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르의 탄생 – 해시태그와 장르문학

1편 #예체능 #메타웹소설

 

 

해시태그의 전복성

  장르는 늘 상업출판 시장의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명명되어 아래로 내려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50년대 이후 잡지 확대된 아동 시장을 잡기 위해서 출판사가 명명한 ‘순정만화’이다. 이러한 탑다운 방식의 장르 명명은 상업 기획이 끝나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개별 텍스트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이러한 상품기획 연장의 명명은 질료를 바탕으로 한 장르적 명명보다 특정 독자군을 상정하고, 특정 서사 구조를 한정하는 브랜드 명명에 가깝다. 제한적인 한두 작품 정도는 이러한 명명에 모두 포획되겠으나, 작품이 늘어갈수록 최초의 프레이밍은 모든 작품을 포괄할 수도 없거니와, 개별 작품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벽으로서 막히고 만다. 

 

  물론, 장르의 정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각 장르는 장르의 구성 요소를 끊임없이 재확인받고, 시대와 작품에 도태되는 정의들은 밀려나며, 새로운 정의들이 생성된다. 결국, 장르의 이름은 장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기보다 장르를 포괄하는 상징적 기호가 되고, 애초의 기의와는 멀어진 기표로서 남게 된다.

 

  해시태그(#)는 이러한 장르 구분을 전유해 재배치하는 유쾌한 놀이이다. 장르의 서사를, 인물을, 작은 소재 하나를 작품으로부터 떼어놓아, 분류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쭉 배열해 놓는다. 이러한 재배열은 작품을 완전히 해체하고 의미를 분해하는 동시에 서로 연결될 리 없는 작품들의 계보를 탄생시킨다. 이것은 해시태그라는 기술의 특성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나는 소재를 통해 연결된다.

 

  무엇보다 해시태그를 다는 움직임이 기존의 장르명명 주체였던 기업이 아니라 창작자와 독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동임이 의미가 깊다. 출판사에서 상업적으로 내세우는 브랜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생각한 자기 작품의 특징이, 독자가 생각한 자기 사신의 특징을 내보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 단편 「검은 고양이」와 곽재식 작가의 작법서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는 서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고양이라는 기묘한 해시태그로 연결된다. 이러한 해시태깅은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다. 이를테면 영화 <대부>에서 돈 꼴레오네의 등장장면에서도 고양이가 나온다. 새로운 작품이 다시 #고양이로 엮인다. 여기에 <마녀 배달부 키키>가 들어간다면 어떨까? 당연히 유서 깊은 <장화 신은 고양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십이간지 전래동화도 포함되리라. 쥐와 고양이는 왜 원수관계인지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해시태그를 이용한 장르 명명 방식이 놀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듯 나의 소비 경험과 발상에 근거한 정체성 찾기, 또는 영역 넓히기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대중문화 서브컬쳐 분야에서는 이러한 해시태그 형태의 소재 중심의 분류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모에’다. 여기에 이르면 완결된 콘텐츠 내부의 요소를 잘라, 그 요소를 바탕으로 작품을 분류하고, 더 나아가 해당 작품군의 소비 여부를 소재가 결정한다. 이것은 기존에 서사를 소비하던 근대적 방식과 믿음, 그러니까 ‘좋은 작품을 보고 소비한다’라는 단순한 명제가 붕괴됨을 뜻했다. 이를테면 ‘안경 미소녀가 나오는 작품만을 찾습니다.’, ‘츤데레 캐릭터가 나와야 합니다.’, ‘나는 흑발 냉미남이 나오는 작품을 찾습니다’ 인 것이다. 해당 작품의 서사에 들어가기 위한 스위치는 작가도, 외부의 평가도 아닌, 내 감성을 움직이기 위한 ‘최애’여야 했다.

 

  장르문학의 ‘장르’는 이러한 요소와 잘 결합할 수밖에 없었다. 장르란 단순히 콘텐츠의 공통 화소를 모아놓은 화소군의 묶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남자는 꽃을 들고 여자에게 다가갔다’라는 문장을 추리 소설 속에서 보았을 때와 로맨스 소설에서 보았을 때 다르게 독해하듯, 장르는 콘텐츠를 읽기 이전에 선행되는 콘텐츠 읽기의 방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 속 요소를 자잘하게 잘라 독자에게 전달했고, 독자는 그 요소들을 선별해서 작품을 받아들였다. 플랫폼에서 해당 요소들을 잘 구분할 수 있도록 해시태그 선택을 UI로 구현한 경우도 많았다.

 

  2019년 텍스트릿의 특집은 새로운 장르들, 바로 해시태그의 분류를 통해 장르문학을 읽어내고, 새로운 매체인 ‘웹소설’에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웹소설 작품을 큐레이팅 하는 것을 목표한다.

 

 

#예술 #음악 #미술 #문학 #메타웹소설

  아주 오래전부터 문학은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재로 삼았다. 소설 역시 철학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예술인 만큼 미학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예술을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웹소설이 예술을 다루는 방식이다. 웹소설 속에서 예술은 잘 시스템화된 상업예술의 시장으로서 현현된다. 이는 웹소설이라는 매체가 가진 특징 탓이기도 하고, 웹소설이라는 텍스트가 현대사회에서 대중문화와 직조되어있는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웹소설은 짧게 쪼개진 분량을 24시간이라는 텀으로 끊임없이 연재를 해야 한다. 판타지 소설의 경우 최소 8권 내외의 분량이 연재되는 게 보통이니 한 권에 25편씩, 약 200일 동안은 주말도 공휴일도 없이 매일매일 연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웹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독서에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출퇴근의 지하철에서, 밥을 먹으면서, 화장실에 잠깐 갈 때, 일 중간의 쉬는 시간에 조금씩 시간을 내어 독서를 한다. 깊은 사고를 요구하거나 이전의 문장을 곱씹는 글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깊이 있는 미학관에 대해서 나열된, 작가의 예술론 특강을 유료 소설로 읽고 싶은 독자는 적을 것이다.

 

  더군다나 웹소설의 텍스트는 아직까지 대부분이 장르문학이다. 소위 제도권 문학에서도 웹소설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한국에서 장르문학과 장르적 요소의 발전은 제도권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만화, 게임,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의 지형 속에서 서로 교차하며 발전하였는데, 그런 만큼 장르문학이 자신의 지형도 속의 상업 대중예술을 표현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수많은 작품이 범람하는 만큼 웹소설이 다루는 예술의 분야 역시도 다양했다. 음악은 재즈와 클래식, 락과 발라드, 힙합까지 장르를 넘나들었고 작곡과 프로듀싱부터 보컬과 악기 연주까지 포지션 역시 다양했다. 그림은 고전미술과 회화, 패션 디자인에 사진까지의 영역도 아울렀으며 연기는 영화 배우와 드라마 배우, 액션 배우를 넘나들었고 시나리오 작가부터 영화 감독까지, 웹소설은 영화라는 구조 전체를 구석구석 남김없이 다루었다. 문학 역시도 웹소설에서 다양하게 구현되었는데 시나리오 작가나 게임 작가부터 심지어 웹소설 작가에 대한 메타 웹소설까지. 이 정도면 웹소설에서 다룬 예술보다 다루지 않은 예술을 찾는 것이 더 빠를 듯하다.

 

  그럼 과연 웹소설에서 예술을 다루는 방식은 어떠할까? 이번 글에서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문학을 다루는 웹소설 중 수작들을 큐레이팅하여 웹소설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설을 추천하고자 한다.

 

샤이나크, 『스타 메이커』

  샤이나크 작가는 전작 『더 랩스타』를 통해 이미 자신의 실력을 훌륭하게 증명하였다. 힙합 가수로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대중음악적 식견과 철학을 재미있게 버무려 작품화했었고, 후속작 『스타 메이커』는 거기서 소매치기 출신의 천재 프로듀서를 내세워 대중음악 시장 전반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아이돌 음악과 영화 OST, 가요계 전반의 이해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상업예술상품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웹소설을 통해서 유쾌하게 펼쳐진다.

 

  샤이나크 작가의 장점은 무엇보다 두 개 이상의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다음 편이 궁금하도록 적절히 배치하는 서사 구조의 능숙함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거대한 서사를 거치다보면 어느덧 483편의 완결까지 도착해 있을 것이다.

 

산경(山景), 『신의 노래』

  웹소설 연재 플랫폼 ‘문피아’의 기록을 갈아치웠던 『재벌집 막내아들』의 저자로 더 유명한 산경 작가의 『신의 노래』는 한글도 모르는 상태에서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가 절대음감의 재능을 토대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는 소설이다. 우리가 익숙한 가요 프로그램과 가수들을 거쳐 클래식 음악으로 나아가며 ‘음악’ 자체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펼쳐나간다.

 

  소설의 주인공 준혁에 의해 구현된 음악은 사람의 희노애락을 본질적으로 건드리고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그야말로 음악적 판타지다. 이것은 오히려 청각적 자극 바깥에 있기 때문에 구현될 수 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판타지적 면모를 독자들에게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고광(高光), 『음악천재를 위하여』

  문피아 독점 연재작인 『음악천재를 위하여』는 최신 유행하는 웹소설의 코드를 조합해 그것을 비틀어내서 독자적인 재미를 구현한 훌륭한 수작이다. 최근 웹소설에서는 과거로 회귀하여 미래의 정보와 과거에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재산을 확보하는 형태의 재벌가 소설이 유행하는데, 고광 작가는 여기에 클래식 음악을 섞었다. 과거로 돌아온 주인공은 재벌가의 막내손자로 빙의하는데, 이 손자의 몸은 음악적 재능이 충만하여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격동시키는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음악 경연대회를 점령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는 강현의 모습은 독자들의 쾌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리라.

 

  다른 완결작들과 달리 이 원고를 쓰는 동안엔 아직 40여 편이 연재된 것이 고작인 신작이다. 그런만큼 현재 웹소설의 트랜드를 파악하고 인기 요소를 조합해내는 능수능란한 필력을 보기에 적격인 작품이다.

 

탈주병, 『기적을 그려라!』

  소설은 글자의 미학이다. 음악과 관련된 소설은 청각을 글로써 전달하여야 하고, 미술과 관련된 소설은 색채의 시각을 글로써 전달하여야 한다. 요리와 관련된 글은 미각을 글로써 전달해야 하고, 이러한 감각의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예술과 관련된 글의 재미는 금새 시들해지고 만다. 앞선 작품이 청각에 집중하고 있다면 탈주병 작가의 『기적을 그려라!』는 보기 드물 정도로 회화적 시각에 집중한 작품이다. 소설을 따라가다보면 방황을 계속하던 이십대 청년 이진호가 능력을 발휘해 성장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필드, 『포텐 폭발, 김작가!』

  웹소설이 웹소설을 다루는 방식은 자못 흥미롭다. 메타 웹소설을 통해 우리는 웹소설 작가가 생각하는 웹소설을 확인할 수 있고, 잘 흥행한 웹소설을 통해 우리는 독자가 생각하는 웹소설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다. 문필드 작가의 『포텐 폭발, 김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웹소설에 대한 이해와 작가의 작업 범위 등 지식을 얻기에 굉장히 좋은 작품이다. 판타지 웹소설에서 환상적 요소란 주인공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서 작동하는데, 서른을 눈앞에 두고도 성공하지 못했던 주인공 김주호가 얻은 능력은 좋은 묘사를 위한 문장력도, 뛰어난 성찰을 바탕으로 한 주제의식도 아니었다. 그가 얻은 것은 시류를 파악하는 능력이었고, 소설을 잘 풀어내기 위한 자료조사 방법이었다. 이러한 서사는 작가의 역량이 순수한 예술을 구현하는 장인의 면모보다 상품을 제작-유통하는 판매자의 역할로 옮겨가는 것을 확인케 한다.

 

 

  웹소설은 꾸준히 창작되고 있으며, 장르적 템플릿은 어떠한 소재를 가져오더라도 손쉽게 작품으로 구현해낸다. 이러한 틀은 더욱 많은 예술을 웹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다룰 수 있게 해 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예술관 또한 웹소설을 통해서 소개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번달에는 위의 작품들을 통해 웹소설이 바라본 예술은 과연 어떨지 한 차례 문화관람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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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텍스트릿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이 공동 기획하여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텍스트릿 필진 이융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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