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신무협은 어디에> - 용대운 선생님을 만나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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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운 (본명최승룡)

 

 

이융희: 먼저 선생님이 대본소에서부터 PC통신대여점을 거쳐 웹소설까지 긴 시간 동안 무협과 함께 해오셨으니선생님의 입장에서 그 동안 무협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용대운: 한국무협사에 대해서는 좌백진산그리고 육홍타 기자님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다만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1978년도 상황부터 말할 수 있겠네요그때가 을재상인의 <팔만사천검법>이 나오면서 창작무협이 막 꽃피기 시작할 때였습니다저는 79년도에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무협소설 뒤쪽에 있는 작가 모집글을 보고 작가 사무실에서 습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작가 사무실 시스템이란 게 실장 밑에 작가와 지망생들을 모집해둔 것이었습니다이때 실장이란 분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대표작가라기보다는 한 두 작품 출간해서 반응이 좋았던 분들이나번역가이신 분들이었습니다제가 79년도에 들어갔던 사무실은 실장님이 조거명이라는 번역가 출신 화교분이셨고그 밑에 유랑이랑 홍련자 두 분이 부실장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밑에 다시 습작생들이 10여명 정도 있었죠.

당시만 해도 약간 주먹구구식이라글을 배운다기보다는 그냥 글을 쓰고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었습니다실장이라는 분들도 딱히 알려줄 게 있었다기보다는원고에서 외래어를 지우고 무협적인 용어를 알려주는 정도였습니다글에 대한 평이 신인들에게 혹독해서거기서 글을 써 출간하는 비율은 10%가 안 되었을 거 같아요저만 해도 3, 4개월 하다가 글을 너무 못쓴다고 구박도 많이 받고 해서 이 길이 아닌가보다 싶어서 그만뒀죠제가 봐도 참 못 썼었어요스토리는 괜찮았는데.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한국무협은 초창기에 위지문의 <검해고홍>이라는 작품을 김광주 선생님이 <정협지>로 번안하면서 시작했어요.본래 대만판 <검해고홍>은 50매 정도 되는 짧은 글인데김광주 선생님이 살을 붙여서 네다섯 권 짜리 장편소설로 만들었습니다한국무협의 태생이 그렇다보니 무협의 창작에 대한 거부감은 딱히 없었습니다사실우리들이 재미있게 읽었던 당시 작품들도 지금 보면 순수중국무협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번안을 하거나 각색을 한 작품도 많았어요중국 작품을 그대로 번역한 건 와룡생의 <군협지>부터입니다.

태생이 그렇다보니당시만 해도 완성된 장르라는 개념이나 대차명표절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었어요단지 좌백이 <대도오서문에서 말했듯읽다보니 읽을 게 없어서 쓴 거죠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읽는데자꾸 읽다보면 불만이 생기잖아요. ‘여기서 왜 주인공이 이런 행동을 했지?’, ‘스토리가 왜 이 모양이야?’ 그렇게 하나씩 불만이 쌓이다 보면, ‘에이내가 쓰고 말지.’ 이렇게 됩니다그 당시 창작무협을 하던 친구들도 다 그렇게 시작을 했지요그때 제가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다들 제 또래거나 3, 4살 위였습니다.

 

이융희: 그렇다면 무협은 어디서 보기 시작하셨나요대본소 같은 곳인가요?

 

용대운: 대본소 밖에 없었습니다그때는 대여점이 없었으니까요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친구 집에서 처음 무협소설을 접했습니다우연히 놀러간 친구네 집에 <비룡>이라는 각각 다섯 권짜리 책이 있었습니다원 작품은 와룡생의 <비연경룡>인데, <비룡>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겁니다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책을 정말 좋아했는데그때만 해도 책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헌데 친구 집에 놀러가니 거실에 퍽 두꺼운 책 다섯 권이 <비룡>이라는 이름으로 있더라고요그래서 무협소설이란 걸 처음 보게 되고그 집 아버님의 허락을 받아 가져왔습니다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책이 두꺼워서 다 읽는데 방학인데도 한 일주일은 걸렸어요헌데 <비룡>은 끝이 조금 아쉬웠어요주인공하고 여주인공하고 맺어지지도 않고악역이 죽거나 사건이 제대로 완료되지도 않고어쨌든 그 집에 <비룡>을 반납하러 가니똑같은 분위기의 <비연>이라는 다섯 권짜리 책이 있었습니다그래서 혹시나 하고 앞부분을 읽어보니, <비룡>의 끝부분하고 이어지더군요그때의 기분이란정말 새로운 세계를 맛본 것 같았죠그때부터 무협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융희: 무협지를 쓰는 방식은 어떠했나요판타지 작가들은 대개 한글 3.1 같이 컴퓨터로 시작했는데선생님께서는 원고지에서부터 시작하셨을 거 같아요.

 

용대운: 당시에는 원고지 값이 비싸서 개인적으로 집에서 쓸 수는 없었습니다헌데 작가 사무실에서는 원고지를 무제한 줬었죠그 원고지가 일반 원고지가 아니라일반 원고지 반 정도 되는 축소된 원고지였습니다칸은 똑같은데 공간만 작아서펜놀림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니 쓰기가 편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악필인 분은 본인 외에 잘 몰라보는 경우도 있었어요감수하는 분도 못 알아보고그런데 또 그런 분의 글을 잘 보는 분이 있어서어떤 작가의 작품은 누구만 볼 수 있다내용을 아는 사람이 이 사람 뿐이다그렇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누군가가 타자기로 쓰기 시작했습니다마라톤 타자기라고 하죠한 84, 85년 정도에 세벌식 타자기가 작가들에게 퍼졌습니다그러다가 워드 프로세서라는 게 생겼습니다라이카에서 나온 건데두 줄짜리 액정이 있어서 타자를 치면 액정에 글자가 떴습니다가격이 상당히 비쌌는데그쪽으로 관심이 많은 분들은 샀었죠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90년대 초반부터였어요헌데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글을 쓸 때도 타자기로 써야 맛이 난다고 타자기를 고집하는 분들이 있었죠.

 

이융희: 지금도 작가들이 기계식 키보드를 고집하는 것과 비슷하군요그러면 이제 다시 선생님의 무협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용대운: 저 같은 경우에는 79년도에 약간 맛만 보고 다시 독자생활을 했습니다그 뒤 건축과를 졸업해서 사무실에 들어갔는데일도 안 맞는데 박봉이었죠그래서 85년도에 다시 작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는데그때는 무협이 거의 끝물이었습니다.

제가 갔던 사무실은 실장님이 해천인이라는 분인데무협 작가 중에서도 연배가 많으신 편이었습니다그때 A팀 실장님이 해천인이었고, B팀은 청운하라는 당시 유명작가였는데청운하 작가님은 저하고 연배가 비슷했습니다그때도 3개월인가 4개월을 하다 그만 뒀는데,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하나는 무협시장이 열악해져서 고료가 너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대차명이 많이 통용되어서 제 필명을 쓰기 어려웠습니다또 하나는그때 같이 글을 쓰던 사무실 친구가 어느 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 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친하니까 이야기 해주는데너 글을 정말 못 쓴다글에는 재능이 없으니 만화스토리 같은 걸 쓰는 게 좋겠다.” (웃음)

 

이융희: 그때는 무협작가 중에 만화스토리를 하시는 분이 많으셨죠사마달 작가님이나야설록 작가님 같이.

 

용대운: 85, 6년부터 야설록 씨 같이 동작이 빠르고 시류를 잘 읽으신 분들은 만화스토리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셨어요당시는 무협시장 고료가 너무 열악했었고만화는 <공포의 외인구단>만 봐도 알다시피 엄청난 붐이 있었습니다저희 같이 글 못 쓰는 애들은 진로 고민을 했죠내가 볼 때도 안 되는 거 같아서……

 

이융희: 그래서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나요?

 

용대운: 86년도 그때 제가 타자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사무실에 타자기가 있었는데신입이라 눈치가 보여서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었죠그래서 남들 퇴근할 때타자기를 배울 생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그렇게 일기를 쓰면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쓰는 데 익숙해졌습니다그 동안 저는 이과 태생이라 머릿속 생각을 글로 푸는데 익숙하지 않았었거든요.

그 후 사무실을 그만 둔 뒤 집에 있으면서 하드보일드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레이먼드 챈들러나더실 해미트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말이죠읽다보면 문장이 너무 멋있어서 그 문장들을 빨간 볼펜으로 쫙쫙 그었습니다지금도 그 책이 집에 몇 개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걸 글로 썼는데 손이 너무 아파서집에 타자기를 하나 두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타자기로 옮겨 적었습니다그러다 다시 다른 직장을 몇 군데 다니다, 88년도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다른 직장을 얻을 때까지 몇 달 기한이 있어서마지막으로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써보자고 했습니다스토리는 다 짜있으니까한 작품만 쓰고 무협소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자 했습니다. 3개월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대학노트 몇 권으로 그렇게 썼죠그 뒤 예전에 습작 관련으로 알았던 그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이틀 있다 연락이 오니작품은 좋은데 신인 이름으로는 책을 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대신 야설록 이름으로 서점용을 찍으면 원고료는 최고로 쳐서 주겠다... 그때 대졸 신입들 월급이 40이었는데그쪽에서 제시한 고료가 권당 60해서 240만원이었습니다그때만 해도 무협을 더 쓸 생각이 없었고고료도 높았었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그게 88년도에 나온 <마검패검>입니다.

출간한 후에 책과 원고료를 가지고 아버님에게 갔습니다아버지께서는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셔서자식이 무협소설 읽는 꼴도 못 보셨습니다헌데 대학도 졸업한 놈이 허구헌 날 방에 틀어박혀 무협을 쓴다고 앉았으니 속이 터지셨겠죠그래서 이제 그 동안 행동의 정리라며 딱 갔더니돈은 돌려주시고는 책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셨습니다그리고 그 다음날 나오시며 하신 말씀이, “이 정도 쓰면글 써도 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그래서 이후 용기를 내서 다음 작품을 썼습니다.

 

이융희: 용대운 선생님의 대표작 하면 <군림천하>와 함께신무협의 효시를 연 <태극문>이 있는데요. <태극문>은 어떻게 쓰시게 된 건가요?

 

용대운: 그 뒤에 출판사가 계속 야설록 필명을 고집하고서점용 무협에서 박스무협으로 전환하며 고료까지 줄여서 창작 의욕이 없었습니다그러다가 92년도 하이텔의 무림동에 가입해서 자기소개를 하고 몇 달 활동을 했는데메일이 어마어마하게 왔습니다그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연재 사이트에 글을 올려 달라 해서예전에 반 권 정도 써놨던걸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른 작품들은 500에서 1000 정도 조회수가 나왔었는데제 건 2만 넘게 나왔죠당시 유명한 <고양이 여인숙>이나 이우혁 씨의 <퇴마록>이 조회수가 2만 가까이 되었는데제 작품이 실조회수는 더 많았었습니다한 2만 5000은 되었으니까요그러던 어느 날 야설록선생님이 서점용 전문 무협 출판사를 차릴 생각인데제 품을 꼭 출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그때 야설록 씨를 처음 봤죠그렇게 낸 게 <태극문>입니다.

그때 야설록 선생님은 <남벌>, <아마겟돈등 만화 스토리의 1인자이셔서야설록 프로 팀이라는 게 있었습니다당시 사무실의 한쪽 귀퉁이에 3팀이라고 무협 쓰는 팀이 있어서 그걸 맡게 되었습니다그때 운 좋게도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좌백풍종호,운중행장경석송냉죽생그 뒤의 하성민정진인 등그리고 그 당시에 하이텔 무림동에서 뫼 출판사 후원으로 작가 공모전을 했는데,거기서 진산하고 이재일이 대상을 받아서 들어왔죠.

그때 사무실 친구들이 옛날 박스무협보다는 나은 걸 쓰자는 생각이 있어서옛날 무협과는 다르다는 의미로 신무협이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그런데 공을 너무 많이 들여서 그런가아니면 나를 닮아서 그런가작품이 너무 안 나오는 거예요.

 

이융희: 아니 선생님께서 직접 그런 말씀을 하시면…… (웃음)

 

용대운: 독자들의 요구는 많았는데신무협 작품은 찔끔찔끔 나왔습니다그때는 한 달에 한 타이틀을 안 쓰면 못 먹고 사는 시대였는데, 10여 명이나 있는 작가 사무실에서 한 달에 한 작품이 안 나왔습니다그래서 그 틈을 비집고 구무협 재간 작품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죠사실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워낙 글이 안 써져서먹고 살려고 예전에 나왔던 <마검패검>부터 재간했으니 말이죠사실남의 필명이 아닌 제대로 된 제 이름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욕구도 컸습니다저의 이름값 때문에 고료도 쌨고요.

여하튼, 93년부터 96, 97년까지를 신무협의 전성시대라고도 합니다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들이 대부분 그때 것이죠다만 전성기라고 하기는 조금 애매한 게작품 수가 너무 적고 활동하는 작가수도 많지 않았어요.

 

이융희: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다고 보시나요그리고 무협의 현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98년부터 <드래곤 라자>를 필두로 장르문학의 주류가 좀 바뀌었습니다구무협 재간은 많은데신무협 작품은 수가 적고신무협 자체도 재미있게 읽기에는 너무 어두운 경우가 많았습니다그래서 수준 높은 환타지가 나올 때 독자들 사이에서 불을 지폈죠. 99년도 <묵향이후로는 무협에 판타지를 가미한 퓨전이 성행하였습니다그 이후 무협은 정체되고판타지가 커지는 경향이 있었죠저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게, 2010년대 이전까지는 무협이 작가층과 독자층이 탄탄했는데, 2010년대 들어서면서 독자층은 물론 작가층까지 얇아졌다는 겁니다.

장르소설에서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쓴다는 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제게는 무협이 개인적으로 애착이 큽니다사실 무협은 용어면에서나 정서면에서나 접근하는 문턱이 상당히 높습니다하지만 예전에는 무협소설 독자수가 어마어마했었어요제 생각에는 지금 좋은 무협이 안 나와서 독자가 숨은 거지무협 독자층 자체는 없어지지 않은 거 같습니다무협 용어나 정서그 특유의 재미를 세월이 지났다고 잊지는 않을 테니까요.

한 편으로는 기대도 가지고 있습니다항상 지나고 보면 이렇게 부진한 시기에 그걸 타파할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요그때는 모르고 넘어가지만뒤에 보면 그랬습니다

(2편에 계속)

 

 

 

※텍스트릿에서 기획·진행한 용대운 선생님과의 인터뷰입니다.  3회에 걸쳐 이틀 간격으로 연재될 예정이며, 퍼가실 경우에는 출처를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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