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애치먼 저, 정지현 옮김, 도서출판 잔, 2017         영화 <Call Me By Your Name>, 2017

 

 

 

   의심할 여지없는 사랑의 서사다. 소년 엘리오는 가족 별장에 초대 되어 온 젊은 학자 올리버와 만난다. 올리버가 이탈리아에 머무는 6주 동안 엘리오는 예정된 결별이 전제된 첫사랑을 하고, 이변 없이 헤어진다. 엘리오가 일생 처음 겪는 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안 시간은 제각각의 속도를 잃는다. 모든 순간의 단위가 일순 뒤집혔으니, 반복하건대 이를 사랑의 서사라고 명명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명명은 동시에 부정확하거나, 핵심을 비껴간다.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과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가 서로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한쪽은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고, 다른 한쪽은 훗날 돌아갈 자리를 지금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서로 다른 사랑의 서사는 마땅히 다른 이름으로서 호명되어야 한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소설과 영화를 각각 부재의 서사현존의 서사로 고쳐 쓴다.

 

 

   소설 <그 해, 여름 손님>은 중년에 접어든 엘리오가 속절없이 그 해 여름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어쩌면 그때부터였을 것이라고, 엘리오는 지나간 첫사랑과 오래된 계절을 헤아리며 그 모든 낱낱에 새로운 언어와 질서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이때 그가 체화하는 부재는 이중적이다. 곧바로 확정되는 것은 사랑과 욕망의 대상이자 목적어인 올리버의 부재다. 1983년 이탈리아에서의 6주를 함께 한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어떤 영속한 사랑의 증거만을 남기고 떠나 버렸다. 둘은 그 해 여름 이후 세 번을 더 만났지만, 사랑의 사태 이후에 덧붙은 세 번의 만남은 지나간 사랑의 완결과 지속불가능성에 뒤따른 결과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십일 년이 지나 그 해 여름을 회상하는 엘리오에게 사랑이란 언제나 부재로서만 가능한 표상이다.

  좀 더 의미심장한 것은 두 번째 부재의 형상이다. 엘리오에게는 미래가 없다. 시간이란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공간이다.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 새로운 경험과 예정을 만들어갈 잠재적 가능성이 이 시간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사태의 종언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에서 예정되어 있는 것은 바로 그 시간, 즉 무엇이든 가능할 수 있다는 미래의 없음이다. 올리버의 말버릇 나중에(later)”는 가능한 미래 바깥에 도착해 있는 엘리오의 현재를 생각할 때 놀랄 만큼 직설적인 아이러니인 셈이다.

 

 

   동명의 소설이 부재로부터 비롯되는 서사라면, 제임스 아이보리가 각색하고 루카 구아다니노가 연출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 사랑의 현존 자체처럼 보인다. 원작처럼 엘리오의 회상으로써 그 해 여름을 복기하고 이후 덧붙은 세 번의 만남을 복원해내는 대신, 영화는 과감하게 사태가 일어나던 1983년만을 떼어낸다. 이 과정에서 금기는 한 번 더 흐릿해지고, 에두른 욕망과 안간힘은 고유해진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모든 순간, 순간은 기억이나 언어의 부정확한 재현을 거치지 않은 고스란한 현재다.

  이 현존은 내면을 외화하고 기억마저 현재화하는 카메라의 몫이다. 필연적 선택처럼 1인칭 시점 쇼트나 내레이션도 최소화되어 있다. 영화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한 삶에서 다른 삶에 도착한 이의 구구한 사변이 아니라 어떤 삶의 복판에 놓인 자의 얼굴이다. 이런 연유로 같은 아이디어와 인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에도 소설과 영화는 서로 다른 파장을 남겨 놓게 된다. 각색에 있어 흔히 고려되곤 하는 충실성의 강박을 비껴나간 선택은 단 한 컷의 플래시백도 없이 순전한 현재만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간으로 재구성된다. 부재와 결여의 문학이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제 질서를 바꾸어 사랑이라는 사건의 현존으로 초월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새삼 상기되는 것은 각각의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이 두 판본의 서로 다름이다. 소설은 언어로써 빚어낸 기억의 자족적 재현이며,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지는”“한때이 가진 부재와 결여의 의미를 확정해가는 엘리오의 자기고백 과정이다. “절대 되돌릴 수도, 다시 쓸 수도, 살지 않을 수도, 다시 살 수도 없는 그때를 지금의 입장에서 선택적으로 기억-재현해내는 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슬픔으로 그 몫을 돌려낸다.

  반면 루카 구아다니노가 감각적으로 시각화 한 북부 이탈리아의 선명한 햇빛은 소설 속 그것과 전혀 다른 감각으로 이해된다. 한낮의 수면에 반사되는 빛의 반짝임, 과실을 달게 익어가게 하는 햇살, 그 여름의 질감 아래 선 젊고 건강한 육체. 어떤 금기도, 억압도 이토록 눈부신 햇빛을 뚫고 나오지 못한다. 소설의 예정된 실패 속에서 엘리오의 부정확한 기억으로서만 재현될 수 있었던 햇살의 감각은, 구아다니노의 세계에 도착하여 현존하는 사랑과 욕망의 찬미로 전환된다. 그렇게 부재-현존의 서사 속에서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 다른 이름을 부르는 중이다.

 

 

 

김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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