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를 만든 영웅들> - 이경영 선생님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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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희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연구자 이전에 작가고, 작가 이전에 선생님의 가즈나이트 시리즈를 독파하며 열광했던 한 명의 팬으로 오늘 만남이 정말로 기대되고 두근거립니다. 오늘은 선생님이 글을 쓰시면서 느끼셨던 점이나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정과 현재의 근황, 창작론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복합적으로 여쭤볼 것 같은데요. 제일 먼저 여쭤볼 질문은 글쓰기와 창작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데뷔 하신 지 20년이 되셨는데 글을 쓰신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세요?

 

이경영 : 글을 쓰는 그 순간은 즐겁다는 느낌보다는 늘 어렵고 괴롭다는 느낌이 먼저 오죠. 특히 과거에 대해서 많은 후회를 하는데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라고 해도 스스로가 한 일이니만큼 그 모든 것들을 반성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글쓰기의 동력을 얻는 편이에요,

 

이융희 : 선생님의 첫 창작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이경영 : 제 또래의 다른 분들과 비슷할 거예요. PC 통신이 시작되고, 그곳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고요. 그 무렵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일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올린 글에 대해선 기억이 잘 없어요. 첫 글은 잘 안 됐고, 두 번째 글이 가즈나이트였어요. 중학교 때부터 간직하고 있던 스토리가 있었거든요. 그 무렵에 종종 하던 게임들의 영향을 받고 저런 세상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그전까지 글을 배운 적은 없었어요.

 

이융희 : 연재하시면서 그냥 무작정 글을 쓰셨던 거군요.

 

이경영 : 띄어쓰기조차 공부한 적도 없었죠. 이 글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없었고요. 그래서 글쓰기의 책임감도 옅었어요. 판매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그냥 원고를 주면 책이 나오고, 원고료를 받고. 그런 개념이었죠. 제가 글 쓰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처음 느끼게 된 것은 군대에서부터였어요. 군대에 갔는데 7~8살 차이나는 훈련생이 와서 저보고 팬이라고 사인을 받아가더라고요. 그때 제가 느낀 것은 압박감이었어요. 많은 분께서 저를 그렇게까지 기억해 주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죠. 저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원고를 주면 돈을 받는다는 개념으로 쓴 건데, 내가 기억에 남는구나…… 그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이융희 : 그때의 만남이 작가님께 큰 영향을 주었군요.

 

이경영 : 제가 군대를 늦게 갔어요. 그래서 제대한 이후 글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본격적으로 고민을 한 것이 30대였지요.

 

이융희 : 이전까지는 글공부를 하신 적이 없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다른 글을 보거나 참고하신 적도 없으셨던 건가요? 비로소 30이 되어서야 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고민하셨다고 하시니…….

 

이경영 : 데뷔 이전에 글을 많이 보거나 그렇게 즐기지 않았어요. 예전에 무협 소설이 많았잖아요? 처음엔 아, 이거 참 재밌다 하고 보는데 다른 책을 보니까 이름만 다르고 내용이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독서를 그만뒀죠. 『은하영웅전설』 같은 경우는 해적판으로 나왔던 것을 봤어요. 용어가 어려웠지만, 꾸준히 읽었죠.

 

이융희 : 정말 놀라운 점이 저는 선생님의 글들을 보면서 감탄했던 때가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이었거든요. 수많은 캐릭터가 각자의 정의에 따라 따로 움직이다가도 마지막권을 향해 오면서 사건들이 수습되는 것.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쾌감이 참 좋아서 이야기를 몰아치면서 읽어내렸던 기억이 나요.

 

이경영 : 제가 수습하는 것에는 재능이 있어요(웃음)

 

이융희 : 수습한다고 하시면 처음부터 엔딩이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를 짜는 편은 아니시고요?

 

이경영 : 전체 시나리오를 짠다는 게 참 어렵죠. 왜냐하면, 출판사와 출판 스케쥴을 짜다 보면 “작가님. 인기가 좋으니까 2권 정도 늘리죠.” 뭐 이렇게 제의가 오가고 하다 보면 미리 짜놓은 스케쥴에 변화가 필요해지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언제나 여지를 남기는 거죠, 스토리에. 대신 누가 봐도 납득이 갈 정도의 여지를 남기는 것. 만화책 중에 『나루토』나 『블리치』를 보면 아, 이 작가님이 수습하고 내용 짜내느라 고생하겠구나 하는 게 보여요(웃음)

 

이융희 : 30세 이후로 그럼 글쓰기에서 어떤 변화를 시도하셨나요?

 

이경영 : 그때부터는 손해를 각오하고 실험을 계속했어요. 사람들에게 선택받기 힘든 주제들을 선택했거든요. 수인들이 나오는 글을 쓰거나, 용타고 날아다니는 소설을 쓰거나…… 지금의 관습으로도 낯선 소재들을 꾸준히 쓴 거죠. 기본적으로는 거의 SF였고요. 또 다른 시도로는 『가즈나이트 R』이 있어요. 예전 내용을 지금 사회의 가치관에 통용되도록 수정해보려고 했죠. 20대 무렵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관들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닌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런 내용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이융희 :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시는 것을 보면 확실히 다른 작가분들과 발상의 시도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경영 : 저는 동시대에 다른 사람 작품들에 대한 독서가 많지는 않아요. PC 통신 시절에도 그냥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좋았어요. 20대의 패기가 있잖아요. 잘 몰라도 막 쓰고……. 1주일에 한 권 분량 막 쓰고 그냥 마냥 쓰는 것이 즐겁고. 그랬었죠.

 

이융희 : 그때부터 작가를 꿈꾸거나 하신 적은 없으세요?

 

이경영 : 그냥 재미있어서 썼어요.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그 시기의 대다수 작가가 그럴 거예요. 작가가 되려고 쓴다기보다는 그냥 그런 공간이 생기니까 글을 썼고, 그러다가 한 번 출간해봅시다. 또는 ‘모시고 싶습니다’ 연락받고 글을 쓰고, 출간하고 그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글을 오래 쓴 작가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작가의식을 가지고 글을 쓰고 만드는 사람보다는 자영업자의 마인드로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안 그러면 살아남기 힘들죠.

 

이융희 : 20년 정도 글을 쓰시다 보면 그사이에 PC 통신부터 종이책, 그리고 웹소설의 시장까지 매체 변화에 따른 글의 형식 변화 등을 직접 경험하고 계실 텐데, 그 체감이 어떠세요?

 

이경영 : 카카오페이지 등을 통해서 작품이 서비스되면서 많이 배웠어요. 이를테면 최근 시대에 맞춰서 제가 사용하고 싶은 언어들, 작품 속에 구사하는 문장들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 안 되느냐. 각종 차별적인 문제나 내용이 어느 정도까지 지켜질 수 있느냐 없느냐. 그 점을 찾기가 처음엔 어려웠는데 연재를 거치면서 최근에는 대충 잡혔죠. 그 외에도 연재 형식이다 보니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감각을 찾는데 어려웠어요. 감으로 때려 맞추는 수밖에 없었죠(웃음)

 

이융희 : 간간이 PC 통신 연재와 지금의 웹소설 연재가 둘 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연재이니만큼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선생님이 직접 체험해보신바 차이가 큰가요?

 

이경영 : 물론 크죠. PC 통신은 그냥 글을 올리고 싶은 사람들이 자기 의지로, 아무런 대가 없이 올리던 곳이었죠. 그러나 지금 웹소설 시장은 대가를 바라고 글을 써 올리는 공간이에요. 그건 근본적인 차이를 갖게 됩니다. 장삿거리가 되는 순간 사람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거든요. 이미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자기의 개인 사업자 명의로 글 쓰는 분들도 계시고, 개인 편집자를 모셔서 일하는 분들도 계시죠. 출판사와 플랫폼, 작가가 다이렉트로 계약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겁니다. 에이전시 업체도 사업적인 부분으로 작가를 모으는 역량처럼 이제는 시장적인 부분이 더욱 부각되었지요. 제가 이전에 시험적인 글을 썼다고 말씀드렸지요? 아무리 시험적인 글을 쓴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시장적 측면을 신경 안 쓸 수가 없게 되었어요. 작가분들이 글을 썼는데 잘 안 됐을 때, 망했을 때 보통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라고 자위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후회하는 건 변함 없거든요. 그래서 5년 이상 일 한 작가들은 프로의식과 안전의식을 가져야 하게 되었죠. 자기가 상업활동을 하고 있다고 인지하는 사람들이 오래 가더라고요.

 

이융희 : 상업성이라는 부분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웹소설이라는 곳이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해서 자본과 바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요. 웹소설은 상업과 굉장히 연결된 예술, 상업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경영 : 그게 참 어렵지요. 상업예술을 한다고 할 때 사람들은 상업까지는 이해하는데 예술로 이해의 폭을 쉽사리 넓혀주지 않거든요. 예술은 작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글은 보여주기의 난이도가 제일 높은 예술입니다. 특히 한글의 경우는 단어 어휘력과 단어 선택을 통해 예술을 구현하는 게 무척 힘들어요. 언어와 문장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예술을 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영역까지 공부하고 파고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상대가 오해하는 때도 많고요. 최근에 라디오를 들었는데 흔히 쓰는 관용구 중에 ‘버선발로 뛰어나간다.’라는 말 아시죠. 그 버선발이 버선을 신은 발처럼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벗은 발’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단어를 쓰고 이해하는 것이 그런 레벨까지 내려가는 사람들이 예술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예술성의 영역으로 내려간 글은 상업성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이런 부분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죠.

 

(2편에 계속)

 

 

 

 

※ 텍스트릿에서 기획·진행한 이경영 선생님과의 인터뷰입니다. 3회에 걸쳐 이틀 간격으로 연재될 예정이며, 퍼가실 경우에는 출처를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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