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된 BL'장르와 '주체'의 신화

오타쿠는 대중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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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라는 정체성

 

2018년 6월에 출간된 미조구치 아키코의 책 <BL진화론>을 완독하였다. 해당 저서는 BL이라는 장르에 대해 젠더이론적인 접근을 하고, 그것을 사회와 연결시키려고 하였던 노력이다. 해당 저술에선 BL애호를 하나의 성적 지향으로 본다. BL애호가들의 대화 과정 자체이 망상에서 '진화'된 하나의 버추얼 섹스로 보는 관점은 분명 독특하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나도 오타쿠적이다. 이를테면 체크셔츠+카메라+미소녀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가방+안경+여드름+돼지 의 이미지로 조롱당했던 오타쿠의 모습을 '이게 오타쿠의 제복이다'라며 자조적 유머로서 소비하던 오타쿠의 행보와 다를바 없다. 왜색 짙은 번역투의 문장을 지적할 때 그것을 소위 말하는 '중2병 문체'나 '라이트노벨 문체' 같은 식으로 소비하여 유머코드로 바꾼 것과 비슷하다.

 

이것은 불특정한 파편들로 쏟아지는 공격을 막기 위해서 외부와 타자를 구분하고, 독자적 집단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전략이었다. 흔히 온라인 상에서 공격받은 오타쿠의 폐쇄성, 탈사회성은 콘텐츠에 과몰입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공격을 막기 위해 사회에서 자신을 격리시키고 이름을 갖고자 했던 역사적, 인과적 맥락이다.

 

현대의 오타쿠는 집단화되었다.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가상의 개념만은 존재한다. 아직까지도 사회는 오타쿠에 대해서 파편적인 이미지로서 타자화하고 공격하며, 오타쿠는 그러한 공격들로부터 자신의 취미와 사고를 보호하기 위해 '오타쿠로서의 나'를 정체화한다. 이것이 오타쿠의 입사식이 된다.

 

BL진화론에서 'BL애호가'라는 집단을 만들고 후죠시(부녀자)라는 자조적 농담으로 남성-남성의 기표를 통해 버추얼 섹스를 한다는 발언도 이러한 오타쿠적 정체화의 과정이다. 

 

결국 'BL애호'는 마치 생물학/정신학적인 사건으로 국한되고, 현상적인 보편성을 갖지 못한 채 폐쇄적인 이야기로 귀결되고 만다. 해당 저술의 목적은 장르를 둘러싼 기표의 해석이 아니다. 장르의 기표를 해석하는 '나', 그것도 여성으로서 남성의 신체를 가져와서 이야기해야 하는 '이상한 나'의 이야기이다.

 

 

폐쇄적 카테고리와 다중의 자아

 

<BL진화론>에서 가치있게 주장하는 것은 장르주체로서의 '여성'이다. '여성'이 현실사회와 접촉한 기표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대다수의 비율로 콘텐츠를 창작하고 소비한다. 이러한 여성들만의 문화는 분명 현대사회에서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그러나 앞서 오타쿠, 즉 부녀자로서 자신을 '정체화'한 사람들이 과연 대중적, 일반적인 '여성'의 코드로 교합할 수 있는가. 우선 짚어야 할 것은 이 질문이 '오타쿠' 또는 '부녀자'는 '여성'이 아니라는 방식의 이분법을 나누고자 한 것은 아니란 점이다. 

 

<BL진화론>의 저자는 BL애호가이자 작가 미우라 시온이 "'취미'가 아니야! 나에게 만화를 읽는다는 건 이미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야!" 라며 BL 애호가가 BL을 '읽는다'는 것은 BL을 살아간다며 주장한다.(p.210)

 

또한 페미니즘 대담집의 표지가 남성 캐릭터도 대리표상 된 것을 일반인은 왜 "여성의 문제를 남자 캐릭터들이 이야기하냐"며 이상하게 여기지만 저자는 '당연히 나를 대리해서 표현하는 것이 남성적 이미지니까'라며 그러한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신과 BL애호가들의 시각이 비슷하다며 일반인의 감각과자신의 감각을 이분화 하였다.

 

이러한 감각의 분화를 미조구치 아키코는 <자연화된 '그=나 자신'>이라는 의식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외부(일반인)'과의 분리 선언은 내부와 충분한 공감을 이루겠으나, 그것으로 국한되고 폐쇄적 논의에 그친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은 BL이라는 장르가 음지의 문화에서 발전하였고, 사회적으로 표출된 욕망을 은폐하던 기표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 일본에서 오타쿠가범죄의 원인으로 취급받고, '지저분한 사람'으로 상당수 오해받고 공격받았기에 '오타쿠'라는 선언을 통해 자신을 정체환 것처럼, 한국에서 콘텐츠가 자생되지 않으니 일본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으로 공격받았기에 온라인 공간에서 익명을 바탕으로 롤플레잉에 골몰했던 것처럼.

 

그렇기에 다시금 물어봐야 한다. 현대 사회의 자아는 하나의 이념이나 사상에 매몰된 '나'가 아닌, 취미를 바탕으로 온라인 공간을 가로지르며 수많은 정체성이 혼재된 다중적인 '나'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일본의 다양한 장르 비평서, 또는 다중문화의 비평서들은 장르를 논하기 위해서 오타쿠와 의도적인 거리두기를 하였다. 폐쇄적인 집단을 일반화 하는 시도가 얼마나 허무한지 경계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몇 차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소비 패턴이 과연 'BL'에서만 한정된 것인가? 저자가 서브컬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인지, 아니면 필자가 모르는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BL진화론>은 일반적인 서브컬쳐 문화의 이야기를 과대하게 신화화 한 경향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BL장르의 커뮤니티성으로 나왔던 '일상의 후기'는 사실 인터넷 영역에서 아마추어 창작이 이루어졌던 모든 콘텐츠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던 행위로 알고 있는 데, 그것이 BL이라는 장르의 커뮤니티성과 '소비-창작'의 주체로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시장의 구성원이라는 구성을 보이는 배타적 특질로 볼 수 있을까 의문이다.

 

현실의 동성애에서 벗어나 '나'로서 이입을 위한 기호로서 남성 동성애라는 코드, 다양한 버스 세계관 등을 수사적으로 사용한다는 것 역시도 한계를 갖는다. 그것은 BL의 클리셰로 사용되는 강간 장면에 대한 대답처럼 기술되었지만 사실은 의미규명이 없는 회피에 불과하다. 이것은 외부 공격에 대응해 자신을 정체성화하는 오타쿠적 대응으로 사실 BL이 아닌,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코드적인 창작, 또는 소통을 하는 폐쇄적 카테고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회피양상이다.

 

즉, 이러한 커뮤니티적 성격을 가진 다중적 자아 '우리'를 과연 BL애호가 라는 말로 일반화 할 수 있을까.

 

 

실패한 전제, 사회와의 억지 연결맺음

 

장르 비평에서 중요한 건 장르의 클리셰가 '왜' 밈화 되었는지의 인과적 맥락이다. 이러한 맥락을 깊게 다루지 못하면 설득력은 소실된다. 장르의 비평은 현대비평의 지형도에선 필연적으로 인정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BL진화론>은 인정투쟁을 져버린 오타쿠의 자의식을 해결해주기 위한 포르노적 이론서에 가깝다.

 

특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이러하다. 현실 그대로의 대응이 아니라 이미지화된 폭력과 섹슈얼리티를 장르에서 구현한다면, 그것을 "왜" 구현해야 하는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해당 저술에서는 공과 수, 그리고 신적 자아에 다중적으로 이입하는 '나'의 존재로 폭력적 상황에서 주어지는 젠더적 저항과 시선을 벗어나 진정한 사랑을 각성하고 모순을 지적한다고 썼으며, 남녀물에서나 여성 커플물에서도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남성이라는 기호를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한 행위의 묘사가 현실의 행위를 용인, 권장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이야 서브컬쳐 계열의 2D캐릭터를 성애적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비판에 "이건 현실의 대상이 아니고, 이러한 망상과 현실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는 정형적 반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BL진화론>이라는 책을 읽으며 기대했던 질문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토로한 리뷰어들의 지적이 공통적으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읽으면서 힘들었던 것은 1장에서 구체적인 BL의 장르특징을 섬세하게 정의하지 않은 상태로 해외의 작품이 나열되는데, 그 나열된 작품에서 '이견이 있다'며 작품을 분류하는 과정에 사용된 'BL 정형'이었다. 즉, 이론적 배경이 아니라 팬덤이 공유한 특정 관습에 들어가는가/들어가지 않는가가 작품의 분류에 중요하게 사용되는데, 이러한 내용을 설명조차 하지 않고 1장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계속되며, 발생된 질문을 해결하지 않는데, 이를테면 강간에 관련된 이야기도 저자는 4장에서 '진화'된 작품을 통해 언급한다고 말만 했을 뿐, 그 이후 본격적인 언급을 모두 피해놓았다.

 

이러한 이유에는 BL을 소비하였기 때문에 레즈비언적 자아를 인정할 수 있었다는 저자 자신의 각성이 BL이라는 장르를 성서적인 위치에 자리매겼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시선에서 시작된 논의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장르를 이야기하고 이론을 정리하기 위해선 장르로부터 나를 '타자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타자의 자리에서 인식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그곳'에 존재하는 과정을 거친 후, 이제 다시금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빠져나오는 작업 역시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서브컬쳐 소비자로서 오타쿠와 오타쿠 바깥의 경계는 분명 희미하고 무의미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의 변별적 정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한 정의는 저술로서 이것이 '대중'서일지, '학술'서일지, 아니면 위에 말했듯 결국 팬덤에서 창작-소비가 반복되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지 메인 지점이기 때문이다.

 

띠지에서 이야기하듯 이것은 '문화 총괄서', 또는 오타쿠들의 학술적 대담에 가깝지 장르 이론서라고 보긴 힘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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