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를 만든 영웅들〉 - 이경영 선생님을 만나다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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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희 : 요즘 신작을 준비하신다고 들었어요. 선생님이 준비하시는 신작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신다면 어떠실까요?

 

이경영 : 20년 동안 사회 변화를, 가치관 변화를 주목해서 지켜봤어요. 인터넷의 형태와 그 안의 네티즌이라는 사람들이 많이 변화했잖아요. 그게 10년, 100년, 1500년 정도 흐르고 난 뒤 인간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생각해보았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2~30년 전에는 애완견을 장사지내고 땅에 묻는 걸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일부에서는 그걸 이해 못 하면 야만인인 것처럼 취급하잖아요. 자기가 기르던 개한테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사람도 나오는데,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도 그렇게 정서적인 관계로 변화되지 않을까요. 인공지능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은 자기감정이 남에게, 타자와 사물에게 전달되었다고 잘 착각하는 동물이거든요. 최근 재미있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어르신들이 인공지능 응답형 IPTV를 더 좋아하신다는 거예요. 제가 한 번은 부모님에게 여쭤봤어요. ‘이걸 왜 좋아하세요?’ 하고요. 그랬더니 대답이 ‘걘 대답을 정말 상냥하게 해주거든.’ 하시는 거예요. 부모님에게 서비스 정신을 담긴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인공지능은 그 부재하고 있는 정서를 채워주니까 인간도 인공지능에게 감정을 주잖아요. 그런 미래가 계속되면 인공지능에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단순한 욕구 해소를 하는 걸 떠나 인격적으로 분류를 하는 단계가 곧 올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제안을 하고 싶은 게 이번 글의 중요한 목표예요.

 

이융희 : 인공지능의 인권과 사람 간의 거리, 그리고 관계와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으신 거군요.

 

이경영 : 그렇죠. 지금 개발된 인공지능들 같은 경우는 말이 인공지능이지 사실 선택권이 없잖아요? 그런데 공포나 두려움에 대한 걱정은 많아요. 이를테면 인공지능이 나중에 핵폭탄 스위치를 주는 거 아니냐 하는 걱정들. 하지만 이런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로봇에게 권한 자체가 주어지지 않을 거예요. 인공지능에게 인격이 생기고 최소한의 선택 권한이 생기게 되면 인간들이 나서서 법을 만들지 않을까요? 저는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아마 판타지에서 다른 종족처럼 다른 분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융희 : 인간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경영 : 많은 경우 인간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작가는 설명하지만 대부분 단 1화 만에 깨지게 되어있어요. 사실 다른 가치관이 있으면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기 힘들죠. 단지 이러한 문제 제기는 소재로서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것을 중점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융희 : 그럼 선생님은 앞으로 SF 소설을 꾸준히 쓰시는 게 목표인가요?

 

이경영 : 전체 작가 생활의 최종적 목표가 있다면 괜찮은 SF소설을 쓰는 거예요. 다른 소설에서도 이미 우주에 대한 로망이나 몇 가지 요소를 조금 넣었긴 하죠. 우리나라는 과학적 탐사에 대한 신비감이 별로 없어요. 로켓 날아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조차 거의 없죠. 우주개발이 사람들의 로망을 뺏어갔죠. 결국, SF소설들이 성공하려면 엄청난 지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싸한 부분을 설득력으로 보여 줘야 하지요. 그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고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해서 집필했는데도 불구하고 인정받는 SF라면 성공의 지표라고 할 수 있겠죠.

 

이융희 : 그럼 SF 작품들을 많이 읽으시는 편인가요?

 

이경영 : 어렸을 때 꿈이 과학자였어요. 이건 뭐 제 나이대 사람들이 대부분 갖는 꿈이기도 하고, 아저씨들의 로망이라고 해야죠(웃음). 그렇지만 철학적인 면이나 지식을 잘 버무려서 쉬운 용어를 이용한 집필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럴 경우 SF가 아니라 컬트 작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죠.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소설 같은 경우는 드물고, 니헤이 츠토무. 『시도니아의 기사』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요. 그분 작품들을 쭉 훑어보면 처음에는 자신의 세계에서만 만화들이 만들어지거든요. 되게 불편하고 못 그린 그림들이 나와요. 그런데 작품이 거듭될수록 좀 더 친절하게 바뀌지요. 그런 걸 살펴보는 케이스로는 굉장히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작품들이 영상화가 되었을 때 가장 그럴듯한 형태로 구현되곤 하거든요. 『블레임!』도 그렇죠. 사람들이 보면 이게 뭐냐 싶겠지만 그분의 전작들을 보자면 굉장히 타협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죠. 그리고 또 쉬운 SF의 발판으로 역사적 구성을 만들어낸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 속에 자신의 역사관과 정치적 견해를 넣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세계관과 등장인물들을 꾸렸죠. 그 중에선 실상을 기반으로 한 인물들도 있고 가상을 기반으로 한 인물들도 있지요. 뭐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는 것은 주인공들의 모습이나 전함의 모습이겠지만요(웃음) 시간이 흐르면서 집단화된 다른 지성들이 해당 소설의 부족한 내용을 보충해주는 모습은 창작할 때 참조할만한 힌트를 주더라고요.

 

이융희 : 이제는 창작장, 시장과 판타지 소설 업계의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려고 해요. 선생님은 현재 판타지 소설 시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경영 : 세 번째 반복되는 세계라고 생각해요. 흥했다가 망했다가 흥했다가 망했다가. 그 흥망성쇠의 과정이 비슷하죠. 만약 지금의 판타지 소설 시장이 망하고 끝난다면, 그럼 또 다른 것이 나타날 거예요. 그리고 좀 더 소비재 적인 측면이 강해지겠죠. 장르에 대한 자체적인 인식이 크게 변화한 것 같진 않아요. 옛날에는 글이 안 좋으면 ‘대여하기도 아깝다’ 했지만, 지금은 ‘구매해서 누르기도 아깝다’ 식으로 이야기하잖아요. 본질은 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의 차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매체와 규모만 바뀐 거죠. 차이가 있다면 옛날엔 불법 복제본이나 텍본 같은 것들은 디스켓 등을 통해서 주고받아야 했는데 지금은 그냥 인터넷에서 보게 된다는 편리성? 그렇다보니 이러한 편리성의 시장에서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고 펼칠 것인가 고민해야 하죠. 장사라고 생각하면서 각종 요금체계나 소비체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는 회사는 없죠. 결국, 얼마나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서비스할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신경만 쓰게 되는 거고요. 이를테면 “이 연재글은 특별하니까 더 비싸게 서비스하겠습니다.” 같은 개념이 없어요. 분량이나 퀄리티나 작가에 대한 프리미엄. 가격에 대한 격차나 시장구조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예요.

 

이융희 : 그럼 지금 시장에 처음 들어오는 신인 작가분들, 후배 작가분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어려운 시장이라는 점은 많이들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사고인데.

 

이경영 : 이상에 배반당하더라도 계속 수면을 향해 나아가라. 계속 헤엄쳐야 한다고 해요. 시스템 구조상 작가가 되겠다고 도전했다가 익사하는 작가들은 끊임없이 나올 거예요. 자신의 믿음과 그리고 시스템이 보여준 배반조차도 받아들여야 해요. 그것밖에 없어요. 어쩌겠어요. 그것을 밥벌이로 삼은 순간부터 업이 되어버리는 건데요. 후배 작가들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는 일화가 있어요. 이를테면 작가 사무실 같은 곳에서 작가들이 모여서 일할 때 후배 작가들이 선배 작가 누구누구에 대해서 평을 할 때가 있거든요. 저 선배 글. 마음에 안 드는데, 잘 팔리지도 않는데 왜 출판사에서 계속 계약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것도 재주야. 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요. 10년 이상 활동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그런 작가들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없고요.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까 웃긴 일이, 사업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돼요. 아, 사업은 대출받으면서 할 수밖에 없구나하고요. 어머니랑 이야기하다가 대출과 관련되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머니가 물으시더라고요. ‘너는 어떻게 대출에 대해서 잘 아니?’(웃음)

 

이융희 : 요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작가와 독자의 거리감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히 『가즈나이트』의 경우는 워낙 충성스러운 독자분들이 많으셨잖아요. 그런 팬덤분들과 교류를 하시기도 했나요? 팬픽 같은 거나 그림 같은 것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

 

이경영 : 20대 후반까지는 『가즈나이트』의 팬덤과 교류를 한 적이 있어요. 뭐 직접적으로 대화를 많이 나누고 그런 건 아니고 그분들이 동인지 나왔다고 하면 거기에 사인해드린다거나 하는 정도? 그런데 되게 독특한 케이스가 한 번 있었죠. 어떤 분이 네이버 블로그에 감상평을 올린 적 있으셨거든요. 그냥 민간인으로 일반 독자 같으셨는데, 그 밑에 평 남겨주셔서 감사한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막 화를 내시는 거예요. ‘아니, 작가분이 직접 댓글을 남기면 제가 뭐 부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오해를 받지 않겠느냐.’ 같은 식으로요. 그때 많은 생각을 했죠. 행사를 해주는 것은 여전히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제가 일체 개입한 적은 없어요. 그것은 오로지 그분들의 자유인 거죠. 『가즈나이트』란 작품과 이경영이라는 작가는 별개의 존재이고, 제가 팬분들의 행사에 개입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융희 : 요새는 그런 팬덤 문화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전독시> 같은 아주 일부의 작품을 제외하곤 말이죠.

 

이경영 :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잘 관리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많은 출판사들이 그냥 세월에 따라 흘러가는 그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방치하죠. 이를테면 한 작가가 데뷔한 지 20주년 기념작이 나왔다. 그리고 그걸 행사를 하고, 그렇게 팬들과의 모임이 있고, 그런 와중에 행사를 계기로 저변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 식으로 기대를 갖고 추진을 하고, 체계적으로 진화된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게 되질 않죠.

 

이융희 : 그럼 작가와 독자와의 거리에서 댓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경영 : 그건 각자 선택하는 취사선택이라고 느껴요. 어떤 작가는 작품을 올린 후 알람이 안 오면 반응이 없는 게 불안해서 잠이 안 온대요. 잠이 안 온다는데 어떡해요. 글 좀 봐 주십사 영업을 해야죠(웃음) 거리감은 각자 판단해서 각자가 이것은 아니다라고 깨달으면 좋은 것이고, 그것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얻고…… 취향 차이라고 여겨요.

 

이융희 :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글을 지켜봐 주시는 독자분들에게 한 마디를 남겨주신다면!

 

이경영 : 제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가장 먼저 지적받았던 시기가 고2였어요. 그게 95년도네요. 소설 속에서 동성애자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묘사하냐고 정식으로 항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 소설 속에서 정치적 올바름과 윤리관에 대해 굉장히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나름의 상처가 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네티즌들이 소비재 성격으로 사용하는 동성애 이슈와 성 소수자 본인들이 여기는 이슈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 독자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계속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융희 : 오늘 인터뷰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인터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텍스트릿에서 기획·진행한 이경영 선생님과의 인터뷰입니다. 3회에 걸쳐 이틀 간격으로 연재될 예정이며, 퍼가실 경우에는 출처를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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