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의 일상화와 게임판타지

 

 

 

게임판타지와 가상현실

 

게임판타지는 MMORPG의 게임플레이 구조가 서사의 배경으로 재현되는 이야기 방식이다. 게임소설이라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용어도 존재하지만 대개 판타지 장르의 MMORPG의 세계관을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게임판타지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적확하다. 장르의 시작은 가상현실(假想現實)이라는 개념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다. 이 개념은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라는 단어의 탄생으로부터 생겨난 개념이고, 사이버스페이스는 미국의 SF 작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1984)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1948년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가 제시한 개념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동물과 기계, 생물과 무생물이 동일한 방식으로 탐구가 가능하고, 사람의 신경작용의 코드화 역시 가능하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인간은 두뇌신경망을 컴퓨터와 연결해 전자신경망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고, 몸이라는 한계와 경계를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뉴로맨서』는 이러한 위너의 개념들을 서사로 구체화했고, 이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1995)와 영화 <매트릭스(Matrix)>(1999)를 거치면서 확장되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시뮬라르크(simulacre)가 더이상 현실과의 위계적 관계에서 하층부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일반적인 개념이 되었음을 선포했다. 이를 통해 가상현실의 위상은 재맥락화 되었고, 이것은 게임판타지의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토양이 되었다. 여기에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일상화 경험은 한국에서 게임판타지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조금 더 구체화한다. 한국에서의 게임판타지라는 장르의 시작은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1999)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게임소설의 등장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문화를 통해 급격하게 확산된 게임의 일상화라고 할 수 있는데 PC방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게임 경험의 일상화는 많은 부분의 가능성을 확대시켰다. 우선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요소들을 빠른 시간에 관습(convention)화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PC방 문화를 이끌었던 다양한 MMORPG<리니지><바람의 나라>, <디아블로>와 같은 게임의 경험들에 준거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후에 등장한 게임판타지인 『아크』(2008), 『샤이닝 로드』(2011)달빛조각사』(2007)에서의 기본이 되는 설정들이 자연스러운 경험이 되어 하나의 장르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만약에 게임의 일상화된 경험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장르들의 친연성 역시 반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임판타지를 설명할 때 일본의 『소드 아트 온라인(ソードアート・オンライン)』 시리즈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2002년도에 시리즈가 시작된 이 작품은 너브기어라는 VR 기기를 통해서 가상의 게임 세계로 진입한다는 게임판타지의 기본설정을 구체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개념은 위너와 깁슨을 거쳐 구체화 된 사이버스페이스의 개념이고, 『소드 아트 온라인』 시리즈는 이러한 설정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시리즈가 발전하면서 그에 맞춰 게임 세계로 접속하는 기기의 발달과 더불어, 신경작용의 코드화와 두뇌신경망에 대한 범위들 역시 점차 발전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게임판타지에서는 이러한 정보들의 구체성이 생략되어 있는데, 그것은 게임이 기술발전에 의한 새로운 경험들이 아니라 이미 일상화되고 급격하게 집단화되었기 때문이다.

 

UI, 아이템, 레벨업 시스템

 

일상화된 게임 경험, 혹은 가상현실에 대한 경험에 기반한 게임판타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MMORPG 게임에의 UI가 서사의 세계관에서도 그대로 등장하는 경우이다. MMORPG 게임이 가지고 있는 스테이터스(status)의 개념은 설정한 역할에 맞게 캐릭터를 성장하고, 그것을 통해 게임의 미션을 클리어 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에서의 모든 경험들은 스테이터스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대개 수치화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화된 객관적 지표들이 게임에서 캐릭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현실에서는 그 어떤 노력을 해도 결과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데 반해, 게임에서는 이를 즉각적으로 수치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클리어하기 어려운 미션이었다면 더더욱 큰 폭의 스테이터스 변화로 보상받을 수 있다. 특히 게임판타지에서는 이러한 스테이터스를 확인할 수 있는 UI가 등장해 자신의 성장과 상태에 대한 객관적이고 수치화된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이 게임판타지에서의 이야기의 진행과 핍진성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된다.

 

두 번째는 스테이터스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의 상승이 레벨업이라는 형태로 정리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레벨업은 말 그대로 전체적인 수준이나 능력의 정도가 이전과는 다른 단계로 올라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벨업은 이전까지는 해낼 수 없었던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을 수치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모든 서사, 특히 판타지의 기본이 되는 서사구조인 영웅서사에서는 인물의 성장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이 어떠한 형태로 구현되는 것보다는 시험을 통과하는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영웅서사의 방식인데 반해, 게임판타지에서는 이를 수치화하고 레벨업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가시화한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관문을 통과하거나 난재를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장에 던전(Dungeon)이나 필드에서 일상적인 문제(몬스터와 대결하는 것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의미를 강화한다.

 

세 번째로는 아이템이라는 요소이다. 아이템은 단순한 도구(tools)가 아니다. 도구는 단순히 일의 용이함을 돕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영웅서사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도구들, 마법사의 지팡이나 전사의 검과 방패, 혹은 갑옷과 같은 것들은 단순히 도구로 작용한다. 그것이 설사 어떠한 사건의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게임판타지에서 아이템은 목표이자 보상이며, 스테이터스를 올리고 레벨업을 하기 위한 지름길이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일류 셰프의 칼을 가지 되었다고 해서 같은 요리실력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게임판타지에서의 아이템의 개념은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아이템은 스테이터스의 상승을 보장하고, 경우에 따라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장르의 현재와 미래

 

게임판타지는 사실 2000년대 중반에 활발하게 창작되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현대에는 서사의 확장이 다소 둔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창작도 이전의 그것과 비교하면 활발하지 않은 상태이며, 소비하는 형태들 또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게임판타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달빛조각사』의 경우에는 2019년까지 누적판매부수 600만부를 기록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웹소설에서의 게임판타지가 장르 소비의 메인라인에 자리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물음표를 붙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혹자들은 한국에서 게임판타지는 이제 비주류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렇게 이 십여 년 만에 장르의 소비 형태가 달라진 것은 생활환경과 경험의 변화로부터 야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게임의 경험이 일상화된 정도가 이전에 비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들이 가지고 있었던 일상과의 차별성이나 새로움에 대한 감각들을 둔화시켰다. 게임도 일상의 단순하고 반복되는 경험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다양한 의미들을 파생할 수 있었던 가능성들 역시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의 경험들을 통해서 더이상 변화나 극복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과 좌절을 내재한 세대가 되었다는 암울한 원인들이 기저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게임에서의 변화와 같은 착실한 레벨업과 드라마틱한 문제의 해결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게 된 세상에서 게임판타지가 주는 대리만족은 공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망감은 또한 현실의 구조들이 게임 경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임 플레이 요소들의 관습화와 현질로 불리는 현실의 재화적 경쟁력들이 게임 플레이에 긴밀하게 개입하는 형태는 가상현실이 가지고 있던 의미들은 상쇄시켰다. 노력을 통해 레벨업을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기존의 RPG의 세계는 현질을 통해서 효율적인 레벨업을 한 채 오래도록 상위 클래스에 존재하는 고인물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게임세계에서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소드 아트 온라인』의 키리토나 『달빛 조각사』의 위드,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의 주승호나 『솔플의 제왕』에서의 히르칸과 같은 능력 하나로 성공을 거머쥐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판타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 당연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일상의 영역에서도 게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반응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의 시대에 게임은 특수한 경험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배제하고 경시해야 할 요소도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게임판타지는 다양한 형태의 변화와 의미의 확장을 통해 계속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예전에 우주라는 공간이 상상의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처럼 게임에서의 가상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현실을 통찰하고 모사하는 서사의 형식이 되어 우리에게 등장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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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선천성 과몰입 증후군이라는 주인공의 설정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가상현실 접속기계를 활용한다는 것은 게임판타지가 가지고 있는 환상성과 과학기술의 가능성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활용한 결과이다. 이와같은 설정은 기존의 게임판타지와 큰 차별점이 없지만, 무엇보다 PC방 등을 통해서 친구들과 동시에 게임의 세계로 접속하고, 그러한 환경 등을 토대로 이야이가 진행된다는 것은 한국의 게임판타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솔플의 제왕

 

게임 세계에서 뛰어난 컨트롤로 유명세를 떨치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의 게임판타지에서 나타나는 가상세계로의 진입에 대한 디테일의 생략과 같은 요소들이 나타난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현실세계로 돌아와서는 판타지적인 회귀 서사의 맥락도 등장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게임판타지가 SF가 아닌 판타지의 영역에서 주로 언급되는 이유들을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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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텍스트릿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이 공동 기획하여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텍스트릿 필진 이지용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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