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베어 살인사건 평

청아비 2019.07.17 19:44 조회 수 : 77

DCDC 작가의 단편집입니다. 이 작가의 글은 이전에 단편으로 2개를 보았고 두 단편 다 일관적으로 오타쿠 서브컬쳐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자기 식대로 녹여낸 작품이었죠. 라이트 노벨+SF라고 할까요. 절대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저 저에겐 너무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당혹스러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단편집 자체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유쾌함도, 잔혹함도, 쓸쓸함도, 그냥 서사 자체가 저랑 파장이 맞네요.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 작가가 쓴 다른 작품들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단편집이니만큼 각 단편에 대한 감상을 간단히 써보죠.

 

[나암 왕국 이야기]는 동화풍의 유쾌한 이야기입니다. 유쾌한 방식은 라이트 노벨식의 오버스러운 그 무언가죠. 평범하게 좋았고 읽기도 편했습니다. 다만 인명 등 고유명사들이 어딘가에서 따온 건 어감상 느껴지는데 저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네요....... 어쩌면 중요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왜냐면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에서 dcdc 작가가 쓴 단편에 그런 요소가 있었거든요. 이 작가는 작품의 서사와는 별개로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요소를 은근히 집어넣는데 개인적으론 불호입니다.

 

표제작인 [구미베어 살인사건]은 부조리극입니다. 미친 작품은 설명할 필요 없이 뻔뻔하게 밀고나가야하고 이 작품 역시 그렇습니다. 이런 뻔뻔함을 아주 좋아합니다. 다른 시리즈도 보고 싶네요.

 

[월간영웅홍양전]은 읽으면서 좀 미묘했습니다. 작가가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일종의 희화화가 아닌지? 말하자면 빻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저씨들 까는 건 제대로 하고 있었죠. 후기를 보고 납득했습니다. 작가가 썼을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았네요. 그렇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전 흑역사다 싶으면 다 지워버리는 사람인 만큼 이렇게 피하지 않는 것은 작가가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자형 바이러스]는 글쎄요....... '어이 작가님 오타쿠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오타쿠인 걸 이렇게 단편 하나를 써가면서 광고할 건 없잖아요?' 라고 쏘아붙일 수도 있겠지만 오타쿠가 오타쿠같이 행동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오타쿠인 제가 오타쿠 까봤자 자기기만이고, 그냥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단편 자체는 좋았는데 문제가 있네요. 전 구자형 성우의 목소리를 모릅니다. 적어도 구분은 못해요. 언급된 작품들 역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뽀로로 나레이션이라고 하니 알 것 같기도 한데.

 

[비인가하교자문위원 선홍지의 청춘개론]은 라이트 노벨이네요.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면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는 사람이 뭔가 청춘문학 비슷한 걸 쓰려고 하면 나오는 그것이네요. 저는 지금도 라이트 노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만큼 이런 작품들을 꽤 많이 봤지만 이것처럼 완성도 있는 작품은 몇 보지 못했습니다. dcdc작가의 스타일이 좋게 먹힌 것 같아요. 등장인물 이름은 후기를 보고서야 처음 눈치챘습니다.

 

[버려진 곰인형들을 위한 만가]는 역시 뻔뻔한 설정 하나를 설명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드네요. 이게 왜 표제작이 아닌 거야? 개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다른 종족'에 대한 이야기와 통하는 점이 있고 그 다음은 곰인형이라는 '종족'에 대한 완성도가 높은 점, 그리고 이야깃거리와 담고 있는 감정이 건조하게 서술하면서도 아주 풍부한 점. 정말 좋아합니다. 이건 단편이기 때문에 여기서 끝나고 그것으로 충분하지만 이런 느낌의 장편을 봤으면 아예 인생작이 되었을 겁니다.

 

[손인불리심청전]은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크툴루 호러+한국 아저씨 까는 내용인데,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좋은 시도지만 전 요즘 이러한 크툴루 계열의 작품들을 보면서 아주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습니다. 크툴루 신화의 매력은 자기가 생각한 신, 혹은 신화 생물을 등장시켜 세계관 확장시키는 건데 왜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누가 봐도 크툴루 신화 모티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들만 나와? 물고기 인간, 문어 인간, 불덩이. 아주 지겹다 증말. 뭐 이 작품은 구체적으로 크툴루라곤 말 안 했지만 바다가 나오면 이제 긴장되기는커녕 재미가 없어요.

 

[곰인형이 왔다]는 처음엔 판타지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은 가정폭력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읽어보니 그 또한 있지만 우울증과 자기혐오에 대한 이야기군요. 작가가 후기를 얼버무린 만큼 저 역시 길게 말하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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