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 장르의 '깊은 우정'을 '퀴어플라토닉'으로 재생산

키안

 

 1. 서언

 

 백합 장르(이하 백합)는 여성과 여성 간의 사랑을 메인으로 하는 서사 장르이다. 오랫동안 백합은 '여성 간의 깊은 우정이나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서사 장르'라고 이해되며 여성 간의 '깊은 우정(유대)' 또는 '동성애'라는 크게 두가지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장르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후자인 '동성애'에 비해 전자인 '깊은 우정'은 아직 사랑이 아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 글에서는 전자인 '깊은 우정' 역시도 사랑으로 읽을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백합에서 드러나는 '깊은 우정'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깊은 우정'을 사랑으로 이해하기 위한 전단계로서, 사랑의 지향 중 하나인 '퀴어플라토닉'이라는 용어를 에이 엄브렐라를 중심으로 알아볼 것이다. 이어서 '깊은 우정'이 사랑으로 이해되지 않아왔던 이유에 대해 유성애중심주의를 필두로 고찰하면서 '깊은 우정'이 어떻게 퀴어플라토닉이라는 창구를 통하여 사랑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 하여 최종적으로 이 글은 '사랑'과 이 '사랑'을 소재로 하는 백합 서사의 다양성과 가능성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2. 백합과 '깊은 우정'

 

 백합은 일본의 소녀소설과 소녀만화 등을 주축으로 형성된 소녀문화가 기반이 된, '여성 간의 사랑'을 주된 모티브로 하는 로맨스 서사 장르이다.1 일본의 백합 연구자 후지모토 유카리에 따르면, 이 장르는 적어도 '만화'의 영역에서는 70년대에 촉발하여 90년대 후반에 장르로서 안착하고, 00년대 중반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착하게 된다.23 이윽고 백합은 근 20년간 다양한 변주를 겪으며 현재에 이르게 되는데, 오늘날의 백합을 설명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성 간의 깊은 우정이나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서사 장르'를 칭하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 이 글은 여기서 '깊은 우정' 또는 '우정 이상의 유대'라는 언명을 문제삼고자 한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백합잡지 <코믹 유리히메>의 편집장인 나카무라 나리타로는 2011년 11월 5일에 <슈프레뉴스>에 실린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육체관계를 수반하는 레즈비언이 아니라 여고생끼리가 일시적으로 품는 듯한, 우정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연애에 가까운 정신적 관계가 '백합'이라 불립니다."4 이와 비슷한 이해방식은 한국 저자가 쓴 어느 논문에서도 등장한다. 이서는 "열렬한 우정과 연애 감정을 모두 포괄하는 '백합물'의 정의는, 지금의 '동성애' 개념보다 오히려 백 년 전의 '동성연애' 개념에 더 가깝다."5 그리고 "서구-현대의 레즈비언 개념으로 포괄할 수 없는 여성간의 로맨틱한 관계와 정서들이 동아시아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6라고 쓰고 있다.

 

 나는 백합에 대한 이러한 정리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긴 하지만 역시 백합의 현실태를 매우 간략히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정리는 백합에 대하여 다음 두 가지 성질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백합의 계보로부터 비롯되는 성질이다. 백합물은 레즈물(이하 레즈비언 서사)과 구분되지만─동치가 아니라는 의미7─분리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백합의 계보 그리고 백합으로 소비되는 작품들 중에서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경우는 많으며, 작품 내에서 직접적인 '얘는 레즈야!' 호명이 없더라도 2차창작을 통해 소비되는 경우는 더더욱 많다.8 그러므로 나카무라의 "레즈비언이 아니라"라는 서술은 다소 좁은 범위의 백합물(이를테면 그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코믹 유리히메>에서 연재된 작품들 또는 <마리미테>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만을 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정석의 바깥에 존재하는 백합으로부터 비롯되는 성질이다. 나카무라는 위에서 인용한 인터뷰의 뒷부분에서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이하 마리미테)>를 백합물의 시초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미테>는 백합물을 서브컬처 내에서 대중화한 작품이지, 백합물의 시초는 아니다. 물론 <마리미테>는 100년전의 S관계9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백합물에서 정통백합으로 일컬어지는 여학교 백합을 현대에 다시 불러온 작품이다. 허나 그 100년 사이에 '정통백합'이 아닌 백합 작품들이 많이 나왔음을 우리는 후지모토 유카리의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리미테>가 백합물의 시초라는 이야기는 00년대 이후의 정통 백합물에 한정해서만 그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위의 자료는 각 2011년의 인터뷰와 2012년의 논문으로, 이후 약 10년간 변화한 백합물의 현실태와 수용방식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이 글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백합을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의 항을 추가하여, 백합의 수용을 보다 풍성하게 하는 데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언급했듯이 백합에서 호명되는 '깊은 우정'은 특징적이다. 다른 로맨스 장르, 이를테면 BL이나 HL(헤테로 로맨스)의 경우에는 개별작품이 아니라 그 장르를 설명할 때에, '사랑'또는 '로맨스'라는 표현만이 등장하지 '깊은 우정-유대'이나 '우정 이상 사랑 미만'같은 애매한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BL연구자인 제임스 웰커는 한 인터뷰에서 "흔히 하는 오해중에 BL이 성애만을 다룬다는 오해가 있는데, 물론 그 안에서도 포르노적 요소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서정적인 로맨스를 다루고 있"10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BL은 남성 간의 사랑을 (여성의 시선에서)폭넓게 다루고 있음에도 유독 성애를 다룬다는 점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백합은 반대이다. 백합은 여성 간의 사랑을 폭넓게 다루고 있음에도 유독 '깊은 우정'이나 유대, '우정 이상 사랑 미만'이라는 언명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백합에서는 유독 '깊은 우정'이라는 언명이 등장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깊은 우정'이 '보통의 우정 감정 이상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사랑은 아닌'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기존에 사랑이 이해되던 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 반드시 섹슈얼한 관계를 지향 또는 동반해야 한다는 유성애중심주의에 의거한 사랑의 이해방식이다.

 

 

 3. '깊은 우정'과 퀴어플라토닉

 

 여기서 잠시 유성애중심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에 의해 규정되는 '우정'과 '사랑'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유성애중심주의란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성애가 포함 또는 동반 및 지향되어야 한다는 유성애 규범적 논의를 말한다. 이를테면 유성애중심주의에서 말하는 사랑에는 성적인 끌림과 접촉, 성행위 등이 포함되며, 이들을 포함하지 않는 사랑은 곧 '플라토닉 러브'라는 조어로 칭해진다. 다시말해 성애를 염두하는 사랑이 '정상적'으로 칭해지며 성애의 바깥에서 사랑을 논하려는 시도는 개인의 신념이나 종교적 혹은 사회적 성엄숙주의에 의거한 특수한 경우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성적인 끌림과 접촉을 포함하지 않는 사랑이 필연적으로 플라토닉 러브라고 칭해지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겉보기에 플라토닉 러브와 비슷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엄밀히는 다른 사랑의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세간에서는 '퀴어플라토닉'이라고 부른다.

 

 퀴어플라토닉을 기존의 사랑 관념에 의거하여 설명하면, 보통 사람들이 '우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지만 성적인 접촉까지는 상정하지 않는 정서'를 말한다.11 이 정서에 기반한 끌림을 퀴어플라토닉 끌림으로, 이 정서에 의해 맺어진 관계를 퀴어플라토닉 관계 혹은 주키니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러한 형태를 플라토닉 러브와 구별하여 이름짓는 걸까. 그것은 단연, 유성애를 당연한 사랑의 형태로 간주하는 유성애중심주의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유성애 디폴트 사회에서 플라토닉 러브는 유성애자가 어떤 신념이나 자기 내외의 요인에 의해 성애의 표출을 의도적으로 절제-자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퀴어플라토닉은 '아직' 성애로 '발전'하지 않은 사랑이 아니라 애초에 성애가 개입되지 않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고유한 사랑의 존재방식이다. 퀴어플라토닉의 앞에 '퀴어'가 붙는 이유 역시 보통의 플라토닉 러브와는 구별지어 지칭하기 위함이다.

 

 퀴어플라토닉에 대해 추가로 말해보자면, 이는 성애를 상정하지 않는 사랑의 정서 또는 그러한 관계12라는 점에서 주로 에이 엄브렐라와 함께 논해진다. 물론 퀴어플라토닉이 곧 무성애자라는 성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퀴어플라토닉은 성지향성에 대한 지칭이지 성정체성에 대한 지칭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퀴어플라토닉은 이것이 곧 성적 끌림으로 이어지진 않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에이 엄브렐라의 범주에서 논의되고 있으므로, 에이 엄브렐라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에이 엠브렐라(A-umbrella))란 'A(A:없음)'라는 우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란 의미로서, '무성애'와 같이 '없음'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매우 다양한 성향을 가지는 이들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유성애자들이 헤테로, 호모, 바이 등의 지향성을 가지듯이 무성애라는 범주 안에서도 다양한 성지향성이 나타난다. 또한 여기에는 성적 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거나 가끔 느끼기만 하는 회색무성애(gray-Asexual), 상대와의 깊은 정서적 유대 하에서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반성애(Demi-sexual), 성적 끌림을 느끼지만 거기에 '자기자신'이 느낀다는 인지가 없는 자기부재성애(autochorisexual)도 포함된다. 한편 에이 엄브렐라 안에서는 '끌림attraction'에 대하여도 비교적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끌림에는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뿐만 아니라 낭만적 끌림(romantic attraction), 정신적 끌림(platonic attraction), 감각적 끌림(sensual attraction). 미적 끌림(aesthetic attraction) 등이 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13 이 글의 목적은 에이 엄브렐라 가시화가 아니기 때문에 보다 상세한 설명은 미루어두겠으나,14 어쨌든 이러한 사람들의 존재는, 그 존재 자체로 사랑이 반드시 성애를 포함해야한다는 유성애중심주의의 규범에 균열을 가한다.

 

 여태까지 유성애중심주의와 퀴어플라토닉 그리고 에이 엄브렐라에 대한 이야기를 다소 했는데, 왜 굳이 이러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던 걸까. 서두에서 말했듯이 이 글은 백합에 관한 글인데 말이다. 왜냐하면 백합에서 퀴어플라토닉을 향유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장소'를 찾는 독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독자란 상기한 바에 따라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에이 엄브렐라 독자이다.

 

 

 4. 에이 엄브렐라인 백합 향유자

 

 백합을 즐기는 에이 엄브렐라 독자라니 잘 상상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에이 엄브렐라라는 개념은 다른 퀴어정체성에 비해 상당히 늦게 가시화가 시작된 편이라는 점에 근거한다. 현재 대표적인 무성애 연구자로 지목되는 앤서니 보케트의 첫 연구는 2004년에 나왔으며15, 가장 대표적인 무성애 커뮤니티인 AVEN도 2001년에 생겨나 지금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최근까지 거의 유일한 무성애자 커뮤니티였던 '고독한승냥이' 네이버 카페는 2009년에 문을 열었으며, 앤서니 보케트의 저서 <무성애를 말하다>의 한국어판은 2013년에 초판이 발간되었으므로 그 이전에 한국에서 무성애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영문웹에 직접 찾아가거나 영문웹으로부터 조금씩 번역되는 몇페이지 안 되는 자료들, 국내의 무성애 커뮤니티에서 나누어지는 구술적인 사례에 의존해야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3월에도 한국어로 접할 수 있는 무성애 관련 자료는 몇몇 무성애 가시화 단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 수는 매우 적다. 하여 무성애자라는 정체성 그리고 보다 확장적인 에이 엄브렐라라는 개념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시화가 늦게 시작된 만큼이나 에이 엄브렐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퀴어정체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며, 그 중에서도 i)무성애 개념에 대해 알고 있으며 ii)자신을 무성애자 또는 에이 엄브렐라로 정체화하고 있으며 iii)서브컬처, 그 중에서도 마이너 장르인 백합의 향유자이며 iv)서브컬처와 그 장르에 대해 비평적 견해를 가지고 있고 v)그 견해를 공개적인 공간에 드러내는 향유자는 매우 적을 것으로 여겨지기에, 백합과 에이 엄브렐라를 엮는 담론도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했을 가능성에 근거한다. 다만 2019년 말에 한국의 트위터와 백합 커뮤니티 <유리토피아> 그리고 텍스트릿에서 동시 진행된 어느 백합 향유자 조사16에 따르면, 백합을 향유하는 독자 중 에이 엄브렐라에 속한 독자는 전체의 약 14.5%17로 확인된다. 이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하여 앞으로 에이 엄브렐라 독자에 의한 백합 담론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은 기대해볼만 하다고 행복회로를 준비해 두는 것도 좋겠다. (여담이지만 나는 무로맨틱 회색무성애자이므로, 다른 에이 엄브렐라 백합 독자가 백합을 어떻게 향유하는지도 궁금하다.)

 

 

 5. '깊은 우정'은 왜 사랑이 아닌 것으로 이해되었나

 

 다시 본제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백합에서 '깊은 우정' 또는 '우정을 넘어 사랑에 가까운'이라는 감정이 왜 유독 강조되며, 사랑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는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보자. 위에서는 이 원인이 유성애중심주의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 설명 만으로는 의문이 풀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유성애중심주의도 하나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유성애는 크게 비퀴어인 이성애18와 퀴어인 동성애, 범성애, 양성애 등으로 나타나는데, 백합의 비퀴어 독자와 퀴어 독자들─특히 백합에서 여성 간의 사랑을 당사자성으로 받아들이는 레즈비언 독자들─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백합을 둘러싼 유성애중심주의의 양태를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백합에서 성애를 밀어내려는 쪽과, 고수하려는 쪽이 그것이다.

 

 먼저 백합에서 성애를 밀어내려는 쪽은, 이성애에 기반한 '사랑'만이 '정상'적인 사랑이며 그 이외의 것은 병리적인 것이나 특이한 경우라고 간주하는 이성애중심주의적인 견해에 기반하여 백합을 파악한다. 이들에 따르면 백합이 레즈비언 서사를 포괄하는 것은 특수한 사례이며, 백합은 레즈비언 서사와 확연히 분리된다. 그래야 백합이 '이상한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사회적으로 성다수자인 비퀴어들에 의해 일종의 권력-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기에, 실제 백합에 미치는 영향도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적지 않았다. 가령 후지모토 유카리에 따르면, 70년대의 백합물에서는 레즈비언을 향한 당시의 편견이나 모함이 반영되어 '여성을 향한 사랑'이 연재도중에 성적인 사랑에서 플라토닉한 사랑 또는 이성애로 전환되거나, '여자끼리의 사랑은 이상하지 않아?'라고 하는 묘사가 꼭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었다.

 

 반면 백합에서 성애를 고수하려는 쪽은, 유성애 성소수자들, 특히 백합의 주 독자층인 레즈비언들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성지향성의 정체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여성을 향한 사랑'이 곧 '여성을 향한 성적 끌림'와 결부되므로 '여성 간의 사랑'이 곧 '여성 간의 성애'로 이해되었다. 하여 이들에게 백합에서 동성애를 고수하는 것은 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여성 간 '성적 끌림'의 존재를 지켜내려는 일종의 대항적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현실에서나 픽션에서나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 간 성애를 삭제하지 말라는 자기증명적 퀴어 담론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백합 속 여성 간 끌림은 곧 성적 끌림이며, 이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레즈비언이라는 확언과도 같이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백합에 등장하는 모든 관계를 성애로 확정짓는 환원주의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견해는 백합 향유자의 정태제적이며 다수의 견해이기는 하지만, 여'성애'자 여성이라는 퀴어 정체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 이외의 퀴어 정체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성애중심주의의 독자는 백합을 레즈비언 서사로부터 분리하려고 하고, 백합을 통해 레즈비언 서사를 향유하는 레즈비언 독자는 백합에 필연적으로 여성 간 성애를 부착하려 하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가 전장이라는 말은 이러한 백합판에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공통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둘은 모두 사랑과 사랑 서사로서 백합을 유성애규범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정과 사랑이라는 일직선상의 좋아함의 설정 안에서는, 우정으로부터 발전한 것이 사랑이라고 좋아함을 단계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의하여,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랑의 형태는 아직 사랑에는 도달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결핍이나 미달 상태인 것으로 이해된다. 즉 '깊은 우정'이 성애를 함유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성적 끌림을 느낄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우정 이상 사랑 미만'인 것으로 설명되며, 하여 '깊은 우정'은 여태까지 사랑이 아니라 "깊은 우정"으로 지칭되어 왔던 것이다. 해서 그동안 백합판에서 논쟁되어왔던, "그것이 '깊은 우정'이냐 '사랑'이냐" 라는 갈등은 그 로맨스가 성적 끌림을 동반하느냐 아니냐로 양분되어 왔던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이성애중심주의적 사회에서 레즈비언 및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백합에까지 전이된 것은 사실이다. 이성애규범성이 이해하는 사랑의 범주에는 섹슈얼한 관계가 필연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에, 섹슈얼한 관계까지 진입-상정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즉 백합에 등장하여 사랑을 나누는 인물들이 레즈비언은 아닌─아니어야 하는─것으로 이해되었다. 요컨대 여기에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퀴어 혐오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같은 '성애로 환원되지 않는 깊은 감정'에 대한 관심이, 백합을 향유하는 또다른 퀴어 독자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6. 백합에서 퀴어플라토닉 착즙하기

 

 6.1. 백합의 현실태

 

 이제는 현재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백합 작품들에서 어떤 퀴어플라토닉 관계를 찾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원자론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현주소에 대한 파악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다만 몇가지 당부사항을 첨가하고자 한다. 첫째로, 나는 아래에 소개하는 작품에서 나타나는 관계성이 모두 퀴어플라토닉 또는 에이 엄브렐라를 염두해두고 창작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작품의 어느 관계에서 퀴어플라토닉 정서를 유추해낼 수 있다 하는 것인데, 이러한 시도가 작품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은 '착즙'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착즙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여타 매체에서 퀴어플라토닉이나 에이 엄브렐라가 묘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퀴어플라토닉 서사를 향유하고자 하는 이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깊은 우정'이라는 개념을 장르 코드로 가지고 있는 백합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음은 이미 상기한 바에 따라 설명되었다고 본다. 또한 백합물 중에서도 퀴어플라토닉 관계를 착즙할 수 있는 작품은 극소수이다. 결코 이하의 논의들이 마치 백합물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오독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둘째로, 혹자는 이와같이 백합에서 퀴어플라토닉과 무성애 관계성을 발견해내려는 시도가 백합에 엄연히 존재하는 성애를 지우려는 시도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어떠한 서사 장르에서 이제까지 가시화되지 않았던 퀴어정체성과 그 향유자들을 발굴해내려는 행위와 역으로 이제껏 가시화된 퀴어정체성과 향유자들조차도 묻어버리려는 정반대의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하겠다.

 

 셋째로, 아래에 소개할 백합물은 다소 00년대 이후의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서술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무성애자를 포함한 에이 엄브렐라가 가시화된 것이 비교적 최근이라는 점, 이에 따라 백합에서 퀴어플라토닉&에이 엄브렐라의 관계성을 짚어내거나 이입하는 향유자가 등장한 것도 최근일 것이라는 가정에 의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애니메이션이 (일본)서브컬처를 퍼뜨리는 가장 대중적인 창구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기존의 정통적인 백합 향유자 이외에 새로운 향유자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백합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새로운 향유자 중에 퀴어플라토닉 관계나 에이 정체성의 향유자 또는 당사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상정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이 활자매체보다도 시각매체를 주로 향유하는 사람이기에19, 시각매체에서 묘사되는 백합을 주로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나의 분야가 아닌 영역에 대하여는 내가 감히 말을 얹을 것이 아니다.20 한편 나는 다소 개인적인 분류이기는 하지만 i)오늘날 ii)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는 iii)백합의 모습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파악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도 그에 따라 백합을 소개하고자 한다. 각 모습은 적극적 여성서사로서의 백합, 여학생 서사로서의 백합, 일상계 서사로서의 백합이다.

 

 6.1.1. 적극적 여성서사로서의 백합

 

 여기서는 먼저 적극적 여성서사와 일반 여성서사를 구분하고 들어가는 편이 좋겠다. 일반 여성서사는 여성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말한다. 반면 적극적 여성서사는 여성이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동시에 그 주연인 여성이 적극적으로 "여성(개념으로든 실체로든)"을 탈환하려하는 이야기를 말한다. 여기서 "여성"이란 사회적으로 규범화-의식화 된 여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성서사는 대부분 고정된 권력에 의해 지배 또는 고통받는 여성을 그 위치로부터 해방하려는 혁명-페미니즘 서사의 성향을 띈다. 혁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일단 고정된 권력에 균열을 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료 여성과 결합된 시민으로서의 연대solidarity가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항상 정치적 이해득실 관계에 얽힌 연대일 필요는 없다. 이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의 <소녀혁명 우테나>(TVA한정)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유우키 유우나는 용사다>(TVA 1,2기)와 <소녀 가극 레뷰 스타라이트>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이 세 작품은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에서 그 사회적 시스템을 바꾸거나 시스템에 희생되는 여성(각 히메미야 안시, 토고 미모리, 카구라 히카리)을 해방하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희생의 대상이 된 인물이 주인공과 갖는 관계는 퀴어플라토닉으로 읽을 수 있다. <우테나>에서는 '텐죠 우테나-히메미야 안시'의 관계21, <유유유>에서는 '유우키 유우나-토고 미모리'의 관계, <레뷰스타>에서는 '아이죠 카렌-카구라 히카리'의 관계가 그렇다. 여담이지만 <우테나>는 애니메이션에서 백합을 정착시킨 작품 중 하나이며, 방영 당시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 보아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적극적 여성서사로서의 플롯이 돋보인다. 그리고 <우테나>감독의 제자인 후루카와 토모히로 감독의 <레뷰스타>는 일본의 다카라즈카(소녀가극)계 소녀문화와 우테나식(쇼죠망가) 백합 코드를 노골적으로 오마주하고 있으며, 작중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에서 퀴어플라토닉한 관계를 읽어낼 수 있다.22

 

 6.1.2. 여학생 서사로서의 백합

 

 여학생 서사로서의 백합은 백합물의 가장 정통적인 줄기이다. "연애"와 '여학교'라는 근대적 낭만이 실현되는 공간에서 비롯되었던 낭만적 관계가 그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 내에서는 매우 다양한 S관계가 나타나므로 이들 모두를 퀴어플라토닉으로 읽는 것은 다소 비약이 필요하다. 다만 나는 작품의 핵심인 '후쿠자와 유미-오가사와라 사치코'의 관계는 퀴어플라토닉으로 읽는 데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는데, <마리미테>가 방영 당시에는 백합 향유자들에게 '소프트한 백합'으로 읽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애초에 <마리미테>가 가져오는 '여성 간의 사랑'이 일반적인 성애 관계가 아니라 100년 전의 S관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23 물론 이는 상호텍스트성의 확인일 뿐이고, 해서 이에 기존의 백합 독자가 <마리미테>에 투영하는 '소프트한 백합'이라는 언명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마리미테>는 S관계의 재현을 통해 백합의 장르 가능성을 확장한 작품으로, 어쩌면 <마리미테>라는 '소프트한 백합'작품이 있었기에─그리고 이로부터 백합이 서브컬처에서 대중화되었기에─지금 이 글처럼 백합에서 퀴어플라토닉을 읽어내려는 시도도 가능하게 되었다고 여긴다. 아무튼 다음으로 소개하고픈 작품은 역시 00년대 백합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푸른꽃>(만화)이다. 이 작품에서도 다양한 인간관계가 묘사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축이 되는 아키라-후미에서 아키라→후미(후미를 향한 아키라의 마음)는 퀴어플라토닉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후미는 레즈비언임이 확실한데, 후미와 아키라는 친구에서 사귀는 사이로 나아가면서도 서로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묘사가 거듭 등장하고, 이어서 비록 둘의 좋아함의 형태가 다를지라도 그것은 모두 사랑이라고 선언하듯 끝맺는 후반부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울려라 유포니엄>을 들겠다. 본작에서도 인물 간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묘사는 '오마에 쿠미코→코사카 레이나'(1기), '요시카와 유코→나카세코 카오리'(1기), '카사키 노조미-요로이즈카 미조레'(2기), '타나카 아스카-오마에 쿠미코'(2기)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모두 퀴어플라토닉으로 읽는데 문제가 없다. 특히 노조미-미조레의 관계성을 별도로 다루는 애니메이션 영화 <리즈와 파랑새>는 퀴어플라토닉으로 읽을 수 있는 관계를 매우 농밀하게 묘사한다.

 

 6.1.3. 일상계 서사로서의 백합

 

 일상계 서사로서의 백합은 다소 최근에 등장한 경향으로 꼽힌다. 왜냐하면 '일상계'라는 조류 자체가 00년대 후반에 정착되었기 때문이다.24 일상계 백합은 백합의 계보에서 분화했다기 보다는 일상계에서 분화하여 '미소녀 동물원'등으로 불리다가 어느새 백합물과 교집합으로 들어간 케이스이다. 작품에서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들만의 드라마를 그리려는 시도가 거듭되면서 이르게 된─그것이 결과적이든 과정적이든─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고 모든 일상계 작품이 일상계 백합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은 백합을 포함한 기존의 로맨스물 보다도 인간관계의 '소프트한' 터치를 그리는 경우가 많아, 퀴어플라토닉으로 보기에도 미묘한 작품들이 다수이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00년대 후반과 10년대 초반에 걸쳐 일상계 붐을 일으켰다는 작품 <케이온>은, 작품의 주된 서사가 로맨스가 아니기 때문에 백합 '장르'로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케이온>을 작중 등장인물인 '나카노 아즈사'의 시선으로 보면 달라진다. '나카노 아즈사→히라사와 유이'라는 관계에서 아즈사는 다른 주변 인물들보다도 유독 히라사와 유이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되며, 이는 <케이온> 전 회를 통틀어 매우 중요한 위치로 그려진다. 한편, <케이온>과 비슷하게 일상계 붐의 중심에 있던 작품으로 <유루유리>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제목부터가 '소프트한yuru 백합yuri'이지만 그렇다고 작중 모든 관계를 퀴어플라토닉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루유리>는 개그물인 만큼이나 인물 간의 성적 끌림 역시 카투닝적 기호를 통해 코믹하게 묘사되나, 묘사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작중 등장하는 많은 관계 중에서도 나는 '후루타니 히마와리-오무로 사쿠라코'를 퀴어플라토닉 커플로 읽고 있다. 이 둘 사이에서는 <유루유리> 속 다른 커플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섹슈얼한 욕망이 묘사되지 않으며, 동시에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 이상으로 끈끈하다고 암시되기 때문이다.(2기 3화,10화 참고)25 또한 <유루유리>와 같이 원작이 코믹 유리히메지에 연재되었던 <나에게 천사가 내려왔다>에서도 퀴어플라토닉으로 읽을 수 있는 관계는 관측된다. '마츠모토 코우코→호시노 미야코'나 '히메사카 노아→호시노 히나타'에서 그렇다.26 한편 역시 일상개그물이자 코믹 유리히메지에 연재되었던 <이누가미 양과 네코야마 양>에서 '토리카이 히바리→사루토비 소라'도 의심해볼만 하다.

 

 6.1.4. 기타 백합

 

 이외에도 <카드캡터 사쿠라>의 '토모요→사쿠라',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의 '호무라-마도카' 및 '쿄코-사야카'와 같은 마법소녀물에서의 백합, <좀비랜드사가>의 '미즈노 아이-콘노 준코', <러브라이브 선샤인>과 <뱅드림>의 등장인물 전반27에서 볼 수 있는 아이돌-음악물에서의 백합, <플립 플래퍼즈>의 '코코나-파피카', <마나리아 프렌즈>의 '앤-글레어'에서 볼 수 있는 판타지에서의 백합, <CANAAN>의 '카난-오오사와 마리아', <걸즈 앤 판처>의 '카르파초-카이사르', <SSSS.그리드맨>의 '릿카-아카네', <프린세스 프린서플>의 '안제-프린세스', <릴리즈 더 스파이스>28의 '미나모토 모모-한조몬 유키'에서 볼 수 있는 SF 백합에서 퀴어플라토닉을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역시 백합을 말하면서 사회인 백합을 짚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데29, 사회인 백합은 작중 인물이 성인인 만큼이나 성인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 많고, 그만큼 성적인 끌림이나 접촉도 빈번히 등장하여 퀴어플라토닉 관계로 보기에는 어려운 작품들이 많다. 또한 아쉽게도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렇다하게 소개할만한 사회인 백합 작품을 찾기 어렵다. 다만 영상물 일반으로 시야를 넓힐 경우에, 작년에 개봉한 영화 <윤희에게>는 퀴어플라토닉으로 읽을 수 있는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30 이에 소개한 작품 이외에도 소위 '우정백합' 또는 '소프트한 백합'이라 지칭되는 작품들3132은, 해당 작품에서 등장하는 백합 관계를 퀴어플라토닉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하겠다.3334

 

 

 7. 결언: 백합의 가능태

 

 지금까지 백합 장르에서 '깊은 우정'또는 '우정 이상 사랑 미만'이라 불리어왔던 관계를 어떻게 퀴어플라토닉 관계로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퀴어플라토닉과 무성애는 성애의 결핍이나 미달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사랑인 존재방식이다. 해서 이 글은 백합에 등장하는 '깊은 우정'을 필연적으로 '사랑'이라고 여기지 않는 견해에 대해서도, 백합에 등장하는 '사랑'은 모두 필연적으로 성적 끌림을 동반-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필연적'이라는 문구이다. 나는 사랑에 대하여 그것의 필연적 성질보다도 가능적 성질을 응원하고자 한다. 이를 향유 또는 정체화하는 자들은 근대적 연애정상성과 유성애중심주의적인 사랑의 규범으로부터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사랑의 가능태를 확보하고자 한다.35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향유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근대적 대문자 "사랑"으로부터 '사랑'을 탈환해야 할 것이다. 허나 동시에 이 탈환의 행위는 '사랑'의 향유와 함께 병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론과 실천은 함께하며, 비평과 창작이 함께 갈 때에 더욱 강력한 연대로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환원되지 않은 '사랑'을 하는 이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이들을 배제하고서 '사랑'에 대해 논할 수 없음을 우리가 끊임없이 상기하게 한다. 이론과 구체적 실천이 함께 가야한다는 보부아르의 행동방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지막으로 '재생산'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히 하며 글을 마치도록 한다. 이 글의 제목에 들어갔기도 한 문구 '재생산'은 <소녀 가극 레뷰스타라이트>의 '나-재생산'이라는 언명에서 따온 것이다. <레뷰스타>와 이 '재생산'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연관지어 해석할 수 있는지는 다른 글36에서 이미 시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그 중에서도 "사회적 관계의 재생산"이다. 그리고 서사 창작물에서 사회적 관계란, 작품을 향유할 때 거기서 잡아낼 수 있는 어떤 관계의 가능성이다. 여느 창작물이 그렇듯이 백합 서사에도 의도(작가가 그리고자 한 것)와 기능(작가를 떠나 사회적으로 읽힌 것)이 있다. 이 글에서는 단연 백합의 '기능'에 초점을 둔다. 상기했듯이 나는 백합이 에이 엄브렐라를 위한 최적화된 장르라고도, 백합에서 등장하는 모든 관계가 에이 관계라고도, 그리고 에이 엄브렐라가 백합의 주된 독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백합을 향유하는 에이 엄브렐라가 있으며 그들이 백합에서 읽어내고자 하는 관계가 분명 그들 자신의 이야기와 상관이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에이 엄브렐라인 백합 향유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가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제는 다음으로 미루어두는 바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에이 엄브레라인 백합 향유자라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겠다.

 

 한편 이 글은 백합의 현실태를 언급하면서도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서술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앞서 이러한 서술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만, 백합은 엄연히 애니메이션의 바깥에서도 활발히 창작되고 향유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다른 매체에서 드러나는 퀴어플라토닉 백합 관계에 대해서도 더 많은 발견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에 힘입음으로 퀴어플라토닉 또는 에이 엄브렐라의 시선으로 백합을─뿐만 아니라 '사랑 서사'를─재생산하는 창작과 비평이 양쪽으로 활성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은 무엇을 위하는 것일까. 사랑의 가능태를 확보하기위한 바텀-업적인 지향과 함께, 백합의 가능태를 넓혀나가는 일이다.

 

 

 

 

  1. 장르로서의 백합, 즉 협의의 백합을 이와같이 정의한다. 광의의 백합에 대하여 이 글에서는 "여성 간의 사랑이 등장하는 서사물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정의한다.
  2. 한국어번역본이 없으나 후지모토 유카리(藤本由香里)의 『내가 있을 장소는 어딨지?(私の居場所はどこにあるの?)』(1997)에서 이 계보를 다룬다. 최근 한국에서는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해당 내용이 소개된 적이 있다. 세미나의 백합 관련 내용은 링크의 글을 참조.
    https://blog.naver.com/ungzx/221832699384
  3. 해당 강연의 QnA에서 후지모토 유카리는 요시야 노부코의 <꽃 이야기>와 <마리미테>와의 연관성이 적다고 답변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나는 '장르'로서의 백합은 70년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장르' 이전의 소녀문화 형성에 <꽃 이야기>가 미친 영향은 부정할 수 없고, 그 영향이 <마리미테>를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4. 서찬휘, <키워드 오덕학>, 2017, 135p에서 재인용
  5. 이서,「언니 저 달나라로: 백합물과 1910~1930년대 동북아시아 여학생 문화」, 2012, 2p
  6. Ibid, 22p
  7.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모든 백합물은 필연적으로 레즈비언 서사이다. (X)
    어떤 백합물은 필연적으로 레즈비언 서사이다. (O)
    어떤 백합물은 가능적으로 레즈비언 서사이다. (O)
    모든 백합물은 가능적으로 레즈비언 서사이다. (O)
  8. 백합온리전에서 판매되는 수많은 백합 동인지를 보라. 나 역시 이번 '모두의 백합 2회'에 참여하여 많은 백합 동인지를 구매했다.
  9. "당시에는 소녀들 사이의 강한 연대감을 에스(エス)라고 불렀다. 여기서 에스(エス)란 영어의 sister 혹은 sisterhood의 첫 글자를 딴 말로 전전기(1910년대부터 사용되어 1920년대에는 소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사용)의 여학생(소녀)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은어이다.", 최은경, 「근대일본 소녀소설 연구 - 꽃 이야기의 에스 관계를 중심으로」, 2015, 9p
  10. [인터뷰] "BL은 글로벌, 대세는 디지털" 제임스 웰커&후지모토 유카리 교수,
    https://webtooninsight.co.kr/Forum/Content/6791
  11. 국내의 무성애 가시화 단체 에이로그 팀(현 무:대)에서 출간한 <A-LOG>에서는 "우정보다 강렬하고 가까운 정서적 유대감으로 이루어지지만, 통념적인 성애·로맨틱 커플관에는 부합하지 않는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A-LOG>, 2016, 15p
  12. 키스나 포옹같은 가벼운 스킨쉽은 허용하는 경우가 간간히 있다.
  13. 참고: http://wiki.asexuality.org/Attraction (편집기준:20.04.02 ; 나는 위키사이트를 인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나, AVEN위키는 AVEN의 산하 위키이니만큼 에이 엄브렐라들 사이에서의 논의를 정리한 곳이라고 판단하여 인용한다.)
  14. 퀴어플라토닉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무방한 이야기 4화>의 56분 40초부터 63분지점까지가 참고할만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m6tf0o_RqA&t=3608s
  15. Anthony F. Bogaert, 「Asexuality: Prevalence and Associated Factors in a National Probability Sample」, 2004
  16. yora, 백합 향유층의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설문조사 결과 및 분석,
    https://textreet.net/board_YNKV61/169761
  17. 전체 응답자 808표 중 에이 엄브렐라라고 응답한 표 84(여성)+13(남성)+20(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117표로 계산. 14.48%(117/808).
  18. 이러한 표현은 '이성애'가 필연적으로 비퀴어는 아님을 염두한 것이다. 가령 헤테로로맨틱 지향의 무성애자는 이성에게 로맨틱 끌림은 느끼지만 그 끌림이 성적 끌림과 결부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퀴어 스펙트럼에 속한다.
  19. 나는 시각예술(응용미술)을 전공하기도 했다.
  20. 또한 애니메이션이라 할지라도 퀴어플라토닉 관계가 아닌, 명백히 성적 끌림을 동반한 백합 관계로 읽히는 관계-작품에 대하여는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언급하지 않았다.
  21. 이쿠하라 감독은 <우테나> 방영 당시에 우테나와 안시의 관계가 성애로 이해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고 이후 극장판에서는 둘의 관계를 확실히 성애를 포함한 관계로 묘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감독의 의도에 따르면 둘은 성애관계이다. 다만 이 글의 결언에서 후술했듯이 여기서는 서사의 의도보다도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22. 또한 <유유유>는 개인적으로 포스트 세카이계 애니메이션의 완성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논할 때, 좋은 작품이라 여긴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23. 각주5 참고.
  24. 일상계에 대한 정리로는 '일상계란 무엇인가'참조. https://blog.naver.com/ungzx/220843084302
  25. 히마와리와 사쿠라코의 캐릭터송에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분명 '사랑'이라고 지칭되며, 둘이 함께 부른 캐릭터송의 제목은 '사랑의 더블펀치'이다.
  26. 이 작품은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니며 내가 딱히 좋아하는 작품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기 소개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데에서 어떤 비평적 읽기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27. 등장하는 모든 인물관계에서 퀴어플라토닉을 착즙 가능하다.
  28. <유루유리>의 작가 '나모리'가 캐릭터 원안을 맡았다.
  29. 여기서 말하는 사회인 백합이란 작품이 실제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하며 등장인물도 직장인이나 회사원 등 실제로 있는 직업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백합물을 말한다.
  30. <윤희에게>의 GV에는 실제로 많은 백합 향유자들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백합에서 퀴어플라토닉을 읽어내는가 아닌가와는 별개로.
  31. 착즙은 자유이나, 나는 이들로부터의 착즙이 비평적 서술을 통해 말해지기 위해서는 작품 내에서 제공하는 '미끼'가 분명 관측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나는 '우정백합' 전체를 '퀴어플라토닉'으로 동치화할 마음은 전혀 없다.
  32. <톱을 노려라!> 시리즈, <noir>에서 <엘 카자드>로 이어지는 시리즈, <카레이도스타>, <시문>, <악마의 리들>, <종말의 이제타>, <리틀 위치 아카데미아>, <아만츄>, <케모노 프렌즈>, <슬로우 스타트> 등이 보고됨.
  33. 퀴어플라토닉은 아니지만, 나는 여학생 백합이기도 한 <이윽고 네가 된다>의 등장인물 코이토 유우가 무성애자, 적어도 에이 엄브렐라가 아닌지 의심하여 이를 바탕으로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이 리뷰에 대하여 '견'님은 한 글에서 "전혀 아닙니다."라고 반론하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작중 이미 무성애자인 '마키 세이지'가 등장하여 코이토 유우에게 '너는 나와 다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작품 마지막에는 코이토 유우와 나나미 토우코의 성행위 묘사가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만으로는 코이토 유우가 에이 엄브렐라가 "전혀 아닙니다"라는 반박이 성립되기 부족하다. 왜냐하면 코이토 유우는 데미섹슈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키 세이지가 '너는 나와 다르다'고 한 말의 의미는, 마키 세이지 자신은 무로맨틱이지만 코이토 유우는 유로맨틱(아마도 호모로맨틱)이라는, 에이 엄브렐라 안에서도 다른 지향-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으며, 또한 코이토 유우는 작중 내내 나나미와의 반복되는 키스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작품이 진행되며 나나미와 깊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성적 끌림을 느끼고,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4. 또한 '자매애'로 귀결되는 작품들, 이를테면 <캔디보이>의 '유키-사나'나 <겨울왕국>의 '엘사-안나'에서도 퀴어플라토닉을 읽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35. 당신의 로맨틱한 로망에 딴지를 걸어드립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7&aid=0000005631&sid1=001
  36. <소녀 가극 레뷰스타라이트>: 구조의 재생산, https://blog.naver.com/ungzx/22165326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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