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앤트맨과 와스프가 개봉했다. 이 작품에서 와스프-호프 밴 다인은 과거 양자 영역에서 실종된 어머니 자넷 밴 다인을 되찾기 위해, 앤트맨-스콧 랭은 가택연금에서 벗어나 딸 캐시 랭과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히어로들이 분열된 가족을 복원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 서사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에서는 정말이지 새로운 시도다.

 

기존 MCU 작품의 1편은 아버지의 지위를 승계하는 히어로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지위를 승계한 히어로들은 모두 2편에서 아버지의 부정을 발견했다. 토니 스타크는 하워드 스타크가 동료 과학자 안톤 반코의 업적을 지운 것을, 스티븐 로저스는 쉴드라는 조직이 부패했음을, 피터 퀼은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가 관여했음을 깨달았다. 히어로들은 마지막 3편에서 독립된 자아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써 2편에서 저점을 찍어야 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던 바와 같이 이 일련의 공식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배제되었다. 각 오리진의 속편에서 마리아 스타크는 하워드 스타크가 스크린 너머로 소리치는 대상으로만, 프리가는 죽음으로써 히어로들이 분노할 계기로만, 페기 카터는 늙고 병들어 제정신을 잃은 상징으로만 다뤄졌던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는 전적으로 다른 노선을 취한다. 이 속편은 부권의 실추가 아닌 모권의 회복을 다룬다. 이들의 모험은 어머니를 없애고 지우는 것이 아니라 되찾고 되살리기 위한 여정이다.

 

덕분에 앤트맨과 와스프는 기존 MCU의 속편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진행된다. 이 작품에서 상징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맡고 있는 행크 핌 역시 다른 히어로들의 아버지처럼 과거에 저지른 과오와 직면을 한다. 빌런 고스트는 행크 핌이 예전에 버린 동료 과학자가 독자적으로 실험을 이어나가려다 일어난 비극의 희생자인 것이다. 하지만 이 갈등은 깊이 있게 흘러가지를 못한다. 주인공들의 반응도 “영감탱 성질 어디 갔겠어?”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애초에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몰락이나 복권이 아닌 어머니의 귀환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어머니에게 제자리를 되돌려주려는 이 목표는 히어로와 빌런 양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호프 밴 다인은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기 위해, 고스트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넷 밴 다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넷 밴 다인의 귀환은 히어로만이 아닌 빌런의 문제마저도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기능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말끔한 해결을 갈등 구조의 약화 혹은 허무한 전개로 여길지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는 불필요하고 뻔한 갈등 없이 액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윤할유로 여기겠지만 말이다.

 

이 글에서는 어느 쪽 의견이 맞는가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않겠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자들만 있을 때는 심각한 문제였던 상황은 여자가 포함되는 순간 더 이상 대단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부계서사에 어머니가 등장하자 모든 것은 어린애 장난이 된다. 오션스 8에서 과거 시리즈에, 케이퍼 장르에 감초처럼 등장하던 사내들의 기싸움-서열정리를 지우자 그저 일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았듯이 앤트맨과 와스프 또한 부재하던 어머니가 돌아오자 고상함만이 남았다.

 

이정도의 변화를 대단한 전환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도리어 이제야 겨우, 라고 몇 번이나 지적을 해도 모자랄 일이다. 더욱이 앤트맨과 와스프의 매끄러운 전개는 모계서사에는 부계서사와는 다른 갈등이 존재함에도 서사 내에서 온전히 구현하지 못한 상황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낙관을 지울 필요도 없어 보인다. MCU는 지난 10년에 걸쳐 자기복제를 성공적으로 반복할 수 있음을 증명했음에도-결코 서두르지 않지만, 정말 답답할 정도로 서두르지 않지만-변하고는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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