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비평을 위한 교과서적 비평서 - 『좀비 사회학』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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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나오야 지음, 선정우 옮김, 요다, 2018

  

 

문화산업에서 서브컬처의 성공을 거론하는 건 이미 낡은 얘기가 되었다. 웹툰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산업이 되었고 웹소설이 그 뒤를 꾸준히 따라가고 있다. 게임은 단일 게임이 조 단위의 수익을 내는 거대한 산업시장을 자랑한다.

서브컬처의 산업적 성공과 달리 인문학적인 관심과 담론은 아직 미숙하다. 비평의 영역은 더욱 그렇다. 그나마 웹툰은 만화비평의 맥락이 이어져서 나름의 담론이 진행되고 게임도 나름의 비평과 연구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지만, 장르문학의 비평은 최소한의 영역에서만 겨우겨우 숨을 틔웠다.

현상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비평을 위한 제대로 된 방법론이 없기 때문이리라.

제대로 된 연구 없이 방법론은 생겨날 수 없다. 물론 연구가 전혀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학계는 온라인에서 장르문학이 등장한 그 순간부터 꾸준히 연구를 진행했다.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학계의 관점이 무척이나 편파적이었단 사실이다. 그들은 서브컬처를 자르고 잘랐다.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조각만 남겨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이런 경향은 독자와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르문학의 소비자를 마치 문학장 바깥의 무지한 사람, 미숙한 아동으로 치부했다.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문학동네) 출간 이후 헛돌고 있던 한국 서브컬처비평은 한 발자국 전진할 수 있었다.

‘어린 세대’ ‘청소년’이란 독자층은 ‘오타쿠’라는 대상으로 변화했다. 그들의 소비방식은 ‘모에’와 ‘데이터베이스’라는 이론으로 변화했다.

그렇게 서브컬처비평을 위한 이론의 장래는 밝아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5년이 지났지만, 연구는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의 서브컬처비평은 한국에서 존재하는지조차 논란인 ‘오타쿠’적 주체부터 허덕이고 있다.

‘누가’ 텍스트를 소비하느냐 하는 것은 서브컬처비평의 시작점이다. 그조차 논의가 미비한 것이다. 여기까지면 오히려 다행이다.

한참 학술 발표를 마친 사람들이 질의응답 시간에 요새 나오는 작품을 잘 읽지 못한다고, 연구를 위해서 겨우겨우 읽었다는 어처구니없는 고백을 부끄럼 없이 한다.심지어 발표 이전부터 “제가 이러한 장르를 잘 못 읽는데 연구를 위해서 찾아보니 재미있더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해당 장르의 창작자, 독자들이 있는 장소에서도 뻔뻔하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해당 장르와 시장에 권력적 입장을 무의식중에 견지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후지타 나오야의 『좀비 사회학』은 이러한 게으른 풍토의 담론장을 적극적으로 비웃는다. 

  

좀비를 장르라 할 수 있을까. 미디어 매체를 가로지르며 서브컬처 전반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치던 좀비 는 이제 장르문학이라는 틀에서 빠져나와 누구나 알 수 있는 대중적 소재가 되었다. 일상의 영역에서도 ‘좀비PC’와 같은 용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좀비 같다’는 은유는 일상을 넘어 학문의 장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이러한 좀비를 다시금 장르라는 규약 속으로 억지로 집어넣어 비평을 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렇다고 좀비란 문화코드를 인과적 맥락 없이 사회학적인 분석만 늘어놓는 것도 난센스다. 저자는 좀비 문화의 오랜 팬답게 좀비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진행한다.

  

좀비는 오랜 시간 인종, 계급, 자산, 직업과 사상적 타자를 은유한 것이었다. 불가해한 영역의 타자인 좀비는 ‘나’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떠한 이유로 전염되고 생 자체를 위협한다.

어리석은 자들의 말은 언어 없는 언어로 표현된다.

이러한 ‘좀비 포맷’은 21세기가 되어 ‘나는 좀비다!’라는 선언으로 변화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를 시대정신에서 찾았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와 리퀴드 모더니티를 가로질러 점점 분석의 토대를 넓혀간다.

정치-사회학적인 분석을 지나 저자가 도달한 곳은 과학-기술의 영역이다.

키틀러의 미디어와 흡혈귀론에서 영감을 받은 저자는 좀비를 다시금 정의한다. 좀비는 수많은 미디어와 미디어를 횡단하고, 게임과 영화, 소설 등으로 전염된다. 좀비는 미디어 속에서 살아 있는 동시에 미디어와 미디어를 매개한다.

저자는 그러한 발견에서 그치지 않고 뇌과학의 영역까지 전진해 게이미피케이션화되어 구조 속에서 관리되는 ‘우리’의 모습과 좀비의 유사성을 밝혀낸다.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신체-생사’의 문제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AI 기술의 발달로 점점 계산기화되고, 가상현실 공간은 영원한 삶의 유토피아처럼 치부된다. 좀비는 이러한 상황에서 재발견된 신체, 즉 ‘인간 없는 신체’의 은유다.

세 가지 영역에서 살펴본 저자의 비평은 다양한 철학, 사회학 이론을 가로지른다. 그렇다고 좀비라는 기호의 의미만을 모색하는 것은 아니다.

컬트적인 좀비물, B급 좀비영화부터 최신의 미소녀 좀비까지, 그야말로 그의 비평은 ‘이론적’이면서도 ‘장르적’인 작품의 영역을 단 한 차례도 놓지 않았다.

  

저자는 좀비를 비평하는 방법론으로 서브컬처비평 이론만을 집중하지 않았다. 좀비라는 현상 자체가 지금, 여기의 사회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사용한 것은 지금, 여기의 시대를 관통하는 다양한 이론들이었다.

한국의 모든 서브컬처 문화도 그 발생 배경에는 사회문화적 변혁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존의 담론장은 장르를 ‘마니아’ ‘오타쿠’ ‘오덕’의 소비로서 병리적 증상처럼 취급하였다.

그들은 종종 판타지소설이, 로맨스소설이 문학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훌륭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지금 여기의 현상을 외면한 채, 고루한 문학장 안으로 서브컬처가 들어오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런 우리에게 『좀비 사회학』의 가치는 단순히 좀비 방법론의 제시에 있지 않다.

저자가 보여준 것은 서브컬처라는 구조 바깥에서 장르를 비평하는, 그래서 비로소 장르로서 사회를 읽어내는 비평 방법론이다. 우리는 그러한 방법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독자적 서브컬처비평을 만들어가야 한다.

장르는 무엇보다 빠르게 진화한다. 우리도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의 비평은 그저 좀비가 될 뿐이리라. 

 

 

이융희 작가·칼럼니스트 jojanggun@naver.com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석사 수료. 장르문학 비평담론팀 텍스트릿(http://textreet.net) 팀장. 인문학협동조합 소속. 판타지 소설 작가 겸 칼럼니스트. 주요 논문으로 「한국 판타지 소설의 역사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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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이융희의 글입니다.

해당 서평은 기획회의 496호에 실렸으며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블로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hhan21/221332826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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