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용돌이들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다면
듀나, 『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 우리학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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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는 영화평론가이자 장르소설(특히 SF)을 쓰는 작가이다. 1990년대 PC통신 시대부터 활동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까지도 나이나 성별을 전혀 알 수 없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올해 3월 16일에는 작년 10월에 출간된 듀나의 소설책 『민트의 세계』 북토크가 한국영상진 흥원에서 개최되었는데, 실제 공간에 작가를 초청하여 진행하는 북토크가 아닌 실시간 채팅으로 토크를 진행하기도 할 정도로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인 ‘듀나의 영화낙서판’에 가보면 한 사람이 이 많은 작품을 다 보았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리뷰들이 남겨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혹자는 듀나가  개인이 아니라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인터뷰나 평론, 출간한 책, 그리고 트위터 계정을 보면 그가 장르 영화나 소설에 굉장히 애정을 가진 전문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듀나가,  올해 3월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를 출간하였다.

 

 

 -장르와 장르를 '깡총깡총’

트위터 프로필인 토끼 사진과 잡지 『 악스트 』 의 토끼 가면을 쓴 프로필 사진 때문인지, 듀나 라고 하면 역시 토끼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토끼 이미지의 듀나답게, 『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도 다양한 장르의 우주들을 깡총깡총 넘나들며 장르를 소개한다.
각 장이 짧아서 언제 어디서 읽기 시작하더라도 쉽게 따라갈 수 있고, 독자를 잡아끄는 흡입력이 있어 한 번 책을 놓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각 장이 몇 개의 통일된 그룹을 이루어 묶  여있지 않아 책 자체가 서론-본론-결론이나 기-승-전-결의 구조를 띠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트위터 계정의 긴 타래를 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타 매체에 기고한 글과   달리, 특유의 스타일인 촌철살인의 단호한 어조는 다소 부드럽게 쓰여 있다.
이 책은 ‘여러분이 이 책을 선택했으니, 이제부터 장르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르의 종류는 이러하고, 각 장르의 정의는 무엇이며, 특징과 클리셰는 무엇이 있는지 차분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그런 스타일의 책을 찾고 있었다면 이 책은 의외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각 장르별로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었다면 장의 이름은  ‘호러’, ‘추리’처럼 장르의 이름이 되어야 했을 텐데, 이 책은 그 장에서 듀나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 문장이나 단어를 제목으로 채택했다.
듀나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이 장르의 땅이라고 선을 그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장르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없다고 말한다. 세상 모든 이야기는 하나 이상의 장르에 속해 있고, 어떤 작품이 이 장르로 속해 있다고 해서 이 작품이 다른 장르가 아닐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누가 보면 좋을까?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의 출판사 책 소개의 첫머리에는 ‘장르 세계 입덕 가이드’라는 소개가 붙지만, 이 책은 꼭 ‘입덕’을 하려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만한 사람들은 두 부류 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첫 번째로는 책 소개와 같이 장르 입덕자, 즉 장르에 입문하여 즐기려는 사람들 혹은 이미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창작자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람들 모두 ‘장르에 관심이 있고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를 읽는다면 누구든지 듀나가 소개하는 장르의 길을 흥미 롭게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 장르 입덕자 혹은 이미 장르물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소설이나 영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으로 장르물을 접하고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해 즐거움을 느낀 사람들은 장르물 자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질 수 있다. 특히 공포와 미스터리, SF 등 하나의 장르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는 사람들, 즉, 작가가 만든 가상의 세계와 그에 따른 설정에 흠뻑 빠지고 싶은 사람들이 가상의 세계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을 때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개론서는 너무 각 잡고 공부하는 느낌이라  딱딱할 것 같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장르물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면 이 책은 정말 유용하다. 이 책에서는 위의 물음뿐 아니라 각 장르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했는지, 장르 그 자체가 아닌 장르의 팬덤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작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무엇이 있는지까지 알 수 있다.

 

· 창작자
창작자는 가상의 세계를 직접 만들고, 캐릭터를 이리저리  이동시킨다.  그러다보면  자신이  쓰고 있는 작품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을 것이다. 듀나는 칼럼이나 평론을 쓰기도 하지만 소설가이기  때문에 이 책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읽었을 때 도움이 되는 장들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책에 정답으로 가는 길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마음속으로 정한 작품의 장르 특성에 대해 한 번 더 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외국에서부터 시작된 장르물을 한국어 사용자가 창작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에서부터 독자에게 무엇을 보여주는 작가가 되어야 할 것인지까지 창작자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볼만한 이야기들도 자리 잡고 있다.

 

 -이야기는 어디로 가는가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에서는 현실 세계의 변화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야기  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결국 사회를 반영하기에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새로운 기술이 발견될 때마다, 이야기는 새로운 형식을 갖추게  된다. 대중  들의 인터넷 사용은 예술 중에서도 글쓰기를 누구라도 시도할  수  있는  지점으로  끌어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넷은 다양한 계층과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다. 학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만이 대중 앞에 글을 발표할 수 있던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누구라도 글을 써서 발표할 수 있고,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과 다양한 디바이스의 보급은 과거에 어떻게 살았었는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세상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읽거나 보는 경험은 종이책이나 텔레비전, 영  화관에 그치지 않고 이북 리더기나 태블릿, 모바일까지 늘어났음을 알게 된다. 이야기를 경험 하는 방식이 폭넓게 변화된 것이다.(어쩌면 종이책이나 텔레비전, 영화관은 미래에 생존하지 못하고 과거의 전유물로 남아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매체의 변화에 따라서도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나 문장 구조 등은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과거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에 따라서 이야기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고 확장될 것이다. 우리는 독자이건  창작자이건  간에  그것을 충분히  즐기고, 변화 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어볼 수도 있다. 우리가 즐기는 이야기가 어떻게 변화되고, 어느 방향으로 전진하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자
. 무엇을 상상하든지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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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박해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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