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 비평/연구의 함정 - '오타쿠'라는 허상의 유혹

 

 

한국에서 서브컬쳐를 연구, 비평할 때 가장 큰 함정은 ‘오타쿠’라는 주체가 존재한다고 쉽사리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있다고 가정해버리면 연구는 쉽사리 진행된다. 끼워맞추면 되니까. 결과를 다 내놓고, 그 이유는 ‘오타쿠 때문이다’라고 하면 쉽게 진행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 세상에 어떤 물건도 1:1 교환이 가능한 만능의 재보가 있다고 가정을 하자. 그런 가정을 통해서 사회문화적, 경제적 분석을 해 놓고 이야기한 뒤, 그 모든 것은 ‘재보’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옳은 분석이고 옳은 비평인가?

 

해당 비평이 그럴듯하게 현상을 읽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오타쿠’를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비-오타쿠적인 지점을 충실히 쌓아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 오타쿠를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와 논문, 비평과 저술서가 한국으로 수입되는 지금, 그것을 쉽사리 습득하고 인용하는 것만으로 한국의 서브컬쳐 문화지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배회한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문화연구는 동일선에서 진행될 수 없다. 조금 진지하게 물어보자.

 

한국에 오타쿠는 존재하는가?

 

본격적으로 들어가자. 한국에서 오타쿠란 존재는 무엇인가? 일본의 '오타쿠'와 비슷한 소비방식을 보이는 '오타쿠적' 존재들은 하나둘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그것이 과연 '오타쿠'라는 텍스트가 맞는가?

 

 이러한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역사의 과정이 상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두 국가의 시장규모의 절대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적 자급자족이 가능한 최소한의 인구를 갖춘 국가의 문화산업과 소비층은 그것이 다수이든 소수이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는 '오타쿠'를 한국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엔 규모가 너무 미약하고, 그렇다고 없다고 치부하고 그저 소비자 집단이자 일반화된 ‘대중’으로 치환하기엔 아예 존재가 없다고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산업적으로 유의미한 가치를 보인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를테면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는 수많은 오타쿠 연구에서 쉽사리 호출된다. 그것은 서브컬쳐 산업이 포스트모던에 기반하여 가장 매체친화적이고 대중친화적으로 소비-창작되기 때문이지, 그것이 오타쿠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 2018년 한국에서 해당 데이터베이스 소비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가. 영화산업은? 웹툰은? 웹소설, 그 중에서 판타지 소설은 '오타쿠 문화'인가? 결국 그의 발언은 오타쿠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포스트모던 문화의 소비형상에 대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오타쿠 문화의 힘이라고 물신화하는 것은 얼마나 웃긴가.

 

그럼 도대체 한국의 오타쿠란 무엇인가?

 

사회성이 부족한 존재인가? 사회성 부족은 다중적으로 분화되어 인터넷 공간에서 커뮤니티적으로 활동해왔던 지금 세대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회성 부족이 아니라 구조 맹신으로 불러야 옳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단순히 커뮤니티를 이름을 정체성으로 삼길 거부하고 '~적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자신을 이루는 '작은 구조'가 곧 세계라는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이나 환상적 세계, 가상의 콘텐츠로 세계를 사상(사고)하는 존재인가? 이것은 오쓰카 에이지가 <캐릭터 소설 쓰는법>에서 얘기한 것으로 만화적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만화적 리얼리즘은 오타쿠들만의 것이라고 하기엔 앞선 '작은 구조=세계'라는 신앙과 연결된 인식으로 보편적 현상이다. 차이점은 그 세계가 만화라는 공간, 즉 현실이 아닌 가상의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완결된 애니메이션 작품에 매여있지 않고 수많은 작품으로 미끄러진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에서 장르 연구들이 각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타쿠라는 현상, 서브컬쳐라는 현상이 신기하고 흥미롭거나 돈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콘텐츠와 콘텐츠의 세계가 이어지면서 하나의 ‘장르’로서 거대한 세계를 완성했을 때, 그것이 지금 세계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

 

현실을 드러내는 것인지 미래 세계에 대한 가상으로 작동한 것인지, 어떤 영역이 묘사되었고 강조되었으며, 은폐되었는지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이 충분히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돌아오자. 한국의 오타쿠란 무엇인가. 단순히 ‘사회성 부족’하고 ‘작품 세계로 세계의 개연성을 찾는 존재’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럴 때 많은 분석은 콘텐츠의 대상을 성애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으로 귀결되곤 한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페미니즘적 비평의 결론이 ‘그래서 오타쿠 서브컬쳐 문화가 문제다’로 귀결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리라.

 

우리나라가 '덕후'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도 이러한 연장에 있다. 이건 단순히 오타쿠라는 외래어를 한국어로 순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타쿠 문화의 가장 큰 특질은 섹슈얼리티의 관점이다.

 

<BL진화론>이 BL문화와 교류를 일종의 버츄얼 섹스로 상징화한 것은 그것이 오타쿠 문화와 서브컬쳐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오타쿠 콘텐츠와 비평은 비틀린 성적 욕망에 집중되었다. 일그러지고 비틀리고 유아적으로 조형된 성적 욕망을 가상의 존재로 대리표상하여 소비하는 것을 오타쿠 문화로 쉽게 등치했다.

 

이러한 용어를 한국에서 통신문화와 더불어 부흥해 우선 토착되었던 ‘마니아’ 문화와 연결짓기는 힘들었다. 대체어가 필요했다. 오덕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질 때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디어 매체에서 나온 순간 ‘오타쿠’는 한국에서 ‘마니아’와는 다른 어떠한 집단으로 분명 분리되었다.

 

문제는 첫 번째. 이러한 섹슈얼리티, 비틀린 성적 욕망이 과연 오타쿠라는 대상이나 서브컬쳐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인가? 하는 질문을 돌파하기 힘들다는 것이며 두 번째. 그럼 이러한 성애의 방식이 한국 콘텐츠와 소비자들 사이에서 등장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질문을 가장 쉽게 비틀어 돌파하는 방법은 “일본 콘텐츠”를 “일본 오타쿠”처럼 소비하는 디아스포라적 존재로서의 오타쿠다. 그럼 다시금 문제가 생긴다. 그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이러한 현상을 연구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오타쿠를 정의하는 건, 우리가 왜 이 영역의 공부를 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브컬쳐 연구나 비평은 '나' 또는 '우리'를 쉽게 '대중'으로 확장하거나 '오타쿠'로 축소하는 이분법 사이를 가로지른다.

 

인정하자. 이제는 알아야 한다. ‘나’도 ‘우리’도 오타쿠일지언정 대중은 아니고, 대중일지언정 오타쿠가 아니며, '대중'과 '오타쿠'가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기엔 너무 미약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오타쿠’에게 집착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 서브컬쳐를 비평하기 위한 방법론이거나, 또는 정착되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소비형태를 증명하고자 하는 자기증명의 연속성으로 그치고 만다.

 

굳이 한국에서 ‘오타쿠’를 연구하려고 한다면 필요한 것은 오타쿠란 현상의 연구가 아니라 '오타쿠'라는 대상의 발명이며, 장르와 서브컬쳐를 이야기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결국 ‘오타쿠’라는 용어를 버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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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이융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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