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한국의 SF

박해울 2018.12.04 23:57 조회 수 :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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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한국의 SF]

 

과학의 발전은 SF의 발전이다

 

80년 전의 사람이 2018년의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는 우리 세상을 어떻게 느낄까?


인터넷과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동영상을 시청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화상 통화를 한다. 모든 사람과 기기는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사람은 우리의 일상을 바라보며 SF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겐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기술의 가속은 최근 들어 점점 더 빨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비단 영미권의 몇몇 선진국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에 해당된다.
전 세계는 과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 SF장르도 함께 발전한다. 그 때문인지 이전에는 SF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백인 남성을 떠올리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미권의 배경을 연상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진 인종과 성별을 가진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


<철완 아톰>이나 <은하철도 999>로 유명한 일본은 예전부터 SF강국으로 평가받고 있었고, 중국은 1979년 SF잡지인 『과환세계』가 창간되어 지금까지도 매월 13만 부 가량을 발행하고 있으며, 2015년에 류츠 신의 장편소설 『삼체』가 SF 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휴고 상을 받기도 하였다. 영미권 뿐 아니라 인도, 싱가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심지어는 북한에서도 SF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 SF의 다양한 시도들

 

우리나라에 SF가 첫 선을 보인 때는 일본이나 중국이 SF를 받아들인 시기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가 『해저여행기담』이라는 제목으로 태극학보에 일부 번역, 연재된 것을 시초로 친다면, 한국의 과학소설 역사는 111년이나 된다.


그러나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SF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역사적 맥락이 제일 클 듯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정권 시대 등의 끊임없이 큰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서 SF는 현실 도피적인 분야로 인식되어 독자층에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SF장르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공모전, 출판, 온라인 플랫폼, 예술 장르, 국제 교류 등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2006년 이후에 한동안 SF 공모전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시 공모전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주최되었던 ‘SF어워드’는 SF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의 매체 구분 없이 프로 작가들에게 주는 상이다.


2016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후원하고 머니투데이가 주관하는 ‘한국과학문학상’이 개최되어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중·단편 수상 작품은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출간되었으며, 장편 수상 작품인 『에셔의 손』도 출간되었다.


또한 올해로 5회째인 ‘한낙원과학문학상’과,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는 ‘김진재 SF어워드 공모전’도 있다. 이러한 공모전을 통하여 SF를 쓰는 작가들이 배출되고, 꾸준히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SF 출판은 외국 SF 번역서를 중심으로 출간되었으나, 창작 SF를 출간하는 비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창작 SF는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앤솔로지 형태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태양계 안의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와 한국식 히어로를 다룬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와 같은 다양한 앤솔로지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과거 한국 SF를 재출간하는 움직임도 있다. 1960년대 잡지 『학원』에 연재되었던 한낙원의 장편 SF 『금성 탐험대』와 동 작가의 단편을 엮은 『한낙원 과학소설전집』이 출간되었고, 한국 근대 SF 단편선인 『천공의 용소년』이 대중에게 선보였다.


단행본 말고도 온라인으로 SF를 읽어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에서 발행하는 ‘웹진 크로스로드(crossroads.apctp.org)’에서는 매월 한 편씩 SF가 업로드되며, ‘환상문학웹진 거울(mirrorzine.kr)’에서는 SF를 포함한 장르문학소설, 비평, 논픽션 등을 읽을 수 있다. 작년에는 황금가지출판사의 장르소설·웹소설 플랫폼인 ‘브릿G(britg.kr)’가 출범되어 SF를 온라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시장이 아닌 공연계에서도 SF에 대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2016년부터 ‘SF 연극제’가 매해 개최되고 있으며, 지난 10월에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SF창극 <우주소리>가 관객들을 만났다.


SF를 향유하는 독자층과 작가층이 넓어지며 2017년에는 한국 ‘SF협회(Korea Science Fiction Assosiation;KSFA)’와, 한국 SF작가 연대인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cience Fiction Writers Union of the Republic of Korea;SFWUK)’가 출범되었다.


한국 내에서의 성장만이 아니라 해외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7년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제75차 세계 SF대회(월드콘)’에 한국이 최초로 참여했다. 이 대회는 매년 휴고상의 시상식이 열리며, 전 세계의 SF팬과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적인 행사이다.


2018년에는 미국에서 한국 SF작품집 『한국현대SF선집』이 출간되었고, 아시아 작가와 연구자, 비평가 등이 참여한 ‘아시아 SF협회(ASFS)가 발족되었다. 아시아 국가들이 모여 SF협회를 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로 지난 달, 11월에는 서울시립과학관에서 10년 만에 SF팬들을 주축으로 한 ‘한국SF컨벤션’이 열리기도 했다. 팬, 작가, 관계자 등이 모여 과학 대담, 영화 상영회, 특강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최되었으며,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SF장르 성장과 사회현상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몇 년 사이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신인 작가를 등용하기 위한 SF공모전이 다시 열렸고, 번역서 뿐 아니라 창작 SF소설의 출간이 늘어났으며, 온라인에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고, 과거 독자들에게 선보였던 한국 SF가 다시 출간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 SF가 성장하고, 주목 받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여전히 매일매일 큰 사건이 터지지만, 이제는 전쟁 등의 생명의 위협에서는 벗어났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과학 기술은 성장하고 있고, 그에 따라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늘어났다. 그렇기에 SF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사회 현상들은 이제 더 이상 SF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 현상 중에서도 온 국민이 공감할 만한 사건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2016년 3월에 이루어졌던 구글 딥마인드사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이다. 대국은 종로의 한 호텔에서 진행되었으며, 우리는 그 대국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이전에도 인공지능과 사람이 시합을 겨루는 이벤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익숙한 서울의 종로에서, 우리나라 바둑 기사와 인공지능이 바둑을 겨루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도 충분히 SF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2017~2018년에 벌어졌던 비트코인 광풍이다. 이 시기에는 직장인, 주부, 학생까지도 비트코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상화폐라는 개념이 급속도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는 때였다. 빠른 시간 안에 적은 투자로 어마어마한 돈을 번 일반인의 이야기가 도시전설처럼 나돌았다. 그와 반대로 투자에 실패한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가상 거래로 손쉽게 큰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박탈감을 느끼고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가상화폐였지만, 그것은 실재하는 사회현상을 만들어 냈다.


세 번째는 미세먼지다. 2014년에 기상청에서 미세먼지 예보가 시작된 이래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매일 아침 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밖에 나가기 전에 뉴스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대기 상황을 확인하고 마스크를 챙겨 쓴다. 혹자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대재앙을 뜻하는 단어 ‘에어포칼립스(Airpocalypse)’로 현 세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생수를 사 마시던 시절에도 공기를 사서 마신다는 이야기는 생소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제 가정용 공기청정기가 필수 가전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화면을 뿌옇게 뒤덮는 먼지가 SF 영화 속의 미장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국이 중계되고,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대기오염 농도를 확인하고 외출을 꺼리거나 마스크를 끼는 것이 최근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SF에서 구현되었던 사회 현상을 현실에서도 목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래는 이미 도래했다

 

과학이 발전하며 사회는 변하고 있다. 발전으로 인하여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는 이점도 있지만, 예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사회문제들이 생겼다. SF적(的)인 사건은 현실과 아주 먼 미래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미래는 이미 도래했다.


지금, 여기, 한국에서 SF를 읽는다는 것은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는 이미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SF는 현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과학의 발전으로 일어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다른 각도의 시각을 제공하고, 낯선 시선으로 사회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렇듯 독자들에게 좋은 시각과 시선을 제공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SF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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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텍스트릿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이 공동 기획하여 연재됩니다.

텍스트릿 필진 박해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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