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과거부터 현재까지 (1)

텍스트릿 2018.04.25 06:05 조회 수 : 1569

로맨스, 과거부터 현재까지(1)

 

1. 로맨스 소설이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로맨스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로맨스(romance)와 현재 이음동의어로 쓰이는 로망스(romance)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 로망스어로 쓰여 중세 동안 유행했던 ‘기사도 소설’을 가리켰다.

 

이 기사도 소설은 기사들이 모험하고 연애하는 이야기가 주인데.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의 주인공 <돈 키호테>는 이런 로망스를 너무 읽은 탓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자권의 소설(小說)이 본디 잡스러운 글을 말하듯, 로망스도 비슷하게 ‘의미 없거나 하찮은 글’을 말하는 단어였으며, 당대의 지식인들은 이런 잡설이 사람들에게 허황한 꿈을 꾸게 하거나 몽상하게 하는 것을 경계하며 비난했다.

 

그러나 소설이 현재 ‘작가가 써낸 가공의 창작물’을 가리키게 되었듯, 현재 로망(roman)은 소설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런 어원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로맨스’는 ‘중세 기사 모험 연애담’에 그 뿌리를 둔다고 말할 수 있다. 중세에 ‘로망스’를 읽고 환희와 두근거림을 느낀 것은 현대의 편견과 달리 성별 불문이었던 듯 하다.

 

현재 우리가 ‘로맨스’라고 이해하는 형태의 작품들을 그 이후의 역사에서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영문학에서 최초의 근대소설이 무엇이느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서간체 소설 <파멜라>에서 로맨스 소설의 뼈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오만과 편견>은 현재까지도 통용되는 로맨스 소설이고, 브론테 자매의 소설들도 많은 경우 로맨스 소설로 분류된다. 최근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읽었던 소설 중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또한, 19세기 남성 작가가 쓴 것 치고는 놀랍도록 현대의 할리퀸 소설 형태를 하고 있었으므로, 찾아보면 더 예시로 들 수 있는 작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서구의 경우 이런 소설들이 발전하여 현재의 로맨스 소설 시장을 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의 ‘로맨스’와 ‘로맨스 시장’에 영향을 미친 소설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예시로 든 소설들은 한국에서 로맨스보다는 ‘근대문학, 고전, 세계명작’으로 분류되며 한국의 로맨스 장르 시장을 열었다고 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로맨스 시장’에 영향을 미친 로맨스 소설은 무엇이 있을까? 

 

<춘향전> 역시 로맨스 소설의 형태를 가졌다고 볼 수 있고, 로맨스로 분류되기도 한다. 과거 높은 집안의 부인들은 패설이라고도 불린 소설을 빌려 읽거나 구연하게 하여 소일했다고 하며, 패설 중 ‘연정소설’이란 장르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조선 시대 후기부터 근대까지 여성들이 소비해 온 창작물은 다양하고, 그것은 소설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이 이야기는 소설로 한정하도록 하겠다.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한국의 여성들은 로맨스 소설을 읽어 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소설들 역시 현재 성립된 로맨스 장르의 계보에 등장하기는 어렵다.

 

 

2. ‘협의의 로맨스’.

 

이쯤 해서 한 번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로맨스는 현재 대중문화에서 제일 흥행하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로맨스가 서브플롯으로 들어가지 않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고 로맨스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역시 없다.

 

그렇지만 앞선 소설의 예시들, 특히 그 기원인 ‘중세 기사 모험 연애담’을 읽은 현대의 독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일반적인 대중매체의 청자라면 ‘현대의 로맨스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연애가 중심되어서 두 사람이 연애하는 이야기니까 로맨스가 맞지 않나?’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로맨스 소설의 독자는 이 '로망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나는 로맨스 소설의 독자가 ‘이것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라고 말할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오랜기간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신파극'은 TV 드라마는 물론 로맨스가 현재까지도 사용하는 문법이나 정서에서 유사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역시 로맨스 소설 독자에게 신파극을 보여주었을 때의 대답은 확실하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분명히 두 사람이 연애하는 이야기인데 왜 로맨스가 아니라고 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로맨스라는 장르를 ‘둘이 연애를 하는 장르’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할 수는 없고, 넓은 의미에서 로맨스는 그 뜻이 맞다.

 

그러나 장르는 기본적으로 규범 아래에서 성립하며,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로맨스’, 즉 장르로서의 로맨스는 단순히 둘이 연애를 하는 것만으로 성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틴에 로맨스 소설로 유명한 출판사, 파란미디어의 박대일 편집자가 로맨스 장르를 설명한 칼럼이 있다. (http://teen.munjang.or.kr/archives/2121). 이 글에서 장르로서의 로맨스에 대해 전미로맨스소설작가협회가 말하는 ‘로맨스 소설’에 대해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로맨스 소설에는 두 가지 기본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 또 감정적인 만족과 긍정적인 엔딩.

1. 중심이 되는 사랑 이야기 – 로맨스에서 주된 플롯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고뇌하며 '관계'를 완성시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소설의 갈등은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 역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남녀의 갈등이 주된 스토리를 이루는 한, 작가는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서브플롯을 차용할 수 있다.

2. 감정적인 만족과 긍정적인 엔딩 – 로맨스 소설은 독자가 '좋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끝이 난다. 로맨스 소설은 작가와 독자의 '권선징악 (선한 사람들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들은 벌을 받는다는 의식)'적 의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맨스에서 연인들은 위기를 겪고 서로 갈등에 빠지지만, 그들의 관계는 권선징악과 절대적인 사랑으로 보상 받는다.//

 

또한, 같은 글에서 2003년 한국 로맨스 소설 작가 협회 세미나에서 김지혜 작가가 한국 로맨스 장르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였음을 소개하였다.

 

//로맨스 소설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다.

첫째, 어떤 배경으로 어떤 소재를 가지고 쓰였든, 소설의 주된 초점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으며, 소설의 모든 요소는 사랑의 완성을 향해 치달린다.

둘째, 독자로서 여성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쓴 소설로, 여성 독자가 감정이입하기 용이하다. 그러므로 남성 작가들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셋째, 어떤 구성에 어떤 결말로 가든, 독자는 소설을 통해 감정적 성취감을 느낀다. 단, 소설 안에서의 성취는 매우 현실적인 가치(결혼, 가정)에 기반을 둔다.//

 

이와 같은 특징은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불문율은 아니며, 나 역시도 완전히 동의하지 않고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쪽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 특히 성공한 로맨스 소설은 위의 규범을 지킨 경우가 많으며 독자들 역시 이와 같은 규범을 요구므로, 우리는 2018년 현재 이런 것을 '로맨스 소설'이라고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 편의로, ‘두 사람이 연애하면 되는 로맨스’를 ‘광의의 로맨스’로 분류하고 있으며, 글틴에서 발췌한 정의에 부합하는 로맨스를 ‘협의의 로맨스’, 그러니까 ‘로맨스 소설’이나 ‘장르 로맨스’라고 부르고 있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당연히 ‘협의의 로맨스’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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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김휘빈 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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