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이야기가 남게 될 것이다

- 김창규의 『우리가 추방된 세계』가 보여준 한국 SF의 이야기 가치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John D. Niles)은 인간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고, 그것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려는 특성이 있다고 하면서 인간을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로 정의했다. 인간의 이러한 속성은 그동안 이야기의 본류라고 생각했던 문자 위주의 서사시대에서 벗어나 멀티미디어 디바이스에 의해 매체 환경이 다변화된 사회에서 오히려 더 각광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소비한다. 거기엔 이야기의 생산주체도, 소비주체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존의 이야기 생산자가 가지고 있던 권력이나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던 아우라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영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야기 환경은 점점 확장되어가고 있다. 제한적인 형식의 이야기 생산자였던 작가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 생산자 전반을 지칭하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의 필요성은 오히려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 역시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서도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상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 역시 유의미하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제기되었던 호모 나랜스의 개념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 의미가 확장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SF가 다시 호출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 대한 이해에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것으로 인해 추동 된 사회의 변화의 맥락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문만 무성한 것 같고, 단어의 정의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이슈화 되었던 것은 단순히 국가에서 정책적인 관심을 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의 시대 변화 폭이 이전까지 우리가 목도해 왔던 것과는 다른 맥락을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예측이 난해한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들을 산업혁명 이후로 계속해서 이야기화 해왔던 SF의 이야기 가치는 21세기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과는 달리 변혁의 궤도에 동승해 있는 한국에게 새로운 가치들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에서 우리와 그 주변을 이해하는데 회자될 수 있는 SF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열거되는 작품과 작가들의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은 김창규라고 할 수 있다. SF 팬덤에서는 익숙하겠지만 그 영역 밖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는 그는 1990년대 초반 PC통신 시절부터 작품 활동을 해 왔다. 그러다가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에 중편소설 「별상」이 당선되어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고,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이버펑크(cyberpunk)의 대표작인 윌리엄 깁슨(William F. Gibson)의 『뉴로맨서(Neuromancer)』의 번역을 하는 등 번역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하게 해 온 그의 작품들이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부분은 무엇보다 다양한 소재에 과감하게 접근해 꾸준히 창작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단순히 장르문법에 대한 구현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꾸준하고 다양한 시도들이 돋보인다. 2014년부터 재정된 ‘SF 어워드’에서 2017년까지 매 해 단편부문 수상(대상 3회, 우수상 1회)을 해오고 있는 것은 그의 이러한 가치들이 부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SF가 난해한 과학기술의 문제를 다루는 장르라는 편견의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이 하드 SF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독자로서의 이야기 진입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은 그가 과학기술적인 소재들을 충분히 내면화 한 상태에서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구조보다는 이야기 자체를 축조하는데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image.jpg

 

 

상상의 세계와 거짓말

 

김창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하기의 능숙함은 첫 번째 소설집 『우리가 추방된 세계』(2016)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하드 SF 작가, 혹은 사이버펑크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다. 실제 그는 정확한 과학기술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축조하는 하드 SF와 변화의 폭이 크고 인접학문들의 융합까지 견지했을 때 활용 가능한 사이버펑크를 능숙하게 구현하는 작가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재 활용만으로 김창규의 작품들을 규정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지점들이 있다. 그가 어떤 소재를 활용했는가나 장르적 문법을 어떻게 유용했는가가 아니라 소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 가로 접근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가치들이 좀 더 많기 때문이다.

 

모든 소설이 그렇듯, SF소설 역시 허구다. 그러기 때문에 오역이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생겨난 왜곡된 오해들을 차치하면 공상(空想)이라는 단어 자체가 SF와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상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것들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SF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멋진 SF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그럴듯하게 잘 짜여진 허구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SF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거짓말이라고 정의한 김창규의 말은 그가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자세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들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김창규가 추구하는 거짓말들은 그가 그리고 있는 소설의 세계관들로 구체화된다. 그것은 인류를 관리하는 존재에 의해 현생인류가 종언되는 세상이기도 하고(「우리가 추방된 세계」), 분자 수준에서 인류를 새롭게 복원하는 작업이 일어나는 세계이기도 하며(「순수한 배드민턴 클럽」), 천재지변으로 인해 현실의 모든 것들이 무너진 세상(「서울 대지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의 세계는 현실의 모습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소설 속 세계들은 현실이 아닌 것 같지만, 현실과 닮아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외삽(extrapolation)을 구현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제시한다. 그리고 외삽은 SF의 이야기 가치를 논할 때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이다.

 

또한 김창규의 거짓말들은 허구의 존재들을 구현하면서 보강된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개체들은 인공지능과 완벽하게 결합한 사이버네틱스 개선형 인간(「백중」)이기도 하고, 나노재활술에 의해 새로운 신체를 얻게 된 이들(「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이기도 하며, 기억까지도 편집할 수 있는 인류들이 살아가는 세상(「업데이트」)이기도하다. 이야기의 주체가 현실인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종족과 다양한 요소들로 복잡하게 구성된 개체들이 아울러 포함된다. 이렇게 포스트 휴먼(Post-Human)의 영역까지 넓어진 이야기의 주체들은 거짓말을 멋들어지게 만들어주는데 공헌한다. 동시에 그가 펼쳐놓은, 과학적 상상력으로 축조된 멋들어진 거짓말이 존재와 환경, 시대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한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관계 맺는 대상이 전혀 다른 무언가라고 할지라도 근본적인 가치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의 작품에선 있고, 그것이 김창규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가치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선 현생인류의 종언이 예고된 세상에서도 “제대로 된 어른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우리가 추방된 세계」, 69쪽.)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다움, 어른다움, 선한 것,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반복된다. 절망적이고 비인도적인 세계의 끝에서도 결국 가 닿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이거나 가치 있다고 여겨야 할 것들이다. 그 가치는 대부분 평등과 자유,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같은 자못 평범하고 일반적이게 보이는 메시지들로 귀결된다. “그렇게 대책 없이 많은 시간이 흐르고, 결국 가장 아끼던 존재를 잃은 날이 되어서야 그것(인간성)들은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었다.”(「서울대지진」, 254쪽.)고 말하는 것은 보면 그러한 평범해 보이는 가치들이 결국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작가의 의지 같은 것들이 깃들어 있다. 김창규는 이러한 멋들어진 거짓말을 펼쳐놓고 그 안에서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이게 보이는 가치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가장 동떨어져 보이는 모든 거짓말 위에서 강조되는 그러한 가치들은 역설적으로 더 큰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거짓말은 표면적인 것들을 감추는 방법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것들을 감추었다고 해서 본질적인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환상을 통해 보여주는 세계는 감추어진 것,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드러낸다. 그러기 때문에 김창규의 거짓말과 상상의 세계는 결국 지금 우리가 가리고 있었던, 잊혀져버린 가치들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일

 

다르코 수빈(Darko Suvin)은 SF가 장르로서 정의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낯설게 하기(estrangement)를 제시한다. SF의 낯설게 하기는 인지작용과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 내에서 드러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작가의 실증적 경험에 대한 상상적 대안이 제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SF의 세계는 허구의 영역으로 팽창되고, 이야기 속의 존재들은 포스트 휴먼의 영역과 그 바깥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렇게 제시된 세계 속에서는 이전의 가치들은 흩어지고 새로운 의미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김창규의 소설 속에서는 정상인이라는 단어들이 나오지만 그 단어에는 더 이상 어떤 의미나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화하고 차별화를 위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통용되던 언표들이 의미를 잃었을 때 그것을 공허한 명제들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언표와 그것들을 통해 구축되었던 사고들까지도 폐기된다. 그렇게 이제까지 당연하게 규정해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반복 한다. 이는 SF가 주제를 통해 제시하는 진보적 대안(progressive alternative) 드러내는 것이다.

 

김창규의 이야기하기는 기존의 세계들을 끊임없이 낯설게 만들고 재배치하기 한다. 이를 위해 사이버펑크적 요소와 그에 파생된 포스트휴먼적인 요소들이 배치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M. 키스 부커(M. Keith Booker)와 앤 마리 토마스(Anne-Marie Thomas)에 의하면 사이버펑크는 결국 확장된 존재들을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추방된 세계는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확장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며(「우리가 추방된 세계」), 인간을 모사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인공지능과 함께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백중」)한다.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언어도 심을 수도 없었으므로 그 뒤로 언제까지고 업데이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치들을 다시 상기하게 한다.(「업데이트」, 106쪽)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짐과 동시에 그것의 가치를 확장하고 변혁하는 사고실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고실험들은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치들에 대해 발견할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가 우리 주변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이야기는 주변의 다양한 경우들을 필연적으로 포괄해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과 SNS의 등장 이후 기술의 발달로 이른바 초연결 사회라 일컬어지는 구조 속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가능성들이 생성되고, 그에 따라 기존의 가치들이 소멸되거나 재정의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주변의 모든 가능성들에 대해 긍정적인 인지를 할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인지체계를 변화시키고 심리적인 ‘헤비터블 존(habotable zone)’을 확장시킬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역들이 현실화되고, 그것이 가속화 되면서 이러한 현상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은 이미 근접해 있다. 머리를 이식하는 수술이 시도되고, 크리스퍼 등의 유전자 가위 등을 통해 유전자 단위의 편집 가능성이 확장되고 있다.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다이아몬드 시대(The Diamond Age)』(1996)나 김창규가 소설(「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에서 언급했던 나노기술에 의한 헬스케어 시스템도 그 발달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에서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 결과도출의 D-Day로 정한 2040년까지는 이제 20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속도감에 휩쓸리고 있는 시대에,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인식 역시 계속 변화할 것이다. 새로운 가치들과, 온존해야 할 것들, 그리고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그럴 때 이야기는 여전히 유의미한 방법이다. 지금의 우리들의 인식과 존재가 추방되게 될 세상이 온다고 할 때, 그래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 결국엔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 탐닉은 여전히 정당하다. 그것이 이 불안정한 세상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둘러싼 것들을 이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김창규의 작품들에는 그러한 필요에 응답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는 2017년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대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에서 인공지능이 이야기 생산자로서의 인간의 위치를 소거하기 전까지는 절대 이야기하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의 스토리텔러로서의 행보에 계속해서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텍스트릿 필진 이지용 의 글입니다.

포스텍웹진 <크로스로드> 2018.2.(vol.149) SF Review에 실린 글입니다. "결국엔 이야기가 남게 될 것이다 - 김창규의 『우리가 추방된 세계』가 보여준 한국 SF의 이야기 가치"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287&s_para4=0027&Page=1&Board=n999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