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논쟁'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발전할 거창한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논쟁의 궤적을 정리해서 글을 올리는 사람까지 있으니, 이 전후의 과정과, 그 글에서 편집되어 있어 공백으로 있는 부분들을 섬세하게 꿰매지 않으면 이러한 '논쟁'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는 것 같아 이런 부분을 좀 정리하려고 한다.

 

먼저 타임라인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최근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는 가짜뉴스 킬러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며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패턴은 다 똑같다. 무엇을 말하는지 보다,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아서고든핌의 '던전 논란'은 전형적으로 가짜뉴스에 불과한 협잡이다.

 

1, 2, 3번은 별 이견이 없다. 그런데 3번과 4번 사이에 삭제된 이야기는 의도적인지, 또는 타래가 삭제되었기 때문인지 논쟁에서 이야기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저 발언은 '밈을 뺏긴 서브컬처 측의 분노가 아니다'라는 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 앞의 타래에서 이야기했듯이 2019년 5월 19일 책방 연희에서 '편않'의 주최로 <크릿터>와 <텍스트릿>, 그리고 <오글리>가 모였다. 당시 <크릿터>는 "한국소설의 계보와 영역을 시간과 공간을 보다 넓게 해석하고자하는 시도의 평론을 선보인다"라고 하며 기대를 했지만 여기에서도 '한국소설'이라는 추상적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당시 서효인 편집자는 자신들이 다루는 건 오로지 "순문학"이라는 대상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아서고든핌의 이야기 주제는 몇 번 순문학이라는 정치성이나 여러가지 이야기의 방향에서 나와 노선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들이 다루는 게 오로지 "순문학"이라면 장르소설은 '한국소설'이 아니란 말일까?

 

3번과 4번 사이에 있었던 말이 이러한 편견이 그대로 노출된 글이다. "이 칼럼은 단순히 서브컬처 밈을 뺏긴 것에 대한 분노에 불과한 거 아닐까" 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것에 대한 인용 rt가 있었다. 트위터의 논란을 보고 이야기를 한 걸 보면 트위터를 안 하는 사람 같진 않은데, 이미 삭제된 글과 트위터 타래를 통해서 자신이 잘못된 방식으로 이야기한 사과글까지 멘션으로 달렸음에도 '어떤 글이 있었는지'에 대한 콘텍스트 없이 발언만 따와서 타임라인을 재구성하는 건 무엇인가. 디지털 리터러시에 무지한 게 아닌 이상 내가 칼럼을 썼고, 그 칼럼이 '던전'을 다루기 때문에, 그 던전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내 발언도 이루어졌을 거라는 납작한 인식, 또는 의도적 편집인 것인가.

 

두 번째는 굳이 "순문학"이라는 추상적 명칭을 제도권 문학이나 본격 문학 같은 이야기로 전화시키려고 하는 이유다. 왜냐면 아서고든핌 본인도 "순문학이나 본격문학이라는 용어는 지나치게 정의가 불분명하고 가치편향적이라는 이유에서 쓰지 말자는 말이 많이 나온다."며 대안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심지어 타임라인 5번으로 나온 설명문에서조차) "순문학"이라는 그 '불분명하고 가치편향적'인 용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왜 이걸 다른 단어로 치환하고 전유해야 하는가? 아서고든핌이 지적한 것처럼 이 문제가 '순문학'이라는 워딩으로 인해 이루어진 문제라면 순문학이라는 범주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나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단어가 갑작스럽게 스불거지며 '순문학'이라는 추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온 아이러니에 대해서 이야기된 현상과는 전혀 벗어나며 논지를 뭉개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야기한 건 '순문학'이라는 용어가 가진 "불분명하고 가치편향적"인 그 의미를 굳이 던전이라는 서브컬처 밈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이용하려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지적이었으니까.

 

이런 엉망진창의 전환이 이루어지니 던전에 속한 작가들이 '비등단'이고 '제도권 문학'이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기묘한 논지가 튀어나오게 된다. 자, 다시금 1,2,3번에 있는 트윗을 돌아가자. 내가 굳이 "문예지를 보는 문청이 500명"이라는, 문학계 내부에서 자조적으로 흘러나오는 농담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그들이 쓰는 '글'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그들이 쓰는 '글'이 표현될 수 있는 매체가 도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좀 생각해보자는 거 아닌가. 장르 작가인 나기칸은 3번과 4번 사이에 있는 '서브컬처 밈을 가져갔다고 화났다' 라는 말에 대해서 '굳이' 장르 작가들이라는 작가군이 있다고 설정한 상황이라면 그런 행동에 대해 화났다라기 보다는 "그 정도까지 하는 것을 보고 안쓰럽다고 하겠지" 라고 감정을 술회했다. 이 말뜻은, 그들이 저러한 외피를 빌려온 이유가 무엇이고, 그런 아이디어의 발상을 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저렇게 안쓰러운 행위까지 하면서 그들이 문학에 다가갈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그들이 말하는 '순문학'이라는 대상군을 향해서 다가가는 방식으로 과연 옳은가?

 

더군다나 본문에서는 "순문학이라는 단어 선택이 거슬린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들이 대체 어떤 대체어를 쓰면 적절할지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하는데, 왜 우리가 그런 제시어를 고민해야하는가? 이건 넌센스다. 그냥 문학이면 되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말 그대로 글을 전달하면 되지 않은가. 그들이 그냥 '문학'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순문학'이라는 단어를 굳이 이야기한다면, 그 이야기를 통해서 표현하려는 의도를 표방해야 하는 사람은 그들 자신이다. 그렇다면 그 단어를 고민할 것도 자신들이고,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스타일이 '순문학'이라는, 본인의 말처럼 정의가 "불분명하고 가치편향적인 스타일"을 지향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알맹이에 대한 고민을 하라는 까닭이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 지적이다. 결국 그들이 인터넷 매체 공간으로 나오면서, 그리고 굳이 서브컬처적 밈을 통해서 이야기하면서도 말한 것처럼 '던전의 잠재적 소비자는 소위 순문학 독자들'에 불과하다면, 그것도 '순문학'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내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의 독자들에게만 향한다면 그 어디에 알맹이에 대한 고민이나 독자에 대한 고민이 있단 말인가? 내 원래의 칼럼이 이야기한 "형식적 고민 말고도 알맹이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바로 이 뜻 아닌가.

 

말한 것처럼 그들이 문예지에 한 번 글을 실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애매한 사람들이고, 그런데 그들이 '순문학'이라는 애매한 대상을 표방한다면, 그들은 '스타일'로 기존의 문단 권력을 만들어내는 추상적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며 비아냥 거리는 말에 불과하다. 교육 제도 안에서 전파되는 문학적 이데올로기를 따랐을 뿐인데 제도권 작가라고 부른다니, 말한 것처럼 '제도'에 한 번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도권 작가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들이 '비가시화'되었다는 말에 주목하자. 그들이 아서고든핌 본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이 그냥 문학을 한다면 굳이 카카오페이지, 브릿G, 거울 등을 쓸 필요 없이 그냥 블로그를 내서 자기들의 글을 공유하던가, 또는 문장 같은 공간에서 글을 공유해도 그만이다. 플랫폼이라는 형식으로 그들이 나온 그 순간 플랫폼은 하나의 제국으로서 기능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문단'을 지향하기 때문에 '비가시화'되었다는 건, 그들이 쓰는 글이 결국 어디서 연재되고, 어떤 플랫폼에서 연재되더라도 결국 도달하는 것은 '문단'이고, 지금 쓰는 글은 '문단'형 글의 레플리카 밖에 안 된다는 조롱을 그렇게 돌려돌려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문학'을 쓴다는 건 그들이 추구하는 형식과 이데올로기가 내적으로 합의되어있다는 것인데 그 대체어를 장르문학 측에서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는 건 너무 게으르지 않나?

 

'순문학'이라는 이름을 올린 순간에 등단 제도를 통해서 구축되는 권력 질서의 프레임을 강화한다는 말이냐는 질문은 조금 의외다. 왜냐면, 순문학이 가치편향적 언어라는 말 속에는 '순문학'에는 특정한 '가치'가 함의되어 있고,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단지 순문학이 가지고 있는 형식이나 의미에 대한 탓을 '던전'이라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과도하게 부여하지 말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칼럼의 본문을 그대로 가져와보자.

 

"거기서 '문학'이라는 대상이 대중친화적인가 하는 원론적인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문학'에서 멀어지는 까닭이 접촉면이 적기 때문일까. 오히려 '문학'은 인쇄 매체의 공간, '문예지'라는 필드 안에서 안전하게 격리/보호받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실제로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몇몇 시도를 살펴보면 구독 서비스라는 최신식 모델 속에서 낡고 고립적인 이야기만을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예를 들면 초기 '던전'은 서브컬처의 밈을 잔뜩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청탁 텍스트의 정체성을 '순문학 유료 웹진'으로 한정했다. 이러한 형상은 기존의 '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권력지형도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이식한 것에 불과할 뿐 변화가 아니다."

 

이 문장에서 나는 '문학'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대중친화적인 형상인지, 아니면 선량주의의 대상인지 원론적인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러한 '문학', 그 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순문학'이 제도니 문예지니 하는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낡고 고립적인' 이야기를 하며 격리-보호 조취가 이루어지고 있던 것 아닌가 경고했으며, 이러한 결과는 "텍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문학'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권력지형도"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이식한 것에 불과한 거 아니냐고 지적한 것이다. 그럼 이런 지형도에서 '서브컬처의 밈'은 그냥 예쁜 화장에 불과한 거 아닌가. 아서고든핌이 순댓국에 대한 예시를 들었으니까 그 방식으로 이야기하자. 부산 한복판에 순댓국집을 차리면서 간판은 "오브라의 정원" 같은 걸 달아놓고,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Bar 같은 분위기를 잔뜩 풍겨놓고는 하는 요리가 순대라고 한다. 그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걸 하나의 스타일리쉬로 볼 수 없진 않겠으나, 그게 과연 일반 순댓국집 간판을 달아놓은 디자인보다 고객친화적인가?

 

나는 던전이 '순문학'이라는 용어를 폭력적으로 만들어낸다거나, 그들이 악의 수괴라서 순문학이라는 단어를 전유하고 장르문학을 왕따시키며 차별한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순문학의 대체 용어로 문단과 제도, 본격문학 등의 이야기를 한참 하던 사람이 순문학이라는 언어가, 그것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이라고 하면서 개인의 스타일도 아니고 집단과 매체 플랫폼의 지향으로서의 '순문학'이라는 추상성을 이야기하면서 프레임을 강화하냐는 질문을 하면 이건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세 번째에서 이어지는 네 번째가 바로 이 글을, 쓰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이유다. 아서고든핌 이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무의식중의 이분법, '대중'이라는 것이 카카오페이지나 문피아이고, 문학의 독자는 '브릿지'나 '거울'이어야 한다는, 즉 '대중'을 가로지르는 이분법의 폭력성 때문이다. 이건 내가 웹소설 작가이자 연구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쉽사리 납작해진 편견인지, 아니면 그 글이 갖고 있는 무식할 정도의 폭력인지 모르겠지만.

 

자. 인터넷에서 성공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단순히 카카오페이지나 문피아의 웹소설 작가들밖에 없는가. 그 외에는 다들 나이브하게 고민을 하고 있단 소리인가? 나는 그런 전제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내 칼럼 보긴 봤는가? 내 글의 첫 시작은 '이미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일간 이슬아>와 같은 시도를 비롯해서' 였다. 일간 이슬아의 성공은 그 레트로한 감각의 표지와 페이스북을 통한 구독 독자의 모집 등 굉장히 SNS친화적인 형태 아니었나. 2017년 우리만화 대상을 탔던 <며느라기>의 시도도 굉장히 SNS 친화적인 형태지. 이미 수많은 웹드라마나 웹툰 등의 콘텐츠가 웹이라는 매체에 맞게 기반 서사와 형식의 전달법을 고민하고 있으며, 그것은 서브컬처를 떠나 예술 전반의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례다. 단순히 쓴 시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특집 차도하'라는 컨셉에 맞게 내가 잘 하는 일을 하자. 라고 해서 낭독해 녹음한 파일을 보내는 것 정도의 시도부터 몇 가지. 그 시도가 이때까지 시인들이 오프라인에서 해오던 행위를 크게 벗어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칭찬한 것도 이런 고민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던전이라는 플랫폼의 형상을 취했다면, 그것이 도대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장르적 독자까지 확장을 요구하는 것인지, 게임적 체험을 해온 사람들에게 확장을 요구하는 것인지, 또는 일본 서브컬처의 형태를 혼성모방해서 그러한 이질성을 통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단지 외피만 그럴듯하게 갖춰놓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쉽다는 지적을 "웹소설을 따라하지 않아서 아쉽다" 같은 식으로 독해하는 건 독해를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인가, 아니면 독해력 부족인가. 심지어 이 부분은 던전의 문제점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며 아서고든핌 본인이 정리한 (1)번과 (2)번의 내용이랑 사실 별다른 내용이 아닌가. 정작 '웹에 맞는 글쓰기를 하게 알맹이를 조정하라'고 자기도 실컷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럼 본인도 논란인 이유를 모르겠다며 논란을 부채질하는 이중적 존재인가?
 

나는 아서고든핌에게 하나 묻고 싶다. 도대체 '웹소설적인 글'이 뭔가. 아서고든핌이 웹이라는 매체에 맞는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장에서 나에 대한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는 몇 가지 전제가 감춰져 있다.

 

*

 

1) 매체적 형식을 고민하는 것보다 조금 더 컨셉적 기획을 고민하라고 했다. 좋은 텍스트가 인터넷이라는 창구에 떡하니 있는 것만으로도 읽어줄 거라는 인식은 나이브하다. 던전이라는 공간이 매체 외부의 텍스트까지 고민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융희는 인터넷 매체에 맞는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모욕이라고 이야기했다.

 

(숨겨진 전제 1) 이융희가 웹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좋은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웹소설 연구자이고 웹소설에 친화적이니까 당연히 웹소설 작가들의 고민을 이야기한 것이다.

 

2) 인터넷 시대에 얼마나 적합한 매체인지를 평가할 때 비교 대상은 문피아나 카카페 같은 '웹소설'이 아니라 거울이나 브릿지 같은 단편 소설 웹진이 되어야 한다. 웹소설하고 단편 소설은 아예 지향하는 방향과 형식이 다르다.

 

3) 김보영 작가는 거울 웹진에서 <몽중몽>이나 <땅 밑에> 같은 작품을 발표했고, 그런 글은 던전에 올라온 소설보다 훨씬 난해했다.

 

(숨겨진 전제 2) 즉, 거울은 단편의 형식은 고민했지만 일반 문학과 비슷할 정도로 어려운 글을 써서 성공한 케이스가 있으니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맞춰서 고민해 알맹이까지 수정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웹소설 밖에 없다.

(숨겨진 전제 3) 단편 소설과 웹소설의 차이는 '어려운 글'과 '난해한 실험'의 유무이다.

 

4) 거울 웹진이 처음 생겨났을 때 인터넷 시대에 발맞추는 대중 지향적인 문학의 정체성을 고민했을 가능성은 적었지만 외부에서 그들의 성과를 알아봐줬고, 그들은 순진한 발상일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성공했다.

 

5) 인터넷 웹진에서도 당연히 난해한 문학을 실험할 수 있고, 좋은 문학을 읽고 싶다는 믿음 아래 독자들이 모일 수 있다. 단편 소설 매체를 웹소설의 기준으로 무리하게 평가했다.

 

전제 3의 경우는 불확실하지만 1,2는 내가 이야기한 것을 의도적으로 저렇게 편집하고 내 스탠스를 밀어넣는 방식에서만 성립하는 전제다. 왜냐하면 내가 말한 것은 매체적 형식, 즉 웹 공간에서 플랫폼을 만들었을 때 본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단편 구성을 낼 것인지, 또는 웹진이 될 것인지, 또는 메일링 서비스가 될 것인지, 그러한 브라우저의 공간에 맞춰서 글쓰기를 하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체적 형식에 따라 전달 방식을 바꾸고, 그것에 따라서 서사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져 수정된다는 건 내가 꾸준히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심지어 우리는 하다 못해 텍스트릿이라는 홈페이지에서도 최소한 글자크기 18이상을 키워놔야 모바일 환경에서 잘 보인다며 전달의 형식을 이야기한다. 김휘빈 작가의 초기 비평들이 브런치 글들에 대해서 옮겨온 건 아는가?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평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 이루어졌다. 이후 올라간 글들이 대부분 종이 연재작을 그저 아카이빙하는 용도에서 텍스트릿에 올라가는 형태이다보니 이러한 고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럼 나는 '어려운 내용'이고 학술적 내용을 다루는데 동시에 웹 형식에 맞춰 연재 형식과 폰트 등을 고민한다. 그럼 우리의 비평은 '단편소설'이 되나? 무슨 전제가 이렇게 개떡같은가.

 

웹 형식에 대해서 고민하라는 말을 웹소설이라는 내용으로 납작하게 이야기해서 납득이 가지 않고 이해가 안 된다고, 무리하게 평가하는 게 아닌가 문제지적하는 건, 애초에 문제가 아닌 걸 문제랑 연결해서 문제화 만드는 방식에 불과하다. 

 

말한 것처럼 형식과 내용과 전달의 방식 전반적인 창구를, '문학을 읽기 위해서 준비하고 문학을 집어드는 문예지 소비자'에서 벗어나 불특정 다수를 지향할 수 있다. 이건 결국에는 마케팅적인 측면의 인식에 더 가깝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창수 소설가였던 것 같다. 페이스북에 한 스승과 제자에 대한 우화로 선생이 "내 글이 안 팔리는 이유가 뭘까" 라고 제자한테 이야기했더니 제자가 "선생님 글은 난해하고, 어렵고, 어떤 독자를 상정하는지 모르고..." 식의 나름 평론가인체 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선생이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니?" 라고 반문했다. 많은 작법서의 이론도 그렇고, 글쓰기를 할 때 독자를 누구로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은 상업성 이전에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이야기한 타래가 '아이러니'라서 이상하다면, 나는 그 단어를 '언밸런스'라고 정정해보자. 그럼 될까. 그 안에서 SF적인 작품이 연재가 시작되고, 던전의 소개에서 추구하는 방향에 '순문학'이라는 용어가 빠졌다. 순문학이 스타일이라면, 그리고 SF 연재가 시작되면 작가들은 그 순간 추구하는 글의 방향이 없어지나? 나는 그들이 순문학을 쓴다. 라는 것에 매몰되지 말고 그냥 글 쓴다, 문학을 쓴다. 라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대안어를 이야기하라고 하니까 이야기한다. 나는 어떤 강의에서도, 애스크픔이나 페잉 같은 질문답변에서도 '문학이라는 단어 그 자체의 환상에 빠지지 마라'고 지적한다. 아마 내 트위치 방송까지 챙겨서 악의적으로 편집을 했으면 이런 질의응답도 보았을 것 같다. 못 보았다면 다시 이야기한다. '문학'이 거창한가. 거창하게 물신화하려는 사람들만이 있고, 그 시도 중에 하나가 타자로서의 장르문학을 만드는 것 아니었는가. 그래. 타자로서 장르문학 만드는 거 이야기 하니까 다섯 번째로 넘어가자.

 

다섯 번째. 이건 좀 많이 화가 나는데, 글의 말미에 대해서다. 트위치 방송을 이야기하며 '"이영도"와 "이상균, 이경영"을 비교하며 순수문학으로서의 판타지를 추구하는 분도 계시죠 라고 하면서 자신이 순수문학이라는 표현으로 판타지 작가를 정의하는 것은 괜찮지만 등단도 안 한 사람들이 사비로 플랫폼 만들면서 '순문학'이라는 단어 선택을 한 것은 큰 문제라는 말인가? 납득하기 힘들다.' 라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트위치 방송을 봤으면 그 앞뒤에 내가 정과리, 하응백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같이 했다는 건 왜 빼는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이번에 타래에서 멘션으로 남긴 1시간 30분 정도의 트위치 링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링크는 내가 삭제하지 않으면 14일동안 유지되니까 거기에서 내가 판타지 소설 이야기할 때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정과리 하응백 글 띄워놓고 뭐라고 하는지 똑똑히 봐라.

 

하응백과 정과리는 한국 판타지 소설을 톨킨류의 소설에서 게임을 거쳐 무협에 대한 혼성모방에 지나지않는 문화상품으로서 판타지 소설을 논평했다. 그러자 이영도 작가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게임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한 것이 동아일보에 99년 4월 6일, 이영도가 직접 하응백의 비평에 대해 "'드래곤라자'가 무협지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은 무협지도 팬터지도 모르는 얘기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충분히 하면서 왜 이런 앞뒤의 맥락은 다 자르고 "순문학"이라는 단어를 던전이 이야기하면 안 되고 연구자인 너는 이야기해도 되느냐 같은 납작한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쯤되면 알겠지만 여기서 말한 순수문학은 그냥 순수문학이 아니라 양 옆에 "" 가 붙는, 소위 말하는 "순수문학"이며, 그 순수문학은 "작가 개인의 창작품으로서 작품을 제공"하거나 또는 "고전적 영웅 서사의 플롯 구조를 갖고 있음"만으로 기존 제도권 문학으로의 영입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던 정과리 평론가의 이야기나, 또는 문학적 허와 실은 없으며 새로운 문화상품으로서의 가능성만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 '하응백'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적인 것을 추구한다며 평론가들의 말에 동의한 두 사람과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그러니까 (게임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문학을 추구할 수도 있죠. 라는 말인데, 이걸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더군다나 아서고든핌은 이 정과리의 비평을 본인이 자유비평에서 이영도에 대한 평론을 쓸 때 한 차례 언급하기도 한다. 정과리의 논문을 인용하고 있어서 이러한 맥락을 모를 사람도 아니다. 아니지. 그 글의 인용을 2000년도에 라고 했지만 정과리가 해당 글을 발표했다고 본문에 썼는데 정과리가 해당 글을 한국문학교육학회의 문학교육학 Vol.7에 발표한 것은 2001년이니까 대충만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악의적으로 인상만 남긴 채 어그로를 끄는 악의적 편집은 염병이다, 퉤.

 

 

*

 

 

글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는 이게 과연 '논란'인가 하는 점을 이야기하자. 내가 어제까지 이 주제에 대해서 논한 것은 약 20여개의 타래에 불과하다. 그 타래는 내 칼럼에 대해서 차도하 시인이 공유를 했고, 그 공유한 글에 대해서 두 명 정도의 트위터 사람들이 칼럼에 대한 불평불만을 제기한 것이 전부다. 차도하 시인이 내 칼럼을 공유한 까닭은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차도하 시인에게 직접, 왜 목소리 메일링 시스템을 기획했는지 문의해서 물어봤기 때문이다. srs를 운영하는 차현지라는 분도 srs에 대해서 칼럼에 언급되었던 만큼 칼럼을 공유해주었고, 밍이라는 분 역시 소조 조영일 평론가의 비평구독을 했다고 내 칼럼을 공유한 것이 끝이다.

 

내가 분노한 것은 칼럼 공유에 대해서 부족함이나 불평을 이야기한 두 명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밈을 뺏어갔다고 화가 난 것이다.'라고, 평소 장르문학에 대해 납작하게 이야기하는 편견이 그대로 재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내 타래의 멘션을 보면 그 부분에 대한 사과가 잘 이루어졌음도 확인 가능하다. 실제로 그 이야기를 처음 발화한 사람의 계정에 차도하 시인은 직접 '나도 던전이 순문학만 한다는 발언에 대해서 확인한 바 있다'고 이야기하고 아쉬움을 토로하였으며, 이러한 아쉬움의 토로는 '던전이 순문학만 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 정말로 (나쁜 의미의) 순문학적이다'라는 방식으로도 한 번 더 확인 가능하고.

 

논란인 적도 없었고, 논란이 될 만한 내용도 아닌 걸 논란이라고 프레이밍해서 얻을 수 있는게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이런 것이 왜 논란인지 모르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게 논란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란인 것처럼 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을 뿐.  전체 맥락을 다 본 것도 아니고, 자신이 받은 인상과 순문학/장르문학이라는 이분법의 키워드만 집중해서 앞뒤의 의도와 의사는 다 빼버리고 글만 남겨놓았다. 몇 차례 순문학/장르문학의 이야기를 텍스트릿 비평란에서 이야기했던 경험 때문에 내가 장르문학이나 순문학 이야기하는 모든 내용을 '논란'으로 프레이밍하고 싶은 것인가. 그런 거라면 1월 1일 경향신문, 똑같이 오피니언 직설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신춘문예와 장르'라고 하면서 언급하는 '제도권 문학'과 장르를 본격적으로 비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1012048005 . 나는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내가 서 있는 영역의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썼던 칼럼에 대한 이야기를 지지부진 많이 하는 건 그만두고자 한다고 어제 썼었는데 이런 식으로 의도가 저열한 글이 올라와서 굳이 정리한다. 이 글 이후에 다른 답변은 따로 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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