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읽다 1. 판타지 소설을 읽다.

 

 

판타지소설을 읽는 두 가지 독법, 독자의 욕망과 게이머로서의 독자

 

 

 

 

장르문학이란 무엇인가. 보통 장르문학이란 SF, 판타지, 로맨스, 무협 등으로 카테고라이징 된 문학작품을 총칭하는 것으로, 작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합의한 화소(구성, 소재 등)를 바탕으로 창작된 형태의 창작물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SF와 판타지, 로맨스나 무협 등의 이름은 장르의 장르, 그러니까 장르문학이라고 불리는 소설의 묶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의 주요한 소재가 무엇이냐, 어떤 문법을 따르느냐, 어떤 화소로 묶을 수 있느냐 같은 것들이 기준이 된다. 보통 이것들을 코드, 또는 클리셰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장르 이름은 서사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따 붙인다. 이를테면 추리 소설이란 장르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둘러싼 인물이 추리를 하는 소설이며, 좀비 소설은 좀비가 발생한 소설을 뜻한다.

 

한국의 판타지 소설은 외국의 판타지 소설을 받아들여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년 가까이 독자적인 장르를 형성하고 ‘한국형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로컬라이징 되었다. 즉 외국에서 들여온 판타지 소설을 독자적인 형태로 형식을 창작-파괴의 순환으로 계속 발전시켜왔다. 1990년대 이후 IMF를 비롯한 굵직굵직한 사회상황을 지나쳐오면서 서브컬쳐, 특히 장르 소설은 도서대여점과 게임의 인기, 일본 서브컬쳐 문화개방과 적극적 수용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복잡하게 변화해왔다. 그러한 가운데 많은 클리셰가 포함되기도 하고, 탈락되기를 반복하며 변화를 거듭한 한 것이다. 한국의 판타지 소설을 의미화하는 것은 ‘한국에서 소비되는 판타지소설에서의 클리셰는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찾아가는 귀납적 방법론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클리셰의 이해 없이 판타지 소설, 조금 더 확장해 장르 소설을 읽는 건 무척 난해한 일이다. 판타지 소설을 그저 문장 그대로 읽어내는 것에 그친다면 그저 작품의 표층 이미지만을 읽어내는 것에 그치고 만다. ‘유치한 글’, ‘모두 뻔하거나 똑같은 글’이라는 비판은 그러한 작품이 왜 독자들에게 소비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판타지에 대한 연구나 이해는 이러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많은 연구자, 비평가들이 나이브하게 이러한 장르의 이야기를 한다. 정작 웹소설을 소비하는 당사자들의 현상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다.

 

‘웹소설’이 탄생하면서 클리셰의 특성은 더욱 분화되고 강화되었다. 기존의 장르 소설은 인터넷 연재 후 출판되어서 대여점을 바탕으로 소비되었었다. 이러한 장르 소설은 스마트폰의 개발, 그리고 자본시스템의 형성으로 소비 방식이 크게 변화하였다. 플랫폼에 5,500자 내외로 분할 업로드 된 소설이 편당 100원 정도의 비용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이버 소설이나 인터넷 연재소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이러한 형태는 2013년 1월 네이버가 공모전을 열며 ‘네이버 웹소설’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웹소설’로 통일됐다.

 

웹소설은 한국 역사상 유례없는 부흥을 이루었다. 혹자는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역사상 유일한 시대가 열렸다고까지 말한다. 1년에 10억을 버는 스타작가가 생겨나고, 드라마부터 웹툰까지 수많은 콘텐츠가 웹소설을 원작으로 창작되었다. 이 웹소설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장르문학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장르 소설은 오래전부터 인터넷을 기반으로 창작-연재되어서 스마트폰이라는 매체에 무척 친화적이었고, 작은 액정에 맞춰서 짧고 스피드한 문장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클리셰는 시끄럽고 공개된 공간에서도 경제적으로 독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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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가와 전자책 출판사 관계자들은 모두 이 소설이 모바일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소비된다는 것을 우선 주목할 점으로 꼽았다. 경제적인 클리셰와 모바일형 문장, 그리고 서사 구조가 한 데 어우러져 왔다. 아마 인터넷에서 위의 10계명 사진(‘웹소설 작가와 전자책 출판사 관계자들이 밝힌 웹소설 쓰기 10계명’, 『동아일보』, 2015.9)을 본 독자도 분명 많을 것이다. 이 글에는 ‘이게 무슨 문장이냐’나 ‘이게 무슨 소설이냐’, ‘이래서 내가 웹소설을 읽지 않는다’ 같은 조롱의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필자가 만난 출판사 사람들은 이 10계명을 보면 다른 의미로 웃는다. 왜냐면 이 10계명은 모든 웹소설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웹소설이 무엇인지, 어떤 시장에서 어떻게 서비스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거쳐야 할 최소의 관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웹소설’을 소비조차 안 하는, 장르적인 이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그 창작법을 강습하고 있다는 게 우습다는 말이다.

 

이런 영향으로 판타지 소설은 과거 15년보다 더욱더 외부인의 접근이 힘들어진 철옹성이 되었다. 장르적으로 누적되어 온 클리셰도 알아야 할 뿐더러, 웹소설이라는 매체적 특성이 어떻게 소설에 적용되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나마 전자책으로 소비되거나 종이책으로 소비되는 다른 장르와 달리 판타지만큼은 절대적으로 웹소설의 시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이 판타지 소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장르 소설은 장르 소설 창작자와 소비자만 즐기는 미지의 영역으로 놔둬야 하나? 만약 이것이 마니아들의 소규모 증상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굳이 연구나 관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나? 이렇게 어려운 입법 과정을 뚫고 읽을 가치가 있나?

 

물론이다. 이것은 굳이 판타지 소설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장르 소설은 그 고유한 가치가 있다. 앞서 판타지 소설에 접근하기 힘든 까닭에 대해 누적된 클리셰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 말뜻은 다시 뒤집어 생각하면 판타지 소설을 독해한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인터넷을 통해 교류하던 마니아들은 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그것을 컬트적으로 소비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판타지 소설을 대리만족이나 말초적 재미, 또는 환상으로의 도피로만 해석하곤 하는데, 그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변용되고 소비되었는지 그 장르적 구조를 더욱 명징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형 판타지 소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가. 필자는 판타지 소설이 낯선 독자들에게 ‘욕망’과 ‘게이머’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싶다. 초창기 <드래곤 라자>부터 시작된 2차 세계의 조형은 가상의 세계를 완성하고 싶은 공상적 욕망이었다. 이것이 IMF라는 시대상과 맞물리면서 문제를 직면해도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무력한 자아 ‘나’는 신체, 세계, 능력을 벗어나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조력자인 드래곤, 또는 마법사, 또는 신화적 유물을 손에 얻어 새로운 신체와 새로운 능력을 손에 얻고 그 세계에서 성공하는 모험의 서사가 태어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퓨전 판타지’ 소설로의 변화이다. 이후 2003년을 전후하여 스포츠적인 요소와 게임이라는 매체가 판타지 속으로 들어왔다. 스타리그를 비롯하여 2002년 월드컵의 체험, 가상현실을 다루는 콘텐츠 만화책 ‘유레카’의 등장, 온라인 RPG게임 체험 세대의 창작시장 등장 등이 맞물리며 ‘게임 판타지’라는 형태로 변모한다. 게임 판타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바로 주인공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불구의 신체를 버리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완벽한 가상의 신체를 얻긴 하나, 그것이 ‘게임’이라는 공간에 국한된다는 제한성. 그리고 그러한 ‘완벽한 신체’가 수치라는 개념, 즉 게임 시스템에 포섭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제약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판타지 소설에서 ‘문제’를 극복해나가는 ‘나’가 가상 세계의 새로운 신체와 능력을 가진 허구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적 인간으로 변화했음을 뜻한다. 가상의 신체이지만 현실의 신체와 연결된, 게이머로서의 ‘나’를 긍정하는 것은 비로소 가상 세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문제에 대해서 컬트적으로나마 해결법을 찾고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게이머로서의 나’는 판타지 소설에서 현실 그 자체로서의 나를 긍정하는 강력한 기제이자 창작-소비 담론자들을 대표하는 아바타로 작동하였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웹소설의 가장 강력한 클리셰로 기능한다.

 

물론 판타지 소설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작품이 업로드 되고 있고, 그중에서 게임 시스템이 나오지 않는 작품도 분명 일정량의 파이를 차지한다. 그 모든 소설을 이 짧은 지면에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소설을 읽어나갈 때 이 앞서 제시한 두 가지의 코드를 주목한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이 어떤 욕망을 추구하고, 그로 인해 어떻게 서사가 움직일 것인지 이해하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텍스트릿 필진 이융희 의 글입니다.

장르를 읽다 기획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에 8회에 걸쳐 텍스트릿 멤버들이 연재하는 기획 칼럼입니다.

판타지, 로맨스, 무협, SF 네 장르의 전문가들이 1부 - 장르 'OOO'란 무엇인가. 2부 - 지금, 여기 한국의 'OOO'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출처 : https://www.koreapas.com/bbs/view.php?id=kutimes&page=4&sn1=&divpage=2&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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