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과 SF

CursedSF 2019.12.25 15:14 조회 수 : 349

 

0.

순문학(제도권 문학? 문단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분류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건 단순한 형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식과 대우, 그리고 장field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무협과 판타지는 제도권 문학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1) 박민규(龍+龍+龍+龍, 단편, 2009?)나 유하(무림일기, 시집, 1989) 등의 몇몇 이레귤러가 제도권 문학에 무협의 코드를 차용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했고 2) 제도권 문학이 인용하는 환상문학의 코드는 한국의 '판타지 시장'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스테리, 특히 스릴러의 문법은 보다 받아들여지기 쉽다. 김영하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썼고 정유정은 7년의 밤을 썼다. 물론 정유정은 천명관과 함께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어쨌건 요점은 제도권 문학이 그들을 자신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외수는 꽤 오랜 기간 문단의 부외자로 존재했다).

 

1.

그렇다면 SF는 어떤가? 한국 SF의 계보는 지극히 단속적이기 때문에, 사실 계보라고 할 만한 것 자체가 없기 때문에 문단장과 SF장의 상호교류를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도 이 파편들을 최대한 기워붙여 보자. 

일단 태초에 복거일이 있었다. 그는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대신 멋들어진 사변소설 한 권을 써내서 데뷔했다. 1987년의 일이다. 그는 꽤 훌륭한 SF를 써내면서 살아왔으며 문단의 일원으로 존중받는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문단은 복거일을 그냥 '작가'가 아닌 'SF 작가'로서 받아들였는가(커트 보네거트는 SF 작가였는가, 아니면 그냥 작가였는가)?

문윤성의 <완전사회>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비록 그가 고립무원의 SF를 꽤 오래도록 지켜온 사람인 건 사실이지만, 한국 SF 팬덤을 본격적으로 기른 건 아이디어회관 SF 총서지 한낙원이나 문윤성이 아니다. 그들은 열심히 썼고 한국에 SF의 씨앗을 뿌렸지만 시대적 여건에 의해 잊혀졌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의 첫 번째 'SF 작가'는 듀나가 될 것이다. 이건 듀나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SF를 쓴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듀나가 나타나고서야 비로소 SF-장의 기반이 갖춰졌다는 이야기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1) 복거일은 'SF 작가'이기 이전에 '그냥 작가' 일 수 있는 사람이고 2) 그 이전의 SF 작가들은 '과학소설 작가'로, 즉 제도권 문학과 청소년 문학 사이의 기묘한 변종으로 간주되곤 했다(물론 듀나의 장편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청소년 소설 레이블을 달고 나오는 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러한 경향은 아직도 이어져오고 있다). 

대신 듀나가 등장할 무렵부터 한국 SF 작가들은 제도권 문학과 청소년 문학의 영토에 빌붙는 대신 자신만의 섬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걸 누릴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혹시 이 섬을 지키는 건 고독한 양치기 듀나와 양 몇 마리가 끝이 아닌지요?―실제로 꽤 오랫동안 그랬다.

 

1-1.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이 되어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이 열린다. 이 괴상한 이름의 공모전은 짧은 존속기간에도 불구하고 여러 명의 SF 작가를 배출했다. 여기에서 김창규와 김보영과 배명훈이 나타난다. 정소연 역시 소설은 아니지만 웹툰 스토리를 맡아 데뷔했다. 

일단 정소연은 창작 분야에서만큼은 활동량이 절대적으로 적으므로 제외하자. 그는 번역한 책이 써낸 단편보다 더 많은 사람이다. 논할 사람은 셋이다. 김창규, 김보영, 배명훈. (한국에 '슬립스트림'만 써내는 작가는 또 얼마나 있겠냐만은, 아니, 애초에 한국에 SF작가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김창규는 한국에서는 흔치 않게도 하드 SF를 주로 쓴다. 그는 장르적 코드에 능통하며 'SF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곧잘 다룬다. 김보영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의 관심사는 사변/뉴웨이브 쪽에 보다 가깝다. 

앗, 참고로 이건 김보영이 김창규보다 덜 '하드'하다는 폄하가 아니다. 그냥 <저 이승의 선지자>와 <삼사라> 가 조금 다른 궤에 올라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배명훈은? 배명훈은 포지션으로만 따지면 복거일의 입지를 조금이나마 물려받았다. 그는 <타워>로 대표되는 '사회파 SF'를 많이 썼고 문학동네 젊은작가상도 받았다. 그는 셋 중에서 가장 문단과 가까운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에서 어떠한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문단이 원하는 SF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그들은 'SF만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SF에서도 다룰 수 있는 주제'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

 

1-2.

이러한 의심은 김초엽의 등장과 함께 좀더 굳건해진다. 김초엽의 데뷔작인 <관내분실>은 기실 SF적 소도구를 차용하긴 했지만 문법은 문단문학의 그것에 보다 가까우며 전개 역시 그렇다. 마인드 업로딩과 도서관 등을 제외하고 골격만 남겨보란 말이다. <임신한 지민은 뱃속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흔적을 좇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경증 환자로서 지민을 괴롭혀 왔다. 탐색 끝에 그녀는 어머니와 자신의 보편적인 공감대(여성으로서의)를 찾아낸다.> 신춘문예 등단작에서 볼 법한 스토리라인이다. 그리고 김초엽은 여기에 SF적 소도구를 가미함으로써 문단장의 사람들에게 '새로우면서' '받아들이기 쉬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물론 김초엽이 쓴 모든 글이 <관내분실>만큼 문단문학에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김초엽을 따라다니는 설명들은 대개 이렇다. "SF는 기술을 다루기 때문에 차갑다는 통념을 뿌리치고인간의 이야기를" / 심지어 어떤 독자 리뷰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SF같지 않아서 좋다!" "보통의 SF와는 달리 인간의 깊은 뭐 어쩌고"(아니, 대체 그는 SF를 무엇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일까? 스톰트루퍼가 나와서 뿌슝빠슝 광선총을 쏘는 뭐 그런 것?)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그냥 여기에 기사 몇 개를 인용하겠다.

김연수 소설가는 추천의 글을 통해 "SF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그런 건 잊어버렸다"며 "기억나는 건 젊은 소설가의 첫 작품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눈과 입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SF의 미래'…포스텍 출신 스물여섯 김초엽 작가의 꿈( http://news1.kr/articles/?3648750 )

('SF 소설인 줄 알고' 읽었지만 '잊어버렸다'면, 뭐 김초엽의 소설은 알고 보면 SF가 아닌 다른 무언가란 말인가? 혹은 SF 소설임을 잊어버려야만 알아차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단 말인가?)

그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의 질감은 SF 하면 떠오르는 차가운 금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낯설지만 매혹적이고도 따뜻한 세계. - ‘심장을 가진 SF’… 미래의 인간 소외·결핍에 주목하다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62001032521320001 )

(아니, 여러분, 도대체 SF를 읽어본 적이나 있으십니까? SF하면 차가운 금속성이 떠오르는 이유는…단순히 당신네들이 김초엽 이외의 SF를 읽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 읽을 계획조차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민들레 소녀>의 단편들은 차갑습니까?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은 비인간적인가요? <킨>은 어때요? 비인간적이거나 차갑지 않은 SF는 너무나도 많아서, 아니, 애초에 거의 모든 SF는 불가피하게도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이렇게 나열하는 것이야말로 비생산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1.3

문단의 모든 사람들은 김초엽을 사랑한다. 마치 경로당의 어르신들이 싹싹하고 젊은 자원봉사자 청년을 대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기존의 SF작가들은? 단적인 예로, 구글 뉴스 탭에 각 작가들의 이름을 검색하고 어떤 기사들이 나오나 보아라. "김창규+SF". "김초엽+SF". "김보영+SF". "듀나+SF". (물론 이것만으로 문단-SF 지형을 예단하기에는 너무 협소한 예가 되겠지만) 관심의 양과 질이 명확히 다르지 않나? 이러한 경위로 나는 문단이 SF에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는 김초엽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복거일이 문단의 일원이 되고 배명훈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 물론 창비 주간논평에서 GF북스 라인업인 <지상의 여자들>을 다루긴 했지만, 이는 최근의 페미니즘 조류에 의한 것이지 SF에 방점이 찍힌 논평은 아니다. - https://magazine.changbi.com/190717/?cat=2466 )

 

2.

앞서는 SF장 내부의 SF를, 그리고 문단이 자신 외부의 SF에 반응하는 양태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문단이 자신 내부의 SF를 어떻게 다루는지 생각해볼 차례다.

어떤 SF적 코드는 문단에서 천시받았고, 어떤 SF적 코드는 '새롭고 발랄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그것이 SF장 안에서는 이미 너무 낡고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SF 특유의 화려한 사변들은…애초에 지각되지조차 않았다. 알프레드 베스터를 위시한 영미권 SF 작가들이 1960년대에, 그러니까 60년 전에 보여준 미래는 너무 현란했던 나머지 한국 문단에서는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초고주파를 들을 수 없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새롭고 발랄한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그 예시가 있다:

인간을 닮은 로봇 이야기는 이미 제법 사용이 된 소재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점은 안드로이드를 등장시킨 설정, 그 자체가 아니라 차가운 안드로이드로 온기가 있는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솜씨였다. 그것은 단순한 감성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 기대며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16 경향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작,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심사평)

(블레이드 러너가 몇 년도에 나왔죠? 아시는 분? 아니, 그보다, 애초에 차가운 안드로이드로 온기가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게 어렵습니까? 그냥 보통의 인간을 쓴 다음 그걸 안드로이드라고 부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까?)

당선작인 원재운의 〈상식의 속도〉는 혜성처럼 뜨겁고 거침없이 '상식 밖의 속도'로 내달리는 문제작이다. 팽팽하게 긴장된 문장과 장르와 시공을 자재하게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 이야기의 근원적인 힘을 생각하게 하는 서사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소설 문학의 땅을 굴착한다. - 2016 중앙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작, 상식의 속도(심사평)

(원재운은 지식조합형 소설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유념할 부분이 전혀 없는 이야기를 썼다. 그게 '이야기의 근원적인 힘을 생각하게 하는 서사'라면 나무위키는 <일리아드>를 방불케 하는 대서사시가 아닐까요? 와! 킹무갓키!)

 

2-1.

물론 신춘문예 글을 끌고 와서 문단은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것은 비열한 일이다. 신춘문예는 문단으로 진입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며 거기에서 또 9할의 사람들이 낙오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춘문예가 문단의 기류를 모두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성 작가들은 어떤가?

윤이형은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문단-SF인 <완전한 항해>를 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결국 인간의 이야기인데다가(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길게 다루겠다), 문단의 향취를 벗겨내지는 못했지만, SF적 소도구들을 꽤 적절히 차용하고 있다. 반면 심사위원의 평가는 어떠하였는가? "비록 SF소설 같은 장르소설에 기대서 쓰여졌지만,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그러나 장르소설의 메커니즘에 기댄 글쓰기의 설득력은 아직 결연缺然하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쓸 수 있지만 슬슬 귀찮아졌으므로 여기에서 줄인다. 사실 27일까지 마무리지어야 하는 일이 있어서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하고 있는데…해야 하는데…이러고 있다.

(그나저나 박민규의 <핑퐁>을 SF로 볼 수 있는가? 애초에 박민규가 쓰는 것은 장르가 맞는가? - 여기에 대해서도 나중에 길게 쓸 것임. 사실 2-1.은 박민규가 중점이 되어야 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그걸 제대로 다루려면 글 자체가 너무 길어지는 데다가 다른 장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므로 이 섹션은 여기에서 끊기로 함.)

 

3.

어쨌거나 좋다. 김초엽은 젊은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문단의 일원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는 대신, 즉 복거일이나 배명훈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SF 작가'를 '문단의 구성원'으로 포섭시키는 대신 문단이 SF를 대등한 장field으로서 호명하도록 만들었다(겉보기에는). 문단 변방의 백다흠이 듀나의 토끼nity를 조롱하던 2016년 1월을 생각해보자면 엄청난 지형상의 격변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가? 문단은 정말로 SF를 대등한 영역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그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SF가 아니라 '자신들이 받아들이기 쉬우면서도' '새로운' 무엇이 아닌가? 

그러니까, 짧게 줄이자. 나는 "장르소설의 메커니즘에 기댄 글쓰기의 설득은 아직 결연缺然하"다는, 맥락 없는 폄하와 "SF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그런 건 잊어버렸다"는 찬사 사이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문단문학에 적개심을 가진 SF 1호선 미치광이의 중얼거림으로 들린다면, 뭐, 그건 부분적으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아니, 이런 소리를 듣기 싫었다면 잘 하셨어야죠!

 

마치며

이만 글을 마친다. 12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멈추지 않고 기억에 기대 써온 것이므로 틀린 부분이 조금 있을 것이다. 지적은 댓글로 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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