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문학이라는 부정신학

 

장르비평을 하면서 듣게 되는 말 중에서 이제는 좀 안 들었으면 싶은 말이  '피해의식'이라는 단어다. 얼마나 나태하고 게으른 단어인지. 장르를 잘 모르고, 하나둘 읽고 으스대고 싶은 사람들이 장르란 이런 거지. 웹소설이란 이런 거지. 이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곤 거기에 불만을 표하면 "나는 학문에 의거해서 제대로 이야기했는데 왜 저렇게 과민반응이란 말인가!" "저건 옛날부터 무시당했던 피해의식 때문이야." 같은 식으로 스스로 자위를 한다. 피해의식이라는 단어는 그 속에서 지금은 이러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전제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 적어도 지금 발화했던 '나'는 결백하며 좋은 이야기를 했다는 자의식이 들어가 있다.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비주류 선언의 에필로그에도 적었지만 2019년 학회에서도 "왜 장르문학이 숭고한 문학적 가치를 떠나서 대접받으려고 하느냐" 라며 훈계하는 어르신이 있었고, 글 잘 쓰는 제자가 웹소설 기웃거려서 무슨 그런 쓰레기 같은 글을 쓰냐며 훈계했음을 영웅담처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문창과 교수가 있다. '장르판에서 비평이나 기웃거리면서 등단도 안 한 애들이...' 라며 텍스트릿에 대한 이야기도 암암리에 들려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9년에 일어난 일이다. 몇 가지의 차별적 이야기들은 들은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예전에 트위터에서 "장르문학에 대한 제도권의 차별은 여전하다"고 글을 썼더니 "요새 국문과는 그렇지 않다" "요새 문창과 교수님은 많이 바뀌었다" 라고 하는데, 진짜로 그러한가? 그들 중에서 제대로 현재 작품을 읽고 내부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몇 명인가? 그래서 그 작품을 독해하기 위해서 접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그것을 제대로 된, 자신이 늘 해온 공부와 방법론으로 접근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가? 여전히,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권력을 쉽사리 놓치 않으려고 한다. 개인을 떠나서 집단, 그것도 기득권을 유지해봤던 집단이 되면 이 집착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일까. 내가 제도권 문학에 대한 글을 쓰면 꽤 날선 글이 나온다. 제도권 안에서 나를 불러 발표도 시키고 청탁도 종종 오는데 미안한 일이다. 제도권 문학에 대한 내 소회를 이 참에 정확히 밝히자면, 나는 제도권 문학에 대한 어떤 유감도, 분노도 없다. 내 감정을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짜증'이다. 그리고 이 짜증의 원인은 순문학이라는 제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앞서 나가 발언하고, 대응해야 할 사람들이 나태해서 그렇다. 아주 작은 공간에서 제도를 통해 아웅다웅 정치행위에만 골몰한 그 이분법이 짜증나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안티-제도, 즉 '장르 문학'에 집착하는 것까지도.

 

최근 평론가 우노 츠네히로를 초청한 2019년 서울 상상 산업포럼 심포지움이 있었다. 박인하 교수님이 좌장으로 있었고, 나를 비롯한 패널 네 명이 모인 자리였다. 그때 플로어에서 "글쓰기를 위해, 스토리나 장르를 창작하기 위해 식견을 넓히기 위한 작품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 때 우노와 내가 꺼낸 것은 고전문학이 아닌 고전 영화였다. 19세기 이전에는 지성들이 시대를 읽어내기 위한 도구가 소설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시대를 대표하는 언어는 영화로 점차 옮겨갔고, 21세기가 된 지금은 영화가 아니라 영상 그 자체, 또는 체험이 가능한 원격의 현전, 그러니까 게임이나 AR, VR이 될 것이다. 

 

문학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숫자만 줄어가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책을 읽지 않고 책 읽는 ASMR 방송을 듣고, 그 ASMR 방송은 내용의 파악이 아니라 잠을 자기 위한 욕구해소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서사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좋은, 달콤한 목소리의 정동에 한순간 포획되는 육체가 부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순문학, 문단문학, 그리고 제도권 문학이 의존하는 '문학'은 영상이나 감각들에 대한 부정신학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의 예술이나 인공지능이 창작하는 시나 소설, 시나리오에 생각보다 큰 관심이 없다. 우리는 이미 기계적 글쓰기가 일상화 되어있지 않나. 365일, 휴일조차 없고 맥북의 자동완성 기능을 사용하면서 양적 노동을 해대며 게시판 관리자로 확장된 웹소설 작가의 생활양식과 수십 명 작가의 원고를 받아서 이펍으로 제작해 배급하는 편집자의 행태는 그야말로 기계의 글쓰기가 되어간다. AI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더 공식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기계가 시를 쓰겠다는 건 시인의 자리를 위협하는 공포가 아니라 휴머니즘 미담에 가깝다. "뭐? 기계가 시를 쓴다고? 그 기계 참 기특하네."

 

단순히 문학을 떠나서 그야말로 가상현실과 기계의 시대다. 구전 동화는 부모의 목소리가 아니라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재현된, 소음이 제거된 고품질 음성으로 재현되며, 이것은 초월적인 부모의 형상으로 아이를 양육한다. 부모의 넘치는 애정으로 아기때 사진부터 차곡차곡 인터넷에 저장되는 것으로 시작된 가상의 자아는 가상공간의 조립주체를 다시 한 번 탄생시킨다. 이러한 인터넷 공간의 삶에서 인쇄매체는 문자 그대로 '낡은' 매체로 전락해가고 있다. 책을 '넘기는' 손의 감각이나 책의 '냄새'를 좋아한다는 인쇄매체 애호가들의 발언은 책을 독서의 수단이 아닌 감각의 수단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 감각마저 디지털이 재현하게 될 때, 아날로그 책의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제도권 문학이라는 나의 용어는 인쇄매체, 그중에서도 '문예지'의 형상을 겨냥하는 용어다.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에서 문학신문 뉴스페이퍼와 함께 진행한 문예지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92) 문예지에 대한 인식은 '독자들에 대한 추가적인 노출이 필요'한 대상이며 접근성이 떨어지는 낡은 매체가 되었다. 그럼에도 문학은 위기감 자체를 친숙한 것으로 여기고, 언제나 문학은 위기였다며 위기 그 자체를 비위기로 받아들인다. 이런 점은 장르 시장 쪽에 있는 사람들과 큰 차이가 난다.

 

장르문학 시장은 매체 변환에 따라서 생멸을 반복했다. 무협 장르의 대본소부터 PC통신과 대여점에 맞췄던 판타지 시장, 그리고 지금의 웹소설까지. 그래서일까. 지금도 시장이나 또는 장르와 관련된 담론장의 사람들을 말하면 버릇처럼 "이번 시장은 언제까지 갈 것 같아요?" 라는 질문을 주고받는다. 장르 문학이라는 거대한 구조나 형식, 또는 소비의 형태는 남겠지만 시장의 형식과 매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르문학이나 순문학 같은 이분법이 얼마나 의미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종종 장르 문학과 제도권 문학의 이분법을 들으면 이런 얘기를 한다. 그것은 수영 선수와 권투 선수라고. 같이 '운동'을 하긴 하지만, 서로 쓰는 근육이나 규칙, 또는 운동의 방식도 다르다. 함께 엮일 수 없다. 추구하는 방법도 다르고 훈련법도 다르고 기록을 매기는 법도 다른데, 왜 역사에서 미학, 또는 문학의 방법론을 수립할 때부터 환상성을 없는 셈 쳤던(그리고 실제로 유의미한 집단군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제도권의 방법론에 맞춰서 장르 문학이 미학적 가치가 있다거나 문학적 가치가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에 들어가야 하나.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보다 본질적으로 장르를 제대로 직시하고, 읽어내는 행위다. 독해 방법론과 연구 방법론이다. 이제 선언하자. 이 속에서 더 이상 순문학이란 필요가, 자리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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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고든핌님 텍스트릿 자유비평란에 올린 글을 바탕으로 보론, 그리고 전개되는 비평입니다.

 

텍스트릿에 올라오는 비평글들의 길이가 너무 길어지면 피로를 호소하는 분이 많아, 글을 3부작으로 잘라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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