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현상(이 용어는 이지영의 《BTS 예술혁명》을 따르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팬덤이 네트워크를 형성한 상태를 말한다)에 대해 파고 있던 내게 거슬리는 트윗이 탐라에 들어왔다. 정확하게 기술하진 않겠으나 방탄으로 철학도 한다는, 비아냥이 담겨있는 내용이었다. 방탄으로 철학을 하는 것은 품위가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1차적으로 방탄현상에 주목하고 있는 내 기분이 나빠졌지만, 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내 기분을 넘어서 아미(방탄소년단 팬덤명)을 얕잡아 보는 일련의 사태들-청소년이자 여성이라고 '추정'되는 그들을 무시하는 발언들-이 있었기에 기분이 더 나빠졌지만 기분 나쁜 걸 무시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왜 2018년에도(방탄의 빌보드 입성은 2017년인데도) 방탄은 연구되지 않는가. 왜 아미 출신 박사들만 방탄현상을 연구하는가. 그런 의문들. 그러나 나는 이 의문에 답하는 것 대신 다른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방탄현상에 주목해야하지 않나, 가 나의 기본 입장이다.
 
 

내가 방탄소년단이라는 아이돌을 알게 된건 <Save me> 뮤비를 보고서다. 방탄소년단 정규앨범 <WINGS>에 수록된 곡인데 방탄소년단의 뮤비는 여타의 다른 아이돌과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Save me>는 독립된 하나의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화양연화> 프로젝트 연작 중 하나이다. 따라서  <Save me>를 이해하기 위해선 <WINGS>를 알아야 하고 <화양연화>를 알아야 하며 그 다음에 나온, 앞으로도 나올 곡들을 알아가야 한다. 왜 방탄소년단은 이런 구조를 차용했을까? 
 
 

방시혁은 <WINGS> 컨셉북에서 참고한 책 목록을 내놓았다. 거기서 내가 주목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과 워크라이프에서 출판한 마에지마 사토시의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다.
 
 

먼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많이 읽힌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으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왜 많이 읽히는지를 밝히려는 연구는 부족하다. 우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 작가이기 때문에 한국에선 일본학 관련 학과에서만 연구되기 때문이고, 일본에서도 제도권 밖에 작품이 놓인다는 인식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이 일었을 때도 잘 연구되지 않았기에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다. (지금은 무라카미 하루키 연구가 활발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소설 비평에서)
 
 

어쨌든, 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관 연구 중에 내가 주목한 책은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이다. 사이토 미나코는 일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이 일어난 이유로 '게임 해독'을 든다.
 
"이것은 주인장이 보내는 중대한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낸 이들은 주인장과 같은 세대=베이비 붐 세대 비평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방에 붙어살며 게임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놀아보다가, 곧 다방의 게임 속에 '1970년', '전공투', '상실', '소외', '자폐', '다른 세계', '죽음과 재생' 같은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루키 랜드의 존재 이유는 낙서장에 끄적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루키 랜드의 존재 이유는 게임 속에 숨겨져 있다. 그렇게 판단한 그들은 집에 돌아가 '게임 해설'에 관한 상세한 책자를 열심히 만든 후, 태평하게 앉아 있는 손님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나누어주기 시작합니다. 쓸데없이 복잡한 '본격적 비평 시대'의 개막입니다."
 
즉,
 
"무라카미 작품은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랙티브 텍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 '독자의 참여'라는 말이 중요하다. 나아가 사이토 미나코는 아즈마 히로키의《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끌어오며 이렇게 평한다.
 
"아즈마 히로키는 1980년대 일본을 석권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오타쿠 문화'와 거의 동의어라고 규정합니다. 아즈마가 말하는 '오타쿠 문화'는 주로 196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중심으로 형성한 문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독 게임은 포스트모더니즘=뉴 아카데미즘이라는 1980년대의 사상적 유행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문학 비평이 서서히 오타쿠화되어갔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사이토 미나코는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은 '해독 게임'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독자와 비평가들이 좋아할법한 키워드를 집어 넣으며 해독 게임을, 독자 참여를 유도한다는 말이다.
 
 

방탄소년단으로 넘어오면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또한 독자 참여를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뮤직비디오는 완결된 서사가 아닌 열린 서사다. 또한 뮤직비디오를 구성하고 있는 배경, 소도구, 의상, 캐릭터까지 뮤직비디오는 상징으로 가득하다. 상징을 이해하기 위해선 상징의 배치, 즉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실제로 아미의 블로그나 유튜브에는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문학과 심리학과 철학(특히 실존철학과 유럽의 포스트모던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글과 영상, 이 뮤비와 다른 뮤비의 이어짐을 분석하는 글과 영상이 많다. 나는 방시혁이 윙즈 컨셉에 참고한 책 목록을 비밀로 하기는 커녕 대놓고 소개하는 점이나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소개하고 다음 앨범 컨셉에 참고한 책을 미리 알려주는 등의 전략을 취하는 것은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왜 독자, 아니 뮤직비디오를 본 관객은 방탄소년단이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풀 마음이 드는가. 왜 유도에 응하는가. 잘생긴 소년단들에 홀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있겠으나 나는 이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보이그룹 아이돌 팬덤의 주력이 '10대 청소년' '여성'일 거라는 그릇된 선입견과 그 선입견을 근거로 대상자(팬)를 무시하고 그러한 무시를 강화해 버린다. 방탄소년단 팬덤이 10대 여성만 있다는 주장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10대 여성들의 욕망과 행동을 연구대상이 아닌 무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사라져야 한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무시와는 다른 주장을 하려 한다. (이 글을 쓰는 주된 이유기도 하다)
 
 

앞서 나는 사이토 미나코의 이 글을 인용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는 "'1970년', '전공투', '상실', '소외', '자폐', '다른 세계', '죽음과 재생' 같은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는 주장." 이와 똑같은 주장이 이지영의《BTS 예술혁명》에 나온다. 이지영은 한국일보의 기사, 2017년 11월 30일에 <방탄은 어떻게 넘사벽이 됐을까>를 소개한다. 빅뱅과 트와이스의 가사에는 사랑, 재미, 행복, 스위트(sweet), 치어(cheer)라는 단어가 많이 반복됐고 최다 반복은 공통적으로 '베이비(baby)'다. 반면 방탄소년단의 가사는 노력, 인생등 청춘의 화두, 부조리 비판 노(no), 롱(wrong)등 넘치는 부정어가 반복되고 최다 반복은 '나'다. 이지영의 말대로 방탄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팬들의 공감을 일으킨 것은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인 경쟁 체제가 전 지구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심화되는 경쟁, 일자리 부족, 정의롭지 못한 부의 분배, 그로 인한 삶의 불안과 우울은 결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

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분석에 동의하면서도 한 가지 의견을 더하고 싶다. 왜냐하면 청춘의 화두를 노래하는 가수는 방탄소년단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왜 많은 아티스트들 중 유독 방탄소년단에 주목을 했는가. 이지영은 그 이유를 '네트워크-이미지'로 들고 있다. 네트워크-이미지란 관객의 참여가 있어야만 작품이 물질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며 관객이 생산한 영상들까지 포함한 네트워크가 작품을 형성해'간다(ing)'는 것이다. 나는 이 의견에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내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왜 아미만이 유독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팬덤활동을 펼쳤는가. 달리 말해 한국 팬덤이 어떻게 미국 팬덤까지 움직였는가. 한국 팬덤 문화가 어떻게 미국에 전파되었는가.
 
 
《BTS 예술혁명》에 자세히 나오는데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에 입성한 데에는 미국 아미의 힘이 컸다. 그들은 한국 팬덤 문화처럼 미국 라디오에 방탄소년단 노래를 틀어달라고 끊임없이 요청했으며 요청을 들어준 방송에는 감사의 의미로 간식과 꽃다발을 보냈다. 한국 팬덤 문화가 미국에서 미국인들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대체 왜 이같은 현상이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가. 더불어 아미의 국경을 없앤 장본인은 한국 아미다. 왜 한국 아미는 방탄소년단을 해외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졌을까. 방탄소년단을 알리기 위해 외국어 자막을 달고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주석까지 달아가며 해외 팬들과 소통하려 했을까.
 
 

나는 그 힌트를 한국일보에서 얻었다. 방탄소년단의 가사에서 최다 반복된 단어가 '나'라는 것. 그렇다면 왜 '나'가 반복될까. 이를 분석하기 위해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를 참고하고자 한다. 방시혁이 참고했다고 발표한 책이기도 하고 사이토 미나코가 인용하고 있는 아즈마 히로키의 논의를 이어가는 책이기도 하며 일본에서 일어났던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을 설명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 마에지마 사토시는 세카이계의 첫 정의가 "<에반게리온>같은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에반게리온>의 전반부는 기존의 애니메이션들처럼 장르적 문법을 토대로 마니아들을 위한 설정을 써왔는데 후반부에 들어서 그 설정을 내팽겨치고 주인공의 내면에만 주목해버렸다. 그래서 <에반게리온>은 설정에 고집하던(사이토 미나코가 게임 독해에 치중한다고 말하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부정당하고 <에반게리온>이 그려낸 주인공의 내면, 즉 자의식 문제에 대해 공감한 관객이 <에반게리온>의 팬덤을 형성했다. 일본에서 세카이계의 정의는 통일되지 않고 복잡하게 흘러가지만 세카이계라고 소개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작품의 테마가 '자의식'을 다룬다는 점에 있다.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은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고민에 빠져버려 행동을 멈추고 만다. 서사는 멈춰버리고 주인공 내면의 비중이 커진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의 팬덤은 그런 주인공에게 공감했다. 그렇기에 <에반게리온>이 메가히트할 수 있었다는 게 마에지마 사토시의 주장이다.
 
 

앞서 말한대로 방탄소년단의 뮤비는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이는 <에반게리온>의 전반부와 유사하다. 설정으로 가득한 세계를 해석해야 영상을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방탄소년단의 가사는 <에반게리온>의 후반부와 유사하다. 그들의 가사는 한국일보의 분석대로 '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탄소년단은 흙수저 아이돌이라고 불린 전적 답게 주 활동이 SNS다(공중파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아미들은 방탄소년단의 영상을 다른 아이돌 팬덤보다 쉽게 공유(링크)할 수 있었다. 그 팬덤 영상 중에는 뮤직비디오 해석이나 방탄소년단 멤버의 캐릭터성을 소비하는 것 외에도, 방탄소년단의 가사에 공감하는 팬들의 리액션이 담긴 것이 있다. 내가 본 영상은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의 믹스테잎 Agust D 가사에 공감하는 영상이다. 가사는 이렇다.
 
"하고 싶다는 게 없다는 게 진짜 뭣 같은데 흔한 꿈조차 엾다는 게 한심한 거 알어 다 아는데 하란 대로만 하면 된다며 대학가면 다 괜찮아라는 데 그런 말들을 믿은 내가 XX이지. 나 죽지 못해 살어."
 
이 가사를 들은 사람들은 '뭉클하다', '공감간다', '나도 꿈이 뭔지 모르겠다', 같은 감상들을 쏟아낸다.
 
 

동의가 아니라 공감이다. 방탄소년단의 가사는 사회 입장에서 봤을 땐 한국일보의 분석처럼 사회비판적이지만 방탄소년단의 세대 내부에서 봤을 땐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으며 슈가의 얘기가 내 얘기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슈가의 세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회비판적이지만 슈가의 세대는 사회비판적이기 전에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아미는 해외에 알려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미국의 아미 또한 미국에 방탄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방탄현상이라는 희대의 신드롬이 벌어진 게 아닐까.
 
 

이러한 사고방식이 와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즈마 히로키의 책을 짧게 소개하고 싶다. 아즈마 히로키는《게임적 리얼리즘》에서
 
"‘동물의 시대’에는 이상이나 허구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용이 극히 단순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상이나 허구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현실’로서 받아들이는 데 그치는 시대라고도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고 말한다.《게임적 리얼리즘》은《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속편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일본의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이전에는 세계관 설정을 소비를 했다. 사이토 미나코의 말로 바꾸면 게임 독해를 해온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들어서 1)게임 독해를 어쩌면 '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2)그들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등장해 작품을 만들었고 3)그들의 작품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방시혁이 참고했다는《세카이계란 무엇인가》를 쓴 마에지마 사토시가 아즈마 히로키의 주장에 동의하며 글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아즈마의 주장이 방탄현상을 논하는데에 어긋난 관점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논하기엔 길어지므로 자세한 건《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게임적 리얼리즘》을 참고바란다. tmi이지만 나는 아즈마의 주장에 동의한다)
 
 
요약하면 방탄소년단은 1. 뮤직비디오로는 상징을 가득 넣어 수수께끼를 만들어내고 각 영상들이 연작으로 이어지는 열린 서사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2. 노래 가사는 철저하게 '나'를 사색하는 문장으로 구성했다. 방시혁이《세카이계란 무엇인가》의 구조를 참고했다는 것이 1.과 2. 에서 드러난다. 1.은 <에반게리온>의 전반부와 유사하며 2.는 <에반게리온>의 후반부와 유사하다. 방탄소년단은 처음부터 이 전략을 취한 게 아니다. 1집의 뮤직비디오는 닫힌 서사이며 여타 아이돌 뮤비와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2집부터 뮤비는 열린 서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1집부터 지금까지 공통적으로 방탄소년단의 가사는 철저하게 '나'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스스로 가사를 쓴다)
 

이 두 구조가 공존했기에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방탄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방탄소년단이 만든 뮤직비디오와 가사가 있었고, 이에 공감한 한국 아미가 영상과 노래 가사를 영어로 번역했고, 이에 공감한 미국 아미가 한국 팬덤문화를 흡수해 미국에서 방탄 알리기에 힘을 썼다. 미국 아미 뿐만 아니라 유럽권 아미도 마찬가지다. 한 독일 팬은 방탄소년단의 곡 <봄날> 의 배경인 세월호에 대해 조사하여 이를 알리는 영상을 찍기도 했다(자세한 건 이지영의《BTS 예술혁명》을 참고).
 

방탄소년단이 있기에 아미가 있고 아미가 있기에 지금의 방탄현상이 있다. 방탄소년단의 활동은 아미의 활동까지 융합되어있는 네트워크형 콘텐츠(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린 콘텐츠)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 접속은 방탄소년단의 '나'와 아미의 '나'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형성됐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그 순간처럼 항상 최고가 되고 싶어 그래서 조급했고 늘 초조했어 남들과 비교는 일상이 돼버렸고 무기였던 내 욕심은 되려 날 옥죄고 또 목줄이 됐어 그런데 말야 돌이켜보니 사실은 말야 나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었던 나 그대의 슬픔, 아픔 거둬가고 싶어 나"
- 방탄소년단 <Magic Shop>,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의 7번째 수록곡 가사 일부
 

참고자료
 
이지영, 《BTS 예술혁명-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파레시아, 2018
사이토 미나코, 나일등 옮김, 《문단아이돌론》, 한겨레출판, 2017
마에지마 사토시, 김현아 주재명 옮김,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반게리온 이후 오타쿠 문화의 역사》, 워크라이프, 2016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옮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문학동네, 2007
아즈마 히로키, 장이지 옮김,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현실문화연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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