맨스 소설의 효과는 남성을 위한 포르노와는 차이가 있다. 1979년에 앤 바 스닛토우(Ann Barr Snitow)는 할리퀸 로맨스 소설과 관련하여 이 글의 소제목과 같은 논문 “Mass Market Romance: Pornography for Women is Different”을 발표했다. 그녀의 논문의 요지는 할리퀸 로맨스 서사는 애초에 여성들이 포르노를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진정한 사랑이 섹스를 탐구하는 하나의 쿠션이 된다는 것과 같은 요지다. 그러나 19금 로맨스 소설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 즉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의 관계에 대한 스닛토우의 평면적인 해석은 오히려 장르의 가능성을 일원화해버렸다. 여성들의 포르노라고 부를 수 있는 고수위 로맨스는 포르노를 이용함으로써 장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사랑에 대한 탐색과 섹스에 대한 탐색을 동시에 하고 있다.

 

19금 로맨스 소설 뿐 아니라,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이 약속하는 것 중 하나는 성적인 만족이다. 남자 주인공이 망한 섹스의 경험을 여자 주인공에게 제공하는 경우는 없다. 전체 연령가의 로맨스 소설에서도 성관계를 가진 후 다음날 아침 불만족한 채로 잠에서 깨는 여자 주인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설령 그것이 강압적인 관계라고 하더라도 여자 주인공이 온전히 불쾌함만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고수위 로맨스 소설에서 흥분을 느끼고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 주인공은 중심적인 이미지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남자 주인공 또한 그녀의 육체에 매혹된다는 점이다.

 

고수위 로맨스 서사는 이러한 육체적인 쾌락과 만족을 둘러싸고 서사를 구성할 수 있다. 전체 연령가를 포함하는 일반적인 로맨스 서사에서 상호간의 감정을 확인한 후, 사랑의 증거로서 등장하는 노골적인 섹스 장면은 그 자체로 사랑이 깊어지는 계기로 읽힌다. 반대로 상호간의 감정을 확인하기 이전의 성관계는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적인 고통 사이의 불균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갈등문제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하게 된다. 보통 육체적인 관계에서 시작하는 관계를 둘러싼 보통의 로맨스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점차 여자 주인공에 대한 애정을 깨닫게 되는 서사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여러 가지 설정을 통해서 다양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 명의 남자 주인공과 관계를 맺는 역하렘물의 경우는 두 주인공의 심적 갈등이 중심이 아닌 다수의 역학관계가 중심이 되게 된다. 이러한 전체적인 로맨스 서사에서 예외가 있다면 피폐물이 있다. 피폐물은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적인 사랑의 불일치를 중심으로 갈등 양상이 구성되지만, 사랑의 절대적인 가치로 깔끔하게 봉합되지 않는 대표적인 하위 장르다.

 

피폐물이 필연적으로 고수위, 19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자 주인공이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지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 주인공이 피폐해지는 이야기들도 포함된다. , 단순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는 상황 설정으로도 피폐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피폐해지는 경우가 포함된다면, 19금이 되는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이는 성관계의 다양한 형태를 실험할 수 있는 장이 된다. 아마도 포르노에 가장 근접하는 것도 이러한 하위 장르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 하위 장르가 특이한 이유는 로맨스 장르 내부에서 사랑의 종류를 질문하기 때문이다. 보통 피폐물의 경우 남자 주인공의 비틀린 독점욕과 집착에서 여자 주인공을 성적,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혹은 심하게는 학대, 고문하는 서사로 진행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어떠한 결말을 맺더라도 남자 주인공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경우가 많아진다. 남자 주인공의 동기는 어쨌든 사랑이라는 형태로 포장되지만 결말이 다가오면 찝찝함이 남는다. 이는 로맨스 소설이 보장하는 해피엔딩의 조건이 불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사랑에 의해서 해피엔딩에 도달해야 하는 장르의 서사는 아이러니하게도 피폐물의 경우 사랑 때문에 애매해진다. 예를 들어 두 주인공이 이어지는 경우, 여자 주인공이 스톡홀름 신드롬인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약속을 전해줘야 하는 로맨스 소설이 피폐물의 경우 사랑의 위협이 된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의 19금 소설들은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장르에서 탐색할 수 있는 관계의 영역을 확장했다. 허구의 세계관을 설정함으로써 로맨스 판타지는 현존하는 사회적인 제약과 도덕적인 비난으로부터 손쉽게 거리를 둘 수 있게 한다. 그로써 현실에서는 부담이 크거나 불가능한 관계들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면, 한명의 여성 주인공과 여러 명의 남자 주인공이 관계를 맺는 역하렘물, 특히 19금 소설에서의 역하렘물은 로맨스 장르에서 전통적으로 선호했던 배타적인 연인관계에서의 성관계의 법칙을 배반한다. 전통적인 로맨스의 경우 이러한 관계는 손쉽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판타지라는 장르는 이러한 관계가 정당화될 수 있는 설정을 적은 설명으로 가능하게 한다. 19금 소설에서 역하렘물의 등장은 처녀성과 성적인 정절의 환상을 부정한다. 동시에 한명 이상의 주인공과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형태가 사실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로서의 고수위 로맨스 소설은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인 쾌락의 합일을 추구하지만 이 역학관계가 언제나 사랑에 의한 모든 갈등의 해소로 끝나지는 않는다.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는 육체적인 쾌락에 모든 성애와 성차의 문제를 귀속시켜버린다. 고수위 로맨스 소설들은 포르노를 통해 여성의 쾌락에 대해서 질문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감정적인 관계로 해소될 수 있는가를 탐색한다.

 

 

19금 로맨스 소설이 여성의 욕망과 쾌락을 탐색하는 하나의 창구라면 우리는 이를 도덕적인 잣대로 비난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 양태를 보다 입체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로맨스 장르는 결국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성차에 의해 구성되는 권력의 불균등한 구조를 사랑의 이름으로 해소하는 과정에 대한 서사다. 이러한 서사와 포르노적 관습의 결합은 이러한 해소해야 하는 갈등의 문제에 또 하나의 층위를 추가한다. 여성들이 이 소설들에서 탐색하고 있는 것은 육체와 정신으로 양분되어 있는 사랑의 해결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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