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돈, ‘사치’의 이중주 -로맨스에 등장하는 ‘신데렐라 플롯’의 변화에 대하여

 

 

 

 

 

 ‘로맨스’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두 가지나 있다. 물론 첫째는 사랑이요, 둘째는 돈이다. 여성들이 주로 즐겨 읽는 장르, 즉 ‘여성장르’라 할 수 있는 로맨스에서 가장 고전적인 플롯을 꼽으라면 단연 ‘신데렐라 플롯’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신데렐라 플롯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로맨스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로맨스의 ‘알짜’다.

 

그리하여 로맨스라는 장르 자체를, 사랑의 힘으로 온갖 권력과 재력을 갖춘 남자를 쟁취하는 신분상승 드라마로 읽는 사람이 많다. 독자들은 신분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사랑의 힘뿐이라 믿는다. 신분이 낮은 여주인공은 신분이 높은 상대방을 ‘감히’ 넘보게 되면서 여러 가지 시련에 부딪치게 된다. 신데렐라 플롯에서 빠질 수 없는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보자.

 

 

 

 “한 여자가 카페에 앉아 있다. 반대편에 돈 많은 부잣집 중년 부인이 앉는다. 부인의 아들, 잘 생기고 능력 있고 돈 많은 남자는 가난해빠진 이 여자를 사랑한다. 아들 몰래 여자를 불러냈던 부인은 하얀색 돈 봉투를 내민다.”

 

 

 

 ‘돈 봉투’는 기본적으로 로맨스물이 계급이동의 서사임을 알려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부러 돈 봉투로 형상화되어 나타나지 않더라도, 주인공들은 상대방의 높은 지위 때문에 번민하고 온갖 고난을 겪는다.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 결말에서 주인공은 상대방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아내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낭만적인 사랑의 성공이요, 사회 권력의 쟁취다. 상대방이 재벌 아들이건, 귀족이건, 사업가이건 상관없다. 어쨌든 소설 속 그들만의 세계에서 으뜸일 테니까. 중요한건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해 지지하는 주인공이, 바로 그 남자 곁에 서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왜 꼭 신데렐라여야만 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로맨스의 한계가 나타난다. 여성의 신분상승은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으로만 이루어야 하는가? 왜 여성 본인이 주체적으로 신분을 쟁취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로맨스의 한계는 비단 신분상승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로맨스물의 독자들은 해피 엔딩을 보고 싶어 한다. 즉 소설 속 두 주인공의 사랑의 완성을 바라는데, 이는 곧 결혼과 출산으로 귀결된다. 로맨스는 왜 항상 사랑의 결실을 결혼과 출산이라는 제한적 결말로 표현하려 하는가?

 

 

 로맨스을 둘러싼 이 같은 논쟁들은 현재진행형이라 말할 수 있다. 로맨스가 여성장르인 만큼, 로맨스를 읽고 쓰고 비평하는 사람들 모두 ‘2018년의 여성 삶’과 대조하며 소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 2016년 강남역 사건부터 미투 운동까지, 여성운동의 물결이 한창 이 땅을 달궈놓고 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백래시(backlash)와 펜스룰(pence rule)이 눈앞에 대치하고 있는 상태다.

 

여성장르 중 하나인 로맨스는 여성의 진영 안에 있어야 할 텐데, 위에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항상 오인 받는다. 여주인공이 권력을 가진 남자 하나를 쟁취한 것에 만족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에 행복해하는 ‘닫힌 결말’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로맨스는 사실 여성 내부에 있는 적이 아닐까? 

 

 

 지금의 로맨스는 여전히 신데렐라 플롯과 닫힌 결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웹소설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저 보수적인 구조 역시 천천히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혹은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결핍충족의 서사, 로맨스

 

 

 사랑과 돈의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긴 했지만, 로맨스는 사실 두 남녀주인공의 결핍을 서로 보충해나가는 서사다. 신데렐라 플롯을 중심으로 설명하자면, 남성인물은 돈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되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가지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사랑하기를 갈망한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를 가졌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진 여성인물은, 유일하게 남성인물의 연약한 부분을 보살필 수 있고 그의 사랑을 받아낼 수 있는 인물이다.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서로 교환하며 각자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이 과정에는, 앞에서 말한 ‘돈 봉투’와 같이 교환과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등장한다.

 

미리 언급했던 것처럼 여성인물이 맞닥뜨리게 되는 장애물은 ‘돈 봉투’다. 남성인물의 경우는 ‘의심’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돈이냐, 사랑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동안, 남성인물은 여성인물이 ‘정말로 돈이 아닌 사랑 때문에 나를 선택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내용 전개가 신파적일수록, 그리고 비정한 성격의 남자주인공일수록 의심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혹은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그가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미 남성인물을 둘러싼 세계는 여성을 의심한다.

 

결말은 뻔하다. 돈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택한 ‘영민한’ 여성은 둘 다 모두 갖는 보상을 얻는다. 남자주인공의 ‘의심’은, 장애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알량하다. 되레 남성인물의 ‘의심’은 곧 여성인물이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시선’이라는 새로운 장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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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신데렐라 플롯’에서 나타나는 가치교환 과정>

 

 

 

 그러나 웹소설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로맨스소설 속에서 오랜 시간 군림해오던 저 구조가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단 형식적인 측면에서, 웹에 올라오는 소설은 종이책과 같이 볼륨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가 아닌, 편수 단위로 끊겨져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작가가 구상한 이야기 전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각 편수마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요소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독자의 ‘중도하차’ 한계선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고구마’라고 부르는, 서사 전개 중에서 답답한 구간이 지속되면 독자는 읽기를 멈추게 된다. 소설에서 고구마는 갈등을 유발하고 해결을 지연시키는 장애물들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니까 로맨스에서는 의심(사회적 시선)과 신분차이 등이 고구마의 요인이겠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저 장애물은 너무 상투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로맨스의 독자들은 이미 해피 엔딩의 결말을 예상하고 읽는다. 언젠가 저 장애물을 뛰어넘고 여주인공은 사랑을 쟁취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하러 저 갈등을 지속하는가. 그것도 몇 십 년 전부터 우려먹은 돈 문제를 가지고? 독자들의 바람은 분명하다. 그리고 작가는 그 바람을 쉽사리 외면할 수 없다. 소설 속 등장하는 우월한 남성인물은 독자들의 염원이 이입된 여주인공의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까지도 말이다. 고구마, 그러니까 두 남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약화된다.

 

 

 최근 드라마 제작에 들어간 <김비서가 왜 그럴까>(정경윤, 2013.04 첫 출간)와, 네이버 웹소설 <결혼은 운명이다>(이지연, 2013.12-2014.03 연재)의 경우를 보도록 하자.

 

두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재벌가의 자제들이고 여자 주인공은 그들의 비서다. 두 인물 간 신분격차의 문제는 소설 초반, 인물들의 전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깔끔하게 정리된다. 남주인공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성격이 까다롭다. 이들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여주인공이 유일하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구애해도 다른 주변 인물들은 놀라워하지 않는다. 도리어 여주인공이 그 구애를 마뜩찮아 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2018년 1월 연재를 시작한 네이버 웹소설 <반드시 해피엔딩>(플아다) 역시 신분격차의 갈등을 매우 가볍게 처리한다. 작품 초반(제 4화)에 이런 구절까지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보던 눈치와 핍박과 돈봉투 신공을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다졌던 연우는 예상보다 훨씬 유연하게 흘러간 결혼 준비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다. ‘돈 봉투’로 표상되는 신분차이라는 장애물 효과는 희박해졌다. 이는 남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의심’ 역시 옅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돈은 사랑을 얻으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니, 이제는 굳이 사랑을 통해서 얻을 필요도 없어졌다. 여주인공의 신분은 과거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다. 여전히 남주인공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거나 동등한 소설이 우세한 편이긴 하지만, ‘걸크러시’ 여주인공이 인기를 얻는 것처럼 이제 여주인공이든 남주인공이든 어느 쪽이 높은 계급에 속해 있는지 상관이 없어졌다.

 

이제 독자들은 신분상승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난한 수난사를 참고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여주인공은 높은 계급, 부유함, 신비한 능력을 소설 시작부터 미리 가지고 있거나 예전보다 더 빨리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사랑을 물을 때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계급이 서로 다양하게 엮이면서, 로맨스는 다양한 연애의 양상을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로맨스는 ‘신데렐라 플롯’에서 벗어나, 돈이 아닌 사랑의 문제에 집중적으로 골몰하게 되었다. 로맨스 속의 주인공들은 ‘알콩달콩한’ 소소한 갈등을 벌일 뿐, 신분의 문제에 심각해질 필요가 없다. 대신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받는 방식의 문제를 더 심도 있게 다루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겠다. 로맨스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만 높이고 여성에게 사랑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각, 세뇌시킨 장르문학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여성에게 사랑의 문제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 되레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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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 훅스는 일찍이 그의 저서 <사랑은 사치일까?>(2015년 번역출간)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여성의 일로 인식된 후부터 여자들은 사랑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사랑을 삶의 주제로 여기기 시작했다.”(111쪽)

 

 

 

사적 영역이 여성의 일로, 공적 영역이 남성의 일로 분류된 결과다. 문제는, 사회가 점차 사랑과 같은 정서적 영역을 평가절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와 ‘너’가 서로를 보살피며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한 쪽이 상대방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저평가로 일관한다면, 두 사람 간에 사랑이라는 것이 제대로 지탱이 될 리가 없다.

 

벨 훅스는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그런 때일수록 더 사랑해야 한다고,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로맨스를 읽고 있는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패배감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오히려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경계선’ 바깥의 이들을 바라보고 통탄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은 이미 충분히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차적으로 로맨스의 독자들은 다양한 페어의 커플들을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이상적인 관계를 꾸려 나가는지 확인한다.

 

웹소설이라는 매체적 특성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작품이 플랫폼에 연재될 경우, 소설 한 회마다 댓글을 달 수 있는 시스템 덕분에 독자들은 즉각적으로 인물들에 대해 피드백을 남길 수 있다. 독자들은 주인공들의 잘못된 사랑 방식에 대해 꾸짖기도 하고, 바람직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남기기도 한다.

 

댓글에 담긴 의견들은 작품에 대한 평가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사랑 앞에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의 생각을 전달한다. 예전처럼 ‘소설은 소설일 뿐’으로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다. 독자들의 이런 움직임은 다른 독자는 물론 작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로맨스는 사랑의 성취로 결말을 마무리한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사랑의 성취가 대부분 결혼이라는 점,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낭만적인 사랑의 연장을 에필로그와 외전의 형식으로 ‘꿈꾸듯’ 그려낸다는 것은 여전히 비현실적인 로맨스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다.

 

그러나 뭐, 어떤가. 2018년 지금, 한국의 현실을 다시 떠올려보자. 우리는 마음껏 사랑조차 할 수 없다. 사실 이 시대에 사랑을 한다는 건 사치라고 할 수 있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사치다. 지금의 우리가 사치라 부를 수 있는 것. 사랑과 돈을 아무런 걱정 없이 향유하는 것은 이제 상상으로만 맛볼 수 있다. 그 상상에서 우리는 박탈감만을 느껴야 할까?

 

소설 속 주인공에게 건네는 말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 건네는 말일 수 있다. 사랑이 눈앞에 있을 때 그것을 올바르게 이어나가기를! 소설에서만 만나던 로맨스가 내 눈앞에 펼쳐지는 날, 우리의 삶은 조금이나마 살만한 것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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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손진원 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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