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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한국의 장르 소설

 

장르문학 비평 담론팀 텍스트릿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과 공동기획하여 장르문학 칼럼 8부작을 연재합니다. 2학기 4회 동안 연재될 주제는 ‘지금, 여기 한국의 장르 소설’입니다. 2018년 지금 한국에서 장르문학은 어떻게 한국사회를 드러내고 있을까요? 텍스트릿 팀은 앞으로 4개월 동안, 뜨겁게 한국을 달구는 장르 소설을 큐레이션 합니다.

 

[지금, 여기 한국의 판타지 소설] 시청자는 ‘신’이다

 

유튜브와 초연결적 신체

 

온라인 영상 플랫폼이 부모를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 유튜브는 단순한 영상매체가 아니라 한국의 대리양육자이며, 아이들은 영상을 통해 세계를 배운다. 유튜브는 아이의 눈이자 귀이고 입이자 부모의 신체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양육의 역할과 기능이 옮겨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언어는 언어교육의 과정에서 습득한 의미망에 의해 무의식적인 프레임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교육에 사용되었던 매체는 인간의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겠는가? 유튜브의 유아용 영상으로 아이의 울음을 달래주고, 부모의 바쁜 일과 사이에서 부모 대신 아이와 놀아주는 유튜브는 이미 현실의 부모를 초월한 ‘하이퍼-부모’의 형상이라 할만하다.

 

하이퍼-부모와 아이의 유대는 아이들의 신체감각을 현실 레벨에서 가상공간의 레벨로 변화시킨다.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접속된 상태로 현실과 공존하고 신체는 현실과 가상을 자유로이 유영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은 이미 낡은 이야기로 전락하며, 그들의 감각은 오감을 넘고, 시대적 감각을 넘어 초연결감각까지 도달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들에게 ‘연결’이란 곧 존재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사실상 ‘우리’의 모습이 조금 더 나아간 것일 뿐, 다르지 않다.

 

PC와 통신을 통해 온/오프의 매체가 구분되었던 것이 과거라면 스마트폰은 우리를 24시간 언제나 접속되어있는 존재로 만들었다. 우리는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순간부터 접속해 있고, 접속이 끊어지는 순간이 죽음이다. 노모포비아nomophobia의 공포는 단순히 핸드폰 중독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 놓여진 자들이 느끼는 실존적 공포다.

 

그렇기에 접속 주체는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응시의 공간에 나아간다. CCTV의 감시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자신의 조각난 일상을 버릇처럼 SNS에 게시한다. 스마트폰의 GPS를 켜 자신의 식습관부터 행적을 기꺼이 거대 플랫폼의 빅데이터로 제공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트롤링이나 관종짓도 서슴지 않는다.

 

어린 세대의 유튜브 스트리밍 방송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들은 일상의 대화를 유튜브 영상을 통해 나누고, 자신의 취미활동을 1분이 안 되는 영상으로 만들어 업로드한다. 그 영상을 텍스트로 해석하고 개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우리들의 생 그 자체를 분석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저 살아가는 중이다.

 

공중파 미디어에서 인터넷 방송의 양식을 가져왔으나 단기적 성공으로 그쳤던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TV 미디어는 접속을 통해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송출된 방송은 일상이 아니라 편집된 가상이며 그것은 ‘나’가 살아갈 수 없는 스타의 공간이다. 방송은 점점 인터넷 방송의 양식모방이 아니라 응시와 접속 그 자체를 현현하게 되었다.

 

주목할 지점은 이러한 상호응시의 체계에서 ‘나’의 존재는 이중적 의미로 분화된다는 것이다. 일상을 전시하여 응시당하는 ‘나’와 일상을 소비하며 응시하는 ‘나’이다. 이러한 두 자아는 플랫폼이라는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서 응시로서 판매되는 ‘나’와 구매하는 ‘나’로서 극단화된다.

 

우리는 결국 내 삶을 응시할 권리를 판매하고 있으며, 타인의 삶에 접속할 권리를 구매한다. 여기까지 사고를 밀고 왔을 때, 우리는 ‘소비되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서 규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는 그대로 판타지 웹소설에서 구현되었다.

 

 

스마트폰을 통한 매체와 장르의 교류

 

판타지 소설은 인접한 다양한 매체의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성장했다.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초창기 판타지 소설은 TRPG라는 게임의 형식으로 재구성되었고, 이러한 게임의 형식은 다시금 소설로 변화하였다. 이것은 종이 매체에서 PC 매체로 변화하였음에도 유지되었다.

 

이러한 매체/장르 간 교류는 서브컬쳐의 영역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환상성은 경직되었던 모더니즘 사회에서 리얼리즘과 이데올로기 중심적 을 벗어나려던 시도였고, 그것이 가장 지식 권력의 축이었던 종이 매체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다.

 

새로운 세계를 겨냥한 헤게모니 다툼은 권력 매체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생한다. 더욱이 멀티태스킹적 미디어 매체인 스마트폰은 이러한 다툼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수많은 매체가 수백 가지의 담론을 콘텐츠화했다. 그중 웹소설이 있다.

 

웹소설이란 매체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단순하고 말초적인 쾌락만을 중시하는 웹소설은 사회와 유리되어 도피, 대리만족의 공간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 장르 판타지 소설은 단순히 리얼리즘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었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물론 웹소설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웹소설의 단순함은 서사나 형태적 단순함이 아닌, 은유적 단순함, 날것 그대로의 메타포를 뜻한다.

 

‘소비(응시)되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2018년 한국 웹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이자 소재이다. 주인공은 역경과 시련의 공간에 갑작스럽게 놓인 존재이고, 그러한 주인공은 수많은 인외 존재에게 응시된다. 그러한 존재는 대부분 ‘신’으로 그려진다. ‘시청자는 신’이라는 명제는 너무 적나라한 은유라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신은 끊임없이 주인공에게 마법적 능력을 주거나, 신체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대가를 주거나, 미래와 운명을 예지하며 시련과 역경을 강화, 또는 약화하는 존재로 나온다. 그 응시들 사이에서 주인공의 서사는 우리에게 각별한 재미를 준다.

 

2003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한 ‘게임 판타지’라는 장르가 있다. 주인공이 게임 공간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소설로 쓴 것이다. 이러한 게임 판타지 장르는 2018년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행을 하고 있는데, 그 유행의 원인은 소설적 재미에만 있지 않다. 결정적인 이유는 많은 독자들이 게임 체험을 하고 있으며, 게임의 플레이에서 채우지 못한 욕망을 게임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대리충족하기 때문이다. 초창기 게임 판타지 소설 중 게임의 서사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로 메시지를 끊임없이 소설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 많았던 것은 그러한 현상을 대변한다.

 

최근의 ‘BJ’ 또는 ‘신’이라는 장르 키워드 역시 우리의 스트리밍 체험의 경험이 재미를 강화한다. 아래에서는 지금 한국에서 이러한 양식을 통해 창작되고 인기를 얻는 작품을 간략히 큐레이션하고자 한다. 해당 작품의 변화를 따라가다보면 웹소설에서 이러한 ‘응시’의 주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러한 응시를 어떻게 감각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 gandara

 

어느 날 사람들은 가상의 탑으로 이동된다. 그 탑은 ‘튜토리얼’이라고 불리는 공간으로, 튜토리얼에서 초능력과 마법을 배운 사람은 100층을 클리어하는 순간 현실로 돌아가 괴물과 싸워나갈 수 있게 된다. 술에 취해 호기롭게 가장 최고의 난이도 ‘헬’을 선택한 주인공은 탈출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유일한 헬 난이도의 도전자로 매일 싸워나간다.

 

그런데 61층에 도착한 주인공은 61층만큼은 무조건 두 명 이상의 도전자가 존재해야지만 클리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클리어할 수 없을 것 같아 궁리하던 주인공. 그러던 그는 어느 날 헬 난이도에 새로운 도전자가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된다.

 

판타지 소설에서 ‘신’이 현존하여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는 건 판타지의 대표적인 장르관습이다.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는 신과 사람의 관계를 응시하는 주체와 응시되는 객체화시킨 유행의 초기작이다. 신은 끊임없이 응시되는 객체인 사람들에게 능력을 제공하며 후원을 하고, 말을 걸며 수많은 유혹을 한다. 그 속에서 응시되는 객체는 어떻게 주체적인 활동을 할 것인지, 충분히 긴장감 있는 서사를 즐길 수 있으리라.

380편 완결의 대작이기도 하다. 단순히 초기작으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재미까지 다 잡은 명작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 싱숑

 

주인공 김독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 3149편의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을 홀로 엔딩까지 읽어낸 사람이다. 그러던 그는 웹소설이 완결난 직후, 이 세계가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김독자는 깨닫는다. 어느덧 자신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웹소설 속에 들어와있다는 사실을.

 

괴물이 넘쳐나고 사람이 죽어가며 수많은 재앙들과 마주해 싸워야 하는 세계. 그 속에서 김독자가 절망할 때, 그의 스마트폰으로 파일 하나가 전송된다. 그것은 자신이 읽었던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텍스트파일.

 

이 세계의 엔딩을 아는 것은 주인공 밖에 없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최근 탑클래스의 인기를 구사하는 작품으로, 응시하는 자를 ‘성좌’라는 개념으로 설정하여 설화, 위인, 신화 등의 위계로 나누었다. 한국의 도깨비를 이용한 설정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버무려 탄탄한 세계관을 완성하였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웹소설’의 주인공 유중혁과 주인공 김독자의 케미나 조연들의 무게감, 그리고 서사의 구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재미와 완성도를 보장한다. 현재 230여 편 정도가 연재 중이다.

 

[킬 더 히어로] - 디다트

 

세상에 게임처럼 던전이 등장하고 몬스터가 출몰한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그들과 대적해서 전투를 이어가는 세상. 킬 더 히어로는 그곳에서 펼쳐지는 복수의 서사다. 누구보다 빛나고 뛰어난 구세주 ‘이세준’. 그를 위해서 사냥개가 되길 마지않았던 김우진은 결국 이세준에게 살해당하고 진실을 깨닫는다. 그는 이 세상을 구할 구세주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사악한 존재였다는 걸.

 

기적과도 같이 과거로 회귀한 김우진. 그는 이번 생에선 이세준에게 복수하고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 오기로 결심했다.

 

 

앞서 두 편의 소설은 ‘신’의 존재를 정말로 ‘신’처럼 구성하였다. 개념처럼 추상 레벨의 대상을 신격화 하거나 아니면 실제 존재하는 세계의 신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을 보다 관습화하여 한국의 장르 소설에 맞춰 만들어 낸 작품이 ‘킬 더 히어로’다. 벌써 수차례 인기작을 써낸 디다트 작가는 이러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170여 편의 작품을 계속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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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텍스트릿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이 공동 기획되어 연재됩니다.

텍스트릿 필진 이융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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