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의 정의와 연구 범위에 대해

텍스트릿 2018.04.23 11:40 조회 수 : 395

무협의 정의와 연구 범위에 대해

 

 

 무협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는 비평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한 장르의 ‘정의’가 연구의 범위를 전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무협의 정의는 무협 연구의 범위를 묻는 일과 직결된다.

 

 익히 알려졌듯, 중국의 무협소설 정의는 무협소설(武俠小說)이라는 장르명칭 자체에 입각한다. 『중국무협소설사를 쓴 루어리쥔은 무협소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나는 협의이고, 다른 하나는 무공이다. 하는 말은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이고, 쓰는 것은 협을 행하는 일이다. 두 일은 서로 보완하여 서로 완성한다.” 요컨대 무(武)와 협(俠)의 개념이 무협소설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이런 주장은 미국의 무협 연구에서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 듯하다. 워싱턴 대학의 존 크리스토퍼 햄(John Christopher Hamm)은 그의 책 페이퍼 소드멘(Paper Swordsmen: Jin Yong And the Modern Chinese Martial Arts Novel, 2006)에서 위와 비슷한 논의를 받아들인다. 그는 홍콩 소설가 니 쿠앙의 논의를 차용해 다음과 같이 무협소설을 정의한다. “무협소설의 특징은 무, 협, 그리고 소설이다.” 요컨대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무와 협을 다룬 것이 무협소설이라는 의미이다.

 

 허나 일견 생각해보기에도 이러한 정의는 문제가 있다. 정말로 무와 협만 다룬다면 모두 무협소설인가? 그 누구도 황석영의 장길산 같은 역사소설이 무협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삼국지나 봉신연의도 무협지와 비슷하거나 가깝다고 여겨질지언정, 무협지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위의 세 소설 모두 무와 협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다루고 있지 않은가? 기존에 중국과 미국 학계에서 통용된 무협의 정의는 다시 생각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무협소설가 좌백이 내놓은 무협의 정의는 주목해볼만하다. 그는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가이드 –무협-에서 다음과 같이 무협을 정의 내린다. ‘무협이란 중원에서 펼쳐지는 무와 협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네 가지이다. 무, 협, 중원, 과장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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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무(武)와 협(俠)은 무협의 소재이자 정신이다. 보통 중국의 연구는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중국의 정신 중 하나로 협(俠)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협은 보통 약자를 돕는 마음으로 정의되는데, 사실 많은 수의 무협소설이 협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1950년대 대만에서는 악인이 나오는 무협소설이 유행했고, 1980년대에는 와룡강의 포르노 무협이 널리 읽혔다. 이 두 소설에 살육과 색정이 있을지언정 협의 정신은 없음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소설들이 무협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협은 그저 무협소설이 지향하는, 혹은 지향했었던 정신에 불과하다. 오히려 무협소설에서는 무력 그 자체가 협의 정신보다 더 중요히 여겨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좌백의 무협소설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두 키워드는 ‘중원’과 ‘과장된 이야기’라는 개념이 기존 정의에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좌백은 무협소설의 핵심이 중원이라는 ‘배경’임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무협의 배경은 “중국을 모델로 삼는 세계지만 실제의 중국과는 좀 다른” 세계이다. 김용과 같은 몇몇 작가들은 역사무협을 씀으로써 실제 중국 안에 무협의 배경을 녹여내지만, 사실 대다수의 작가들은 실제 중국 역사와는 상관없는 가상의 무협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간 자체가 무협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좌백의 입장에서 ‘과장’은 무협소설 자체의 클리셰(cliche)들을 말한다. 무협 세계에서는 다른 세계관에서 납득될 수 없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납득된다. 무공을 통해 허공답보로 하늘을 날고 강력한 초식으로 바위를 부순다. 판타지는 요정이나 정령을 불러 빛을 밝힐지 모르지만, 무협에서는 기를 태워 삼매진화로 불을 피워 올린다. 그런 세계 자체의 클리셰 차이야 말로 무협을 무협으로서 규정해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상을 보면 좌백은 기존의 무협 정의에서 ‘배경’과 ‘클리셰’에 집중하여 무협의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필자 또한 이 정의에 십분 공감하며, 전대의 정의에 비해 상당한 발전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렇다고 좌백의 정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크게 셋이다.

 

첫째, ‘과장된 이야기’는 클리셰를 표현하기에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좌백의 해설을 보아야지만 좌백이 ‘과장된 이야기’라는 단어를 통해 클리셰를 표현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무협의 배경은 중원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가끔 SF 무협이나, 무협 라이트노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는 무협의 배경이 우주의 광활한 공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만화책에 나올 듯한 학원도시들일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무림수사대나 브레이커 같은 만화는 중원이 아니라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셋째, 좌백의 정의는 무협이 전 시대에 걸쳐 동일한 정의를 가졌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무협이라는 단어는 근대 이전에 장르 명칭으로 쓰인 적이 없다. 또한 근대의 무협이라는 단어가 현대의 무협과 동일하다는 보장 또한 없다. 고로 무협의 정의에는 역사적으로 다층적인 의미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 점에서, 필자는 ‘현대’ 무협의 경우 다음과 같은 정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무협은 무림(武林)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현대 한국에 있어, 무협은 세계 그 자체와 그 안의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협의 시스템-세계관은 무림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어야 마땅하다.

 

 먼저, 우리는 무협의 세계를 강호(江湖)나 중원(中原)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일단, 강호(江湖)라는 말은 무협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선조 맹사성의 강호사시가에서 볼 수 있듯, 강호는 예로부터 자연을 의미하는 용어였다. 그렇다고 중원(中原)을 사용할 수도 없다. 중원은 상상된 고대의 중국 대륙을 의미하는데, 무협의 세계는 중국 대륙 밖에서 존재할 수도 있다. 특히 일련의 『무림수사대, 『브레이커, 『칼 든 자들의 도시 등 다양한 현대 무협 작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물론 무림이라는 세계를 ‘과장된 이야기’로 통칭할 수도 없다. 사실, 좌백이 예로 든 기와 무술의 허구적 체계는 무협 세계의 클리셰보다는 시스템에 가깝다. 게다가 영웅서사로 보이는 무협소설의 플롯 클리셰는 서부극이나 기사담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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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무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 무림은 하나의 세계로, 시스템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시스템으로서의 무림은 기와 무술의 체계를, 세계관으로서의 무림은 문파들로 이루어진 동양풍 세계를 의미한다. 이 둘이야 말로 한 소설이 무협인지 아닌지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칼 든 자들의 도시 같은 현대 무협을 보면 이 조건들이 어떻게 반영되는 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칼 든 자들의 도시는 중원이 아닌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며, 이야기 구조도 전통적인 무협과는 거리가 있다. 허나 기와 무술의 시스템을 사용하고, 문파와 사제관계가 남아 있는 세계관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해당 작품을 무협소설이라고 인식한다. 이런 공식은 『브레이커나 『무림수사대, 같은 현대 무협 만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무협에서 둘 중 하나만 존재해도 무협이라 인식하는가? 서호봉 감독의 『무사: 4대 문파와의 혈투(원제: 倭寇的踪跡, 왜구의 종적)』(2011)와 같은 리얼리즘 무협 영화들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준다. 해당 영화는 극도로 ‘리얼’한 무술 장면들을 연출했다. 허공을 붕 뜨는 와이어 액션도 없고, 한 방에 사람들이 나동그라지는 과장도 없다. 요컨대 내공을 사용한 무협의 시스템 자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무사』는 그럼에도 무협이라고 인정받는다. 이는 무협소설의 일반적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무술 문파들이 있는 무협의 세계관을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스템과 세계관 중에서는 세계관이 조금 더 무협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다.

 

 이는 『스타워즈』를 통해서도 증명할 수 있다. 『스타워즈』에서 주인공은 포스(force)를 무협소설의 기처럼 다룬다. 어찌 보면 무협의 시스템 자체를 따온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SF의 용어로 이루어져 있고, 배경이 전적으로 SF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타워즈』에서 무협의 냄새를 느낄 지언정, 무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차크라를 쓰는 『나루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상을 통해 무협은 무림이라는 세계의 이야기고, 이 세계를 이루는 시스템과 세계관 중에서는 세계관이 비교적 더 중요함을 논했다.

 

 헌데, 현대가 아닌 무협은 어떤 원칙이 소급적용 되었는가? 현재 합의된 무림이라는 시스템-세계관은 최소한 홍콩-대만 신무협 이후, 어쩌면 한국 신무협 이후에야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고전 무협과 근대무협(중국구무협)에는 이 정의를 소급적용할 수 없다. 특히 고전 무협의 경우 현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연구했기 때문에, 현대의 무협 정의가 어떤 기준을 통해 소급 적용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 점에서 필자가 추측하기로, 고전 무협은 현재의 무림을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장르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좌백의 지적과 비슷하게 “무와 협에 대해 다룬 중국의 중간 정도로 과장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첫째, 고전 무협 소설은 소설이어야 한다. 중국의 문학 전통 상 한나라 대의 『협객열전』, 『자객열전』과 당나라 때의 전기소설 일부, 그리고 『수호전』과 같은 글들은 모두 중국 고전문학 체계에서 소설(小說)로 분류되어 있다. 사실, 『사기』의 경우 소설인지 아닌지 당연히 이론이 있고, 소설로 보지 않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허나 무협 소설사에서는 무협의 역사에서 중요한 텍스트로 취급하여 소설이 아니더라도 그 시초로써 무협소설사에 집어넣고는 한다.

 

둘째, 무와 협에 대해 다뤄야 한다. 소재에 무술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그 정신이 협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홍루몽』, 『금병매』 같은 소설이 빠졌다. 두 소설에 협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무술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협의 내용의 경우, 정말 협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협의 정신이 있다고 주장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과장의 정도가 중간 이어야 한다. 무협소설가에서 『삼국지』나 『초한지』 같이 비교적 과장이 적은 연의소설(演義小說)과 『봉신연의』 같이 비교적 과장이 많은 신마소설(神魔小說)은 무협에서 제외하고 있다. 같은 동양풍 시대물이라도, 연의소설은 역사소설에 맞닿아 있고, 신마소설은 신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선협소설(仙俠小說)과 묶여 있다. 역사적이지 않으면서도, 신선이 나올만치 과장되지 않은 소설이 무협소설에 들어가는 것이다.

 

넷째, 무협은 중국의 것이기 때문에 중국, 특히 한족의 문헌이어야 한다. 고전 시기에 아무리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했어도 베트남이나 한국, 일본의 고전 문헌은 무협소설사의 정통에 들어가지 못한다.

 

요컨대 무협은 무림이라는 상상된 고전 세계에 기대 무협소설사라는 실체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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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서원득 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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