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읽다 2. 로맨스 소설을 읽다.

 

 

로맨스소설 읽기: 여성 욕망의 실현,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다

 

 

 

 

 

지난 호 문화비평에서 다루었듯, 현재의 장르문학은 스낵 컬쳐(snack culture) 시대와 맞물리면서 유례없는 부흥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면서 언제·어디서나 가볍고 짧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소비되는 시대다. 이 스낵 컬쳐의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 중 하나인 웹소설의 시장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다. 2014년 199억 원이었던 시장 규모는 3년 만에 5배로 커졌다. 그 가운데, 가장 흥행한 -그러니까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장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로맨스’를 꼽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가장 성공한 웹소설 중 하나를 꼽으라면 사극풍 로맨스소설인 윤이수 작가의 <구르미 그린 달빛>을 거론할 수 있다.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되었던 이 소설의 누적 조회수는 5000만 건을 넘어섰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는 방영 당시 한 달 유료보기 매출이 11억 원을 돌파했다.

 

성공의 지표를 단순히 조회수와 경제적 이윤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은 차치하자. 어쨌든 저 통계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들춰보고 소비했다는 뜻일 테다. 로맨스가 현재 한국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로맨스소설이란 무엇이고, 누가, 왜 로맨스소설에 열광하는가, 혹은 열광해왔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웹소설 시대를 맞아 로맨스소설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로맨스는 ‘한국의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작품들을 범주화했을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소설장르 중 하나다. 아무리 장르문학에 관심이 없다 할지라도 로맨스소설이 무엇이냐 질문을 받으면 ‘가볍게’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로맨스는 우리에게 친숙한 장르다. 아니, 친숙한 장르라 여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판타지, SF, 무협과 다르게 로맨스소설의 장르적 규범의 뿌리는 사랑이라고 하는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로맨스소설이 무엇이냐 질문을 받는다면 대강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할 것이다. ‘남자와 여자, 두 중심인물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에 빠지면서 생기는 일들을 주로 다루는 소설.’ 이 정의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로맨스소설의 외연을 모두 포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의 로맨스소설은 어떤 소설을 말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 로맨스소설의 역사를 알아야한다.

 

막상 로맨스소설의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참 곤란한 부분이 없지 않다. 서사 속 등장인물의 사랑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매체에서건 서사 양식의 주 코드로 존재해왔기 때문에 어떤 것이 로맨스서사의 시작인지 말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소설에 국한해 설명한다면 근대소설의 시작과 함께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서구 근대소설의 기원이 무엇이냐, 그 대답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치열하지만 대체로 영어권에서는 사무엘 리처드슨의 서간체소설인 <파멜라>를 많이 꼽는다. 부유한 B씨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는 파멜라의 사랑 이야기, 로맨스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을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 근대소설의 시작점부터 논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필자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로맨스소설은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든 출몰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작품 속 인물이 다른 인물을 증오하거나 연민을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의 사랑이 단순히 소재의 측면이 아닌, 장르적 규범으로 존재하게 될 때 비로소 그 작품을 로맨스소설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즉, 서사의 등장인물, 사건 전개, 심지어 배경까지 모두 주인공의 연애와 사랑 전개에 집중되어 있는 소설이 바로 로맨스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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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학론의 유입과 함께 근대소설이 쓰이기 시작하던 1900년대, 한국의 대중들은 신문에 연재되는 ‘통속소설’, 지금으로 따지면 장르소설 중에서도 연애와 사랑을 다룬 애정서사에 열광했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1913)은 물론이요, 스스로를 ‘통속소설가’라 자처하던 김말봉의 대표작 <찔레꽃>(1937)과 같은 작품들은 식민지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해방과 전쟁을 거쳐, 대중문화가 폭발하던 1960년대, ‘하이틴’이라 불린 젊은 세대들, 특히 여학생이나 소녀들이 낭만적 연애와 사랑에 관심을 가지며 영화와 소설, 라디오극의 사랑 이야기들을 향유하기 시작했다. 1979년부터는 ‘하이틴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할리퀸’ 문고판 로맨스소설이 번역, 출간되었다. 할리퀸은 1970년대 북미지역에 로맨스 광풍을 일으킨 로맨스 전문 출판사로 한국의 로맨스 지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 할리퀸 시리즈는 현재도 번역, 출간될 정도로 인기가 많고 수요층이 탄탄하다.

 

1990년대 말부터는 할리퀸과 같은 번역 로맨스뿐만 아니라 로맨스만 쓰는 장르소설가와 전문 출판사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2000년 8월에는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가 결성되면서 작가들의 처우 개선 문제에 관여하는 등,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무렵부터 인터넷이 보급화 되어 도서대여점이 몰락, 종이책시장이 축소되었다. 로맨스는 매체를 달리해 ‘인터넷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때부터 신문이나 종이책과는 전연 다른 호흡을 가진 서사구조, 언어, 문장으로 된 소설이 인터넷 게시판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2007년경 활기를 띈 전자책 시장과 함께, 인터넷 플랫폼 안에서 웹소설이 유/무료 컨텐츠로 유통되면서 로맨스소설은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로맨스소설은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장르다. 사랑을 다루는 서사인 만큼 특정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소설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로맨스소설의 독자들 대부분은 여성이고, 작가들 역시 독자 다수가 여성임을 상정하고 창작을 한다. 맨 처음 내놓았던 질문에 대한 답, 즉 로맨스소설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하는 사람들 대부분 이 말을 속으로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주로 여성이 읽는, 여성 취향의 소설.’ 그렇다. 사랑, 멜로, 순정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여성 취향’을 뜻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로맨스소설 역시 여성의 입맛에 맞춘 서사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작품 속 주인공은 독자 누구든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여성인물이다. 그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남성인물은 동시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덕목-미모, 재력, 권력, 심지어 성기능까지-을 가진 자다. 독자의 바람대로 대부분의 로맨스소설은 남성인물이 고스란히 여주인공의 품에 안기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비판을 내리기도 한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같은 터무니없고 구태의연한 이야기가 꾸준히 반복 생산된다고 말이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의 여지는 많다. 일단, 장르문학은 장르적 규범과 클리셰로 ‘먹고 산다.’ 장르문학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그 장르의 규범과 클리셰에 익숙하다 못해 그것을 반복하길 기대하며, 그것의 변주를 즐긴다. 아무리 구태의연한 이야기 구조라 하더라도 매력적인 새로운 요소가 있다면 독자들은 기꺼이 작품을 즐긴다. 여성 인물이 남성 인물과의 사랑을 매개로 신분계급 상승에 성공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매우 고전적인 클리셰에 속한다. 요즘은 다양한 변주가 나오다못해 오히려 시들해진 분위기다. 그리고 신분계급 상승의 욕망은 어느 장르소설에서든 등장할 수 있는 화소다. 예컨대 판타지 장르 속 주인공은 독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짜릿한’ 계급 이동을 경험하며 보여준다.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판타지적 능력이든, 판타지적 사랑이든지 간에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동일하다. 그리고 요즘은 남성인물 못지않게 능력 있는 여성인물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낭만적 사랑 이야기가 여성의 것으로 취급이 되면서, 로맨스소설에 여성서사가 편입된 경우도 있다. 바로 ‘로맨스판타지’, 이른바 ‘로판’이라 불리는 장르다. 지금은 로맨스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이 장르에 대해, 사람들은 ‘여성인물이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사랑하는 내용’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원래 로판 장르의 기반이 된 작품들은 ‘여성인물의 활약을 담은 판타지소설’이었다. 판타지 장르계에서 남성독자와 출판업계의 텃세에 지친 여성인물 중심의 판타지 작품들은 여러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성인물 판타지는 로맨스를 머리에 인 채 하나의 장르로 규격화되었다. 지금의 로판은 판타지 세계를 유영하는 여주인공의 활약상을 그림과 동시에 로맨스 문제도 비중 있게 다루는, 로맨스도 판타지도 아닌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게 되었다.

 

사회가 그러하듯, 문학장도 남성이 중심이 되어 형성되었다. 남성 작가, 남성 인물이 중심이 되어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가운데, 여성의 목소리와 욕망이 자유롭게 발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로맨스 플롯은 여성인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창구였다. 여성의 욕망은 남성과의 사랑을 매개로 해야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 현대의 로맨스소설은 여성의 욕망뿐만 아니라 이성애적 사랑의 이상향이 무엇인지 실험하고 꿈꾸는 장르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이 한창인 지금, 남성과의 결합을 중요시하는 로맨스소설은 곧 가부장질서와 남성중심 체계에 순응하는 장르가 아니냐고. 웹소설, 특히 로맨스소설의 시장 규모가 커져가고 있는 지금의 현상을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위협으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한국보다 한발 앞서 페미니즘 운동을 진행했던 미국에서도, 할리퀸 로맨스가 훨씬 폭발적으로 읽히는 현상에 대해 백래시(backlash)라 주장하던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책의 콘텐츠뿐만 아니라 책의 생산, 배급, 광고·마케팅 기술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의 로맨스소설은 웹소설과 전자책으로 유통되고 있다. 독자 한 명 당 최소 10편 정도의 소설을 동시에 소비가 가능해진 때인 것이다. 로맨스소설의 콘텐츠 역시 변하고 있다. 로맨스소설의 주인공은 더 이상 신파극 속 인물이 아니다. 독자들은 새로운 성격을 가진 인물들을 통해 행복한 여성의 삶을 공상 하고, 올바른 사랑의 관계가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요즘의 장르문학은 이성애적 사랑, 즉 HL(Hetero Love)의 사랑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BL(Boy's Love)과 GL(Girl's Love)이 점점 수면위로 떠오르며 이성애의 사랑과 또 다른 사랑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로맨스소설은 사랑에 대한 현 시대의 욕망과 실험을 보여준다. 사랑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요즘, 로맨스소설은 그 사치를 대리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사랑을 꿈꾸게 한다.

 

 

 

 

 

※ 텍스트릿 필진 손진원 의 글입니다.

장르를 읽다 기획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에 8회에 걸쳐 텍스트릿 멤버들이 연재하는 기획 칼럼입니다.

판타지, 로맨스, 무협, SF 네 장르의 전문가들이 1부 - 장르 'OOO'란 무엇인가. 2부 - 지금, 여기 한국의 'OOO'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출처 : https://www.koreapas.com/bbs/view.php?back=1&id=kutimes&no=9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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