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피스와 게임 시스템의 중심에서 - 한국 게임판타지 소설의 역사

 

게임판타지라는 이질적 존재

 

한국에서 판타지 소설은 25년의 세월 동안 독자적인 역사를 쌓았다. 이러한 한국 판타지 소설의 역사를 최초로 정리한 사람은 이도경 작가로 2005년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국 판타지 연대기」라는 글을 통해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장르를 구분하였다. 이러한 세대 구분은 0세대가 추가되거나 웹소설로서 4세대가 추가되는 등 다양하게 변화하며 학계에서도 널리 통용되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이러한 세대의 구분은 한 장르의 흥망성쇠 기록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것은 새로운 장르가 태어난 시기를 기록한 것이다. 2세대로 명명된 퓨전 판타지나 오늘 논하고자 하는 제3기의 게임판타지 역시 2018년 현재까지 계속되어 웹소설 시장을 지배하는 핵심 장르로 공고히 자리 잡았다.

 

게임판타지 소설이란 근미래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군이다. 소설 서사의 핵심은 가상현실 게임기기를 이용해 가상세계의 MMORPG를 플레이하는 것으로 플레이어가 플레이한 기록을 서사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르가 탄생하게 된 것은 몇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 MMORPG게임의 원체험이 보편화 된 것이며, 두 번째는 TV를 통해 ‘보는 게임’이 익숙해지면서 상품화된 대상으로서의 게임이 보편화 된 것이고, 세 번째는 만화책 『유레카』의 유행이다.1) 

 

특정한 장르군으로서 게임판타지가 보편화된 것은 2003년 무렵이다. 이후 2018년까지 꾸준히 작품군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르문학 담론장에서 게임판타지만의 히스토리컬 작업에 주목한 사람은 미미하였다. 이것은 비단 게임판타지 소설뿐만 아니라 퓨전 판타지부터 다양한 하위 범주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연구자들이 이러한 작업을 외면하거나, 난항을 겪는 까닭은 단순하다.

 

장르의 요소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별 서사들, 또는 일군의 작품군에 대한 독해는 해내었으나 해당 작품을 만들어낸 전후의 인과관계, 그리고 창작적 리터러시에 무지했다. 게임판타지를 단순히 유행의 한 경향, 또는 상업주의의 요구로 바라보던 시선은 결국 게임판타지를 ‘게임’이라는 시스템에 접속해서 모험을 떠나는 것만 강조해서 살펴볼 뿐이니까.

 

해당 시선은 게임학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있다. 대부분의 기존 논의들은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으로 이어진 산업시장의 발달로 인한 콘텐츠간의 연결점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퓨전 판타지 소설이 2차 세계Secondary World로 넘어가서 모험을 펼치는 것이었다면, 게임판타지 소설은 가상현실 접속기기인 HMD(Head Mounted Display) 기계를 이용해 게임 공간을 모험하는 것임을 밝혀내는 데만 주력했다. 이것은 게임이라는 현상 자체가 낯설고 주목의 대상이었던 시대적 한계일지도 모른다.2)

 

이전의 퓨전 판타지 소설과 배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거라곤 ‘게임’이라는 가상 공간, SF적으로 펼쳐지는 근미래의 상상력에 그쳤고, 이러한 결과는 최초의 장르로서의 게임판타지 모델을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개정판 제목 팔란티어)이나 『탐그루』에서 짚는 것까진 도달하였어도 그 이후의 게임판타지와 어색한 연결고리를 두고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규명해내지 못하고 작품성, 또는 유행군 같은 애매한 이야기로 그치고 말았다.

 

더군다나 최근 출시되는 헌터물이나 레이드물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되는 ‘게임 시스템’을 게임 공간이 설명할 근거도 부족하여 해당 장르군을 다시금 새롭게 태어난 배타적 장르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작품들을 게임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시장의 인식과는 별개의 연구자 자의적 평가만 가득해지니, 연구 자체가 무용해지는 과정까지 도달해버리고 만다.

 

이제 게임판타지라는 장르의 단독 역사를 살펴보자. 우선 이러한 장르가 왜 형성되었는지, 어떤 기능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요소로 구성되었는지부터 시작하자. 이것은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 한국 장르 판타지 작품들에게서 공통으로 작용하는 욕망의 매커니즘과 서사적 특질, 그리고 게임판타지만의 특성까지 아울러 살펴볼 수 있으리라.

 

 

게임판타지 장르군의 탄생

 

판타지 소설 중 게임 플레이를 배경으로 한 것은 다수의 논자들이 언급하듯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99)과 『탐그루』(98)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게임 공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며 해당 시기의 다른 소설과 큰 배타성을 찾기도 힘들다. 그들은 2차 세계를 역사화3)하려고 했던 방식과 차별점을 갖지 않는다. 99년도엔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다룬 소설이 출간되었으며, 게임잡지에서는 울티마 온라인의 플레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기가 연재되기도 하였다. 많은 연구자가 한국 판타지 소설의 기원이 D&D를 위시한 TRPG를 짚듯, 다른 소설에서도 게임적 요소는 만연하였다.

 

이러한 초창기 소설과 우리가 하위 장르로서 언급하는 ‘게임판타지 소설’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주목의 대상에서 빗겨나 있던 ‘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 판타지 소설은 현실세계의 위험을 2차 세계라는 공간적 은유로 표현하고, 그 공간을 모험으로 돌파하려는 서사의 연속이었다. 게임판타지는 이러한 모험의 공간이 작가에 의해 창작된 2차 세계가 아니다. 디지털로 조형된 가상의 세계다. 이 세계는 온라인-오프라인의 이분법이며, 언제든지 현실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병렬되어 함께 움직이는 서사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 공간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기존의 연구들은 대부분 『대장장이 지그』, 『달빛조각사』, 『아크』의 작품을 예시로 들며 현실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게임 공간으로 나아가 욕망을 성취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현실과 가상공간은 서로 대치되는 공간으로서, 하나의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한 세계의 죽음(온라인-오프라인)이 전제되는, 그렇기에 배타적인 단절공간으로 이분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게임 플레이’라는 것이 현실적 어려움, 욕망을 해결할 수 있도록 게임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그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회경제적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독해의 기준으로 전제된 ‘게임을 잘하면 경제적 성취, 이성과의 만남, 사회적 성공이 가능하다’라는 명제는 왜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는가. 결국, 게임판타지 소설에서 근미래로 설정된 현실 세계는 단순히 가상현실 기술이 구현될 정도의 막연한 미래시기의 구현뿐만 아니라 가상현실 게임이 ‘게임을 잘하는 것’이 현실의 문제까지 해결해줄 수 있도록 인식이 보편화된 시뮬라크르 세계의 조형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주인공은 이중의 가상 세계를 유영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접속하고 해제하며 세계를 오가는데, 그들이 게임 세계를 마치 현실 세계처럼 몰두하는 것은 가상현실의 현실적 구현 때문이 아니라 두 세계 모두가 가상적 공간이기 때문에 동화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안정된 세계를 균열 내며 서사를 만드는 건 ‘게임에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MMORPG의 보편성을 뛰어넘어 ‘남들과 다른 플레이를 하는 것’이며, 이것은 과거 판타지나 무협에서 얻는 기연, 비급, 고대의 유물과 같은 방식으로 재현된다. 이른바 히든 피스Hidden Piece의 탄생이다.

 

 

 

히든 피스Hidden Piece라는 균열

 

히든 피스라는 고유명이 처음 등장한 것은 손희준 스토리, 김윤경 작화의 만화책 『유레카』에서부터였다. 2000년 1권이 출간된 이 만화책은 게임판타지 소설들이 참고한 기초적 문법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데, 헤드기어를 통한 가상현실로 접속, MMORPG의 플레이, 죽어버린 천재 개발자, 게임 속 죽음과 고통이 현실과 연결될 수 있는 사건과 음모 등이 그것인데, 그 중에서 작품의 특이성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저 ‘히든 피스’의 존재이다.

 

히든 피스는 만화책 『유레카』의 무대가 되는 로스트 사가의 무대를 만든 한 명의 천재 개발자의 소산으로 나오는 설정인데, 단순히 AI와 프로그래밍을 뛰어넘어 게임의 개발자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치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만화책 5권의 내용으로, 두 가지 형태로 구현된다. 첫 번째는 모든 공격을 방어하는 방어막을 뚫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방어막을 뚫기 위해 마법 반사 주술을 자신에게 걸고, 자신에게 공격마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꼼수는 JRPG에서 종종 나오던 클리셰로, 시스템을 이용한 팁에 가까웠다. 두 번째는 플레이어가 NPC를 위해 자기희생 주문을 사용하자 자신을 위해 희생한 플레이어의 시체를 보고 ‘시스템의 한계치’보다 더욱 강력한 숨겨진 힘을 발휘하는 NPC의 모습이다.

 

게임판타지 소설의 작가들이 주목했던 것은 두 번째 형태였다. 게임판타지는 가상 공간의 삶이니만큼 서사 속에서 죽음을 다루는 것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 게임 속에서 죽음은 리스타트 한 번으로 회복되는 일시적 현상으로, 죽음은 그 캐릭터가 서사에서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도태되는 저항에 불과했다. 게임판타지의 창작자들은 이러한 병리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세상 자체에 ‘균열’을 주어야 했다.

 

서버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직업. 서버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테이밍 몬스터, 서버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퀘스트. 이러한 유일성은 유저들에게 공평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기존 MMORPG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버그에 가까웠다. 소설은 그러한 불공평함을 용인했고, 버그와 기발한 플레이를 오가는 주인공의 독특성은 게임판타지 소설이 게임 플레이 그 자체에 대한 메타적 소설로 변화게 만든다.

 

결국 게임판타지 소설이란 극악한 확률로 떨어지는 아이템과 단순 노가다 반복의 레벨업을 거부하며 습득하고 레벨업하는 쾌감을 강조하는, 게임을 모사하여 게임적 체험을 강조하지만 게임을 균열 내며 대리만족하는 것을 중시하는 이중적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히든 피스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 대표적 게임판타지 소설인 『달빛 조각사』다. 현실적인 직업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유니크한 퀘스트를 받아 주인공만 선택할 수 있는 히든 피스 직업은 게임의 묘사와 함께 탈脫게임의 요소가 함께 들어가 있다. 그 전후의 게임 판타지 소설이 끊임없이 ‘독특한 직업’이나 ‘독특한 플레이 방식’에 몰두하는 것도 이같은 까닭이다.

 

 

게임 시스템이라는 균열

 

게임판타지에서 이어진 역사는 최근 웹소설에선 세 가지 형태로 변화했다. 기존 게임 판타지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며 ‘히든 피스’라는 장르 관습을 통해 프로그래밍 된 게임 공간이 아니라 마치 퓨전 판타지의 서사공간처럼 도구적인 사용에 불과한, 외피만 게임 판타지인 퓨전 판타지가 있고 또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처럼 보다 순수한 게임 플레이와 버그, 패치 같은 게임성 그 자체에 주목한 소설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에서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 소설이 있다.

 

게임 시스템은 장르간 이종교배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관습으로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물부터 중세 판타지 시장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게임 시스템은 주인공의 특이성을 설명해주는 동시에 서사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수치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러한 역할은 주인공이 배경으로 한 세상 그 자체를 균열내는 ‘히든 피스’의 역할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게임 판타지 소설의 기능이 그대로 유지, 계승된 것이다. 이를테면 요리를 하는 웹소설 『요리의 신』의 주인공 캐릭터 ‘조민준’이 이러한 게임 시스템을 갖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현실 세계의 구조와 편견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처럼.

 

러프하게나마 게임판타지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았다. 앞서 주장했듯 게임판타지는 단순히 게임 체험을 통해 가상현실 체험을 공유하는 대리만족적 대상이 아니다. 해당 장르는 이미 노동유희화된 게임 체험을 균열 내는 비평적 시도이며 동시에 세계 자체를 게임화하여 균열을 확인하려는 환상적 모방이다. 게임판타지 소설은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고, 우리는 더욱 많은 균열을 게임판타지 소설을 통해서 목격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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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자는 리니지2의 출시가 2003년 10월이었던 점을 들어 게임판타지의 유행을 리니지2에서 찾는 경우도 있으나 당시 판타지 소설이 종이책으로 출간때까지 1달에서 2달 온라인 연재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이러한 연결짓기는 무리한 지적임을 알 수 있다.

 

2) 게임소설과 관련된 논문은 다음과 같다. 김영학, 「게임소설 양상 연구」, 한남어문학, 2017. 고훈, 「대중소설의 퓨전화」, 대중서사연구, 2008. 「게임소설과 영웅소설의 서사구조 연구」, 연민학지, 2010. 김후인, 이민희, 한혜원, 「한국 가상현실 게임소설의 스토리텔링」,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8, 2018. 본문에서 밝혔듯이 게임판타지 소설은 판타지소설의 논의나 사이버 소설 담론, 인터넷 소설 담론과 장르 소설 담론에서 잠깐 언급되는 방식에 불과했다.

 

3) 흔히 1세대 판타지 소설 작가군으로 불리는 93~00년 시기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 세계가 마치 실제의 사실인 것처럼 끊임없이 가상의 역사를 만들며 개연성을 증축하였다. 이러한 소설 창작은 연대기의 형태 또는 설정집, 세계에 대해 메타적으로 발언하는 화자 등으로 현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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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473호(2018)에 기고하였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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