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s://belvedia.hatenablog.com/entry/2020/03/08/163253

 

친구들한테 자주 백합과 레즈는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받기 때문에 짤막하게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있는가(없음)라는 생각은 들었지만요.

 

그래도 시험 삼아 백합과 레즈의 차이를 구글 선생한테 질문해 보았습니다. 만화가가 만화 그리는 법을 검색하는 것처럼 얼빠진 질문이지만요. 그랬더니 ごちうさ(작품명)シャロリゼ(샤로리제, 캐릭터 이름)은 백합도 레즈도 아니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놀랄 정도로 수준이 낮은 글밖에 없어서 웃음이 나오더군요. 하하하.

 

그리하여 이번에는 현 시점에서 본 백합과 레즈의 차이에 대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백합과 레즈의 차이는 없습니다. ()

 

이렇게 끝내도 되겠지만 분명히 납득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그래서 이제부터는 백합에 대해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의(관계자의) 의견을 참고하여 글을 전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백합 관계자의 의견

 

우선 최근 애니화 소식이 있었던 이세계 피크닉’ (: 한국에서도 정식 발매가 되었습니다. 리디북스 등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의 저자인 宮澤伊織 씨는,

 

https://www.hayakawabooks.com/n/n0b70a085dfe0 (인터뷰 원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280179

 

(인터뷰 한국어 번역문)

 

백합이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라는 인터뷰에서 *1 ‘백합에 대해서 흔히 가지기 마련인 낡은 개념을 슬슬 업데이트합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백합과 레즈는 다르다는 낡은 개념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성적인 묘사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로 백합과 레즈를 나누는 사람이 가끔씩 있지만 그런 구분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성묘사가 있는 백합과 없는 백합의 구별은 가능하지만, 백합과 레즈는 그런 구별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감정의 종류나 깊이, 그러니까 연애와 우애의 차이라거나, 사랑의 깊이로 구분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으로도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단어의 뉘앙스 측면에서 백합이 좀 더 깨끗하고 레즈는 노골적이고(원문 : 々しい)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틀렸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관계나 사람의 감정을 주로 다루는 백합이라는 장르 자체도 결국 끝까지 파고들다 보면 노골적이고 더럽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품에서 등장하는 묘사의 방향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또한 백합과 레즈의 차이에 대해서 あやめ14(작품명) 등으로 친숙한 아마노 슈닌타 씨는

 

유리이카 201412월호 특집 백합 문화의 현재*2에서 모리시마 아키코 씨의 정확한 설명을 제시합니다.

 

잡지 링크 : http://www.seidosha.co.jp/book/index.php?id=2225

 

레즈는 혼자서도 레즈. 백합은 둘이서 함께 있는 것을 외부로부터 보고서 정하는 것.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외부에서 보고서 처음으로 백합은 백합이 된다.”

 

, 레즈(비언)은 개인이나 성적 지향을 가리키는 데 반해서 외부로부터 본 관계를 가리키는 단어가 백합이라는 뜻입니다. 모리시마 씨는 이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자신의 작품이) 백합이 아니고 레즈라고 불리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화내는 것도 아니라서 그다지 상관없습니다. 등장인물이 레즈비언이든 레즈비언이 아니든 여자들 간의 관계를 그리고 있으니까 백합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드네요.” 라고 하셨습니다.

 

창작자로서는 여자들 간의 관계를 그린다면 백합이라는 정도의 인식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합니다. 이 인터뷰에서도 기술되었듯이 저도 관측자(독자)가 백합이라고 인식하면 그 작품은 백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합의 정의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안이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은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화제죠. 그래서 더는 상세하게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정의를 하자면 결국 백합과 레즈의 차이가 뭔데?’라는 질문의 대답은 아무런 차이도 없다입니다. 위에서 기술한 대로 일부러 둘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더 엄밀하게 파고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비교하기 위해서 같이 늘어놓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생각해 봅시다. 위의 질문은 면류와 우동은 뭐가 달라?’라는 질문과 똑같습니다. 이런 질문을 듣는다면 누구라도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겠죠. 질문이 냉국수와 우동은 뭐가 달라?’였다면 면의 굵기나 국물의 차이부터 설명이 가능하겠지만요. 애초에 전제부터가 틀린 질문에는 답변을 할 수가 없습니다.

 

더 상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 동일 개념이라는 단어가 있지요. 상위 개념은 하위 개념을 포함합니다. 여기서 동일 개념만이 병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번 경우에는 상위 개념인 면류에는 하위 개념인 우동이 포함됩니다. 그 외에도 라멘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우동과 라멘은 같은 층위의 개념이지만 면류와 우동은 같은 층위의 개념이 아닙니다. 백합과 레즈의 관계로 돌아오자면 백합이라는 장르 안에 레즈라는 요소가 있는 것이지 둘이 동일 개념은 될 수가 없습니다. ‘레즈라고 하는 요소는 백합 장르에서 꼭 필수적이지는 않으니까요. (역자 주 : 바이섹슈얼이 등장하는 백합 작품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비교하기 위해서 늘어놓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태껏 실컷 레즈라고 써놓았지만, 저는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레즈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레즈라는 단어는 멸칭의 뉘앙스가 있어서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역자 주 : 이래서 일본에서는 레즈비언을 줄여서 비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초면이거나 친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멸칭으로 읽힐 수 있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다고 믿고 싶지만요. (웃음)

 

당연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는 백합 입문자도 있을 수 있기에 주의사항의 의미로 쓴 말입니다.

 

결론 : 엄밀하게 말하자면 백합 레즈가 아니라 백합이라는 장르 안에 레즈라는 요소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귀찮으니까 백합도 레즈도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리이카 201412월호 특집백합문화의 현재에는 그 외에도 양질의 글이 게재되었으므로*3 많은 참고 바랍니다.

 

*1:혼자서도 백합이라는 말의 뜻은 宮澤伊織의 단편소설 キミノスケープ에서 느꼈던 것이지만 인터뷰 중에서 나온 말인 감상적인 풍경은 그것만으로도 백합이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지금도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풍경이 백합이라니...

 

*2: 이것만 읽으면 백합과 레즈라는 사소한 문제는 해결되니까 우선 이걸 읽으세요.

 

*3: 牧村朝子백합 레즈 논쟁의 두루마리등도 추천합니다.

 

역자 후기 : 사실 제가 지난번에 쓴 백합 평론인 백합과 퀴어 서사의 교차에서 주구장창 했던 이야기라서 굳이 번역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요. 어쨌거나 백합의 원류인 일본에서도 이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일본에서도 백합과 레즈의 구분 이야기를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몇몇 남성들이 이 글을 읽고 나서 제발 업데이트를 하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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