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르의 탄생 – 해시태그와 장르문학

2편 #무협 #귀환물

 

 

지금, 이 시대의 무협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협은 장르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이것은 플랫폼의 변화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PC통신에서 시작한 신무협, 혹은 80년대의 구무협은 근본적으로 장편 서사였으며, ‘책’을 부분적으로 쪼개 연재한다는 감각이 강했다. 80년대 구무협은 대본소에 이미 완결된 상태로 책을 넘겼으며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연재되었던 신무협은 분량의 증가와 함께 ‘단행본’을 염두에 두고 연재가 진행되었다. 즉, 무협 내부에 존재하는 장르의 강력한 규약을 작가 나름대로 풀어나가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충분히 주어진다고 할 수 있다. 보통 1권 분량에 걸쳐 작가가 묘사하는 세계관 및 작품 내의 세세한 설정, 주인공의 성장이 어우러지면서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웹소설로 그 플랫폼이 변화하면서 이러한 연재의 방식이 크게 변화했다. 웹소설로 넘어오게 되면서 작품의 세계관이나 설정, 주인공의 성장을 묘사할 시간이 크게 감소했다. 독자들은 웹소설을 보면서 몇 페이지, 몇 줄에 걸친 설명을 굳이 읽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질 않는다. 2000년을 전후한 신무협소설과 지금의 웹소설 시장의 무협을 비교한다면 이런 문제는 두드러진다.


 용대운의 『군림천하』(2001~)를 보아도 그렇다. 초반의 진산월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신의 사고를 대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의 연재분에서는 진산월의 그러한 모습을 확인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묘사 또한 만만치 않게 짧아지고, 대사가 너무 나오지 않는 것도 권장되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배경이나 세계관을 묘사하기도 어려워진다.


 무협은 장르 자체에서 정해진, 혹은 권장되는 규약의 층은 다양하다. 작가가 어떤 맥락을 구축하게 되면 이를 따라 클리셰가 조합되는데, 이를 독자들이 전부 이해하고 있다고 전제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클리셰의 조합을 설명하고 이해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설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적게는 4천5백자, 많게는 8천자 남짓한 연재본 한 편에서 길어지는 설명은 독자들이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유료연재일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설명이 길어지고 대사가 늘어나면 ‘날로 먹네’하는 식의 댓글이 달리기 일쑤이다. 결국 주인공의 대사는 급격히 줄어들고, 묘사 또한 상당히 짧아지게 된다. 결국 작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야기의 근본으로 세운 음모의 과정을 설명해야하는데, 긴 대사로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짧게 설명하면 악인이 과도하게 기능적이 되는 등의 고뇌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듯 무협소설은 웹소설 시장에서 큰 진통을 겪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장르적으로 엄격한 규약이 있는데다 한자에 익숙할 필요가 있다는 선입견에 의해 창작도 비교적 덜 이루어지는 마당이다. 여기에 웹소설 시장에 적응하기 다소 어려운 장르적 특성이 맞물려서 무협은 현재 2000년대 초반에 비해 그 힘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그러한 와중에 무협 장르 내부에서 나름대로 이러한 한계를 타파해보고자 시도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귀환물이다.

 

 

왜 ‘귀환’하는가

 

  무협 장르에서 ‘귀환’이라는 설정 자체는 그리 낯설지도 않은 소재이며 비교적 다양하게 다루어졌다. 황규영의 『표사』(2004)가 무협 장르 내의 귀환물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집을 떠난 주인공 한민택이 10여년만에 돌아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칠성표국을 지키게 된다. 이 와중에 무림의 여러 세력과 얽히기도 하면서 좌충우돌하고 끝내 주인공은 ‘돌아옴’을 실감하게 된다.


 ‘귀환’을 서사의 서두에 배치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앞서 언급했던 지난한 수련의 과정이나,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산재시키기 수월하다. 그렇기 때문에 설명의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속도감을 유지하기 원활한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민택(별호는 광룡狂龍, 작품 내에선 별호로 더 많이 불린다)의 10년은 이야기에 전체적으로 흩뿌려져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주인공에 좀 더 몰입하기 원활한 수단이 된다.


 또한 귀환이라는 설정은 무겁다는 이미지를 주는 무협에 가벼운 개그의 감각을 더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소위 말하는 ‘착각물’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 귀환물이다. 주인공이 오랜 시간 떠났다는 설정은 주인공이 얼마나 강해져서 돌아오든 그것을 모르고 오해하거나 덤비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상황을 통해 악당을 징치하거나, 주변의 위험을 해결해나간다.


 또한 주인공들은 다소 악당의 측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주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무차별적이지는 않지만, 협박이나 정도가 심한 폭력 정도는 기꺼이 활용한다. 가끔씩은 악당이라고 등장하는 조역들보다 훨씬 악랄하게 적을 물고 늘어져 이들이 자신의 주변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철저히 박살내버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활용되는 귀환물의 서사는 웹소설 시장에서 내용이 다소 달라진다. 오랜 시간 떠나있다 무림으로, 혹은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오는 주인공들은 돌아오면서 ‘상실’을 체감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가족’에 대한 혹은 ‘돌아갈 수 있는 곳’에 대한 욕망이 유독 두드러지게 된다. 이러한 경향의 선두주자는 성상현의 『낙향무사』(2009~2010)이다. 이후 웹소설 시장으로 무협이 넘어오면서 강조되는 부분은 귀환의 과정보다는, 가족을 구성하고 지키는 부분이다.


 『낙향무사』의 주인공 진운은 귀환 이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림이라는 세계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마초적이기 그지없는 무림은 주인공에게 그만큼 강해지길 강제하게 된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이를 거부하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힘을 긍정하고 가족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이후의 무협에서도 ‘귀환’보다 ‘가족’의 감각이 좀 더 중심적으로 다루어진다.

 

 

‘가족’을 만들고자 할 뿐이건만

 

  이렇게 보았을 때 이 글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오히려 ‘귀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들은 ‘돌아갈 곳’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귀환’한 이후 ‘귀가’까지 가고자하는 욕망에 가족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가족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세계는 그보다 거대하고 주인공에게 압력을 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끝없이 세계와 충돌하게 된다.


 주인공은 무림을 지배하는 세력의 권위를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권위는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일절 쓸모가 없는 것으로 취급당하고, 가끔씩은 가족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처럼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주인공의 능력 때문에 무림에 얽히게 된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해법은 비교적 단순해진다. 무림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대가족을 만들어, 세계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다.


 무협 장르답게, 대가족은 문파로 치환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무림에서 쫓겨난, 혹은 무림에 편입되고자 하는 인물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출신은 여기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가족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혹은 그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된다. 이들이 만들어낸 문파는 이들 모두의 ‘집’이 되어 가족을 지킨다는 강한 욕망이 이들을 묶어낸다.


 또한 무림이라는 흉흉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게는 폭력이 강제된다. 때론 악랄하기까지한 주인공이 사이다물로 가거나, 갑질물로 가기도 한다. 이러한 전개가 소설의 이야기에 전체적으로 들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갑질-사이다의 반복만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불사한다는 인물들의 목적이다. 그만큼 현실이 위태하고 어렵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악인이 된다고 한들 개의치 않고 가족을 유지하고자 한다.


 마초적인 무림에서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가족을 만들고, 이를 지켜나가는 과정은 지난하다. 주인공이 귀환이라는 과정을 통해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한들 주인공 혼자로는 한계에 직면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 가혹하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가족, 아니 자신들이 돌아갈 수 있는 어떤 곳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따름이다.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가족을 이루는 지난함과 피로감은 무협의 귀환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혈연만이 아니라, 자신이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가족에 대한 로망은 처연하다.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고, 그 미래가 흐릿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웃을 수 있다. 정처없이 ‘귀환’하던 이전과 달리, 가족이 있기에 ‘귀가’할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기 때문에.

 

가우리, 『무위투쟁록』

 주인공 장무위가 진법에 갇혀 있다 400여년 만에 귀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당송 교체기의 끊임없는 전쟁의 와중에 고아로 태어나 전쟁터를 전전하며 살아온 장무위가 가장 원한 것은 가족이다. 어찌어찌 도시로 흘러들어 깡패와 도시의 하류층들과 얽혀 이들과 투닥거리기도, 혹은 가족처럼 대하기도 한다. 무림과 본격적으로 얽히며 장무위의 가족은 위기를 맞게 되며 이를 해소해나가는 과정이 유쾌하게 혹은 비장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이 느끼는 외로움의 처절함 혹은 궁상이 가벼운 개그와 잘 어우러져서 매력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단, 결말에서 2부를 암시하고 있지만 현재 2부가 나오고 있진 않다.

 

합마, 『혈마귀환』

 이 작품은 거칠게 말하자면 술 하나를 놓고 벌어지는 좌충우돌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70년 전 무림을 피바다로 만들었던 혈마의 제자인 혁소상이 스승의 죽음 이후 무림에 나와 묵매곡주라는 술을 찾으며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이 서사의 중심이다. 혁소상이 만나고, 그와 가족이 되는 인물들은 대부분 무림에서 떨려나온 아웃사이더들이다. 이들이 무림에 자리 잡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혁소상에 의해 반강제로 고수가 되고 소설의 끝까지 활약하는 왕삼이라는 대협(?)은 이 작품의 무게를 비교적 가볍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오채지, 『칼끝에 천하를 묻다』

 헤어진 가족과 화해하고, 새로운 가족이 구성되는 과정의 지난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서사 자체는 짧은 편이다. 크게 두 사건을 해결하고 그 와중에 주인공 적산의 능력이 부각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가족이 구성된다. 7년을 떠돌다 무림으로 귀환한 적산은 죽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대문파를 만들기 위해 무림에서 큰 사건을 벌여나간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결말이 다소 미진한 듯 보이고 무림을 종횡하기보다는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딘가 비좁은 느낌을 주지만, 작가의 풍부한 배경지식과 사막을 건너는 과정과 노력의 세밀한 묘사는 상당한 재미를 이끌어낸다.

 

북미혼, 『천하제일 대사형』

이 작품은 앞선 작품들과 달리 네이버 웹소설에서 연재중인 작품이다. 주인공 혁무상이 무림의 오랜 전쟁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출신인 변방의 무관으로 귀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변방에서 위기에 처한 자신의 무관의 문제를 하나 둘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미처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사랑과 우정을 다시금 만나는 내용이 중심이다. 현재까지 전개된 내용을 통해 보면, 주인공은 자신을 가족으로 대해준 무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림과 충돌할 것이 암시된다. 그가 귀환하면서 지켜내는 가족과 새로이 만들어가는 가족의 이야기가 매력이 있다.

 

 

+

 

 이 칼럼은 텍스트릿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이 공동 기획하여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텍스트릿 필진 이주영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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