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신무협은 어디에> - 용대운 선생님을 만나다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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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아까 방금 전에도 <버추얼 파이터>의 아키라 이야기를 하셨는데, 작가분들이 액션을 묘사할 때 무엇을 많이 참고하였나요? 무술교본이나 영화 같은 것 중에서.

 

용대운: 저 같은 경우에는 당시 무협영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싸우는 장면은 쓸 때 동작 같은 걸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읽으면서 주인공이 누군가를 통쾌하게 때리고 싶으면, 읽으면서 내 자신이 흥분되어야 한다는 점이죠. 예전 초창기 무협작가 중에 을재상인이라는 분이 하신 말 중에 그런 게 있습니다. “나는 소설에 좋은 장면을 쓸 땐 웃으면서 썼고, 슬픈 장면을 쓸 땐 울면서 썼다.” 그게 상당히 공감 가는 말 같아요.

대체로 작가들이 자기가 쓰고 나서 이 부분은 재미있는데,’ 하는 건 다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갸우뚱하는 건 반드시 문제가 생기죠. 주인공이 화를 내는 장면에서 자기도 막 격분해서 쓰면, 문장이야 격해지기는 하지만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독보건곤>에서 주인공이 원수를 때릴 때, 마치 내 형을 죽인 놈을 때리는 것처럼 스스로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어서 썼습니다. 그런 원수는 한 대로 때려 죽일 수 없잖아요. 가끔 다른 사람 작품 읽으면 너무 화가 나는 게, 주인공이 정말 원통한 일을 당해서 복수를 하는데 원수를 너무 쉽게 죽이는 거에요. 자기는 백 대쯤 엉망진창으로 맞고 뺨 한 대 톡 때리고는 복수했다고 좋아하는 격이죠.

 

이주영: <태극문>에서 조자건이 과자옥에게 복수할 때도 그런 느낌이 있죠. 끔찍하다면 끔찍하지만 통쾌한 보복장면이었어요.

 

용대운: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설과 비슷한 상황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해요. 그걸 특정하게 뭘 보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무협영화가 많았어요. 특히 무협 비디오, 그중에서도 60, 70년대 대만이나 홍콩에서 만든 무협 비디오가 많았어요. 그 중에서 괜찮은 건 고룡 원작인 게 꽤 되었고요. 고룡의 스토리는 중국에서 굉장히 많이 쓰는 거 같습니다.

 

이주영: 작가님께서는 79년까지 독자생활을 하셨는데, 그 당시 읽은 작품들이 궁금합니다. 고룡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 하는데 그 외에 중국무협을 얼마나 보셨는지요? 그리고 작가님이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으셨던 것 중에 어떤 추리소설이 많이 영향을 줬는지 궁금합니다.

 

용대운: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대본소에 있는 중국무협소설을 읽었습니다. 의외로 지금 분들이 착각하시는 게, 그 당시에는 김용 소설이 인기가 없었어요. 당시에 대본소 최고 작가는 와룡생이었습니다. 1966년 와룡생의 <군협지>가 처음 번역되어서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었으니, 출판사가 엄청나게 벌었겠죠.

그래서 그 뒤 와룡생 작품이 많이 번역되었고, 그것들이 다 인기를 끌었어요. 그러다보니 와룡생 작품이 아니어도 와룡생 이름을 달고 나왔죠. 와룡생 이름만 달면 고정수치가 보장되는데다, 대본소에서도 모르는 작가보다 아는 작가가 더 안전했으니까요. 그래서 고룡이든 김용이든 양우생이든 무조건 와룡생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다 한참 지나서 진청운, 제갈청운 같은 작가들이 나왔죠. 86년도 김용 <영웅문> 시리즈 번역 전에는 김용 이름으로 출간된 작품은 거의 없었어요. 특히 대여점 대본소에서 더 그랬고요. 더구나 김용의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 같은 작품은 훨씬 이전에 번역은 되었었는데, 막상 그때는 인기는 못 끌었어요. 당시에는 와룡생이 최고였죠.

저도 초창기에는 와룡생을 많이 읽었는데, 읽다보니 천편일률적으로 너무 패턴이 똑같았습니다. 항상 정과 사가 대립하고, 주인공은 항상 혈겁을 당해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해야 하고. 그러다가 우연히 <비도탈명>이라는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헌데 완전히 궤가 다른 거예요. 복수니 무림패권과는 상관없이, 오직 한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했죠. 별 거 있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이 과거사를 잊기 위해 돌아다니다 고향에 왔더니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은 누명을 쓴 걸 벗으려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벌어지고... 정말 순수하고 인간적인 얘기였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읽고 집에 가니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그런 스타일로 쓴 작품들을 찾아봤습니다. <절대쌍교><신검마검>까지 찾았죠. 그리고 그때 이 세 작품은 다른 사람이 쓴 거지, 절대로 와룡생이 쓴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작가 사무실에 들어가 습작을 하며 무협 골수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 작가가 고룡이란 걸 알게 되었죠.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고룡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우리나라 창작 무협에 영향을 가장 많이 준 작가가 와룡생이라면, 창작 무협이 활성화가 되면서 실제 사마달 같은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고룡입니다. 물론 고룡 스타일로 써서 성공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가 아는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영향이 꽃을 피운 게 신무협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고룡 스타일은 굉장히 쓰기가 힘듭니다. 자칫 잘못 쓰면 무협 냄새도 안 나고, 인간에 대한 고찰이 없으면 제대로 쓸 수도 없죠. 그래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고룡 스타일로 썼던 작가들은 모두 망했어요. 아예 출간이 안 되거나. 그래서인지 고룡 스타일은 뒤늦게 90년대 들어와서야 신무협 때 비로소 꽃피었죠.

그 당시(구무협)에는 진청운 스타일이 많았습니다. 진청운 스타일은 와룡생과는 좀 다릅니다. 와룡생의 주인공은 한 마디로 정인군자라, 사악한 일은 아예 못하는 영웅문의 곽정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진청운 작품의 주인공들은 조금 정당하지 못한 일도 할 수 있는, 양과 같은 스타일이죠. 그래서 진청운 스타일의 주인공이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작품은 중국 작품하고는 분명히 다릅니다. 국민성이나 지리적인 영향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무협소설은 로써 을 행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 안 들어갈 수 없습니다. ‘라는 게 결국은 폭력으로 자기가 행하고 싶은 좋은 일을 해내는 거죠. 그게 일단 폭력이기 때문에 이라는 요소가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폭력이 충분히 정당화 될 수 있으니까요. 에 대해 우리나라와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방향이 서로 좀 다릅니다.

중국이 생각하는 대의입니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고향 한 번 떠나면 고향사람 만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어떤 좋은 일을 하려면 그 대상이 자기가 모르는 사람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렇기에 <유협열전>같은 옛날 중국 소설을 보면 아주 사소한 은혜지만 그걸 갚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거지로 숨어 다니다 은혜를 갚는, 혹은 자기 목을 쓰라고 주는,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죠.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자객열전>도 비슷하고. 그렇게 대상과 친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어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겁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이 생각하는 의리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의, 의협하면 다 의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압니다. 동향, 친구, 친척 등. 그러니 자기가 아는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의리죠.

중국인들은 가문이나 어떤 큰 집단의 복수를 하는데, 우리는 가정의 복수가 소설의 소재로 많이 쓰입니다. 그렇게 중국인과 한국인의 사고방식도 다르니 무협소설의 기본적인 서사구조도 국가별로 다르죠. 우리나라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여자를 빼앗겼다거나, 가문의 복수를 한다거나... 헌데 중국은 정과 사의 개념을 만들어 좋은 쪽을 위해 헌신하죠.

이 정사 개념도 참 애매한 게, 이건 와룡생이 만들었어요. 그 전의 무협에는 정사 개념이 없었어요. 사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나쁘고,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좋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근데 그런 개념을 와룡생이 만들었어요. 와룡생은 대만의 정보장교 출신이라 대만과 중공의 이념전을 무협화시켰어요. 일반 사람들에게 이념화시키기 좋게. 그래서 와룡생 작품을 보면 항상 정과 사가 들어가는데, 정은 자유진영이고 사는 공산주의예요. 와룡생의 정사개념에서 이 사람은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정파인 게 아닙니다. 이쪽은 무조건 정파고, 반대편 세력은 무조건 사입니다. 좋은 일을 했는지 나쁜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 일에 따라 갈라지는 게 아니죠. 좋은 일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정인 게 아니라, 누군가는 나쁜 일을 한 놈도 있겠지만, 태생이 정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반대되는 애들은 뭘 하며 살아왔던 사파인 거고요.

흔히 말하는 자유진영 공산주의 진영 그 개념에서 나오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일단 받아들인 거죠. 헌데 다시 보니 그 정사개념이 뭔가 아니거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따지기도 좋아하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고, 게다가 6.25 전쟁 이후로는 일방적인 정사 개념을 따지기는 좀 뭐하고.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협에서 자꾸 정사의 이유를 따집니다. 왜 얘는 정이고, 얘는 사인가? 그러다 보니 정파지만 나쁜 짓하는 캐릭터가, 사파지만 사실은 괜찮고 공감 가는 캐릭터가 등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무협은 조금 더 풍요롭고 다양해졌죠. 인간다워졌다고 할 수도 있고.

옛날의 무협소설 주인공은 너무 바른 생활 사나이라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미 최강고수인데 일편단심에, 인의만 찾습니다. 예쁜 여자를 더 거느리려 하지도 않고, 악당이고 자기의 원수지만 인의를 따져 용서하죠. 우리나라 사람 정서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일단 죽이고 보는 거지. 거기서부터 갈립니다.

거기서 갈리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무협소설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그렇게 자꾸 갈리다보니 지금은 중국무협소설과 한국무협소설이 가는 길이 많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무협소설 읽으라고 하면 김용 영웅문 같은 몇몇 작품 외에는 다들 고루하다고 읽지 않을 겁니다.

 

  서원득: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궁금한 게 많이 풀렸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남은 궁금증이 하나 있어요. 제가 무협이론을 공부하다보면서 느낀 겁니다. 선생님께서 대리만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그 단어자체를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론이 어디서 온 건지 알고 싶습니다.

 

  용대운: 분명히 무협의 가장 큰 요소가 대리만족이라는 말은 제가 한 겁니다. 저는 대리만족이 재미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대리만족을 추구한다하면 왠지 아래로 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협소설을 읽게 된 동기는 무협소설이 재미있기 때문이고, 그 재미는 소설이 제게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죠. 우리가 왜 순수문학을 안 읽고 장르문학을 읽겠습니까? 재미있으니까 읽는 거지. 근데 이제 재미를, 대리만족을 추구한다고 그러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인간에게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수치스러워하죠. 하지만 작가라면 그걸 직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늘 작가는 자기 작품이 재미있는지, 독자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있는지 계속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합니다. 요즘 많은 작품들이 쓰다가 흐트러지는 경우를 보여요. 1권 부분, 유료연재 전환부분부터 글이 급격히 흐려지면서 안 좋아지는 경우죠. 그게 연재에 급급해서 내 작품이 재미를 주고 있는가를 처음에는 생각했다가 나중에는 안 하게 된 게 크다고 봅니다.

장르소설의 근간은 대리만족이고, 그걸 추구하는 게 작가의 가장 큰 목표라는 생각은 안 접었으면 좋겠어요. 멋있고 화려하고 근사한 문장도 좋지만, 아무리 근사한 문장을 써도 그게 재미가 없으면 대충 갈겨 쓴 재미있는 소설만 못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래요.

 

이주영: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리면 될 거 같네요. 작가님께서는 <태극문>으로 신무협의 시작이시기도한데, 앞으로의 신무협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대가 있으신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용대운: 신무협은 역할 면에서 보았을 때, 저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신무협이 나왔을 때 많은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았던 건, 구무협에 대한 반발로 인한 것이거든요. 좀 더 제대로 된 소설이 쓰고 싶다. 개연성도 맞고, 중국적인 뽕도 덜 들어가고, 천편일률적인 패턴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신무협의 취지는 진즉 달성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신무협이 붐을 더 일으켰으면 좋았겠지만, 작품 수나 작가 수에 대한 어떤 한계가 있었고, 그 뒤의 퓨전무협의 바람에 휩쓸려 버렸죠. 지금 굳이 신무협을 따라 하기에는 신무협의 정신이나 취지가 달성된 상태이고, 이미 알게 모르게 퓨전 등 다른 소설에 반영되어 있으며, 그만큼 장르소설의 구성 또한 많이 바꿨다고 봅니다.

신무협이 아니라 무협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무협은 분명히 침체기입니다. 접근성도 낮고, 좋은 작품도 적고, 쓰는 작가나 읽는 독자수도 예전에 비해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무협 자체가 대하서사적인 구성이라 회당 짤막짤막한 데서 성과를 보여야하는 데, 현대 웹소설 시장에서는 분명히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무협소설은 성장이나 복수의 과정이 짤막짤막하지 않아요. 짤막한 1-2화 분량 안에 주인공이 어떻게 고수가 되겠어요? 제대로 된 싸움을 쓰려고만 해도 몇 회에 걸쳐 써야 하는데. 하지만 지금 시장 상황에서는 그렇게 쓸 수가 없습니다. 무협이 시든 이유 중 하나도 웹 연재 시장과의 충돌이 있겠죠.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모든 건 거기에 맞춰 다 적응이 됩니다. 무협을 쓰는 방식도 이미 그렇게 조금씩 변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웹소설에 맞는 변형 발전의 기틀이 곧 생기리라 보고, 또 여기에 맞는 탁월한 작품이 분명히 등장할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빨랐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아직 무협을 쓰고 있고, 진한 애착을 가진 한 명의 골수독자니까요. 무협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일시적인 침체를 겪을지언정 무협의 생명력은 계속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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