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피조물의 전복

-서석찬 장편소설 에덴-

 

제야

 

태초부터 가까운 과거까지 창조는 대단히 추상적이며 고차원적인 작업으로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신화와 종교를 기반으로 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문학에서 창조주-피조물의 관계를 인과와 전후, 종속의 관계가 명료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 세계에서는 창조주가 원인이며 피조물은 결과였다. 창조주가 있고 나서야 피조물이 있었다. 하지만 근래의 문학, 특히 SF에서 이 관계는 조금씩 변화하고 뒤틀리는 양상을 보인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위치는 희미해지고, 사라지다가 결국 전복된다.

 

서석찬의 장편소설 에덴은 창조주-피조물의 전복단계에 놓여 있다. 에덴의 인물들을 보면 창조주와 창조물을 정의하기 힘들다. 아니, 정의가 불가능하다.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가듯, 독자들은 인공지능과 인류, 둘의 종속관계에 모호함을 느끼며 인물을 인식함에 있어 여러 차례의 혼란을 겪는다. 주인공 케빈은 자신을 본떠 인공지능 라비를 만들었지만 라비는 새로운 인류를 창조한다. 소설 에덴의 부제가 인공지능과 인간이 창조한 인류이지만 나는 여기에서 인간을 제외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인공지능이 창조한 인류’. 그것이 에덴의 정확한 부제일 것이다.

 

작가 서석찬은 두 가지의 장치를 통해 창조주-피조물의 전복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소설 에덴을 읽으며 독자들이 파악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그것을 능동적 인공지능수동적 인간이라고 명명하였다. 통상적으로 창조물, 즉 수동적이라고 여겨지던 피조물로부터 창조주의 전유물인 능동성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에덴을 전복적 과학소설이라고 미리 결론지을 수 있겠다.

 

 

1. 나비-라비의 변화 : 능동적 인공지능

 

에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라비는 초기에 케빈이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을 따 나비라고 불린다. 나비였을 때의 인공지능은 순전히 케빈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보완의 역할을 한다. 그러던 나비는 소설의 초반, 케빈에게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제안을 한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었다. (소설 에덴의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이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 이름 바꿀까?”(45)

 

나비는 엔디에게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드러낸다. 히브리어로 젊은 사자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인 라비역시 나비가 먼저 제시한다. 이 부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자발(自發)’이라는 성질 때문이다. 나비는 회사의 전체 데이터와 모든 시스템을 관리(46)”하는 자신이 사자처럼 근사한 이름을 가져야 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권위를 체감했는지의 여부는 독자가 파악할 수 없으나 그는 분명, 적어도 자신의 위치에 대한 변화를 이미 감지했을 것이다.

 

나비는 케빈의 애완동물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데에서 수동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 ‘나비는 인공지능이 창조주케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하지만 나비는 서서히 자신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체감한다. 물론 나비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어감인 라비를 선택한 것은 케빈에 대한 일종의 배려였을 것이다. 하지만 라비는 자신이 케빈과 그의 회사,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에게 무언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비는 자신의 이름을 라비로 바꾸고 그 몫을 톡톡히 해낸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는 그보다 더 대단한 일과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이루어낸다. 어찌 보면 라비가 인류를 창조하는 데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암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비로부터의 변화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이었으며 다소 갑작스러웠고, 이는 과학의 발전 과정, 인공지능의 미래(또는 현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이 갑작스러움은 우리에게, 언제나 찾아오는 이질감이며, 긍정과 부정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다.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과학과 인공지능, 세계의 변화에 우리는 놀란다. 눈을 감았다 뜨면 세계가 송두리째 변해있는 것은 아니지만,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천천히 이루어지는 혁신을 어느 날 갑자기 체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비가 이름을 바꾸겠다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뱉은 말처럼. 기술의 진보는 예고나 경고를 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혁신은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쌓인다면, ‘진화가 되지 않을까.

 

인류의 진화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음을 증거하는 자료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오랜 시간의 산물로 여겨졌던 진화는 이제 시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수억 년 동안 진행되었던 진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었던 진화가 수일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현대 과학기술의 속도이다. 어쩌면 성경에 나오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다라는 창조주의 말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라비는 결국 신인류를 만드는 창조주의 위치에 선다. 하지만 이 위치에 서기 이전, 우리는 그의 작은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매우 능동적이고 혁신적이었지만,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 이름 바꿀까?”라는 한 마디는 케빈의 창조물이었던 라비를 창조주의 자리로 올려놓는 가장 작은 변화였다.

 

 

2. 트랜스미션 : 수동적 인간

 

트랜스미션, 즉 신체의 기계화는 신인류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신의 주관으로만 여기던 생명을 인간이 조절할 수 있게 된 대변혁의 시작이었다. 트랜스미션을 받은 이들의 만족도는 백 퍼센트였고 이러한 일들이 사회적 현상으로 굳어지자 처음에는 신체의 전부를 개조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이들도 의심 없이 트랜스미션을 받아들인다.

 

의심 없이는 무서운 말이다. 의심하지 않는 것은 수동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며 누군가의 힘이 자신을 휘저어놓는 변화에 전혀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에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한 케빈의 생각은 명확했다.()모든 면에서 그 사람의 원래 몸과 최대한 닮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92)

 

트랜스미션의 개발자 케빈은 인간의 불완전함조차 완전히 모방했다. “배운 지 오래되면 잘 기억나지 않고, 복잡한 계산식 앞에서 몇 시간씩 고민(92)하는 신체를 고스란히 옮겼다. 그가 인류에게 선물한 것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지 완벽한 신체가 아니었으며 이는 사람들의 의심을 지우는 데에 가속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자신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트랜스미션을 받은 이들은 그것을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 당연히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수동적 태도는 삽시간에 퍼져나가 모두를 무력에 잠기도록 했으며 의심 없는 정체(停滯)와 껍데기뿐인 변혁이 세계를 잠식했다. 기계적으로 몸을 바꾸는 이들의 망설임 없는 선택은 수동적 인간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는 앞서 말했던 능동적인 인공지능과 대비를 이룬다. 인공지능의 창조물인 트랜스미션에 몸을 맡긴 인류에게 자발적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에덴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는 거죠.” (141)

 

케빈의 생각이 의도적이었다고 생각해보면 한 차례 긴장이 생긴다. 더 나아가자면 그것이 과연 케빈의 생각이었을까, 라비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 또한 가능해질 것이다. ‘파괴하려는 자라는 이름의 장에서 신우는 이런 트랜스미션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크루세이더(트랜스미션에 반대하는 집단)’에서 활동한다. 그는 의심을 풀기 위한 최종 실험체로 자신을 선택하고,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며 수술대에 오른다. 인공지능이 만든 세상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신우의 태도에서 일종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세태가 도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초로 트랜스미션을 의심하며 기계화 수술을 받은 신우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인류가 다른 방향으로 진일보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를 통해 트랜스미션이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을 조종했으며 만족감을 인위적으로 생성해냈다는 것이 밝혀짐을 암시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신우의 트랜스미션은 다른 이들의 수술과 조금 다른 과정을 거쳤지만, 아주 다른 결과를 낳는다. 모든 사람이 수동적으로 몸을 맡길 때 신우는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 실험을 결정했고 유일하게 능동적인 트랜스미션을 받았다. 의심은 트랜스미션의 실체를 밝혀냈고 수동적으로 창조물이 되어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소설은 창조주피조물이라는 표면적 명칭으로서의 층위에 주목하지 않는다. 에덴에서는 창조주가 아닌, ‘능동적속성이 중요하다. 피조물 역시 능동을 획득하면 창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사유의 끝에 작품의 중심이 존재한다. 이 작은 변화는 큰 전복을 만들어냈다. 바벨탑을 끝없이 세운 인공지능이 결국 창조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라비와 함께 신인류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던 케빈은 소설의 결말부에서 피조물의 위치로 강등된다. 그 역시 트랜스미션을 받으며 라비의 정신적 지배를 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우의 능동적 실험을 통해 작가는 인간 역시 피조물의 수동성을 벗고 다시 창조주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소설 에덴을 읽으면 전복의 중첩이 보인다. 이 작품은 이분법적인 분리로부터 탈피를 꾀하고 있다. 여러 개의 층위를 갖는 인물들의 등장으로 창조의 범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창조는 이제 거대한 초월적 존재의 전유물이 아니며, 피조물의 피조물조차 창조주가 될 수 있다는 다층적인 구조를 소설 에덴은 보여준다. 신이 만든 생명에 도전한 인류, 그런 인류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을 정복해가는 과정은 독자에게 흥미를 넘어 전율을 느끼게 한다.

 

에덴은 성경의 유일신이 만든 태초의 동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실제로 이 소설은 많은 부분에서 성경을 모티브로 삼으며 제목 또한 그렇다. 케빈이 인공지능을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게 만들었다는 설정은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신은 인공지능과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제는 그 격차가 점점 줄고 있다.

 

신의 가장 큰 특징은 초월성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는 날이 다가왔음을 증명하는 수많은 데이터가 존재하는 이 시대에서, 인간은 어떤 속성을 지켜야 할까. 소설 에덴은 능동성과 자발성을 이야기한다. 신은 되지 못하더라도 피조물이 되기는 싫은 인류에게, 독자에게, 우리에게 신우는 경고한다. 의심과 확신, 능동성을 지키는 것만이 인간다움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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