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리스트 컨션 평

청아비 2020.06.04 22:49 조회 수 : 43

도마뱀 친구와 인간 친구의 수가 같은 찐따가, 세계 각지 어디에나 친구가 있는 인싸를 호구잡아 큰 것 같긴 한데 털리는 범죄조직, 중학생급 설정을 지닌 수수께끼의 조직, 70년대 만화풍 살인마, 40대 아저씨나 쓸 법한 작명센스를 지닌 사냥꾼들과 싸워 도마뱀을 지킵니다. [밀수: 리스트 컨션]입니다.

 

이산화 작가의 책이지만 SF는 아닙니다. 때문에 사실 글을 읽기 전에 실망할 준비를 했어요. 이산화 작가가 보여주는 독특한 소재 활용 능력과 지식에 대한 재해석이, 현실적인 소재만을 다룬 장르에 잘 먹혀들지 불안했거든요.

 

하지만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이산화 작가는 '장르소설'을 잘 쓰는 작가라는 걸 알았어요. 아주 좋은 의미로 장르에 아주 충실하죠. 전작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는 완벽히 사이버 펑크적이었고요. 이 작품도 야생동물 밀수와, 범죄조직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충실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장르를 배신하지 않아요. 배신하지 않아서 아쉽다~ 이런 것도 아니고, 독자가 원하는 걸 보여주니 만족합니다.

 

이 역시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치밀한 이야기가 아니긴 합니다. 일단 추리 요소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비밀은 대충 싸우고 구르다보면 하나씩 밝혀지죠. 그 외에, 왜 이 캐릭터는 대가리에 총을 맞지 않는 걸까. 이 캐릭터는 왜 저 캐릭터의 대가리에 총을 쏘지 않는 걸까. 왜 이 캐릭터는 여기 있을까, 이 캐릭터는 어떻게 이런 짓을 했나. 이 캐릭터는 어떻게 총을 맞고 이렇게 멀쩡한가. 이렇게, 작품에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 설명되지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을 지목하면 되게 어설픈 소설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장르적 관습에 의해서 대충 넘어갑니다. 그리고 범죄물에서 범죄를 자세히 묘사하면 되나요? 장르소설에서 특이한 캐릭터를 현실에 맞게 납득되게 설명해야하나? 그건 아니거든요. 그냥 그런 장르니까 넘어가는 거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여겨질까 싶습니다만, 그냥 생각없이 읽기에 좋은 소설입니다. 아니 그게, 야생동물 밀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도덕적 논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글 전반에서 사업이라는 기조로 다루고 있으니 고민하거나 생각할 여지가 되게 적어졌거든요.

 

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하기는 그렇지만, 이런 글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주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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