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소설은 결국 변혁의 장르이다

 

텍스트릿 필진 : 이상연

 

 

로맨스는 무엇인가

 

 

로맨스소설을 분석하는데 앞서 로맨스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로맨스 혹은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정치, 철학, 미학의 장에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논박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사랑의 역사』라는 책이 얼마나 많은지 검색해보라!) 따라서, 로맨스 혹은 사랑에 대한 수많은 이론적 정의를 끌고 오는 것은 다소 소모적인 일이다. 그곳에는 최소한의 합의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엇을 로맨스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는 당대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에 하나이다. 예를 들어, 퀴어 집단이 보편적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가의 문제 혹은 이성애 관계에서 지금까지 로맨스로 여겨지던 폭력의 문제는 그 무엇보다 뜨겁게 다루어지는 화두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맨스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은 가장 정치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본문에서는 로맨스소설이라는 아주 특징적인 장르에서 과연 로맨스는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 질문하고자 한다. 덧붙이자면 이것은 로맨스소설의 정의에 대한 나의 선언이다.

 

 

로맨스소설에 대해 과감히 정의하자면, 로맨스소설에서 로맨스는 개인이 폭력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행위와 그 과정 자체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개인이 개인에게 행사하는 다른 맥락의 두 가지 폭력은 혼합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로맨스소설은 이것을 포착하는 데 있어 탁월한 장르이다. 다시 말하자면, 로맨스소설은 폭력과 마주하는 개인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에 대한 해소는 로맨스 그 자체이다. 폭력이 해소되는 상황에서 로맨스가 전투의 전리품으로서 성취된다는 말과는 다르다. 로맨스는 개인이 폭력과 마주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여기에는 단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어떠한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될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다. 로맨스소설이 다른 장르와 구분되는 것은 이러한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의 공식을 장르의 언어로 표현하면 바로 ‘해피엔딩’이다. 미국로맨스소설협회가 로맨스소설을 정의하는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긍정적인 엔딩”(optimistic ending)을 제시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긍정적인 결말에 대한 믿음은 로맨스소설이라는 장르의 핵심이다.

 

 

그러나 로맨스는 폭력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결국에는 사라졌을 때만 성취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폭력이 사라졌을 때만 로맨스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소설 속 수많은 주인공이 로맨스를 위해 폭력에 대항한다고 판단하기 쉽다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폭력에 대항하는 과정 그 자체가 로맨스라는 것이다. 로맨스는 폭력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만 증명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로맨스소설 속 주인공이 남성 주체인지 여성 주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로맨스소설을 규정하는 데 있어 핵심은 그것이 여성-주체-주인공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체-독자에 있다. 폭력에 대항하여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상상하는 방식이 로맨스이며 로맨스소설은 혁명에 대한 여성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혁명의 주체가 아니었다. 혁명이 역사로 기록되고 평가되는 과정에서 거리의 수많은 여성은 지워졌고 혁명 주체의 핵심적 세력이 강력한 남성 연대를 배경으로 하는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여성주의 혁명에서만 주체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 말은 곧 여성적인 혁명이라는 것이 한 번도 성취된 적 없다는 것이다. 로맨스소설의 작가와 독자들이 여성적인 혁명을 상상하는 수많은 방식이 로맨스소설이다. 폭력과 억압에 투쟁하는 수많은 개인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로맨스는 혁명의 수많은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유통시킨다.

 

 

어떤 이야기 속에서 폭력은 전적으로 파괴되지 않을 수 있고 개인은 여전히 폭력에 의한 위협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저항, 다시 말해 로맨스라는 관계 속에서  독자는 언제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로맨스소설 독자로서 혁명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로맨스소설을 읽음으로써 폭력과 억압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그 믿음. 그 믿음만이 로맨스소설을 규정할 수 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멜로드라마를 규정하는 ‘도덕에 대한 제의적 믿음’(moral occult)과 닮아있다. 피터 브룩스는 프랑스 혁명기의 대중 연극 장르 중 하나인 멜로드라마에 대해 분석하며 멜로드라마의 형식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선의 세력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선과 악의 구분은 일반적인 도덕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선은 악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으며 패배하지만 결국에는 선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브룩스는 이것이 프랑스 대혁명과 혁명이라는 사건 전후에 배경이 되었던 제도, 신화, 계급이라는 안정적인 요소가 사라진 상황에 대한 불안이 요구한 대중문화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멜로드라마 형식은 도덕의 승리를 믿고. 증명하고, 설명하는 수사학이다. [1]

 

 

이후 멜로드라마는 현대 영화와 문학 비평의 영역으로 이식되어 대중문화를 비평하는 하나의 틀로 기능해왔다. 멜로드라마가 수많은 민중의 시대적 불안을 반영하는 하나의 장르라고 할 수 있다면 로맨스소설에 이르러서도 그 논의는 유효하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로맨스소설은 전적으로 도덕의 승리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승리를 바라기에 동시대의 도덕은 너무나 의심스러운 것이다. 로맨스소설의 믿음은 도덕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압제가 사라진 세상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세계를 상상하는 데 있어서 역설적으로 폭력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폭력에 대한 대항의 과정에서 로맨스는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경험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폭력과 갈등과 그 과정 없이 로맨스는 보이지 않는다. 우연히 발생하는 그 어떤 로맨스도 폭력 없이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설의 주인공들이 폭력을 대하는 방식이다. 폭력은 계급으로 인해, 가족으로 인해, 외모나 학벌에 의한 차별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 하나의 사건에서 느낄 수 있는 폭력의 원인은 명확하게 파악될 수 없다. 폭력은 사회적 억압이 혼종된 결과물로 등장하며 인물과의 관계나,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 그것은 인물 간의 사이에서 발생한 사소한 ‘오해’의 형태로, 어떤 경우 ‘감금’의 형태로까지 나타나며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모든 형태의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결국에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난다. 로맨스는 이상으로 향하는 험난한 과정 그 자체이자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상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으며 그것은 또 다른 로맨스의 과정을 요구한다. 이것은 혁명의 과정과 비슷하다. 해결로 나아가고 있다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은 강력한 폭력의 구조와 마주하며 더욱 강해진다. 언제나 상대적으로 무력한 위치에 서 있는 여성 독자에게 이런 판타지가 주는 힘은 강력하고 쾌락적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다. 페미니스트가 로맨스소설을 읽는 것은 가능한가? 로맨스소설을 통해 구조의 변혁을 염원하는 수많은 여성은 결국 페미니스트이다. 폭력과 마주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방식을 상상하는 수많은 로맨스소설은 결국 변혁에 관한 장르이다.

 

 

따라서 나는 로맨스소설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현재의 로맨스소설은 이성애 서사로 국한되지 않는다. 폭력과 대항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해결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모든 소설은 로맨스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의 성별 혹은 파트너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성애/동성애의 여부로 장르를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독자들이 향유하는 로맨스의 형태가 지속적으로 다양해져왔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개별 작품과 그에 따른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을 통해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여성성/남성성의 구분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고 제기한다.

 

 

현재 소비되는 로맨스소설은 해방, 도피의 미학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으로 계속해서 드러나는 폭력에 대한 사유의 미학이다.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어지는 상상력의 장르이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로맨스소설을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앞으로 새롭게 이어질 수많은 상상력과 다양한 믿음의 형태를 기다릴 것이다.

 

로맨스소설의 로맨스는 분명하게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어느 순간 궁극의 합의가 될 수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폭력으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성질의 것이다. 로맨스는 인과 관계가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대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모호함의 영역이다. 그것은 모호하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발현될지 누구도 알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견고한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균열을 낼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로맨스의 핵심이다. 그리고 균열이라는 결과에 대한 유일한 조건은 로맨스의 바탕이 되는 관계와 연대이다. 연대없이, 관계없이는 어떠한 변혁도 상상할 수 없다.

 

 

 

 

 


[1]. 이승희,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2002, 한국극예술연구.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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