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세상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신비의 공간 '탑', 그곳에서조차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김공자는 랭킹 1위에 대한 동경과 추악한 질투로 새로운 스킬을 얻게 된다.

별 볼일 없던 주인공이 사기급 능력을 얻어 승승장구하는건 웹소설의 흔한 도입부지만, 공자가 얻은 스킬은 자신을 죽인 상대의 스킬을 베껴내는 능력. 기본적으로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니면 쓸모 없는 스킬이다.

실망과 자괴감으로 취해 뒷골목을 헤매던 공자는 우연히 랭킹 1위 염제가 사람을 죽이는 순간을 목격하고 입막음으로 살해당한다. 죽음의 순간, 공자는 염제에게서 사망 하루 전으로 회귀하는 스킬을 얻고 처음 스킬을 얻었던 시점 되살아난다.

염원하던 사기급 스킬을 얻었음에도 공자는 행운을 기뻐하기보다 우선 염제를 향한 복수를 떠올린다.

당당하고 거침없는 영웅, 하지만 그 실체는 사기급 스킬을 끼고 거슬리는 사람은 함부로 죽여없애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인두겁을 쓰고 탑을 활보하는 괴물을 죽이기 위해, 공자는 사천 번이 넘는 자살을 통해 11년 의 과거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여기까지 SSS급 자살헌터의 도입부는 상당히 투박하다.

오죽하면 한창 스자헌이라는 소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할 때 도입부가 진입장벽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을 정도다.

무작정 주어진 탑이라는 배경에 염제, 성녀, 성기사 정도 간단한 인물 조형. 주인공에게 주어진 설정 값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고아원 원장님이 지어준 공자라는 이름과 원룸 벽에 붙은 신문 기사 뿐.

이래서야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날림설정이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질투와 복수심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살을 해가면서까지 상대를 죽이려드는 주인공이 역겹다는 감상도 있다.

때문에 스자헌을 남한테 추천하는 사람들은 보통 초반부만 넘겨라, 읽다보면 재밌다고 말한다. 그야 그렇다. 

일단 주인공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튜토리얼 파트 정도만 어떻게 대충 건너뛰면, 다음부터는 매력적인 랭커들이 여럿 등장하고 본격적인 세계관이 나온다. 주인공 또한 스스로 공허한 설정을 채워가며 자신의 뜻을 펼쳐나간다. 이쯤까지 가야 스자헌을 정말로 재밌게 읽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염제 유수하가 보여주는 인간상은 사이다패스로 일컫어지는 최근 웹소설 시장의 주인공 유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천운으로 회귀라는 사기 능력을 얻고, 자원을 독식하며 독보적으로 홀로 승승장구한다. 자신을 노린 상대는 반드시 죽이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걸리적거린 상대는 그 자리에서 치워버린다.

다른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그가 사실 발기부전이라는 비밀은 ‘히로인이 되기 전에 죽인다’는 최근 농담에 더 없이 걸맞은 인물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한다.

염제에 대해 공자가 표현하는 살의는 단순히 자신을 죽인 상대에 대한 복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동경하던 주인공의 실체, 사이다패스의 존재를 알게 된 공자는 더없는 환멸을 느끼며 그를 같은 사회에서 살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리하여 공자는 사천번의 자살을 감행해 과거로 돌아가 그를 죽인다. 그제서야 공자는 사기 스킬을 얻은 행운을 기뻐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사이다패스 주인공은 죽었다. 그 다음은? 그 자신이 염제를 대체하는 주인공이 될 차례다. 마침 염제 이전의 랭킹 1위였던 검성과 마주친 공자는 검성의 스킬을 복사해 배후령을 스승으로 얻는다. 배후령 또한 웹소설 주인공의 상징. 이는 곧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림받은 증표라 할 것이다.

이제 공자는 염제를 대체할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염제의 행보를 똑같이 따라가는 것은 제2의 사이다패스 주인공이 나타나는 것 뿐. 이래서야 남의 기연을 빼앗아 혼자 잘나가게 되는 다른 회귀물과 큰 차이도 없어진다. 때문에 공자는 염제의 행동을 반대로 밟기 시작한다.

10층 보스로 설정된 원령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으로 시작해, 죽을 운명이었던 헌터들을 구하고, 내분을 일으킨 랭커들을 대신해 수많은 죽음을 반복하며 마왕을 공략해간다.

여기부터가 스자헌이 본격적으로 재밌다고 말하는 파트다. 주인공 김공자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기 시작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아원 원장이 지어줬다는 김공자라는 이름은 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점에서 어느정도 패러디의 성격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자라는 이름은 그의 선행일로와 더불어 도덕론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사이다 웹소설이 난립하는 문피아에서 도덕론을 입에 담는 것은 무척이나 용감한 행위다.

남성향 세계관에서 주인공은 이유 없이 남을 돕기만 해도 고구마이고, 실제로 그러한가와는 별개로 독자가 떨어져나가는 행위로 인식된다.

간단히 남을 돕는 선행조차 그러한데, 도덕을 바로세우는 것은 어떠한가?

 

그럼에도 스자헌은 이른바 선을 추구하고, 타인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시선을 견지하려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판타지, 무협, 로맨스, 학원물 등 장르 세계를 차례로 가로지르며 공자는 홀로 성장하여 적을 타도하는 것만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새로운 관계, 선의 연대를 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물론 이 새로운 관계라는 것이 어느순간 너무 새로워져서 독자들의 당혹감을 일으킨 적도 있기도 하지만. 논란이 거세져서 끝내 작가가 내용을 수정해야했던 이 지점이 저 아름다운 도덕론에도 불구하고 스자헌이 갖는 한계가 아닐까? 아마 완결이 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전개에서 주인공은 어느새 50층을 넘어 60층대에 이르렀다.

층수로 분량을 어림잡아 따지자면 중반부를 넘기고 후반부에 들어선 셈인데, 보통 장기연재물이 1부는 연재 잘 하다가 후반부 가면 스타일 급격하게 무너지고 급완결나버리는걸 생각하면 도저히 방심할 수는 없다. 특히나 2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50층 구간을 한번에 스킵해버리는걸 생각하면 더더욱, 스자헌 완결은 생각보다 머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스자헌이 무사히 연재를 마치고 완결날 수 있길 바라며 중간감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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