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아집적이다.

진a 2018.04.29 11:42 조회 수 : 372

 

 

 

 이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보여지는 댓글 1순위는? 재밌다 이다. 

 도대체 재미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재밌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미천하여 재미가 무엇인지 말할 자격이 없다. 다만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면과 속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단적으로 말한다. 재미는 아집적이다. 아집적이라 함은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렸다는 말이다. 어떤 소설론에서는 맞춤법 문법 어구 순서 모두 틀리고 어그러져도 누군가에게는 그 소설이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환경에서 느끼고 경험하며 자라기 때문에 재미를 통일해서 말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이를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표현으로 정리하기도 한다.(2018년 봄호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심사평 중) 그 시대가 원하는 정신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글을 잘썼어도 그 시대에 걸맞는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외면할 것이고 잊힌 소설이 될 것이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는 1960년대에나 호평을 받았지 지금 시대에서는 다르게 평가받을 것이다. 죽음의 한 연구가 쓰레기같은 소설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는 다른 무언가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어떤 소설을 재미있다 없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내용이나 줄거리나 문장과 문장 간의 연결이나 등장인물들 등 소설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공감은 읽는 사람의 주관성을 전제로 한다. [내가 보기에] 공감할 수 있다 혹은 없다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감이란 무엇인가? 

공감은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다. 비록 사람은 제가 보고 싶은대로 보고 산다지만 1+1=3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그렇게 믿고 산다면 하는 수 없지만 그 누군가가 세상이 1+1=3임을 믿게 하기 위해선 세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과학계는 과학계만의 용어로 수학계는 수학계만의 용어로 사회과학계는 사회과학계의 용어로 이를 설득해나가고 또 반박당한다. 결국 객관성은 그 계 즉 그 집단에 달려있다. 어떤 이름 모를 별 외계인들은 1+1=-1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도 모른다.

 

 문학이나 소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미있다 없다는 폭력적이며 아집적인 단어다. 교묘히 읽는 자의 주관성을 가리고 자신의 기준이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양 포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리 재미없고 어설픈 소설이라도 그 소설을 재미있게 봐주는 독자 한 명이 있다면 그 소설은 재미없는 소설인가? 재미가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재미는 한 개인이 느낀 감정들이다. 공감처럼 객관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소설의 완성도 기준은 재미만이 되어서는 안된다. 재미만이 잣대가 된다면 문학은 인문학이기보다는 흥분제에 가까워진다.

 현대 인공지능이나 뇌과학 연구는 인간의 직관의 기계성에 대해 파고들고 있다. 휴리스틱이라 칭해지는 이 인간의 직관은 의외로 합리적이지 않다. 도식적인 본능과 왜곡이 가득한 것이다. 윤리학의 거두 피터 싱어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모든 직관적인 올바름이 윤리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낙태를 옹호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인간의 재미는 직관에 가깝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의심해야 할 속성이다.

 

 재미있다는 결국 그 작품을 읽는 집단이 갖는 속성 즉 공감에 의해 결정된다. 고로 그 집단을 위하여 쓰지 않았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고 해서 그 작품이 허섭쓰레기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집단이 공감하지 못할 뿐이다.

 문제는 그 집단이 자신의 주관성과 자기중심성을 깨닫지 못하고 아집을 무자비하게 행사할 때 벌어진다. 한 사이트에 군림하여 자신들과 맞지 않은 다른 작가들을 공격하고 무시하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가만이 전부라고 말하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지 않은 모든 글들을 그 사이트에서 밀어내려고만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작품들이 어떤 장소에 놓여있다고 해서 그 장소만을 위하여 탄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작품은 그저 어떤 장소에 던져져 있을 뿐이다. 장소가 작품의 위치를 선택할 권리는 없다. 무엇보다 항상 드러나지 않는 소수가 있다. 그 소수는 그 작품을 사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소수가 다수로 변화할 수도 있다. 잃어버린 10년 속에서 웅크려온 진보와 변화의 바람이 2018년에 불어오듯. 

 

 그러므로 여러분들- 감히 실력도 없고 오지랖만 넓은 진a라는 지질이가 말하건대

 재미에 속지 말자.

 재미있는 소설을 찾아다닌다는 것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소설은 곧 나에게 가장 맞는 소설이다.

 우리 모두 재미있다고 소개받은 소설이 실제로는 시궁창이어서 아 xx 내 돈하며 절규한 적이 있지 않은가?

 

 재미있는 소설을 찾기보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을 찾자.

 그리고-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소설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낯선 부분들을 수용함으로써 나의 식견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그 세상 속 내가 다르게 보이고 변화하는 것을 즐겨보았으면 좋겠다.

 

 잘못된 소설 읽히지 않는 소설 못쓴 소설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다면 -그러한 껄끄러움과 뻑뻑함 속에서도 얼마든지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가진 아집에서 탈주하는 모험을 소설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장르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축복이 아닐까.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반복하며 자기가 생각하는 재미만을 테이프가 늘어지듯 반복하는 삶은 지겹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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