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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펀딩을 통해서 출간된 『냉면』은 2018 안전가옥 가을 앤솔로지 공모전에 당선된 5명의 작가의 단편소설을 담고 있다. 작년에 한동안 냉면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SNS에서는 맛 칼럼니스트라는 황교익의 냉면스플레인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오기도 했었으나 으레 여름철에는 냉면과 같은 계절음식이 주목받곤 했으므로 그쯤으로 여기고 넘어간 기억이 난다. 그렇대도 앤솔로지에 냉면을 올릴 생각을 하다니, 음식과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접한 바가 적었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올해 브릿G 리뷰단 리워드 받은 도서 중 『7맛 7작』 정도가 이와 비슷한 종류일까 싶었다. 이번에도 안전가옥은 텀블벅 후원을 통해 출간했는데, 해당 텀블벅 후원금액을 더 높이면 리워드로 대나무 젓가락을 주기도 하는 등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안전가옥에선 올 봄에도 특색있는 주제로 앤솔로지 공모전을 열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를 읽게 될까.

「A, B, C, A, A, A」 - 김유리

「A, B, C, A, A, A」 는 165cm 98kg의 77년생 글쓰기 선생인 '나'와 187cm의 미남인 90년생 남자의 연애 얘기를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그'는 어째서 '나'같은 여자와 사귀는지를 그와 함께 간 냉면집의 대기줄에 기다리며 고민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에게는 빚 8000만원을 남기고 갈라선 B라는 전남편과 찌질한 C라는 전남친이 있었으나 모두 좋지 못한 남자들이었다. 빚이 있고 외모로는 볼품이 없고 직업마저도 불안정한 나를, 그는 감내하고 만난다. 그 이유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것에 대해 '이유같은 것은 없어요' 라고 말한다. 그냥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자칫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오히려 별 다른 이유 없이도 좋아한다는 점이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대개, 사랑에 빠질 때 상대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 논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냥 거기에 그가 있었고 그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갖 세상의 편견과 감점 요소를 모아놓은 듯한 그녀에게 인생의 전환점과 희망이 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187cm의 키, 조각같은 복근과 날렵한 턱선을 가진 잘생긴 남자라는 A는 정말로 그런 사람일까에 대한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이 잘 맞고 잘 통했던 B라는 남자와도 이혼하고 달에 100이나 되는 이자를 내고 있었는데다, 다음에 만난 C라는 남자는 허세 가득한 찌질이 깡통이었지 않나.

그런 와중에 건실하게 직장에 들어갔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남자 A를 만났는데 '나'의 입장에선 충분히 미남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또, '나'의 변화가 드러나는 구절이 있다.

 

그 전의 나는 사랑 앞에서 늘 비굴했다. 그게 누구든 내게서 떠날까봐 화도 내지 못했고 백 번 천 번 아바타가 되어도 자존감에 관해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A의 아바타가 되는 건 싫었다. - 42p

 

이전까지는 상대에게 맞춰서 대하고 지냈던 '나'가 A를 만나면서는 그러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보수적인 남자 A는 '나'에게 이러저러한 보수적인 말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투거나 사이가 나빠지진 않는다.

말하자면 A는 다름을 인정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남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A가 좋아하지도 않는 냉면을 '나'와 먹으러 다닌 이유도 '나'의 취향을 배려한 탓이었다.

결과적으로 여러 군데의 가게를 다니다가 A와 나는 서로가 모두 만족하는 냉면 가게를 찾았다. 취향의 합의점이랄까, 상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점에서 풀어나가는 '나'와 A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나'에게 A는 나를 존중해주는 남자인 것이고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상대방은 언제나 멋지고 신비로운 존재이므로.

 

 

「혼종의 중화냉면」 - 범유진

「혼종의 중화냉면」 은 걸작이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언니 왕시안과 나(박미유)의 가족관계, 혼혈인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중화냉면을 통해서 풀어내고 있다. '중화'요리에도 속하지 못하고 '냉면'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도는 운명을 지녔다는 중화냉면처럼 두 나라 중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혼혈인들. 중화냉면의 유래와 특징을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 듯했다. 남미인의 외모같은 일본인 신, 일본인과 한국인의 혼혈인 나(박미유), 라이따이한 2세이자 베트남인 라라, 그리고 타인에게 함부로 인종혐오와 비하를 하는 유(아마도 한국인). 이 네 인물의 관계를 통해 인종 차별과 혐오적 시선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혼혈인인 나(박미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끔 했다. 다섯 개의 냉면 앤솔로지 작품 중에서 가장 사회성을 띄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극낭만담」 - dcdc

남극낭만담은 우 감독과 세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극에서 프로젝트를 위해 취재를 하는 우 감독과 빙저호 연구를 위해 남극에 온 세연, 예전에 남극에서 고립되었던 김 박사와 건설전문대원 근우 씨. 이렇게 넷은 기지 건설 후보지를 탐험한다. 소설 속에서 우 감독과 세연은 한 방을 같이 쓰는 처지로 상당한 친분을 묘사하고 있다. 조곤조곤 읊어나가는 우 감독=나의 서술에서 남극의 아름다움이나 낭만에 대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겠다. 인물 간의 대화 속에서 식 문화와 MSG, 냉면, 식사는 사교의 단위, 남극기지 사람들이 먹을 것으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표현한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자면 우 감독과 세연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 감독과 세연의 관계는 김 박사의 광기어린 MSG와 냉면에 대한 집착, 또는 건설사의 목적에만 부합하는 근우 씨와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연의 다소 강인한 신체조건(검은 톤의 피부, 넓은 어깨 등)과 대조적인 귀여운 성격을 우 감독과의 썸으로 풀어낸 것이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미지의 비밀을 품고 있는 남극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기묘하면서도 따스함을 전해주는 듯하다.

 

김 박사가 발견했다는 크툴루스러운 생명체는 아마도 묘사로 보아 '옛 것'일 것만 같다.

코스믹 호러적인 소재를 일부 활용했지만 이 남극낭만담은 로맨스의 비중이 큰 소설이다.

남극이라는 외딴 장소, 그리고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오로라, 외계생명체라는 목숨에 위협이 되는 존재.

사랑이 싹트기엔 또 얼마나 좋은 장소인가.

 

「목련면옥」 - 전건우

유달리 장사가 잘 된다는 목련면옥 가게의 구인공고를 보고 '나'는 면접을 보러 간다. IMF 위기를 겪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나'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공사장을 전전하던 중이었고 숙식이 해결되는 목련면옥에서 일하게 된다. 목련면옥을 읽고 있으면 한국의 전통가옥보다는 중국식 기와집이나 일본식 가옥을 떠오르게 된다. 동물을 공양하고 사람을 가둬두고 모시는 사당이라니, 내 기억컨대 한국에는 그런 전설이 없으므로. 좀 더 정확히는 일본의 하우스 호러 영화의 전개방식과 닮아있는 느낌이다. 내가 목련면옥으로 도망치듯 숨었던 이유가 결말부에서 밝혀질 때는 장르적인 전형성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완벽히 긴장감이 해소되는 단락이라 생각되어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작품의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나'에게 목련면옥에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음을 보여주는 몇 구절이 있는데, 이는 호러 장르에서 많이들 쓰는 표현이라서 익숙한 편이었다.

 

한 편의 한국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작품이었다. 다만, 새로운 맛은 없었다고 느꼈다.

목련의 희고 순수한 이미지와 짐승의 붉은 피가 강렬하게 감각되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의 연속이었다.

목련면옥에 들어온 나의 상태부터가 이미 정상적이지 않음은 글을 읽으면서 바로 느낄 수 있었으며, 작중 등장하는 기어다니는 여자에 대해서는 가나코를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신분이 도망자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목련면옥은 도망자들을 잡아두는 지옥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정말로 도망다니는 이유가 말미에 밝혀진 것처럼 사람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죄를 지어 목련면옥에 제발로 매여있는 신세라면 그곳이 바로 지옥일 것이다.

영화 사일런트 힐에서도 죽은 광신도들이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교회로 피신하고 혹은 그들을 쫓는 크리쳐에게 도살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알레사의 죽음에 대한 죄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 곽재식

곽재식 작가의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는 유독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불길하게도 "너는 부모가 그렇게 애지중지 길러서 몇 십년간 부지런히도 학교를 다니며 뭘 배운다고 설쳤는데 결론은 별 쓸모 없는 사람이네요."에 도달하게 될 것 같았다는 '나'의 말은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고, 스타트업 기업을 차려서 인공지능으로 냉면 가게를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설정은 실제로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꽤 참신했다. 영란 선배의 성실 실패를 위한 도전은 끝까지 실패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성공하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읽는 이의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파인애플 냉면의 조합은 매우 독특한데, 소설이 끝날 즈음에는 정말로 저 냉면이 무슨 맛일지 떠올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설 속에서 통계분석을 마주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성실 실패를 가장한 성공이라니 아이러니가 소설 내내 가득하다.

영란 선배는 제대로 분석하다 성공하면 큰일이라며 대충 분석해서 그럴 듯하게만 보이면 된다고 수차례 이야기하는데

자꾸만 생각과 달리 성공해가는 스타트업의 모습을 보며 독자는 파인애플 냉면까지도 정말로 맛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만다.

 

 

*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서평을 다듬었습니다.

* 처음 에디터를 써보는지라 본문에 사진 넣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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