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와 사회_ 옆집의 인공지능 씨

이지용 2018.12.27 14:54 조회 수 : 281

 

 

 

 

 

 

 

옆집의 인공지능씨

 

 

이지용(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텍스트릿)

 

 

알파고라는 과거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보여준 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인공지능은 무자비했고, 그게 맞서는 인간은 생각보다 무력해 보였다. 단 한 번의 승리만으로도 인간의 위대한 승리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일방적인 승부였다. 마치 금방이라도 인공지능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지구상에서 인간들을 지워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20세기 말에 등장했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의 설정들이 현실화 될 것인가란 언론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몇 년 후에는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을 것이라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그렇지만 떠들썩하던 분위기에 비해 담론들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은 더이상 알파고가 던져주었던 인공지능의 발달에 대한 충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려와는 달리 우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의 무관심과는 달리 인공지능은 알파고 이후로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알파고는 2016년도에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이후 일 년 뒤 중국의 커제(柯洁) 9단에게는 단 한 국도 지지 않고 완승을 거뒀다. 이후 알파고는 인간들과의 대국이 아니라 알파고끼리의 훈련을 거듭하다 바둑계에서 은퇴를 해 버렸다. 이것이 비단 특정 분야에서만 일어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소설이나 시, 혹은 시나리오를 창작하며, 그림을 그리고 작곡도 한다. 그들은 문학상 공모에 도전해 예심을 통과하기도 하고, 발표한 작품들이 평론가들로부터 예술성을 인정받았으며, 연주회와 감상회를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인 ‘알파 폴드(AlphaFold)’가 등장하기도 해서 과학계에의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재조명되었다.

 

알파폴드.png

 

  한편으로 우리는 사실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보이고, 인간과 대립하고 경쟁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미지를 공유했던 것에 비해, 그들과 제법 익숙하게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인공지능 비서 시스템에게 모닝콜을 부탁하고, 집을 나서기 전에 오늘의 날씨나 미세먼지 수치를 인공지능 비서 시스템에 묻는 일이 그렇게 신기한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출근길에 날씨에 맞는 음악 추천을 부탁하고, 요구에 맞게 훌륭하게 큐레이션 된 음악을 감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얼마 전 구글은 헤어샵에 예약해 달라고 부탁을 받고 헤어샵 직원과 직접 통화를 해 예약을 하는 인공지능 비서 시스템의 시연 장면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알파고의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인공지능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 이외의 다른 담론들이 형성된 적은 없지만, 그것들은 모두 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가 무색하게도 현재 우리는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 선언

 

  그런 우리에게 인공지능은 이제 미래의 꿈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오히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SF에서 우리의 삶을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바꾸는 기술적 요소들을 노붐(novum)이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에게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들은 더이상 노붐으로서 작용하기 어려운 기술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단순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몇 가지의 경우와 몇 명의 이야기를 통해 규정지어 버리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미 그들의 형태와 영역, 그리고 의미들이 너무 다양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이 복잡다단한 정체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탐구를 필요로 하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인공지능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의 정체를 명확하게 이해하는데 단순히 기술적인 설명 만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알파고 때와 같이 단순히 막연한 공포감이나 위기감으로 접근해야 할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가 넓어짐과 동시에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과 잇대어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아울러 필요하다. 자칫 복잡다단하고 전문적인 문제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성찰들은 대중들이 넓게 공유하면서 풀어가야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대중들이 수용하기 용이한 이야기의 형식으로 담론들을 풀어내는 건 인류가 오래도록 활용해왔던 방법이다. 그중에서도 SF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추동되는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이러한 변화들에 대응하기 위한 답을 얻기 위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

 

Artificial-Intelligence.jpg

 

 

  특히 인공지능이나 인공지능과 흡사한 지능체계와 자아를 가지고 있는 개체에 대한 이야기들은 SF가 탄생하면서부터 제시해왔던 문제의식이다. 이는 SF의 효시인 메리 셸리(Mary Shelle)의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SF 초창기의 인공지능에 대한 시각은 지금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막연한 공포감과 다르지 않았다. 인공지능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고 기술발전의 폐해를 경고하는 메시지들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나 아서 C. 클라크의 (Arthur C. Clarke)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Space Odyssey)》에서의 ‘HAL’,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 스카이넷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우리에게 깊숙하게 각인되어있다.

 

  하지만 SF에서 다뤄온 인공지능에 대한 사고의 실험들은 더 다양한 층위들을 형성하고 있다. 아이작 아이모프(Isaac Asimov)의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들은 인간과 인공지능을 가진 개체들이 인간과 공존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고 두 개체 사이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테드 창(Ted Chiang)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에서 나오는 인공지능을 가진 애완동물 ‘디지언트’은 인간과 공존하면서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존재들을 이야기하고, 영화 <그녀(Her)>(2013)에서의 인공지능 ‘사만다’는 단순한 정서적 교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애라는 감정을 나누는 것도 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SF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공지능의 모습들은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다양성이 인공지능 기술을 단순히 마법과 같은 미래의 기술에서 현실에서 구현 가능한 것으로 인식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구체화 된 모습이라고 생각해보면 현시대의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커즈와일(Ray Kurzweil)이 이야기한 특이점(singularity)이 언제 도래할 것인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것이 약한(weak) 인공지능인지, 강한(strong) 인공지능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현재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함께 살아갈 세상에 대한 다양한 모양들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SF는 그것을 효율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인간의 상상력이 그 시대를 지배하는 세계관에 영향을 받고, 세계관은 우리의 경험이 누적되어 형성된다고 보았을 때, 인공지능은 21세기를 상징하는 오브제(objet)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기에 우주와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한 통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시대는 인공지능을 통한 이야기들이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시대는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저 유명한 선언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인간과 인공지능, 유기체와 무기체의 경계들이 허물어지고, 다양한 종들이 뒤섞여 거대한 공동체를 재맥락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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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거대한 흐름은 때론 우리의 인식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더욱이 요즘같이 기술발달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시대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현실은 눈 깜빡하는 사이에 과거가 되어버린다. 우리 시대에 현실적으로라는 말처럼 의미가 빠르게 전환되는 언표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의 과학기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 최전선의 진보된 과학기술과도 거리가 있고, 상용화되어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과도 이격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인식들이 부족하면 현실을 제대로 성찰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과학기술은 단순히 우리의 삶의 주변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미들과 간섭하면서 이 세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창조자라는 비교 우위나 단순하게 인간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위안을 얻으려는 것은 이젠 큰 의미를 얻기 힘들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논하는 것은 발달하는 기술의 단계에 따라 빠르게 무용해지는 것들이고, 인간이 우월하다는 논리 역시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들에 대해서도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경험하여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물론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시간이 있다. 아직은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지도 않았고, 그러기 때문에 강한 인공지능이 탄생해 우리들에게 적극적인 간섭을 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당장에 가시화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성찰의 기반들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알파고의 충격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느닷없이 눈앞에 들이닥친 것 같은 변화의 물결들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머잖아 우리들의 옆집에는 인공지능씨가 살게 될 것이고, 우리의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인공지능이나 다른 종의 생물체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조금씩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은 지금이라도 우리가 변화의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들을 위해 SF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

 

 

* 이 원고는 한국출판문화연구소의 <기획회의> 478호(2018.12.20)에 텍스트릿이 함께 기획한 '장르와 사회' 특집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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