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집담회 ㅡ "여자니까 로맨스다?"

- 로맨스 담론이 실패한 9가지 이유 -

 

 

  한국에서 로맨스라는 장르가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는 동안 어떤 담론이 존재했는가? 로맨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기 전, 기존 담론을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로맨스 담론은 실패했다.’ 그렇다. 로맨스 담론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담론이 형성되지 못한 이유야 많겠지만, 여기서는 아홉 가지 정도를 꼽아 설명하고자 한다. 특히 연구-비평적 위치에서 로맨스 담론이 얼마나 빈약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항을 고려하여 로맨스에 접근해야 하는지 제안해보고자 한다.

 

 

 

1) 학계 차원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이 적다.

 

  ‘장르 로맨스’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학술연구정보서비스’(www.riss.kr) 홈페이지에 접속해 검색을 수차례 해보았다. ‘로맨스소설’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을 시 나오는 학위논문은 138편, 국내학술지 논문은 204편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한국 장르문학의 한 갈래인 로맨스소설’을 주제로 삼아 논하고 있는 글은 몇 편이나 될까? 

  청소년 교육의 목적으로 로맨스소설을 다룬 논문까지 합하면 학위논문은 단 두 편, 국내학술지 논문은 웹소설과 관련한 논문이 여섯 편 정도,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인터넷소설과 관련한 논문 두어 편 정도다. 물론 다른 키워드를 검색해서 찾는다면 몇 개의 논문이 더 추가될 수 있겠다. (가령 ‘인터넷소설’, ‘연애소설’ 등등으로 말이다.)

  로맨스 관련한 연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말은 즉, 학계에서 장르 로맨스에 대해 관심을 쏟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논문들의 경우, ‘인터넷소설’, ‘웹소설’과 같이 매체 변화의 일환으로 로맨스에 접근한 경우가 대다수다. 게다가 논의가 매우 산발적이고 일회적인 경향이 있다. 로맨스라는 장르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비평가가 극소수인 것도 모자라, ‘왜 로맨스가 연구되어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과 대답을 내리고 있는 이가 없는 것이다.

  참고할 선행연구가 부족하고, 학계에서 주로 다뤄지지 않은 대상을 연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론으로,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지 디딜 자리가 없는 제로베이스 상태인 건 그렇다 쳐도 대화를 나눌 다른 연구자가 없다는 사실은 꽤 치명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담론이라는 건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 말을 반박하거나 보완해 줄 사람이 한 명 이상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학계 대다수의 사람들은 ‘할리퀸 로맨스’의 존재조차 모른다. 학계에서 로맨스 담론이 만들어지지 않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참고할 자료가 너무 많거나 부족하다.

  학계 차원을 떠나 사회적으로 로맨스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살펴보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 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최근 에는 SNS나 블로그를 통해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어떤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기가 쉽다. 그러나 정보의 양이 너무나 많아 분류하기도 어렵고,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작품에 대한 분류도 채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독자 수용과 반응만을 보는 건 사태의 한 단면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의 담론들을 찾는 건 더 어렵다. 이를테면 PC통신 세대나 인터넷소설 세대가 나누었던 로맨스 관련 이야기들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1세대 로맨스소설 작가/독자들이 활동했던 ‘천일야화’라는 소설 동호회의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회지를 구하거나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서칭하는 등 온갖 발품을 팔아야 한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80년대부터 들어온 할리퀸 관련 자료는 텍스트 자체를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종종 8-90년대 할리퀸 소설을 중고 사이트에 올라오는 경우가 있긴 한데 매물이 많지 않고, 출판사도 각양각색, 번역되어 나온 책도 한 두 권이 아니다. 할리퀸 로맨스의 경우, ‘시답잖은’ ‘장르소설’인 것도 모자라, 청소년에게 ‘유해한’ 성애의 표현을 담고 있다는 오명을 가지고 있어 애초에 공공도서관에 많이 들여놓지도 않았다. 게다가 인터넷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대였기 때문에, 할리퀸에 대해 누가 어떤 매체에서 이야기를 했을지 짐작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역사적인 맥락에서 앞선 담론을 참고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로맨스의 경우 작품은 다양하고 개수도 많은데, 관련 담론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의 로맨스는 작품 수도 현저하게 많고 그만큼 독자들의 반응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 예를 들어 2018년 7월 16일 현재, 카카오페이지에 등록된 소설 작품의 숫자를 비교해 보자. 판타지는 2,347개, 현대판타지는 1,014개, 무협은 1,468개다. 한편 로맨스는 10,253개, 로맨스판타지는 1,447개다.

  그러나 지금껏 로맨스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담론장이 오랜 명맥을 유지해온 경우는 손에 꼽고, 현재로서는 친목과 가벼운 리뷰 형태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누군가가 나서서 이것을 모두 정리하고 선별해 선택한 뒤 의미화를 해내야하는데, 아직까지 눈에 띄는 결과물을 보지 못했다.

 

 

3) ‘로맨스’ 장르의 정의에 대한 논의가 깊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랑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장르 로맨스는 그런 넓은 의미의 사랑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릿 멤버인 김휘빈 작가님이 『웹소설 서바이벌 가이드』에서 제시해 놓았듯, ‘광의의 로맨스’와 ‘협의의 로맨스’의 차이를 구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저 책을 제외한 다른 논자들 중 어느 누구도 로맨스와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를 제대로 구분하고 있지 않다. 로맨스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대강 ‘사랑이 서사에 주를 이루는’, ‘멜로드라마와 비슷한’, ‘여성들이 대체로 많이 보는’ 소설 정도로만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멜로드라마와 어떻게 다른지, 왜 대체로 여성 독자/작가들이 많은지, 서사에서 어떤 방식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는지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즉, 로맨스라는 장르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로맨스에 대한 정돈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비로소 로맨스와 관련된 담론 지형이 훨씬 풍부해질 것이다. 

 

 

4) ‘낭만적 사랑’에 대한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았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로맨스는 ‘사랑 이야기’라는 굉장히 보편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로맨스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SF를 이야기할 때 다수의 논자들은 과학에 대해, 판타지는 환상, 무협은 ‘무’와 ‘협’의 개념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이 그 장르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런데 로맨스의 핵심인 ‘사랑’에 대해서는 깊이 논의되지 않은 경향이 있다.

  로맨스에 나타나는 사랑의 성질은 대체로 낭만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빠르게 바뀌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갖는 방식과 태도 역시 바뀌고 있다. 현재의 사랑을 이야기할 때, 과거의 ‘낭만적 사랑’만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한 사회의 산물이다. 로맨스 안에 등장하는 낭만적 사랑 역시 시대 흐름에 따라 변형되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로맨스가 현재 삶에서 대두되는 인간관계와 사랑의 문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혹은 반영하지 않는지 살펴본다면 새로운 담론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5) ‘여성 장르’라는 인식이 비평·연구의 접근을 가로막았다.

  로맨스는 대체로 남녀의 사랑을 다루되, ‘여성 취향’인 것으로 분류된다. 다른 소설에서도 인물이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 등장하긴 한다. 그러나 로맨스는 사랑이 주가 되는 장르, 그것도 여성의 입장에서 사랑을 풀어낸 장르다. 작가는 물론 독자들의 성별이 여성이 대다수다. 그리하여 로맨스는 ‘여성 장르’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그래서 성별을 ‘읽기의 장벽’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혹자는 ‘여성적인 사랑 이야기’에 대해 면역이 없다며 ‘도저히 읽을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들이라고 그런 면역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장르소설’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코드들은 다양한 작품을 읽으면서 학습된다. 로맨스에 등장하는 코드들 역시 그렇다. 단순히 그 코드를 향유하는 주체가 ‘하필이면’ 여성이 많았을 뿐이다.

  그 원인을 누군가는 진화심리학에서 찾을 수도 있겠고(여성들의 사랑-관계맺기의 방식이 남성의 그것과 다르다는 주장), 역사적 맥락에서 성역할의 분화(여성은 주로 사적 영역-감정적이고 가정적인 것을 담당했다는 주장)로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여성들이 주로 보는 장르니까’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아닌 누군가가 로맨스를 읽거나 비평하거나 연구하지 못한다는 접근방식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덧붙이자면 남성 독자, 남성 작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편, ‘여성 장르’이기 때문에 집중을 받아오지 못한 맥락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일반 문학사 서술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여류 문학’으로 지칭하여 서술하는 등, 여성의 문화적/문학적 공적은 ‘따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구분법은 물론 예우가 아닌 예외다. 로맨스 역시 예외의 영역 안에 있다. (심지어는 저 ‘여류 문학’ 안에도 끼지 못하는, 변방에 놓여있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문학을 논할 수 있으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로맨스와 같은 여성 친화적 장르를 주로 소비했던 어떤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구분법이 오히려 협소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6) ‘한국 로맨스’의 시작점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간혹 논문이나 로맨스 관련 옛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한국 로맨스’의 시작점을 단순히 이광수의 『무정』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 (‘춘향전’과 같은 고전소설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무정』과 지금의 로맨스의 괴리는 무척 크게만 느껴진다. 이광수 문학에서 사랑이 매우 중요한 장치인 건 틀림없지만, 그것이 지금의 로맨스 속에서 나타나는 방식의 사랑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장르 로맨스의 시작을 이광수로 두는 건,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광의의 로맨스’와 ‘협의의 로맨스’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연히, 근거가 충분하기만 하다면 장르 로맨스의 선례적인 작품으로 이광수의 『무정』을 제시할 순 있겠다. 장르 로맨스에 포함시키기에는 그 특징적 요소가 조금 부족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장르 로맨스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해외의 경우에도 할리퀸 이전의 로맨스의 역사를 논할 때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나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파멜라』를 예시로 드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장르 로맨스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선례적 작품에는 어떤 것인가? 어떤 요소 때문에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인가? 세부적으로 답변을 내리게 된다면 한국 로맨스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7) 할리퀸 로맨스와 관련된 고민이 없다.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것은 외국의 로맨스도 아닌 한국의 로맨스 장르다. 그럼에도 할리퀸 로맨스의 수입으로 장르적 특성이 비로소 확실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할리퀸에 대한 국외의 논의를 가져오는 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역사적으로 할리퀸 로맨스를 수용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한국 로맨스 작가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로맨스 전문 출판사가 등장하고, 공모전이 등장했으며, 로맨스 소설만 쓰는 작가들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의 로맨스는 해외 로맨스와 어떤 점이 다른가? 어떤 배경 속에서 해외 로맨스가 받아들여졌고, 한국 로맨스는 어떤 방향으로 성장했는가?

  지금 현재로서는 할리퀸의 번역·수용 과정과 그에 따른 사회적 반응에 대한 글을 찾아볼 수 없다. 할리퀸의 문화적 파급력이 미미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지금도 수입되고 있는데도 유의미한 글을 찾을 수 없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로맨스 담론에 할리퀸과 관련한 이야기가 빠져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8) 로맨스와 로맨스판타지의 장르 구분에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 로맨스 장을 살펴봤을 때 가장 눈여겨볼 특징 중 하나는, 로맨스와 로맨스판타지라는 구분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휘빈 작가님의 『웹소설 서바이벌 가이드』를 제외한 논자들은 이 구분법이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를 못하고 있다 보니 이러한 구분법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문제의식을 전혀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로맨스판타지는 소설을 유통하는 플랫폼 사이트에서 여주인공 판타지(‘여주 판타지’)를 일반 판타지와 구분하면서 카테고라이징 된 장르다. (앞에서도 제기했듯 이러한 구분법은 예우가 아닌 예외의 차원에서 발생한 것이다.)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들이 지지했던 여주 판타지는 ‘로맨스’라는 이름을 머리에 달고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로맨스’라는 장르적 명칭이 추가된 덕분에,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하는 여주인공에게 사랑의 문제가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말았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판타지 세계에서 여주인공이 연애하는 이야기가 요체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로맨스판타지는 기존 로맨스나 판타지, 여주 판타지와 또 다른 새로운 장르로 굳어지고 말았다.

  로맨스 담론에서 로맨스판타지와 관련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를 빠뜨리고 빙산의 일각만 언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9) 로맨스가 다른 장르/매체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로맨스와 로맨스판타지의 구분처럼, 로맨스는 인접한 다양한 장르/매체의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변화, 성장해왔다. 그러나 기존의 담론들은 로맨스라는 장르 형성에 다른 장르/매체가 얼마나 큰 기여를 했고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로맨스는 서브컬처-소설의 커다란 진영 안에서 조금씩 뒤섞이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문학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순정만화, 오토메 게임 등 다른 매체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현재 장르 로맨스의 특징들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기존의 로맨스 담론들은 단순히 OSMU(원 소스 멀티 유즈, One Source Multi Use)의 차원에서만 논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로맨스 작품이 웹툰화, 영화화, 드라마화 되는 것, 그리고 엄청난 돈이 되는 것이 주목할 만한 현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장르 로맨스의 실체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하고, 산업의 흐름만 가볍게 훑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즉 관련 산업이 활발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이런 담론들은 수그러들기 마련이다. 비평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아홉 가지의 항목을 통해 로맨스 담론이 실패한 이유, 혹은 앞으로 로맨스 비평·연구가 유념해야 할 부분을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언급했듯이 로맨스 관련 연구·비평서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담론들은 로맨스 진영 안팎의 요구를 의식하고, 기존 담론들이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

 

 

텍스트릿의 필진 손진원의 글입니다.

 

텍스트릿과 인문학협동조합은 한국 장르소설의 큰 축을 담당하는 로맨스를 대상으로 집담회를 개최합니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 대중과 학문, 시장의 구성원 분들이 모여 함께 담론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신청 폼

https://goo.gl/forms/LxCZ9sSdSipjyxeq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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