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_관련_이야기를_타래로1

텍스트릿 2018.06.03 15:38 조회 수 : 207

#웹소설_관련_이야기를_타래로1
 
오늘 애스크에서 웹소설 관련 질문이 모처럼 10건 이상이 들어왔네요. 애스크로 들어온 얘기 중 길게 이어갈 부분을 타래로 달겠습니다.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1. 네이버 웹소설의 대사 옆에 붙는 얼굴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몇 달 전에도 논쟁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사실 이건 며칠 전에 제가 이야기했던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부분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매체UI 디자인이 왜 생겼는지의 연구는 꽤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재인, <모바일 웹소설의 재미경험 향상을 위한 UI디자인 연구>, 서강대학교 아트&테크놀로지 석사논문, 2017 이겠군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웹매체를 사용할 때 게임, 웹툰 등등의 다른 매체와 비교하며 어떤 체험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그럼 그 재미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러한 대중 여가문화를 '놀이'로 보는 시각으로, 어떤 관습convention과 규칙rule 하에서 우리의 놀이가 효율적인 재미를 이룰 수 있을까 보는 관점입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이런 방식이 기존의 문학적 엄숙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이지요.
 
웹소설의 문학과 문장의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놓치는 것이 '고급 독해'와 '고급 독자'를 선별한 것이 제도권 내의 문학이라는 지점입니다. 애초에 제도권에서 은유와 비유로 이루어졌던 문학은 일정 이상의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향유하기 어렵도록 프레이밍 되어 있었으니까요.
 
물론 우리는 모국어가 한국어고, 그러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문학교육에서 문학적 언어는 일상어에서 탈피하고 작가가 만들어낸 텍스트 구조 속에서 독자적 의미를 획득하게끔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학적 언어'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문학 제도 바깥에서도 권위를 가졌던 건 근대였죠.
 
스크린도어에 호출된 시들이 문학적 비유나 은유, 이미지 바깥에서 텍스트 그 자체로 즉자적 독해가 되어 퇴출된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우리는 제도권 바깥에서 문학적 표현이라는 메타포를 봐 줄 권위를 상실한 상황에서 굳이 문학적 수사나 표현에 집착하지 않게 되죠.
 
웹소설의 문장은 그러한 맥락에서 최대한의 효율성을 발휘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구어적 표현이 아닌 문어적 표현으로 소설을 썼던 것과 달리, 오히려 웹소설의 대화에서 지향하는 것은 구술적인 이야기 방식입니다.
 
즉, 얼굴 카톡은 "캐릭터의 구분"보다는 "카카오톡"과 같은 범용적 SNS를 모방하여 구술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인쇄매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문학은 '문장'으로서의 이야기가 중요했지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독자와 작가의 교류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웹소설(그 이전의 장르소설까지)이 구술언어적 성격이 있다는 지적은 꾸준했지요.
 
구술언어적이라는 표현을 마치 한국 전통의 마당에서 판소리계 형태의 마당극으로 생각하고 진짜 말하듯이라는 지점에만 골몰해 한계를 드러내는 연구도 있습니다만, 김혜영의 박사논문 <판타지 소설의 재미담론 연구>에서는 이런 구술적 표현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술적 표현은 체계가 없고 즉물적이며 순간적이다. 또 자주 나오는 비속어나 농담 등은 중세 카니발에서 상스러운 욕지거리로 지배계급의 지성에 저항하던 것과 흡사하다. 쉬운 구어체 문장은 재미와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구술적 언어를 사용하는 판타지소설은 작가와 텍스트의 권위 그리고 모더니즘적 독서 방식에 저항하는 것이다."
 
오히려 모바일 웹소설의 얼굴은 모바일 환경에서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는 시각적 정보량이 적은 만큼, 다른 정보 전달을 위해 효율성을 위해서 누가 말하는지, 어떤 사람이 이야기하는지의 묘사나 서술 장면을 생략하기 위한 기술적 요소로 보기도 합니다.
 
물론, 이건 매체를 디자인 한 사람과 문장을 쓰는 사람이 일치화되어야 하는 플랫폼=작가 동일시의 논리라 한계가 있습니다만,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 그러한 고려를 했다고 할 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네이버 웹소설에 얼굴이 들어있다고 무시하는 경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적해야 할 부분은 그 제작의 과정이 바람직한 과정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겠죠. 예전에 이 얼굴 일러스트 역시 노동력의 착취와 연결되어있다는 지적을 들은 적 있는데,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아시는 분들이 설명해주셔야 할 듯합니다.
 
2. 일본식 문화 이세계물이 한국에서 통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힘들 것이다'라고 한 이유는, 중세 문화의 외피를 양국의 서브컬쳐가 왜 가지고 왔는지, 그리고 자국의 문화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무엇인지를 좀 더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이 자신의 문화를 지향하고 작품에 드러내는 경향을 아즈마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부터 시작합니다. 패전으로 인한 패전의식은 지금의 미성숙한 자아로서의 일본을 부정하고, 가장 화려한 시대에 대한 갈망이 진짜 일본이 아닌 가상의 일본(에도 시대)에 대한 환상을 꿈꾸게 되고, 그것을 계속 소비하며 서브컬쳐에서 드러낸다고 말했지요. 사실 이러한 감각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최근의 경제난에서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 때가 좋았지" 라며 새마을 운동을 게임으로 만들겠다던가 하는 상상력입니다. 실제로 판타지 소설 중에서도 중세의 난민들을 통해 경제개발을 하며 새마을 모자를 쓰고 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 작품도 있었죠. 이러한 것이 새마을 운동 시대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에 대해서 도피적으로 과거를 상상하는 방식은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서브컬쳐에서 중세를 바라보는 방식이나 은유의 형태가 다르게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 판타지에서 중세를 왜 그렇게 허구적이고 탈역사적으로 고증 바깥의 시대로 묘사하느냐 하는 지점의 연구도 되어 있는데, 이때의 관점은 중세는 중세가 아니라 '근대(적)'이라고 생각하는 병폐의 은유라는 것이고, 기성세대 그 자체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것이지요.
 
특히 현재 '사이다물'이 나오는 원인을 갑질에 대한 저항으로 보듯이, 권위와 꼰대, 질서와 제도, 법에 대한 반감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맞지 않음을 아예 중세라는 외피를 통해서 낡았다는 비유를 시작한 것이지요.
 
특히 연구들은 귀족들의 권위를 망가뜨리는 어린 고등학생 주인공의 클리셰는 이러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적극적으로 귀족 제도를 망가뜨리진 못하지만(왜냐하면 주인공은 귀족이 되고, 주인공 친구들도 귀족이 되고, 소설 말미에서는 한 국가의 제왕이 되는 것까지 가지요) 눈 앞의 불합리는 시니컬하게 비판하는 조극적 비판자로서의 나를 조형하는 것이 한국의 판타지였고, 그러한 형태는 지금 웹소설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세계를 대체할 세계적 모델로서 과거 일본을 제시하는 일본의 서브컬쳐와 현재의 세계를 시니컬한 비판에 집중하는 한국의 서브컬쳐는 감정적 추동 모티브가 다르지요. 한국의 정서가 왜 저렇게 되었는지 까지의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 아마 나오게 된다면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처럼 우리나라의 서브컬쳐 문화를 설명하는 비평 이론서가 되겠지요. 물론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3. 그럼 웹소설의 최저 필력이 무엇이냐 할 때, 저는 앞선 1의 맥락에서 이어져 이것이 '소설이다'라는 감각을 자각하게 만드는 그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효율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은유적 비유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일수록 탈락된다는 것이지요.
 
최근 제가 많이 느끼는 것인데 입에 곱씹히는 좋은 문장, 계속 남는 문장은 그것이 은유적이고, 어려운 단어나 울림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예술적 감각과 센스로 '아!' 하는 깨달음을 즉자적으로 주는 문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테면 문피아에서 자신이 어떤어떤 공모전에서 등단한 프로 작가고, ~~상을 받았다고 하며 연재할 때 20~30의 조회수로 근근히 연재하는 사람도 많았지요. 첫 편인가 두번째 편에서 댓글이 "문장 잘 쓰시는 건 알겠는데 재미가 없다." 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1급의 작가 중에서 웹소설 쓰겠다고 국내 거대 플랫폼의 웹소설 공모전에 몇 차례 글을 냈지만 죽쒔다는 소문은 무성하지요. 이럴 때 웹소설 필력의 최저한계는 실력보다는 조회수와 선작, 돈이라는 수치로 표현되는 것이 더 옳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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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이융희의 글입니다.
트위터에서 올린 글을 아카이빙 하기 위해 기록해 두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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