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태어나는 사람들

 

정말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대상작을 받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 작품은 현실의 인간을 단일성 정체감 장애자들로 부르는 다중인격자들의 세계를 무대로, '인간'을 타자화하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재밌는데,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인간은 정말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러한 인간을 단일인격자로 납작하게 규정하고 일반화하면서도. '인간은 ~~한 존재야!'라고 단정짓는 작품들처럼 편협하다는 생각보다는 기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인간과 다른 종족이 나오는 작품을 참 좋아하는데요. 요컨대 판타지나 SF 등을 보면 이종족이 나오는 작품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존재들은 보면 '종'으로써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비추는 거울로써 기능하거든요. 오크는 인간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부분이 형상화된 존재이며, 인간보다 낮은 인간입니다. 엘프는 아름답고 현명하고 오래살고 뛰어난 종족이지만, 인간보다 편협하고 인간에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종족이죠.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은 외지인에 대한 공포가 형상화된 존재고요. 이러한 종족들이 나오는 작품들의 경우 이종족들의 성격들이 굉장히 일반화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냥 인간하고 차이가 없는 수준이고 실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다루고 있지는 못합니다. 또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고 있지 못한데, 이 작품은 다중인격자들이 다수인 세상을 만들어서 현실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비추고 규정하고 있죠. 그 자체로 재밌는 발상이기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작품 내내 '단일인격자를 이해해줍시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에요'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이 작품의 다중인격자 화자가 실제로는 단일인격자를 다양한 생각을 가진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일반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점 역시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작품 제목은 한 번 태어나는 사람들인데 목차에는 한 번 태어나는 사람 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사소한 실수네요.

 

개와는 같이 살 수 없다

 

평범한 소재, 평범한 전개, 평범한 결말. 대체로 익숙하고 예상 가능하며 페미니즘 색채를 조금 끼얹었을 뿐입니다. 하고 싶은 코멘트가 별로 없네요. 평범하게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읽고 난 다음에 우려가 생기더라고요. 어라? 이렇게 평범한 작품이 우수상인가? 심사평을 보면 더 재밌을 것 같은 작품도 많은데, 이게 우수상이면 다른 작품은 어떻지? 어쩌면 너무 독특한 감성을 다루고 있어서 가작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읽어봤습니다.

 

소년 시절

 

솔직히 형편없었습니다. 굉장히 재미없었어요. 어쩌면 제가 가볍고 노골적인 글들만 읽어서 이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감상이란 주관적인 것이므로 작품이 굉장히 재미없다고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가장 크게 문제로 짚고 싶은 건 이 단편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교사 주인공과 그 교무실의 풍경을 보여줘서 학생들을 성적과 내신으로만 평가하는 현실을 지목하고 싶었나요? 아니면 사실 사이코패스였던 뇌과학 연구자와의 미묘한 불륜 로맨스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기억을 공유하는 정신적 섹스를 하고 싶었습니까? 아니면 공감과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아니면 학교 생활에 녹아들지 못하는 학생과 그 비극적인 최후를 내세워서 학교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나요? 그것도 아니면 외계인과의 퍼스트 콘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까?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고 결말은 허무한 정도가 아니라 짜증납니다.

 

이 중에 하나에만 집중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했으면 이렇게 불평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여길 정도로 고립된 학생을 써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요. 그 학생을 진짜로 외계인으로 만들면 안 됐죠. 그러면 그냥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놈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잖습니까. 외계인 얘기를 하고 싶었다면 사이코패스 뇌과학 연구자와 20년 전의 기억 같은 이야기는 왜 해요?  외계인은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골라도 충분히 인상적일 걸 왜 선택조차도 아닌 맞아죽어서 불가피하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까? 왜 이 모든 이야기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거죠? 묘사되는 세계상도 굉장히 짜증납니다. SF로 보이지 않을까봐 불필요할 정도로 SF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이게 진짜로....... 어설퍼보여요. 소재만을 대충 이어붙여서 작품을 만들려고 한 안이한 시도처럼 느껴집니다. 대충 인기있는 요소만 넣어서 흥행을 기대하는 라이트 노벨 내지 웹소설과 동급...... 돈 주고 산 작품을 이렇게 실망한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웬델른

 

아 이것도 좀...... 위 작품처럼 이야기의 구조 자체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역시 결함이 있는데, 이건 말하자면 재밌는 캐릭터, 기이한 생물 하나를 만들고 밀어주는 형식의 작품입니다. 작품 제목도 웬델른이고, 웬델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생물의 등장이 좀 빨랐어야죠. 작품이 40페이지거든요? 초반엔 전형적으로 이 기이한 생물체에 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리고 그 생물체와 만나고, 경계심을 가지다가, 이윽고 이 생물체를(정확히는 죽은 어미가 남긴 새끼를) 거두고 본격적으로 교감을 하게 되는 그런 전개인데, 이 생물체와 본격적으로 교감을 하게 되는 부분이 29페이지입니다. 너무하지 않아요? 이게 만약 고양이를 주워서 키우는 작품이라고 생각해봐요. 경계심 많은 고양이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걸 29페이지동안 설명한 다음 그 고양이 새끼를 주워서 독립하게끔 하는 모습을 11페이지동안 후다닥 끝내버리는 겁니다. 이러면 안 됐죠. 29페이지동안 설명되는 것은 웬델른이라는 생물체의 '상태'인데, 주제가 될려면 그 생물체에 대한 상태와 설정은 후딱 넘어간 다음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나머지 11페이지도 실망스럽습니다. 이 생물에 대한 매력을 알려주지 못하고 그냥 잘 먹인 다음 내보내버렸어요. 그렇다고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이라는 다른 주제를 좋게 풀어나간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SF적으로 말하면 발상이 안이합니다. 고유명사를 남발하지 않으면 외계인이 나오는 SF처럼 보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까? 등장인물 이름이 한국식으로 하고 사실 외계인이었다고 하면 반전으로 보일 것 같았어요? 어떻게든 특별해보이려고 애쓰는데 아무리 봐도 특별하지 않아서 한심합니다. 가장 한심한 부분이 이곳이에요. 166페이지.

 

"파치데이?"

"그러니까 그걸 뭐라고 해야 되나. 여기선 '카페'라고 하던가?"

 

이 부분이요. 고유명사를 쓸 거면 뻔뻔하게 밀고 나가던가, 아니면 그냥 카페라고 하던가, 아니 정말 웃긴 게 얘네들 독자가 보기엔 한국어로 말하고 있다고요. 외계인 문법이 한국 문법과 1:1 대응됩니까? 그들의 표현이 인간이 쓰는 것과 완전히 같아요? 이들이 말하는 동사 형용사 기타 등등이 사실 인간이 쓰는 것과는 다른데 그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국어로 번역했을 뿐인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 그냥 이 외계인들은 '파치데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단어는 지구 언어로 카페라는 의미니 '카페'라고 쓰는 게 정상적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얘네들이 '파치데이'라는 용어로 말하고 그 뒤에 '사실 그것은 지구인들 언어로 카페라는 뜻이다'라고 덧붙여버리면 외계의 존재인 소설 등장인물들이 자리에 없는 지구인을 의식하는 것 같잖습니까.

 

아니면 독자를 의식한다고 해도 되겠죠. 고유명사를 마구 써서 특별해보이고 싶은 기분은 내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겁이 난 걸까요? 세계 설정은 좀 뻔뻔하게 밀어도 되는데.

 

두 개의 바나나에 대하여

 

이건 다른 두 개의 가작보다는 낫습니다. 왜냐면 다른 작품은 소재도 안이한데 이 작품은 소재 자체는 꽤 괜찮거든요. 괜히 특별하려고 애쓰지 않았단 말이죠.

 

문제는 이게 소재가 기본적으로 호러고 결말도 코스믹 호러적인 감성이 있는데 그럼 작정하고 호러의 문법을 채용해서 호러소설로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뭔가 독특한 세계에 대한 설명에 집중하느라 그 설명을 좋게 풀어나갈 방식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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