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를 만든 영웅들〉 - 이경영 선생님을 만나다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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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희 : 『가즈나이트』라는 캐릭터는 각자가 각자의 가치관과 생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혹시 캐릭터를 만들거나 다룰 때 고려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이경영 : 기본적으로 캐릭터 작성을 할 때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끝까지 파고드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캐릭터가 있고, 그 사람이 A라는 상황을 맞닥뜨렸다고 할게요. 그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반응을 하는지 예측해보는 거예요. 비상식을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허용이 가능한 정도의 차이를 계속 주는 거죠. 그럼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때부턴 캐릭터를 제어하는 시기가 와요.

 

이융희 : 캐릭터를 제어하기 위해선 그 캐릭터에게 몰입하시나요?

 

이경영 : 분명 캐릭터를 제어하기 위해선 그 캐릭터가 되는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캐릭터에 너무 애정을 쏟으면 캐릭터를 이용해 소설을 쓸 수 없어요. 스토리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만들어야 해요. 저는 캐릭터마다 사고체계를 파티션 나누듯이 따로 만들었어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은 취재를 해서라도 이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왜 이렇게 행동을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사고체계를 데이터베이스화했지요.

 

이융희 : 그것이 다양한 캐릭터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군요.

 

이경영 : 일본에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가 왔을 때 출간된 만화를 보다 보면 흔히 보이는 실수가 캐릭터들의 사연을 무작정 넣고, 개성으로 점철시키는 거예요. 오히려 이런 경우는 개성에 매몰되어 캐릭터를 기억하기 힘든 경우가 생기죠. 편집부가 세부적인 디자인 하나하나까지 참견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것이 가속화되다 보니 나온 결과일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글쓰기를 할 때는 그보단 자유로운 점이 있어요. 자기 자신이 납득하는 선에서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그 납득하는 선을 친구들에게서 자주 가져왔어요. 그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에 집중하고 왜 저런 단어를 자주 사용할까, 왜 저런 행동을 자주 할까 고민했죠. 직접 물어볼 때도 많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버릇들이나 사고들로 캐릭터를 만들면 정말 엉뚱한 생각이 아닌 이상 사람들이 잘 받아들여요. 물론 실패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요. 하지만 작가가 거기에 오래 매여있을 필요도 없어요.

 

이융희 : 캐릭터에 몰입을 깊게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런 캐릭터 활용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너무 캐릭터에 자아를 투영하거나, 의탁해서 창작하다가 소설의 고삐를 놓치는 작가들을 몇 차례 보았거든요.

 

이경영 :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소설 전체에서 작가가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전체를 조망하는 건 중요해요. 분명 몰입을 해야 할 때도 있죠, 하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이 기억에 남을 장면을 만들 때 이루어지는 단편적인 순간에 불과해요. 그리고 그러한 의도가 독자들에게 완벽하게 전달될 거라는 장담도 없고요. 그러한 의도를 잘 구현하고 계산적으로 만드는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네요. 억지로 명장면을 만들려고 하다가 묘사가 꼬이거나 과장되면 그것이 되레 와닿지 않아서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거든요. 오히려 우연의 산물들이 명장면을 만드는 경우가 많지요. 작가가 느끼는 인물과 독자들이 느끼는 인물의 느낌이 다른 만큼 의도된 작품이 의도된 느낌으로 전달

 

될 수 있다는 건…… 해몽을 잘해준 독자분들에게 감사해야죠(웃음)

 

이융희 : 그럼 캐릭터를 만들고 끌고 가시는 데 특별히 힘드셨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경영 : 악역 전부! 저는 악역 캐릭터들을 끌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제 소설에서 악역이 좀 특징적인데, 『가즈나이트』 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에 나온 악역들도 터무니없이 엇나간 인물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 납득이 가는 선에서, 아니면 비위를 덜 상하게 하는 선에서 악역을 저지르고 악행을 하죠. 아예 맛이 간 캐릭터,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는 없습니다. 그게 제 한계일 수도 있구요. 덕분에 기억에 남는 악역들이 정말 없네요.

 

이융희 : 왜 그렇게 악역을 조형하셨어요?

 

이경영 :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나쁘기 때문에 나쁜 캐릭터’ 보다는, 스토리 상 악역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글들의 모든 진행 방향들이 이 인간들이 과연 악일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하고 싶었어요. 단순한 가치관 차이에서 악이 되는 것을 묘사하려고 했죠.

 

이융희 : 그 가치관이라는 게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악역이 아니라 친구들끼리도 종종 다투고 동료들끼리도 이합집산을 반복하잖아요.

 

이경영 : 친구들끼리도 당연히 충돌하죠. 지금까지 만들어낸 상황을 자연스럽게 서로 부딪치게 하기만 해도 그렇게 되는 거죠. 갈등 구조는 당연히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힘으로 억누르는 캐릭터가 있으면 능글맞게 넘어가려는 사람이 있을 거고, 설득하려는 사람이 있을 거고……. 그게 납득이 가는 한도 내에서 조정한다면, 그러면 아주 쉽고 흡수력 좋은 갈등 구조가 만들어지는 법이죠.

 

이융희 : 이 인터뷰를 진행하러 오기 전에 팬분들이 ‘리오 스나이퍼’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많이 표현해주셨어요. 그 캐릭터에 대한 느낌은 어떠셔요?

 

이경영 : 리오는 지저분한 케이스로 인해서 가치관이 변하는 경우죠. 그것을 드러내주기 위해 딱 좋았던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초기에 나왔던 초기형 리오와 후기형 리오는 아예 다른 인물로 카테고리로 나눠서 창작되었고요. 두 캐릭터의 사고방식이 아예 다른 건 아니에요. 비슷한 캐릭터지만 조금 다른? 핵심은 자신이 상처 입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캐릭터고, 그때 당시에 젊은 시절의 제 모습이 다 대변되었던 캐릭터였죠. ‘누군가가 날 이해해줬으면 좋겠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유일한 캐릭터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독자분들도 쉽게 리오라는 캐릭터에 투영되었던 것 같아요. 나이를 먹다 보면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잖아요. 비슷한 나이에 성장하시고 결혼하고 애를 낳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죠. 옛날에 이랬지 하면서 추억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리오라는 캐릭터 속에 많이 들어있죠. 그래서 작품이 변하고 캐릭터가 변하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좋아하던 그 리오가 아닌데. 그렇게 말이죠. 그래서 억지로라도 리오 스나이퍼라는 캐릭터를 두 층위로 카테고리를 분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얘는 그때 걔 아냐.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된 거야.’라고 이야기 해야 했죠.

 

이융희 : 이쯤 되면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고 싶어요. 선생님에게 『가즈나이트』라는 소설은 어떤 의미신가요? 

 

이경영 : (선생님은 이 질문에 대답하시기 전 오래 고민을 하셨습니다) 되게 어렵네요. 다시 보기까지 20년이 걸린 글……. 딱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다시 봤던 것 같아요. 그때 모 출판사에서 신장판. 다시 나왔는데. 용기를 내서 책을 봤어요. 그리고 느낀 건……. ‘와 정말. 거침없이 정말 잘 썼구나.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자기가 글을 못 쓴다는 사실조차 잊고 글을 썼구나. 어떤 복잡한 표현도 들어가 있지 않고 단순한데, 그 단순함에서 그냥 여태까지 진리에서 벗어나 있었구나.’ 그런 반성을 하게 됐어요. 『가즈나이트』는 저한테 있어서는 창작물이자 스승이고, 스승이자 그냥 같이 가는 친구. 어쩔 수 없이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친구. 그렇게 생각해요. 『가즈나이트 R』 때 아까 가치관을 바꾸고 썼다고 했잖아요? 그랬더니 이 작가 과거의 『가즈나이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말도 들었어요. 부정하는 사람이 글을 어떻게 써요.

(3편에 계속)

 

 

※ 텍스트릿에서 기획·진행한 이경영 선생님과의 인터뷰입니다. 3회에 걸쳐 이틀 간격으로 연재될 예정이며, 퍼가실 경우에는 출처를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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