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도에 tumblr에 작성한 글을 2015년도에 blogger에 옮겼다가, 2018년도에 postype으로 옮겼다가, 다시 텍스트릿으로 옮깁니다.
이 과정에서 문맥을 다듬고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 정식 발매되지 않은 서적이고 내용과 연출과 폭력성을 보면 영영 정식발매될 길이 없을 것 같지만, 혹시나 하는 빠심에 올립니다.

 

 

라이치☆히카리 클럽(이후 라이치 히카리 클럽으로 통칭)은 <파레포리>, <최강 여고생 마이> 등을 그린 만화가 후루야 우사마루의 작품이다. 원작은 동경 그랑기뇰이라는 극단의 라이치 히카리 클럽이라는 연극인데, 책 뒤의 저자 후기로 미루어보아 소녀와 기계의 사랑이라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른 것 같지 않다. 다만 연극을 만화로 옮기면서 인간관계나 갈등을 조금 더 복잡하게 그려서, 연극에서 빠진 부분을 제외하고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은 달라졌고 제라와 쟈이보, 타미야 간의 관계도 만화 오리지널이다. 후기에 후루야 우사마루씨도 썼듯 각 매체에서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마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라이치 히카리 클럽은 무척이나 연극적인 만화이다. 만화의 첫 장부터 막을 나타내는 커튼이 나오고, 소년들은 연극의 무대장치와도 같은 거대한 잠망경을 돌린다. 만화가 끝났을 때 나오는 말은 終劇이다. 여교사의 처형 장면에서 주인공 소년들이 여교사의 옷을 찢어발기는 장면이나 각 소년을 소개하면서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면은 분명히 양식적이고 연극적인 연출을 의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동경 그랑기뇰의 멤버였던 만화가 마루오 스에히로의 연출과 컷 구성을 떠올렸다.) 작가는 원작 연극의 굉장한 팬인데, 그래서인지 원작의 분위기와 느낌을 최대한 재현해내기 위해서 이런 연출을 한 것 같다. 내가 본 후루야 우사마루의 작품은 얼마 안 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극적인 연출을 사용한 적은 그리 없던 듯 하다.

만화에서는 인간관계나 갈등구조가 보다 복잡해졌다고 썼지만 사실 이 만화의 인간관계와 갈등구조는 매우 평면적이고 2차원적이다. '배신자'라는 키워드를 두고 미스테리가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 원동력이 되는 인물의 동기는 그리 복잡하거나 심오하지 않다. 몇몇 인물의 동기는 그야말로 이와 같은 장르의 이야기에서 수없이 반복된 공식이다.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이것이 만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이 라이치 히카리 클럽 고유의 특징을 만들어낸다.

이 만화에서 보여주는 Sex & Violence는 파격적이지만 또한 오락적이다. 그래서 그 강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낄낄거리며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방금 전에 사람 배를 나이프로 뚫어서 장기놀음을 한 미소년이 피범벅이 된 채 라이치 열매를 받아먹는다거나, 사람 배를 변기(ㅋㅋ)로 뚫어 대장이 마치 배설물처럼 널부러지는데, 이것을 불거진 모세혈관까지 다 그려낼 기세로 화면 크게 잡아서 섬세하게 그려내는데다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이런 장면들은 누군가에게는 악취미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저급한 포르노지만 누군가에게는 뉴런 사이에서 불꽃놀이처럼 전기적 신호가 오갈 오락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 볼 때는 충격적이지만 볼 수록 충격은 반감되는 폭력은 아마 이야기의 정서적 측면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에 더 큰 오락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오스칼님이 아름답게 돌아가시면 팬들은 눈물을 흘리며 장례식을 치룬다. 사무라이 스피리츠의 나코루루처럼 죽는 장면이 나오자 팬들이 반발해서 다시 살아돌아오는 캐릭터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캐릭터들은 보다 쉽고 값싸게 살처분될 수 있다. 죽는 장면은 가장 성대한 오락이기 때문에 어떻게하면 가장 잔혹하고 재미있게 죽일지 머리를 굴려야 하지만, 이 캐릭터가 죽을 때 독자가 감정적으로 심하게 동요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도록 머리를 쓸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부분은 무척이나 거대하고 힘센 괴물이 무척이나 잔혹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때려죽인다는 사실,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느냐, 캐릭터가 죽는 방식 자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느냐라고 해야 할까…?

이런 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는 아마 쟈이보가 아닐까. 라이조우도 미소년 캐릭터이고 악취미적으로 죽는다. 하지만 나는 쟈이보와 제라의 죽음을 이 만화에서 가장 악취미적이고 가장 오락적이고 가장 가치있는, 아마도 작가가 가장 공을 들였을 죽음으로 꼽고 싶다. 쟈이보가 죽을 때의 연출은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가장 잔혹하고 재미있게 죽일지 깊이 고민한 흔적이고, 제라의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최고이다.

나는 여기에서 후루야 우사마루라는 이 만화가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그를 <파레포리>와 <최강 여고생 마이>,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으로 알았다.
만화가 후루야 우사마루의 특징이라면 초현실 세계에 대한 끝없는 집착과 머리를 쾅 내려치는 듯한 파격성이 아닐까?

이때 이 작가의 '파격성'이란, 잔혹한 장면의 표현 수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이 라이치 히카리 클럽이 후루야 우사마루 다운 파격적 측면에서라면 한참 뒤떨어진다고 본다.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에서는 참으로 얌전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렸지만, 그 안에도 한없이 후루야 우사마루다운 파격은 있다.
종교적 열정과 숭배가 성욕으로까지 닿아서, 주인공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신을 보면서 자위하는 장면을 누가 그려내겠는가. 성녀 테레사의 법열도 아니고.

<최강 여고생 마이>에서 뜬금없이 순수미술과 만화를 접목하던 것도 그렇고, 한 번 보고나면 어지간한 4컷만화를 못 보게 만드는 데뷔작 <파레포리>도 그렇고.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가이다.

 

+

처음에 볼 때는 충격적이지만 볼수록 충격은 반감되는, 뉴런 사이에서 불꽃놀이처럼 전기적 신호가 오갈 찰나의 오락을 정말 사랑합니다.
과연 원작은 어떤 연극이었을지….

++

텍스트릿에 글을 쓰면서.

이 만화가 탄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화가 마루오 스에히로에 대해 제가 아는 정보를 덧붙입니다.

마루오 스에히로는 일본의 만화가로, '에로그로'라는 장르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입니다. 에로그로는 에로스+그로테스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종기 우키요에의 대가이자 잔혹한 그림을 다수 남겨 '피투성이 요시토시'로도 불렸던 쓰키오카 요시토시를 오마쥬한 작품을 다른 작가와 협력해 남기기도 했습니다.
잔인한 그림을 싫어하신다면 부디 검색하지는 마세요. 뇌와 장기가 지나치게 흩날리는 그림을 보고 싶으시다면 검색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이 작가의 작품이 정식으로 발매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극우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만큼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의 요소를 페티시적으로 집요하게 그려내기 때문이지요.

작가의 사상에 대해서라면, 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마루오 스에히로가 자신의 일러스트에서 군복이나 일장기 등 제국주의 시기를 연상시키는 장치를 지극히 탐미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일본인의 행성>이라는 단편에서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이긴 가상의 미래를 그려내기도 하였죠.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다른 단편에서 타이쇼, 메이지, 쇼와가 헤이세이의 탄생을 기다리며 추악한 본모습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쓰기도 헀습니다. 게다가 일본 사회에서 금기라고 할 수 있는 천황을 사팔뜨기로 그려내기도 하였다고 하네요.

작품을 몇 권 읽으면서 느낀 점은...

처음에 소년만화를 지망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내용이 어둡고, 움직임을 나타내는 특유의 연출이 굉장히 독특하며 양식적이고, 압도적일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라는 것이었어요.
과격한 움직임을 표현할 때의 정적이면서도 양식적인 특유의 연출은 타고났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아직 논문을 읽지 전이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도 에로그로 열풍이 일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쩌면 이것이 마루오 스에히로가 제국주의를 연상케 하는 여러 장치를 페티시즘 그 자체로 그려내는 열쇠일지도 모르겠네요.
보다 정돈한 언어로 에로그로와 제국주의 일본,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관계에 대해 풀어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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