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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 손진원

 

 

 

‘로맨스 담론이 실패한 이유 9가지’라는 글 네 번째 항목에서도 먼저 언급한 바 있지만, 다수의 장르 관련 논자들은 SF는 ‘과학’, 판타지는 ‘환상’, 무협은 ‘무’와 ‘협’의 개념에 대해 고민하고 장르의 정의를 내리려 한다. 이 글에서는 로맨스의 핵심인 ‘사랑’의 개념을 다시금 점검하고 현재 독자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짚어보도록 하겠다.

 

 

 

 

 

로맨스란 무엇인가

 

 

‘사랑’의 개념을 먼저 알아보기 전에 먼저 로맨스의 정의를 내려 보겠다. 로맨스는 대체로 두 명의 남녀가 사랑을 이루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다. 여타의 ‘사랑 이야기’들과 로맨스가 다른 점은, 여성 취향이며 인물들의 ‘낭만적 사랑의 성취’를 기본 베이스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끝은 거의 해피엔딩이라는 것이다. 물론 역하렘물, 새드엔딩인 소설이 있고 또 남성 독자와 남성 작가수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지만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정의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로맨스소설이 등장한 것은 80년대 초부터다. 79년 계약 후 80년, ‘할리퀸’ 로맨스 브랜드는 ‘하이틴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삼중당문고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할리퀸은 1950년대 후반 캐나다에서 설립된 로맨스 전문 출판사다. 할리퀸은 1970년대 초, ‘밀스 앤 분’이라는 영국 출판사를 합병하며, 전 세계 출판사와 연결해 로맨스 작품들을 번역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70년대 말 이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이후 ‘신영출판사’에서 할리퀸의 판권을 사들였고, 현재까지도 출간되고 있다. 96년도, 신영출판사에서 개최한 로맨스 공모전에서 박윤후 작가가 데뷔하면서 공식적으로 한국 작가가 쓴 한국의 로맨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로맨스는 이후 종이책(특히 대여점)과 인터넷소설, 웹소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유통되고 큰 사랑을 받아왔다.

 

 

로맨스는, BL과 GL과 겹치는 요소가 많으나 (낭만적 사랑의 방식으로 그려지는 등) 한국에서 이 장르들은 구분되어 발전한 바 있고, 독자들 역시 서로 배타적인 경향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성애 중심의 로맨스(HL) 위주로 전개해 나갈 것을 밝혀둔다. 

 

현재 한국의 로맨스소설을 이야기하려면 ‘로맨스판타지(로판)’ 장르에 대해 반드시 언급을 해야 한다. 로맨스판타지는 원래 ‘여주인공 판타지(여주판타지)’가 남성독자들에게 외면 받고, 플랫폼에 의해 따로 카테고리가 분리되면서 생긴 장르다. 이 과정 속에서도 장르적 명칭이 ‘로맨스판타지’냐, ‘판타지로맨스’로 해야 하느냐, 의견이 분분하곤 했다. ‘로맨스판타지’와 ‘판타지로맨스’의 차이는 이렇다. ‘로맨스판타지’는 판타지, ‘판타지로맨스’는 로맨스의 지분이 더 많은 것으로 이해했다. 이 역시 누군가가 정의를 내렸다고 말할 수는 없고, 독자들의 감으로 인한 구분이었다. 어쨌든 플랫폼이 이 장르를 ‘로맨스판타지’로 분류, 이름이 굳어졌다.

 

현재 ‘로맨스 판타지’는 ‘여주인공 판타지’ 혹은 ‘여성작가가 쓴 판타지’는 물론 ‘판타지 세상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와 같은 이야기들을 한데 담고 있는 장르가 되었다. 이제는 로맨스를 이야기할 때 ‘로맨스판타지’ 소설 일부도 포함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사랑’의 의미와 문학 간의 관계

 

 

그럼 본격적으로 로맨스에서 나타나는 ‘낭만적 사랑의 성취’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랑’의 의미와 작품 간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을 표현하는 문학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할 것 없이 사랑을 중심 주제로 하는 고대 시가, 중세의 이야기들은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사랑은 굉장히 ‘열정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열정적 사랑(passionate love)’은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이다. 상대방과의 감정적 연루가 매우 강렬한 이 열정적 사랑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문학 작품 안에서는 에로틱하고 육체적인 충동으로 나타났으며, 그 특성상 사회적 질서와 의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매우 위험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었다. 결혼과 같이 사회적 질서와 의무를 불가능하게 하고 제도를 흔들어버렸기 때문에, 과거 문학작품 속 열정적 사랑은 대체로 파국으로 끝을 맺었다.

 

 

우리가 집중해서 살펴보아야 할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의 개념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유럽에서 등장하게 된다. 열정적 사랑과 다르게 낭만적 사랑은 굉장히 특수한 문화적 현상이다. 낭만적 사랑이 등장한 배경은 이러하다.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일터와 가정이 분리되고, 집안에서 가부장의 권위가 축소된다. 대신 여성이 가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일터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따스한 공간’으로서의 ‘가정’의 개념이 창조되고, 가족 간 감정의 교류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 결과 ‘바깥일은 남성이, 집안일은 여성이’ 라는 말처럼 성별의 역할이 분리된다.

 

이처럼 가정이라는 공간과 가족의 의미가 중요해지면서, 점점 결혼과 사랑이 관계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즉, ‘사랑 없는 결혼은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나타난 것이다. 과거만 해도 결혼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행한 것이었지, 사랑과는 상관이 없었다. 사랑을 결혼과 연관시키면서, 상대방과의 관계가 유일무이한 것, 영원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서로 강력한 ‘합일의 상태’를 추구하게 되었다.

 

열정적 사랑과 다르게 낭만적 사랑은 에로틱하거나 육체적인 충동이 아닌, 정신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랑 방식이다. 사랑을 통해 상대방과 나의 영혼이 만나고 서로 정신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평등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상적인 낭만적 사랑은 남성성이나 여성성의 문제를 떠나는, 가부장제를 안으로부터 뒤엎는 잠재력을 가진 전복성을 가지고 있다.

 

 

사랑과 결혼이 관계를 맺는다는 인식은, 달라진 여성의 위치와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여성의 권리가 ‘가정의 담당자’라는 이름으로 부여되었기 때문에, 여성에게 용인된 사랑은 결혼뿐이었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 상, 남성은 결혼 바깥의 사랑을 추구해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졌다. 특히 성별 역할의 분리는 일차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듯했으나 점차 여성을 가정 안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낭만적 사랑은 이성애적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젠더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 현대로 넘어올수록 연약해졌다. 점차 이혼율이 증가하는 등, 낭만적 사랑의 속성들은 점차 의문시되었다.

 

현대에는 낭만적 사랑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킨 새로운 사랑의 방식이 나타난다.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에서 ‘순수한 관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두 사람이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영원성은 물론 결혼도 강요하지 않고 관계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순수한 관계’ 안에서의 사랑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낭만적 사랑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프랑스의 팍스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 제도라 할 수 있다. 한국어로는 ‘시민 연대 계약’이라는 뜻으로, 두 성인이 서로의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한국에서의 낭만적 사랑

 

 

‘낭만적 사랑’의 개념은 로맨스소설은 물론 현재 우리의 사랑 개념과도 크게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는 유럽의 경우를 살펴보았으므로, 짧게 한국에서는 낭만적 사랑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겠다. 조선 후기까지 사랑의 가치는 유교적 가치를 뛰어넘지 못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염정소설’이 읽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사랑이라는 것은 사회제도와 윤리를 뒤흔드는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사랑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천주교가 유입되었지만, 광범위하게 전파되지는 못했다.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 초에야 ‘연애’(‘love’의 번역어)라는 말과 함께, 사랑의 가치는 남녀 간의 사랑뿐만이 아닌 사회와 국가의 발전적인 원동력으로 여겨졌다. 3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연애’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연애’의 의미, 즉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으로 받아들여졌다. 지식인들은 봉건적 사회제도를 청산하자고 외치며 구시대적 사랑을 거부하는 대신, 신식 가정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자유연애를 도모했다. ‘스위트홈’ 만들기의 기획은 해방 이후 계속해서 이어졌으나, 낭만적 사랑이 가진 문제점은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한국의 로맨스소설- 낭만적 사랑의 전복성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여러 매체에서 낭만적 사랑을 컨텐츠로 소비하고 있다. 낭만적 사랑은 일종의 문화적 관행이다.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K팝의 가사에서, 제품을 사게 만드는 광고들에서, 낭만적 사랑은 굉장히 좋은 컨텐츠로 소비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개념을 ‘낭만적인 것’으로 공고화시킨다. (아래는 그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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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소설은 낭만적 사랑을 이야기의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장르다. 독자들은 로맨스를 소비함과 동시에 낭만적 사랑의 개념을 우리 안에서 재생산한다. 이미 낭만적 사랑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왜 계속 소비하고 있는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낭만적 사랑을 허구로나마 읽고 대리만족하기 위해서인가?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로맨스소설은 낭만적 사랑의 폐해를 재생산하고 있는가?

 

 

일단 독자들이 로맨스소설을 찾는 이유에 대해 대리만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맨스의 정의를 설명할 때 언급했던 것처럼 로맨스가 낭만적 사랑의 성취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낭만적 사랑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상적인 낭만적 사랑의 가치, 전복성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해보자. 낭만적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평등주의적 기치는, 그 자체로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 사랑에 저항하는 역할을 한다. 상대방과의 정신적인 만남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 삶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의식은 곧 타자와의 ‘연대’를 목표로 한다. 작가들도, 독자들도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점점 낭만적 사랑이 가지고 있던 폐해들은 소거하려는 대신, 이상적 가치는 작품 안에서 계속 추구하고자 한다.

 

텍스트릿 출범 당시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사랑과 돈, 사치의 이중주”)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돈 봉투’와 같은 장애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클래식한 로맨스 소설에서는 여성들이 사랑의 가치가 ‘돈 봉투’를 뛰어넘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설득해야만 했다. 꽤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남성의 권력을 ‘아내’라는 권리로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돈 봉투’와 같은 장애물은 간소화되고, 오히려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가 사랑의 가치를 인정한다. 결국 갈등 대신 끊임없이 사랑만 하는, 일명 ‘꽁냥꽁냥물’로 이야기가 바뀌고 있다. 사랑이 모든 문제들을 무화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 로맨스 속 여성들은 사랑을 성사시키기 위해 약자가 되어야만 했다. ‘약자의 미학’이랄까, 그것에 감화 받은(?) 남성들이 변화되는(길들여지는) 서사였다. 그런데 이제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부러 길들이지 않아도 남성 캐릭터는 스스로 사랑을 깨닫는다. 그리고 낭만적 사랑 속에서 나타나는 평등주의의 이념을 내면화한 것처럼 행동하여, 결국 이상적인 사랑을 성취한다.

 

 

 

 

 

로맨스와 여성의 삶

 

 

글의 결론이다. 로맨스는 독자들을 낭만적 사랑으로 충족시켜주는 장르다. 누군가는 로맨스소설이, 혹은 낭만적 사랑으로 끝나는 서사들이 불량식품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로맨스소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 선언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지금 시대에 지도비평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낭만적 사랑이 가지고 있는 허구성은 독자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경험했던 바, 여성의 삶을 사랑의 서사로 가둬놓는 건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로맨스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닌 남녀 모두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사회적으로 연애-사랑의 영역은 주로 여성의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성들은 낭만적 사랑의 이야기를 주로 향유했다. 로맨스는 물론이고, 순정만화나 오토메 게임 등 모든 ‘여성향’ 매체들은 사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낭만적 사랑이야기에 대해 가장 익숙하게 느끼면서도 오히려 현실에서는 낭만적 사랑에 대해 가장 초연한, 혹은 초연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이들이 여성일지도 모른다. 특히 지금은 낭만적 사랑의 병폐라 여겨지는 여성의 역할의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 결과, 헤테로 여성이 사랑이야기를 할 때에는 무수히 많은 검열이 들어온다. ‘사랑은 결국 여성 삶을 가부장제 안에 가둘 것’이라는 불안감이 선연한 탓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삶에서 사랑은 중요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을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낭만적 사랑이 불가능한 시점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그리고 로맨스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이렇다. 로맨스는 사랑의 가능성의 실험장이며 그 위력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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